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는 늘 변화하는 것이 그 미덕이나, 2025-26 시즌은 유난히 조용한 변화를 택했다. 대담한 실루엣의 혁명이나 과격한 디자인 전복은 없다. 대신 우리가 사랑해온 아우터의 본질을 지키면서, 그 안에서 질감과 기장, 디테일을 조금씩 다듬는다. 부드러운 페이크 퍼, 가벼운 보머, 목을 감싸는 스카프 코트, 절제된 레더 코트까지. 가장 현실적인 진화를 보여주는 네 가지 선택지를 통해 올 겨울의 패션은 클래식한 아이템을 바탕으로 새로운 익숙함을 제안한다.
페이크 퍼, 볼륨을 다루는 기술




페이크 퍼 코트는 이제 더 이상 ‘대안’이 아니다. 윤리적 소비라는 화두가 업계에 안착한 지 오래인 만큼, 페이크 퍼는 이미 우리의 겨울 옷장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주류 카테고리다. 한때 진짜 모피의 빈자리를 채우던 대체재에서 벗어나, ‘퍼 코트’라는 단어가 곧 페이크 퍼를 의미할 정도로 완전히 표준화되었다. 이에 따라 기술적 완성도 또한 급격히 상승했다. 텍스처는 더 섬세해졌고, 무게는 한결 가벼워졌다. 퍼 특유의 볼륨과 존재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착용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개선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페이크 퍼는 럭셔리한 겨울 실루엣을 구현하는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었고, 일상과 스타일 모두를 겨냥한 핵심 아우터로 자리매김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시즌에는 더 풍성한 실루엣이 주를 이루며, 페이크 퍼 특유의 볼륨을 조율하는 스타일링을 추천한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커다란 실루엣을 이어가거나, 아니면 슬림한 이너웨어로 대비적으로 풀어내거나. 아미나 가니는 페이크 퍼 특유의 풍성한 중량감을 룩 전체에 확장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아우터를 받쳐주는 하의는 넉넉한 것으로 선택해 편안한 분위기를 이어나간다. 다만 디테일이나 액세서리는 절제하고 아우터를 받쳐주는 컬러로 톤온톤 매치해 스타일링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아크네 스튜디오나 코페르니는 페이크 퍼의 볼륨을 살리고 다른 아이템은 슬림한 것을 선택해 긴장감을 높였다. 이번 시즌 부상한 아이템 중 하나인 스타킹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페이크 퍼가 지닌 럭셔리한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는 데 집중했다.
보머, 가장 활동적이나 가장 현실적인 선택




이번 시즌 보머는 기능과 스타일의 접점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아우터다. 겨울 코트가 상징과 구조를 말하는 아이템이라면, 보머는 움직이며 살아가는 방식을 중심에 둔다. 보머는 과거 실용성을 위해 탄생한 항공 점퍼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삶에 맞게 재정의되었다. 짧은 기장과 단단한 상체 실루엣, 몸을 크게 부풀리지 않는 적당한 볼륨감은 도심을 오가는 생활 패턴에 가장 실용적이다. 이번 시즌의 보머는 더 이상 캐주얼의 전유물이 아니다. 니트 스커트나 미디 길이의 스커트 위에서 격식있게 스타일링할 수 있는 선택지로 추가되었고, 드레스업과 다운 사이의 선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올겨울 보머 스타일링의 핵심은 길이와 구조다. 짧은 길이감은 자연스럽게 바디 라인을 드러내고, 보머의 단단한 상체 라인이 전체 룩의 비례를 재편한다. 스타일링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뉜다. 하나는 비례를 위로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밑단을 짧게 가져가고, 시선은 상체에 집중된다. 이때 하의는 슬림하거나 직선적인 형태를 선택하면 다리가 길어 보이는 시각적 구조가 형성된다. 생로랑이나 페라가모가 보여준 매끈한 스커트 조합이 대표적인 예다. 다른 하나는 색과 질감으로 균형을 완화하는 방식이다. 보머의 구조적 선 위에 니트, 스웨트, 스커트를 더해 실용성과 편안함을 유지한다. 미우미우나 샌디 리앙이 제안한 부드러운 톤과 자연스러운 텍스처의 결합은, 보머를 부담 없는 데일리 아우터로 재확인시킨다.
스카프 코트, 움직임을 연출하는 네크라인




스카프 코트는 이번 시즌 코트 실루엣의 가장 흥미로운 진화다. 겨울 아우터에서 목선은 언제나 보온과 장식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 그러나 올해 스카프 코트는 그 두 역할을 하나로 통합하며, 넥라인이 곧 디자인의 주제가 되는 방식을 제안한다. 스카프와 칼라가 구조적으로 결합되며, 별도의 연출 없이도 드레이프의 우아함을 확보한다. 이는 단순한 장식적 요소가 아니라, 움직임을 전제로 한 형태다. 걸음, 방향 전환, 머리를 갸웃하는 아주 작은 동작에도 코트는 반응하며 실루엣의 흐름을 바꾼다. 이러한 구조는 자연스럽게 부피감과 길이를 함께 동반한다. 긴 기장은 시선을 아래로 끌며, 상체의 볼륨은 넥라인에서 부드럽게 확산된다. 그 과정에서 스카프 코트는 코트의 ‘격식’을 유지하면서도 무게 중심을 유연하게 움직이는 방식을 제공한다.


스타일링은 두 가지 방식으로 제안된다. 코트를 룩의 모든 중심으로 놓고 텍스처를 단일화하는 방식이다. 토템과 캘빈 클라인의 룩처럼 올블랙 또는 뉴트럴 톤으로 정리하면, 소재 변화 없이도 실루엣만으로 강한 완결성을 보여준다. 나머지 아이템은 존재감을 지우듯 절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둘째, 레이어의 대조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케이트나 더로우의 룩처럼, 안쪽의 니트나 드레스에 미묘하게 다른 톤과 질감을 섞어 코트의 움직임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한다. 스카프 부분이 자연스럽게 흐르며 미니멀리즘 안에서 발생하는 드라마를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레더 코트, 절제된 실루엣이 만드는 단단한 태도




레더 코트는 앞서 소개한, ‘익숙한 새로움’ 이라는 이번 시즌 아우터 트렌드 테마의 결론처럼 등장한다. 강한 소재가 본래 지니는 직진적 에너지는 유지하되, 이를 과시적으로 드러내기보다 내면으로 응축해 태도로 발현하는 방식이다. 특히 최근 런웨이에 오른 롱 레더 실루엣들을 보면 가죽이라는 소재의 무게와 기세가 몸을 지나치게 장악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조율되고 있다. 과거 가죽 코트의 공식처럼 윤광을 과시하거나 장식적 요소를 더해 무게를 키우는 대신, 매트한 표면과 정제된 라인을 통해 레더가 지닌 강도를 한층 더 세련된 방식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가브리엘라 허스트나 에르메스가 보여준 코트는 어깨부터 밑단까지 수직으로 떨어지는 구조를 통해 레더 소재가 가진 물리적 힘과 비례의 긴장을 가장 안정적인 방향으로 정렬한다. 여기에 벨트 디테일이 더해지면 실루엣의 중심이 단단하게 묶이며, 입는 이의 태도 자체가 곧 스타일이 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다른 하나는 니트처럼 부드러운 소재와의 조합으로 가죽의 강도를 부드럽게 풀어내는 방식이다. 레더를 둘러싼 질감에 여백을 부여함으로써 태도는 단단하게 유지하면서도 착용감과 분위기는 한층 유연해진다. 이는 실제로 미우미우나 빠투와 같은 브랜드가 실천한 흐름이며, 도시적이지만 일상에 깊게 들어올 수 있는 현실성을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