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페라리 디자인, 급진적 변화의 배경은?

단순한 변화 이상으로 ‘관점의 전환’을 맞은 페라리의 디자인. 역사적 요소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혁신을 더하는 방식으로, 플라비오 만조니가 이끄는 새로운 챕터가 열렸다.

Editorial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페라리 디자인, 급진적 변화의 배경은?

단순한 변화 이상으로 ‘관점의 전환’을 맞은 페라리의 디자인. 역사적 요소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혁신을 더하는 방식으로, 플라비오 만조니가 이끄는 새로운 챕터가 열렸다.

Editorial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페라리 디자인, 급진적 변화의 배경은?

단순한 변화 이상으로 ‘관점의 전환’을 맞은 페라리의 디자인. 역사적 요소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혁신을 더하는 방식으로, 플라비오 만조니가 이끄는 새로운 챕터가 열렸다.

812Superfast ⒸFerrari
12Chilindri ⒸFerrari

최근 페라리 디자인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812슈퍼패스트812Superfast의 뒤를 잇는 새로운 플래그십 12칠린드리12Chilindri에서 간결한 면과 기하학적 조형 언어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것. 다각도로 면을 나누어 강한 이미지를 강조했던 812슈퍼패스트와 전면부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차이가 선명하게 보인다.

이러한 변화는 이후 순차적으로 공개한 F80, 849 테스타로사849 Testarossa에서도 그대로 적용됐다. 특히 브랜드 기술력과 디자인 비전을 집약한 최상위 슈퍼카 F80에도 동일한 디자인을 적용했다는 점에서 페라리의 오늘날 디자인은 단편적 실험을 넘어 다음 챕터를 향한 새로운 흐름으로 볼 수 있겠다.

과거 헤리티지만으로도 훌륭한 디자인을 선보일 수 있는 페라리는 왜 새로운 조형 언어를 도입하는 것일까? 단순히 스타일링 변화를 넘어 페라리가 슈퍼카 디자인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을 보여주는 이번 행보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새로운 디자인 장을 여는 페라리

12Chilindri ⒸFerrari

디자인 변화의 출발점은 12칠린드리다. 기존 812슈퍼패스트가 근육질, 관능적인 인상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12칠린드리는 순수한 형태를 강조한다. 페라리는 이번 디자인에서 전형적인 자동차 스타일링 요소를 최소화했는데, 실제로 차량 전면에는 뚜렷한 그릴 프레임이나 헤드램프 형상은 찾아볼 수 없다.

페라리 스타일링 센터를 이끄는 플라비오 만조니Flavio Manzoni는 “12칠린드리 디자인은 조각적인 언어를 사용하던 이전 디자인 언어와는 명확하게 다르다”고 말한다. 차 전체가 하나의 통일된 인상을 주도록 정교하고 엄격한 조형 언어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12Chilindri ⒸFerrari

12칠린드리의 차체는 하나의 큰 볼륨처럼 읽힌다. 파팅 라인을 최소화하고 장식적인 요소를 걷어내 클린한 면을 강조했으며, 전면 펜더까지 하나의 패널로 통합한 보닛을 통해 매끈한 상부 실루엣을 완성했다. 강한 캐릭터 라인이 자리하던 측면 역시 불필요한 굴곡을 덜어내고 간결한 면 처리로 정리했다. 전·후면 라이트는 모두 얇은 블레이드 안에 수평으로 배치해 그래픽 요소를 하나의 시그니처 테마로 묶어낸 점도 특징이다.

후면에서는 고정 스포일러 대신 리어 글라스에 통합된 두 개의 액티브 플랩을 사용한다. 위에서 바라보면 삼각형 형태를 이루며, 페라리가 말하는 ‘시그니처 델타 테마’를 형성한다. 에어로 파츠를 차체 안으로 흡수한 이 구성은 12칠린드리를 보다 하이테크한 오브제로 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페라리는 왜 의인화 효과를 버리려고 할까?

F80 ⒸFerrari

12칠린드리에서 시작한 새로운 디자인 언어는 라페라리의 뒤를 잇는 새로운 하이퍼카 F80에서 한층 더 발전한다. 페라리는 F80을 ‘새로운 디자인 시대를 여는 모델’이라 소개하며, 향후 브랜드 디자인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차량임을 분명히 한다.

전면에는 12칠린드리와 동일하게 검정 블레이드를 배치했으며, 더욱 과격한 덕트를 적용해 공력 성능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검정 블레이드는 향후 페라리의 시그니처 디자인으로 자리 잡을 새로운 패밀리룩으로서, 페라리가 의도적으로 ‘의인화 효과Anthropomorphic Effect’를 배제하기 위해 도입한 핵심 장치다.

*의인화 효과Anthropomorphic Effect: 사람의 얼굴이나 감정적 특성을 비(非)인간 대상에 부여하는 디자인 경향.

F80 ⒸFerrari

그릴은 입 또는 코, 헤드램프는 눈처럼 보이는 자동차 전면 디자인이 의인화 효과의 대표적 사례다. 이는 친숙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장점이 있지만, 이러한 전통적인 레이아웃이 디자인 자유도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플라비오 만조니는 이러한 관성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는 헤드램프를 노출하는 대신 검정 바이저 내부로 깊숙이 숨기는 방식을 선택해 조명 기능과 공력 성능을 동시에 확보하면서 새로운 전면 인상을 만들어냈다.

F80 ⒸFerrari
F40 ⒸFerrari

이처럼 F80에는 급진적인 변화가 적용되었지만, 옛 페라리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다. 특히 측면에서 전면 휠하우스가 수직에 가깝게 떨어지는 조형은 전설적인 슈퍼카 F40의 디자인 요소를 오마주한 것으로, 두 모델의 측면을 나란히 비교해 보면 차이점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페라리는 F80을 “1984년 288 GTO에서 2016년 라페라리로 이어지는 아이코닉 슈퍼카 계보에 합류하는 모델”이라 설명한다. 이말인 즉슨, 브랜드 핵심 유산을 계승함과 동시에 시대적 요구를 수용하고 해석한 모델이라는 의미로, F80은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디자인 진화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여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페라리 디자인 진화를 상징하는 849 테스타로사

849 Testarossa ⒸFerrari

최근 출시한 849 테스타로사는 12칠린드리, F80의 조형 언어를 모두 흡수한 모델이다. SF90의 뒤를 잇는
최상위 하이브리드 슈퍼카지만, 디자인만큼은 기존 계보와 완전히 결이 다르다. 곡면 위주의 볼륨은 거의
사라지고, 새롭게 정립한 평면 중심의 디자인이 전면에 등장한다.

12칠린드리, F80에서 이어진 전면 테마는 849 테스타로사에서 더욱 날렵하게 다듬어졌다. 수평으로 배치한 검정 바이저를 휠하우스까지 연장했는데, 페라리는 이를 하나의 날개 형상처럼 보이도록 설계했다. 이러한 전면 디자인에 대해 “그 자체로 브랜드 디자인이 진화한다는 메시지를 상징한다”고 페라리는 설명한다.

급진적인 디자인 변화, 과연 페라리의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을까?

F12berlinetta ⒸFerrari

12칠린드리, F80, 849 테스타로사 모두 플라비오 만조니가 이끄는 페라리 스타일링 팀의 결과다. 2010년, 디자인 외주를 뜻하는 카로체리아Carrozzeria 방식에서 인하우스 디자인으로 전환하는 중요한 기점에서 그는 페라리 디자인을 책임지는 중책을 맡았다.

지난 15년 동안 만조니는 페라리 디자인을 한 단계씩 끌어올렸다. 2014년 F12베를리네타F12berlinetta로 황금콤파스를 수상한 이후, 레드닷·iF 디자인 어워드 등 주요 글로벌 디자인상을 연이어 거머쥐며 실력을 입증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간의 성취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다시 한번 주도하고 있다.

849 Testarossa, 849 Testarossa Spider ⒸFerrari

페라리는 12칠린드리와 F80을 두고 “이전 조각적 언어에서의 명확한 전환”, “새로운 디자인 시대의 시작”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여기에 만조니가 “의인화 효과를 피하고, 우주선에 가까운 인상을 추구했다”고 밝힌 대목을 더하면, 이번 변화는 단순히 스타일을 바꾸는 수준을 넘어선다. 곡선과 볼륨으로 대표되던 ‘클래식 페라리’의 얼굴 위에, 기하학과 기술을 전면에 내세운 또 다른 페라리를 덧입히려는 시도에 가깝다. 완성 단계에 이른 기존 미학을 스스로 갱신하려는 진화인 것이다.

과거의 유산을 존중하되 그 안에 머물지 않는 것.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페라리 디자인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유지해 온 핵심 동력일지 모른다. 끊임없이 조형 언어를 갱신하며 브랜드 경쟁력을 스스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F80 ⒸFerrari

실제로 12칠린드리와 12칠린드리 스파이더, F80 모두 2025 iF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며 이러한 변화를 외부에서도 인정받았다. 특히 12칠린드리는 감각적이면서도 안정적인 디자인으로 호평을 받으며, 페라리가 선택한 새로운 출발이 순항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과연 페라리는 차세대 조형 언어를 발판 삼아 또 한 번의 도약에 나설 수 있을까. 앞으로의 행보를 주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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