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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el Aesthetic
매혹적인 것들에 대해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는 박선영 작가의 에세이 시리즈. 예술, 건축, 디자인, 호스피탈리티 관점에서 호텔의 미감을 담은 에세이 컬렉션으로, 호텔은 물론, 스테이까지 이야기의 영역을 확장합니다. 매달 첫째 주에 발행되는 그녀의 에세이와 함께 어느 도시의 호텔로 잠시 일상을 벗어나 보세요.
오래된 건물 위 새로운 감각, 호텔 K5 도쿄
에도 시대의 상인과 짐꾼들이 건너던 니혼바시는 한때 일본 자본주의의 심장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회색 금융가로 남겨졌던 그 거리에 최근 새로운 공기가 스며들고 있다. 100년 된 은행 건물을 개조한 '호텔 K5 도쿄'는 그 변화의 가장 감각적인 신호다. 오래된 금융도시의 침묵 위로 LP 음악과 커튼, 빛과 식물이 천천히 새로운 시간을 틀어 올린다.
머무름으로 설득하는 공간, 코펜하겐 아우도 하우스
코펜하겐의 디자인은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아우도 하우스에 머무는 동안, 디자인은 ‘보는 것’이 아닌 ‘함께 지내는 것’이 된다. 디자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걸 몸소 알게 해준 3번 방에서의 일주일.
호텔에서 보낸 탐미의 밤, 파리 생 마르크
파리 오페라 근처의 고요한 밤, 문을 닫은 도시 위로 단 하나의 무대처럼 빛나던 공간이 있다. 호텔 생 마르크에서의 시간은 파리의 리듬 위에 관능적인 색채를 겹쳐 올리며, 여행자를 조용히 각성시킨다.
잠시 다른 꿈을 허락하는 집, 가평 아시 하우스
두 번째 책을 마친 뒤, 나에게 필요했던 건 더 먼 여행이 아니라 조용한 머무름이었다. 명지산 자락 아래 놓인 아시하우스에서 나는 자연과 공간, 그리고 문장에 천천히 다시 닿는다. 이미 충분했던 세계를 새롭게 감각하는 일, 그 느린 연습에 관하여.
공원과 수영장 사이에 맡긴 하루, 도쿄 트렁크 요요기 파크
이 호텔에서의 하루는 풍경을 ‘본다’기보다 그 안에 스며드는 경험에 가깝다. 설경, 노출 콘크리트, 미묘한 물의 온도가 겹겹이 쌓이는 사이, 7층 스위트룸의 시간은 도쿄의 거대한 복잡함을 잠시 잊게 만든다.
런던의 한밤과 아침 사이, 런던 하프 문
런던의 남동쪽, 영국적 색채를 품은 헤르네 힐. 이곳에 자리한 호텔 하프 문에는 활기 넘치는 펍의 저녁과 고요한 아침의 햇살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뾰족한 지붕들 아래 숨겨진 집, 안트베르펜 줄리앙
중세 플랑드르의 뾰족한 지붕들이 하늘을 메운 도시 안트베르펜. 그 골목 깊숙한 곳에서, 호텔 줄리앙은 ‘머무름’이라는 감각을 다시 정의한다.
구름 속에 머문 시간, 도쿄 친잔소
'도쿄의 오아시스'라 불리는 역사 깊은 호텔 친잔소. 도쿄 내에서도 조용한 고급 주거 지역에 자리한 친잔소는 19세기 말 조성된 정원을 한가득 품고있다. 19세기 유럽풍 미학과 일본의 와비사비 미학이 깃든 호텔에서의 하룻밤.
Prologue 수필이 되는 밤
Icon・Index・Symbol
보이지 않던 것에 형태를 주고, 들리지 않던 것에 이름을 부여합니다. 작은 것을 들여다보는 이 짧고 조용한 집중 속에서, 우리가 다시 감각해야 할 세계의 리듬을 느껴보세요. 매주 월요일 찾아오는 배재희의 ⟨Icon・Index・Symbol⟩ 시리즈
Editorial
그로테스크의 귀환, 낯선 것을 추구하는 인간을 위하여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 붙이는 단어가 하나 있다. 아름답다고 하기에는 불편하고, 어딘가 낯설지만 시선을 뗄 수 없는 것. 알 것 같으면서도 명확히 설명되지 않을 때 우리는 '그로테스크(Grotesque)하다'라고 표현한다. 지금은 너무나 익숙하게 쓰이며 원래는 무엇을 가리켰는지 잊힌 단어. 그러나 알고 보면 이 단어는 무척이나 깊고 오래된 어원을 지니고 있다. 로마 시대의 어느 어두운 ‘동굴’에서 유래한 이 미심쩍고도 아름다운 단어의 기원을 따라 몇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Editorial
그녀들의 시계, 케이스백에 새겨진 드라마
시계는 시간을 기록하지만 다른 무언가가 새겨질 때 하나의 아이콘이 된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커져가는 명성은 대개 해소되지 않은 결말을 품을 때 더 강렬해진다. 무브먼트와 케이스로 이루어진 이 정밀한 기계도 어떤 순간을 담는 보관함이 될 수 있고, 이러한 시계의 진짜 가치는 주로 경매장에서 증명된다. 보통은 누구의 손목 위에서 어떤 서사로 존재했는지가 가격을 결정하지만, 사람들은 확인된 사실보다 해소되지 않은 이야기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 남성들이 착용한 시계는 주로 명확한 사실이, 여성들의 시계는 끝내 밝혀지지 않은 서사가 신화가 된다. 이제 그 단단한 보관함을 열어본다.
Editorial
나보코프가 발견한 각자의 인생, 자기만의 방
타인의 공간을 구경하는 것은 왜인지 흥미롭다. 20세기 후반 프랑스 소설가 조르주 페렉은 사물이 욕망을 드러낸다고 했다. 도미니크 나보코프는 1995년부터 사물이 놓인 타인의 공간을 찍어왔다. 〈뉴요커〉의 커미션으로 시작된 〈Living Rooms〉 시리즈. 뉴욕(1998), 파리(2002), 베를린(2017). 세 권의 책, 수십 개의 방. 수전 손택, 앨런 긴즈버그, 이브 생로랑, 데이비드 치퍼필드. 유명인들의 이름은 등장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없다. 하지만 더 긴밀히 드러나는 것이 있다.
Editorial
무심함의 여행, 조선의 이름 없는 항아리가 바다를 건넌 이야기
1935년, 이름 모를 달항아리 하나가 바다를 건너 런던으로 실려 갔다. 누가, 어디서, 어떤 마음으로 빚었는지 알 길 없는 이 조선의 살림 항아리는 당시 경성의 골동품 가게에서 한 이방인 예술가의 눈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정은 영국 도예 거장들을 거쳐 60년 만에 대영박물관 한국관의 중심에 안착하는 서사를 완성했다. 무심하게 빚어진 사물 하나가 누군가의 생에 들어가 그의 예술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둘러싼 예술 세계에 영향을 주었다. 이 텅 빈 항아리는 어떤 힘으로 그 긴 시간을 견디며 제 자리를 찾아왔을까.
Editorial
애플에 앞서, 소니 그리고 모리타 아키오가 있었다
워크맨을 듣는 것은 왜 즐거울까. 많은 사람에게 워크맨은 처음 구매한 음향기기였다. 테이프를 넣고, 이어폰을 꽂아 걸으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즐거움을 위해 불편함을 감내하는 일을 알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디지털 음원처럼 곡을 쉽게 오갈 수 없었고, 되감기와 빨리 감기 버튼을 누르면 앞뒤 어딘가 예측 못 한 곳에 떨어져서 처음부터 쭉 듣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걷는 사람(Walkman). 걸으면서 듣는 사람. 1979년, 모리타 아키오는 이 개념을 세상에 퍼뜨렸다. 최초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의 우주를 확장시켰던 전설적인 하드웨어.
Editorial
위대함이라는 가업, 계승되는 천재성
위대한 이름이 하나의 가업이 되어 이어져 내려온다면, 그것은 가족에게 견고한 울타리이자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만약 부모가 거장이라면, 후손인 그들에게 주어진 숙명은 그 중력으로부터 멀리 도망쳐 자신만의 빛을 발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여기서 자신만의 지형도를 그린 세 인물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부모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미학적 화두를 새로운 언어로 번역해 내며 스스로 하나의 장르가 된 사람들.
Editorial
버려진 산업 유산의 미학적 환생, 무덱과 폰다지오네 프라다
2015년 밀라노 엑스포가 열리던 해, 도시 남쪽의 오래된 공장 지대에서 두 개의 공간이 나란히 문을 열었다. 하나는 밀라노 시가 국제 공모를 통해 15년 만에 완성한 시립 박물관 '무덱'이고, 다른 하나는 패션 하우스가 사유지에 세운 예술 재단 '폰다지오네 프라다'다. 두 곳 모두 20세기 초 산업 시설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점은 같지만, 들여다보면 정반대의 논리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뚝뚝한 회색빛 건물은 안으로 들어설수록 투명하게 열려 있고,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건물은 외부와 거리를 둔 채 자신들만의 독립적인 세계를 공고히 유지하고 있다.
Editorial
비요크의 시각적 유산, 그 궤도를 수놓은 비주얼리스트의 연대기
우리가 누군가를 생각했을 때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른다면, 그 사람이 가진 수많은 면 중 가장 뾰족한 것 하나가 인식에 먼저 박혔다는 뜻이다. 그러나 비요크는 여러 가지 강렬한 이미지들이 동시에 떠오르고, 그것들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전 매 순간 벗어둔 허물 같다. 그 갖가지 비주얼들은 그녀가 매 순간 세상과 맺고 있던 관계의 기록이었다. 1990년대 초 아이슬란드에서 솟아오른 이 작은 거인 앞에서 당대의 사진가와 영상 감독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반응했다. 비요크라는 캔버스 위에서 서로를 가장 빛나게 해주었던 비주얼리스트들, 그들이 함께 만든 낯선 세계를 들여다본다.
Editorial
날카로운 찰나를 포착했던, 하이엔드 포인트 앤 슛 카메라들
요즘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이 다시 자연스러워졌다.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기묘한 아날로그의 흐름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입은 단순한 레트로에 대한 유행일까. 디지털의 매끈하고 결점 없는 결과물과 달리 셔터가 열리면 빛은 필름에 직접 화학적 자국을 남긴다. 이 물리적인 발자국은 무한히 생성되고 소멸하는 데이터 세상에서도 ‘단 하나’라는 실재의 무게를 다시금 증명해 낸다. 이 흐름의 중심에 있는 하이엔드 포인트 앤 슛 카메라, 그중에서도 전설적인 다섯 가지 시선을 나열해 본다.
Editorial
루카 구아다니노가 그린, 에로스와 타나토스
왜인지 루카 구아다니노의 세계에서 사랑은 종종 대가를 치르며 그 대가는 상실이거나 죽음이다. ⟨아이 엠 러브⟩와 ⟨본즈 앤 올⟩은 사랑이 향하는 방향이 서로 정반대인 두 편의 영화다. 어떤 것이 해피엔딩이고 어떤 것이 비극인지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남은, 우리 마음을 흔드는 잔상이 정의내릴 것이다. 그 잔상이 그려낸 빛의 온도와 미장센의 언어를 하나씩 짚어보려 한다.
Editorial
걸작은 빈 방에서 태어난다, 도널드 저드와 릭 루빈
내 방, 내 집. 우리는 공간을 소유한다고 여기지만 사실 공간은 머무는 사람의 정신을 조금씩 바꾸는 그릇에 가깝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길어 올려야하는 창작자에게 집은 영감의 발원지이자 휴식처 그 이상이다. 미니멀리즘 조각의 거장 도널드 저드와 전설적인 음악 프로듀서 릭 루빈은 분야가 다르지만 기묘한 공통점이 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공간. 그래서 행위에 집중하게 만드는 공간. 두 사람이 만든 장소를 따라가 보면 비워내기 어려운 사회에서 ‘덜어냄’이 어떤 감각을 만들어내는지 선명해진다.
Editorial
카를로 스카르파와 아바텔리스의 마법
미학의 거장, 이탈리아 최고의 건축가이자 전시 디자이너인 카를로 스카르파가 시칠리아에 남긴 선물. 파괴된 궁전을 '보는 법을 가르치는 장소'로 바꾼 아바텔리스 미술관의 마법 같은 이야기를 담았다. 창문을 통과한 빛이 대리석 조각에 깃드는 '찰나'를 설계한 건축가의 집요하고 아름다운 집착을 들여다본다.
Editorial
찰나의 실재가 빚어낸 초현실의 미학
요즘은 명령어 한 줄이 실제 같은 이미지를 즉각 배달하는 시대. 하지만 1970년대 런던의 외곽에서는 한 남자가 실제로 몸을 불태우고 있었고, 영국의 어느 해변에는 700개의 철제 침대가 일렬로 늘어서 있었으며, 하늘에는 9미터짜리 거대 분홍 돼지가 비행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픽셀의 조합이 아닌, 인간의 의지 하나로 이루어낸 ‘실제 사건’이었다. 이미지 너머의 밀도를 통해 스톰 소거슨은 결코 렌더링할 수 없는 ‘진짜’를 일찍이 증명해 냈다.
Editorial
아름다운 제약, 상상력을 붙잡아두는 창조의 도구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백지의 막막함 대신, 스스로를 ‘제약’이라는 좁은 프레임 안에 가두어 비로소 자유로워진 이들이 있다. 결핍을 도구 삼아 사고의 밀도를 높이고, 불편함을 프레임 삼아 영감의 재료로 그 안을 채웠다. 세계적인 크리에이터들이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해 스스로를 구속했던 아름다운 제약을 살펴본다.
Editorial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법, 움베르토 에코의 웃음
움베르토 에코는 세상을 향해 쉽게 분노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 앞에서 그는 고함 대신 웃음을 택했다. 단, 그 웃음은 냉소나 체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에코의 산문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법』에서 드러나듯, 그것은 분노를 냉철한 지성으로 걸러낸 언어였다. 가장 정교한 비판의 형태.
Editorial
오카자키 쿄코와 도시적 에로티시즘
80년대 일본 도시의 화려함 뒤에 숨은 공허함을 가장 잘 그려낸 작가, 오카자키 쿄코. 작가는 도시가 우리의 몸과 감정을 어떻게 세련되게 '편집'하고 '소비'하는지 차갑게 보여준다. 사랑이 아닌 편의점 조명 아래에서 시작되는 그녀의 에로티시즘이 지금 더 생생하게 읽히는 이유를 찾아본다.
Editorial
우연이라는 완벽한 질서, ‘우연 연산’
진정한 발견은 내려놓는 '우아한 항복'의 순간에 찾아온다. 현대 음악의 혁명가 존 케이지의 '우연 연산'과 하이데거가 말한 불확실성이 존재의 본질이라는 의미를 엮어, 통제할 수 없는 삶의 흐름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비로소 목격하게 되는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Editorial
노력의 흔적을 지우는 기술, 스프레차투라에 대하여
새해의 다짐이 작심삼주의 고비를 지나며, 의도와는 다른 주름을 잡기 시작하는 1월의 한복판이다. 새해 첫날 세운 바른 자세를 의식할수록 보폭은 오히려 어색해지고,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긴장은 움직임에서 경쾌함을 빼앗는다. 계획에서 조금 벗어난 생활을 곧바로 실패로 규정하기보다는, 이 느슨해진 상태를 다르게 바라볼 수는 없을까. 16세기 이탈리아 미학의 개념인 ‘스프레차투라’는 바로 이 질문에서 다시 읽힐 수 있는 오래된 태도다.
Editorial
미완성과 우연의 초상, 〈휘슬재킷〉
우리는 빨간색을 보면 어떤 느낌을 받는가? 색채는 언어보다 먼저 도착하는 감각이다. 그중에서도 붉은색은 문화권의 경계를 막론하고 가장 강렬하고 상징적인 색이다. 이 뜨거운 에너지 위로 '말’이라는 존재가 겹쳐질 때, 그 상징적 파동은 더욱 선명해진다. 말은 귀족적인 상징이자 신화 속 존재에 이르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 강력한 상징 '붉은색과 말'이 한 화면에서 조우하는 지점에 18세기 영국 화가 조지 스텁스의 〈휘슬재킷〉이 서 있다. 2026년 병오년, '붉은 말의 해'를 기념하며 새해의 시작에 작은 이야기를 곁들여본다.
Editorial
악의 미학을 위한 클래식
아름다움은 오래도록 선(善)의 증거처럼 취급되어 왔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가장 잔혹한 장면은 언제나 질서 정연하다. 비명 대신 교향곡이 흐르고, 혼란 대신 완벽한 구도가 폭력을 감싼다.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를 기점으로 고전음악은 더 이상 숭고함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광기를 은닉한 채 작동하는 가장 세련된 형식이 되었고, 무질서한 폭력보다 더 깊은 불안을 남긴다. 이 글은 고전음악과 폭력이 결합하며 만들어낸 ‘정돈된 악’의 미학과 그 지속되는 영향력을 따라간다.
Editorial
손의 여운, 사물이 살아 있는 시간: 루시엔 데이와 마가렛 호웰
디자이너가 자신의 세계관을 가장 투명하게 드러내는 순간은, 자신이 경외하는 타인의 작업을 자신의 공간으로 끌어오는 선택에 있다. 마가렛 호웰이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달력의 주제로 루시엔 데이의 직물을 고른 것은 단순한 큐레이션이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디자인의 기원은 이것이다’라는 선언처럼 보인다. 1950년대의 잿빛 일상에 심어놓은 데이의 유기적인 리듬은, 반세기를 지나 호웰의 옷을 관통하는 가장 단단한 첫 문장이 되었다. 새해의 첫 면을 장식한 색채가 아름다운 직물을 보며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당신의 일상을 시작하게 할 감각은 무엇인가.
Editorial
연옥 단계의 클래식
우리는 오래된 것이 아이콘이 되거나 잊히는 이분법의 시대를 산다. 하지만 그 사이, 명확한 분류를 거부한 채 여전히 생활 속에서 숨 쉬는 사물들이 있다. 1970년대의 오디오, 기계식 카메라, 수동 타자기… 이들은 '쓰기엔 낡았고 박물관에 가기엔 이른' 모호한 시간대에 머문다. 단테의 연옥처럼 지옥(폐기)과 천국(박물관) 사이에서 유예된 사물들이 갖는 독특한 긴장감과, 그 불편한 물리적 감각이 어떻게 현대의 우리에게 불완전함의 역설, 그리고 시간이 기능으로 남아 있는 경험이라는 새로운 미학적 가치를 제공하는지를 들여다본다.
Editorial
첫 권의 문학: 세계를 여는 방식에 대하여
출판사가 세계문학전집의 첫 번째 책(No.1)을 고르는 일은 단순한 순서 정하기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는 문학의 기원을 이것으로 본다'는 묵직한 선언이다. 민음사의 변신, 문학동네의 리얼리즘, 열린책들의 내면 탐구 등 각기 다른 첫 문장은 그들이 바라보는 세계의 질서를 대변한다. 새해를 맞아 우리에게 스스로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그 1번 도서들에 담긴 비밀스러운 의도를 읽어내고자 했다. 어떤 책을 올해의 첫 책과 첫 문장으로 삼을 것인가?
Editorial
호모 콜렉투스 – MoMA가 수집한 사물들
안민정의 〈자화상〉(2024)이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영구 소장된 것은 기술적 혁신과 시대정신을 포착하려는 미술관의 수집 기준이 적용된 결과이다. MoMA는 이 기준을 통해 시대를 가장 정확히 드러내는 불완전한 아름다움을 보존한다. 우리는 소중한 것을 보관하려는 존재, 호모 콜렉투스(Homo Collectus)로서, 일상에서 우연이 빚어낸 기록을 모으는 행위를 통해 미래를 붙잡는다.
Editorial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시지프의 유머
핀란드의 차가운 겨울 속에서 하루는 전쟁처럼 반복된다.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처럼 카우리스마키의 인물들도 실직과 가난이라는 바위를 밀어 올리며 매일 같은 하루를 묵묵히 견딘다. 그러나 이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도 서로에게 건네는 작은 선의가 희미한 희망을 만든다. 말 없는 호의와 조용한 웃음이 남기는 온도는 절망을 덜어내지 못해도, 그 무게를 견디게 해준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영화를 통해 삶을 긍정하는 가장 정직한 방식을 말했다.
Editorial
조지아 오키프와 마이크로 뷰티
추상처럼 보이는 거대한 꽃은 일종의 도구다. 조지아 오키프는 작은 꽃을 화폭 가득 채웠고, 사람들은 스쳐 지나간 꽃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오키프처럼 ‘마이크로 뷰티’라는 감각을 통해 작은 것을 바라보면 발견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