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왜 다시 문슈즈적 실루엣인가

문슈즈에서 시작해 1970년대의 러너, 그리고 현대의 로우 프로파일 스니커즈까지. 스니커즈 트렌드의 축이 두꺼운 미드솔에서 납작한 밑창으로 전환하며 나이키 스니커즈의 기원, 문슈즈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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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문슈즈적 실루엣인가

문슈즈에서 시작해 1970년대의 러너, 그리고 현대의 로우 프로파일 스니커즈까지. 스니커즈 트렌드의 축이 두꺼운 미드솔에서 납작한 밑창으로 전환하며 나이키 스니커즈의 기원, 문슈즈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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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문슈즈적 실루엣인가

문슈즈에서 시작해 1970년대의 러너, 그리고 현대의 로우 프로파일 스니커즈까지. 스니커즈 트렌드의 축이 두꺼운 미드솔에서 납작한 밑창으로 전환하며 나이키 스니커즈의 기원, 문슈즈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최근 스니커즈 트렌드는 다시 ‘얇은 신발’로 돌아가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두꺼운 미드솔과 실험적인 소재, 과장된 곡선 구조가 특징이던 맥시멀·테크니컬 스니커즈가 장기적으로 시장을 지배했다면, 올해는 정반대의 흐름이 등장했다. 스니커즈가 처음 만들어졌던 ‘원형적 형태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다. 이 대전환의 뿌리는 1972년, 나이키 문슈즈가 만든 러닝화의 ‘기본값’에서 시작된다.

현대 스니커즈 시대를 연 첫 걸음

1972년 나이키가 개발한 최초의 러닝화, 문슈즈. ⒸNike

1972년, 오리건의 한 작은 작업실에서 탄생한 한 켤레의 러닝화가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질 스니커즈 문화를 근본부터 바꿔놓았다. ‘문슈즈Moon Shoe’로 불리는 이 실험적 프로토타입은 단순한 운동화를 넘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퍼포먼스 스니커즈 시대’의 실질적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고무창 운동화 자체는 이미 20세기 초부터 존재했지만, 과학적인 설계·혁신적 소재·경기 퍼포먼스를 위한 기술적 접근이 결합된 현대적 스니커즈의 원형은 바로 이 문슈즈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문슈즈가 발명된 곳은 재미있게도 부엌이다. 나이키의 공동 창립자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은 선수들의 접지력과 경량성을 개선하기 위해 와플 기계에 찍어내는 방식으로 새로운 아웃솔을 개발했다. 이렇게 탄생한 와플 솔Waffle Sole은 이후 나이키 러닝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았고, 문슈즈는 나이키가 정식 회사로 출범 이후 가장 첫 번째로 실험한 모델이 되었다. 당시 바우어만이 수작업으로 만들었던 12켤레의 문슈즈는 모두 형태가 다른 ‘핸드메이드 프로토타입’으로, 스니커즈 디자이너가 아닌 육상 코치의 문제의식에서 탄생한 최초의 현대적 퍼포먼스 스니커즈라는 상징성을 갖는다. 이는 문슈즈가 스니커즈 컬트 컬처에서 성지급 위상을 지니게 된 이유이며, 다시금 이 스니커즈에 주목해야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와플 창이 돋보이는 문슈즈. ⒸNike

문슈즈는 단순히 나이키의 초기 제품이라는 사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접지력, 추진력, 경량화 같은 기능적 요소를 ‘러닝 퍼포먼스 향상’이라는 목표에 맞춰 구조적으로 설계한 최초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후 스포츠 브랜드들이 기술 개발을 중심으로 경쟁하는 ‘근대적 스니커즈 산업’의 출발점이 문슈즈였다는 평가로 이어진다. 실제로 와플 기술은 1974년 와플 트레이너Waffle Trainer의 대성공으로 연결되고, 러닝 문화를 중심으로 나이키라는 브랜드의 폭발적인 성장을 촉발했다.

오늘날 문슈즈는 세계에 극소량만 남아 있는 희귀 오리지널로, 스니커즈 컬렉터 사이에서 ‘최초의 현대적 스니커즈’라는 명성을 가진다. 2019년 소더비Sotheby's 경매에서 5억 원이 넘는 가격에 낙찰된 것도 이러한 역사성과 문화적 무게가 만들어낸 결과다. 이처럼 문슈즈는 그 자체로 스니커즈라는 장르의 시작점이자 현대 스포츠 기술의 문턱을 연 아이콘으로 남아 있으며 지금 가장 트렌디한 스니커즈, 로우 프로파일 실루엣의 원형적 형태를 만들어냈다.  

문슈즈를 현대적으로 되살린 자크뮈스

자크뮈스와 나이키가 협업한 ‘문슈즈’ 캠페인 컷. ⒸNike

자크뮈스와 나이키와의 네 번째 협업 컬렉션의 이름은 ‘문슈즈’다. 나이키 최초의 스니커즈, 문슈즈를 그대로 연상시키는 직관적인 네이밍처럼 문슈즈의 형태를 그대로 계승하는 형태가 특징이다. 자크뮈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창업자, 시몽 포르테 자크뮈스Simon Porte Jacquemus는 다음과 같이 이번 협업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3년 전, 나이키 아카이브를 방문했을 때, 역사적인 문슈즈를 처음 접했습니다. 저는 시대를 초월하여 단순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의 독특한 러닝 슈즈를 발견했고, 이는 자크뮈스의 방식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 낼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자크뮈스와 나이키의 문슈즈는 가죽 소재의 스우시와 힐 카운터가 특징이며, 자크뮈스 로고는 텅, 힐, 삭 라이너 등에 새겨 아이덴티티를 담았다. 로우 프로파일 스니커즈에서 파생한 또 다른 형태의 스니커즈인, 발레리나 스니커즈의 뉘앙스를 한 스푼 더해 빈티지하면서도 감성적인 스니커즈 디자인을 완성했다. 또한, 문슈즈의 역사를 기념하여 나이키의 초기 유산인 블루 리본 스포츠를 연상시키는 패키지에 담겨 출시된다.

하우스 브랜드의 아카이브에서 재창조된 실루엣

지금에 와서야 러닝화는 다양한 테크놀러지와 최신 소재, 그리고 연구를 집대성한 신발 기술의 정점으로 일컬어지지만, (물론 그 시절 문슈즈도 같은 위상을 차지했었다.) 문슈즈는 하나의 스타일로 남아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최근 수많은 브랜드들이 내놓고 있는 새 스니커즈는 공통적으로 가벼운 프로파일, 단순한 패널링, 복각 감성, 헤리티지 러닝 실루엣을 중심에 둔다. 과학 기술이 집약된 두툼한 미드솔과 과장된 쿠셔닝이 트렌드의 중심에서 물러나는 대신, 70-80년대 러닝화의 ‘얇고 단순한 구조’가 새로운 시각적 가치로 부상했다. 이는 지난 수년간의 과도한 테크니컬 소비 이후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리셋에 가깝다. 한동안 ‘초경량 실험소’를 연상시키던 하우스 스니커즈 라인도 이번 시즌에는 스웨이드, 나일론, 플랫 솔을 기반으로 한 레트로한 무드를 입은 로우 프로파일 모델을 달리 선보인다. 기술력을 디자인적으로 과시하던 시기에서 벗어나, ‘가볍고 편안한 실루엣’ 자체를 미학으로 삼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메종 마르지엘라는 ‘스프린터’, 셀린느는 ‘레이서’ 등 그들이 직접 명명한 스니커즈 신작의 이름이 노골적으로 강조하듯 그 뿌리는 1970년대 육상화, 즉 문슈즈에 있다. 

지금 시장이 원하는 스니커즈

얇은 창과 두툼한 스트링의 조화가 멋스러운 골든구스의 ‘트루스타’ 스니커즈. ⒸGolden Goose

결국 현재 등장하는 이 새로운 흐름의 원동력은 기술의 피로감을 지나 본질로 돌아가려는 의도에서 온다. 지금의 스니커즈 트렌드는 본래의 출발점과 다시 대면하고 있다. 스니커즈가 처음 등장했을 때의 목적인, 가볍고 빠르고 단순한 러닝화의 목적을 그대로 반영한 문슈즈의 외관에서 비롯한 원형적 실루엣이 다시금 패션 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상당한 존재감의 두꺼운 미드솔이 지배하던 시대가 지나고, 스니커즈는 옷차림을 방해하지 않는 서포터 역할로 돌아가고 있다. 비교적 접근성이 가까운 컨템포러리 브랜드에서 역시 로우 프로파일 스니커즈의 스타일을 연이어 선보이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실제로 골든구스가 발표한 트루스타는 출시하자마자 품절되며 이 스니커즈를 향한 대중의 갈증이 얼마나 컸는지를 직접 증명하기도 했다. 페인은 그야말로 로우 프로파일 스니커즈 열풍과 함께 떠오른 브랜드로,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일상적이면서도 레트로한 콘셉트의 캠페인을 홍보하며 단시간에 많은 수의 팔로워들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모든 옷차림에 어울리는 신발: 왜 플랫 러너인가

이 납작한 운동화에 대한 수요가 높아진 데는 결국 모든 옷차림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는 아주 실용적이고도 명료한 이유가 존재한다. 두꺼운 미드솔은 존재감이 강해 슬랙스나 테일러링을 만나면 다소 둔탁해 보이기 쉬웠고, 그 존재감 덕에 신발 중심의 스타일링을 필요로 했다. 반면, 70s 러너 계열의 플랫하고 슬림한 실루엣과 미니멀한 디자인은 스타일의 균형을 잡아주며 균형 있는 룩을 연출한다. 요즘처럼 테일러링과 캐주얼이 자유롭게 믹스되는 시대에는 오히려 이런 ‘존재감이 덜한 신발’이 더 세련된 선택이 된다. 패션 전반의 흐름도 이 변화를 뒷받침한다. Y2K의 과감한 장식과 볼륨을 지나 점차 실용성을 강조하며 지금은 헤리티지 기반의 미니멀리즘이 트렌드의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형태를 최소화한 레트로 러너는 바로 이 기류의 중심에 놓여 있다. 꾸밈을 걷어낸 트렌드 덕분에 어떤 룩과 매치해도 깔끔한 ‘기본값’이 되어주는 것 또한 강점이다. 결국, 러닝 스니커즈가 다시 얇아진 이유는 명확하다. 기능의 과장은 피로해졌고, 스타일링은 더 실용적이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유가 하나의 형태, 하나의 실루엣, 즉 슬림하고 미니멀한 헤리티지 러너로 모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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