최근 10여 년간 럭셔리 하우스가 가장 집요하게 투자해 온 영역은 ‘공간’이다. 이는 단순히 플래그십 스토어의 규모를 키우거나, 더 화려한 인테리어를 구현하기 위함이 아니다. 온라인 쇼핑이 소비의 중심으로 이동한 지금, 물리적 공간은 오히려 브랜드가 자신을 가장 밀도 높게 설명할 수 있는 최후의 매체로 자리 잡았다. 각 하우스는 자신들의 세계관을 가장 잘 해석할 수 있는 건축가의 문법을 선택했고, 그 문법은 브랜드 철학을 공간적 경험으로 번역하고 있다.
프라다 with OMA/AMO
패션을 ‘실험하는 사고 시스템’으로 만드는 렘 콜하스의 공간




프라다의 에피센터Epicenter 프로젝트는 리테일 건축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사례로 평가된다. OMA/AMO를 이끄는 렘 콜하스Rem Koolhaas의 건축 문법은 언제나 형태보다 시스템에 가깝다. 그는 건축을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형되고 재해석되는 플랫폼으로 바라본다. 예술가의 거리, 맨해튼 소호에 위치한 구겐하임 미술관 분점에 2001년 오픈한 뉴욕 프라다 에피센터에서 이 문법은 극명하게 드러난다. 매장은 단순한 상품 진열 공간이 아니라, 전시, 퍼포먼스, 런웨이, 이벤트가 수시로 교차하는 실험실로 설계되었다. 1층부터 지하로 파도 모양을 이루는 웨이브 구조는 계단이자 무대이며, 관객석이자 디스플레이 장치다. 이 다층적 구조는 프라다가 패션을 단순한 트렌드 소비가 아닌 지적 담론과 문화적 실험의 장으로 다뤄왔다는 태도를 공간 자체로 증명한다.


콜하스의 건축 언어가 프라다와 잘 맞는 이유는 명확하다. 프라다는 늘 ‘옷을 만드는 브랜드’라기보다 ‘사고하는 브랜드’에 가까웠고, 콜하스가 1975년 공동 설립한 OMA/AMO는 그 사고 과정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건축적 문법을 제공했다. 뉴욕에 관한 저서 <정신착란증의 뉴욕Delirious New York>(1978)과 본인의 현대 도시 문화와 건축 철학을 담은 <S, M, L, XL>(1995)로 대표되는 그의 작업은 건축의 형태보다 도시, 문화, 미디어, 소비가 얽힌 시스템을 해석하는 데 강점이 있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콜하스는 프라다 매장을 멋진 옷을 판매하는 상점이 아니라, 브랜드의 사유를 실험·전개하는 플랫폼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고, 이후 에피센터 로스앤젤레스Epicenter Los Angeles, 밀라노에 위치한 현대미술관인 폰다지오네 프라다Fondazione Prada, 그리고 패션쇼 세트까지 함께하며 우정을 이어오게 되었다.
루이 비통 메종 서울 with 프랭크 게리 & 피터 마리노
랜드마크와 체류 경험 사이, 조형과 럭셔리의 결합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은 프랭크 게리Frank Gehry와 피터 마리노Peter Marino가 함께 ‘상상했다’고 공식적으로 소개되는, 두 개의 건축적 언어가 명확히 분업된 사례다. 외관을 담당한 프랭크 게리는 도시 속에서 즉각 인식되는 조형적 아이콘을 만들고, 내부를 설계한 피터 마리노는 그 안을 머무르는 럭셔리로 완성했다.


게리 특유의 곡선 유리 파사드는 건물 자체를 하나의 조각처럼 만든다. 이는 루이 비통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여행과 이동의 헤리티지를 도시적 스케일로 확장한 결과다. 이 건물은 매장이기 이전에 랜드마크로 기능하며, 브랜드의 존재감을 도시 풍경 속에 고정시킨다. 반면 마리노의 내부 문법은 훨씬 정제되어 있다. 그는 공간을 과시하기보다, 예술 작품과 가구, 동선의 리듬을 통해 고급스러운 체류 경험을 설계한다. 특히 상층부에 위치한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은 전시 공간으로 운영되며, 메종이 예술 후원을 통해 구축해 온 문화적 자본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은 쇼핑과 전시, 도시의 랜드마크가 하나의 공간 안에서 겹쳐지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프로젝트는 루이 비통이 최근 전 세계적으로 강화하고 있는 전략인 리테일-테인먼트retail-tainment, 즉 리테일을 문화 시설로 확장하려는 의도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조형적 과감함과 내부 경험의 밀도, 이 두 층위를 고르게 구성한 루이 비통 메종 서울은 브랜드의 규모와 야망을 동시에 설명한다.
에르메스 메종 긴자 with 렌조 피아노
빛과 디테일로 말하는 장인 정신




에르메스 메종 긴자는 과시 대신 절제를 선택한 브랜드 건축의 교본에 가깝다. 이 공간을 설계한 렌조 피아노Renzo Piano의 건축 문법은 기술을 드러내기보다, 빛과 구조를 통해 보이지 않는 품격을 전달하는 데 있다. 퐁피두 센터를 대표로 하는 렌조 피아노 건축의 특징은 하이테크를 과시하기보다는 구조와 재료, 빛을 정교하게 다듬어 가볍고 투명한 건축을 만드는 데 있다.
에르메스 메종 긴자의 상징은 맞춤 제작된 유리블록 파사드다. 13,000개의 유리블록들은 낮에는 자연광을 부드럽게 흡수하고, 밤에는 내부의 빛을 은은하게 발산하는 이 외피는 일본의 전통 등불을 연상시키며 도시와 조용히 호흡한다. 이는 에르메스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장인 정신을 은유하는 시간과 인내를 시각적 과장 없이 번역한 결과다. 피아노의 건축은 에르메스의 철학과 닮아 있다. 빠른 변화보다 지속성을, 트렌드보다 완성도를 중시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이곳에서 브랜드는 로고로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빛을 걸러내는 방식, 재료의 단정함, 도시의 스케일을 존중하는 태도, 즉 렌조 피아노 특유의 큰 구조 안에서 디테일을 장인처럼 컨트롤하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건축의 태도를 보여주는 에르메스 메종 긴자는 에르메스가 왜 여전히 가장 조용한 럭셔리로 인식되며 럭셔리 업계에서 공고한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공간 차원에서 증명한다.
아크네 스튜디오 with 소피 힉스
도시의 밀도 속에 놓인 미니멀한 태도



아크네 스튜디오는 건축가 소피 힉스Sophie Hicks와의 협업을 통해, 브랜드의 미니멀리즘을 공간 언어로 정제해 온 하우스다. 이 협업의 출발점은 서울이었다. 아크네 스튜디오 청담 플래스십 스토어에서 힉스가 선택한 전략은 명확하다. 외관은 반투명 폴리카보네이트 파사드로 구성되어, 낮에는 빛을 흡수하고 밤에는 내부를 드러내는 라이트박스처럼 작동한다. 건물은 강한 상징이나 장식 대신, 도시의 시간과 조도에 반응하며 존재감을 만든다. 이는 아크네가 패션에서 취해온 태도, 즉 과시보다는 거리두기, 설명보다는 암시를 건축적으로 확장한 결과다. 매장은 ‘보여지는 오브제’라기보다, 주변 환경과 호흡하는 하나의 장치로 작동하며 소피 힉스가 직접 말하는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속 평화로운 안식처’의 역할을 수행한다. 내부 문법 역시 일관된다. 노출된 설비와 콘크리트 구조, 차가운 금속 디스플레이는 전통적인 럭셔리 리테일의 완결성과 거리를 둔다. 힉스는 공간을 완성된 무대로 만들기보다, 옷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배경으로 설정한다. 동선은 과도하게 연출되지 않고, 여백과 시선의 흐름이 중심이 된다. 이 공간에서 아크네의 옷은 장식된 상품이 아니라, 구조 안에 놓인 하나의 요소로 기능한다.
이 서울 프로젝트 이후, 힉스와 아크네의 협업은 뉴욕으로 이어진다. 맨해튼 웨스트 빌리지의 벽돌 주거 건물 1층에 위한 매장은 서울에서 구축된 공간 언어를 바탕으로, 보다 도시적인 밀도로 재해석된 사례다. 세탁소와 편의점이 있던 자리에 이질적인 분위기의 공간이 들어선 것. 이곳은 위쪽의 벽돌 외관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도록, 스테인리스 스틸 프레임으로 된 쇼윈도를 설치하여 8번가를 지나가는 차량의 헤드라이트를 부드럽게 반사하도록 했다. 아크네 구조와 재료의 선택은 여전히 절제되어 있지만, 뉴욕 매장은 보다 압축된 스케일 안에서 브랜드의 태도를 명확히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