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MW의 새로운 전기 SUV, iX3가 지난 IAA 모빌리티 2025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BMW 팬이라면 이 모델의 등장을 사뭇 기다렸을 것이다. BMW 미래 모빌리티 비전 ‘노이어 클라쎄Neue Klasse’ 를 실제 양산차로 구현한 첫 모델이기 때문이다. 아우디, 벤츠 등 경쟁사가 미래 청사진을 콘셉트카 형태로 제시하는 것과 달리, BMW는 iX3를 통해 비전을 현실로 가시화했다.
노이어 클라쎄는 1960년대 등장한 BMW 중형 스포츠 세단 시리즈 전체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전동화, 자율주행 등 자동차 산업의 격변기 속 BMW는 반세기 전 개념을 다시 꺼내 들었다. 단순히 복고풍 트렌드를 활용하는 것일까? BMW가 오랜 역사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렇게 가볍지 않다. 20세기 BMW 대전환기를 이끌었던 노이어 클라쎄의 정신을 다시 한번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도약에 가깝다.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는 BMW의 최근 행보를 분석해 본다.
브랜드 존립 위기에서 새로운 성장 국면으로

1960년대 BMW는 중형차 라인업의 부재로 판매 부진과 재정 악화를 겪고 있었다. 고가의 대형 세단과 스포츠카만으로는 브랜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에 한계가 명확했던 것. 상황은 브랜드 존립을 위협할 만큼 절박했고, 1959년 경쟁사 벤츠에 인수될 뻔한 사건은 당시 위기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BMW는 대중성과 브랜드 정체성을 동시에 충족하는 새로운 중형차 개발에 나섰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노이어 클라쎄였다. 프로젝트의 첫 모델인 1500은 BMW의 기술력이 집약된 차량이었다. 독립식 서스펜션과 전륜 디스크 브레이크 등 당시로써는 선진적인 기술이 대거 적용됐다.


디자인 역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수직 키드니 그릴과 원형 헤드램프의 조합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BMW 디자인의 근간이 됐다. 모든 방면에서 새로워진 1500은 중형차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운전의 즐거움’과 실용성을 모두 구현하며 BMW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노이어 클라쎄는 BMW에게 안정적인 재정 기반을 마련해줌과 동시에 향후 5시리즈로 이어지는 중형 세단 계보의 출발점이 됐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이어 클라쎄는 BMW에게 단순한 모델명이 아니라 ‘전환의 모멘텀’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BMW가 차세대 비전으로 노이어 클라쎄를 꺼내 든 이유도 자연스럽게 읽힌다. 자동차 산업 격변기 속 BMW가 다시 한번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BMW는 이미 변화를 예고했다


BMW는 2023년 ‘BMW 비전 노이어 클라쎄 콘셉트BMW Vision Neue Klasse Concept’을 공개하며 노이어 클라쎄 개념을 다시 한번 꺼내들었다. 이 콘셉트는 BMW 그룹의 ‘차세대 문법’을 제시하는 차량으로, 디자인, 소재, 파워트레인 전반에서 기존과는 다른 변화를 적용했다.
디자인 키워드는 명료함Clear, 우아함Elegant, 영원함Timeless. 브랜드의 본질적인 요소는 더욱 또렷해지고, 불필요한 장식은 과감히 덜어냈다. 키드니 그릴, 호프마이스터 킥Hofmeister Kink 등 BMW 고유 그래픽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는 동시에 파격적으로 그려냈다. 1500이 그릴과 헤드램프의 조화를 제시했다면, 이번에는 이 둘을 하나로 통합했다. 그릴이 곧 램프이고, 램프가 곧 그릴인 구조다. 형태는 최소화하면서도 상징성은 오히려 강화한 해석이다. BMW 그룹 디자인 총괄 아드리안 반 호이동크Adrian van Hooydonk는 이에 대해 “한 세대를 건너뛴 것처럼 미래지향적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BMW답다”고 설명한다.


실내 역시 근본적인 변화가 이뤄졌다. 차량을 조작하는 공간에서 벗어나, ‘경험의 장’으로 재정의했다. 물리 버튼을 줄이는 대신, BMW 파노라믹 비전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HMI기술을 구현했다. 주행 정보는 전면 윈드실드 전반에 투사돼 운전자와 동승자가 함께 공유한다. 또, ‘중앙 디스플레이 & 스티어링 휠 멀티 버튼 & 음성 제어’ 3축을 바탕으로 운전자가 안정적으로 차량을 제어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운전자 중심 철학을 디지털 환경에 재정의한 결과로, 새로운 첨단 기술을 적용하되 여전히 운전자 중심으로 구동하는 환경을 제시한 것이다.
이외에도 노이어 클라쎄 콘셉트는 2차 원자재 사용 확대, 크롬 및 가죽 등 기존 고탄소 소재 제거, 6세대 BMW eDrive 적용 등 다양한 변화를 이뤘다. 20세기 노이어 클라쎄가 BMW의 생존을 이끌었다면, 21세기 노이어 클라쎄는 변화의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BMW로 남기 위한 조건’을 제시한다.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략적 도약인 셈이다.
21세기 노이어 클라쎄의 출발점, iX3


2024년 공개된 ‘BMW 비전 노이어 클라쎄 X 콘셉트BMW Vision Neue Klasse X Concept’를 빼닯은 iX3는 말 그대로 노이어 클라쎄 콘셉트의 양산화 버전이다. BMW가 제시한 차세대 개념들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구현됐는지 보여준다.


전면 디자인은 콘셉트처럼 램프와 그릴을 완전히 하나로 통합하는 대신, 현실적인 타협점을 찾았다. 그릴과 램프를 분리하되 이를 하나의 면으로 통합한 것. 크롬 등 장식적인 요소는 사라졌고, 이를 새로운 라이트 그래픽으로 대체했다. 키드니 그릴과 네 개의 램프라는 BMW의 기본 토대는 유지하면서도 전혀 다른 인상을 만들어냈다.


내부는 ‘정돈’과 ‘절제’를 전제로, 노이어 클라쎄 컨셉에서 제시한 ‘디지털 경험의 장’을 실현했다. BMW 파노라믹 비전과 17.9인치 센터 디스플레이로 운전자 및 동승자 모두에게 주행 정보를 전달한다. 새로운 스티어링 휠은 물리 버튼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BMW는 차세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운전자의 시선은 도로에, 손은 스티어링 휠에 머무르게 했다. BMW가 오랫동안 강조해온 “두 손은 핸들에, 두 눈은 도로에Hands on the Wheel, Eyes on the Road”를 한 단계 끌어올린 셈이다.
태동을 시작한 BMW의 새로운 역사

BMW에게 노이어 클라쎄는 언제나 전환의 언어였다. 앞선 언급했듯, 과거에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고 지금은 정체성을 다시 세우기 위한 차세대 전략이다. 신형 iX3는 ‘BMW다움’을 스스로 재정의하는 과정의 출발점이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에 대한 BMW의 선택이 이 차에 담겨 있다.
BMW 그룹은 2024년 전 세계적으로 약 245만 대를 판매하며 글로벌 럭셔리 자동차 시장 1위를 유지했다. 60년 전 브랜드의 존립을 걱정하던 시절과는 전혀 다른 위치다. 하지만 BMW는 안주보다는 변화를 택했다. 노이어 클라쎄는 단순 라인업, 디자인 언어라는 개념을 넘어 BMW 브랜드 정신 자체를 상징한다. 새로운iX3를 시작으로 앞으로 등장할 차세대 라인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BMW 역사의 새로운 서사가 이제 막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