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을 기능이 아닌 서사로 해석하는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 경계를 뛰어넘는 감각과 실험적 구조를 바탕으로 JW 앤더슨을 성장시킨 그는 로에베에서 전통과 현대성을 성공적으로 접목하며 브랜드 재편의 모델을 제시했다. 이제 디올에서 유산과 혁신의 균형을 어떻게 새롭게 정의할 것인가가 패션 산업 전체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유년과 무대, 패션 이전의 이야기


1984년 북아일랜드 매거펠트Magherafelt에서 태어난 조나단 앤더슨은 의외로 어린 시절부터 연극에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다. 그가 처음에 패션이 아닌 연극과 무대의상을 꿈꿨다는 사실은, 그가 ‘옷을 옷으로만 보지 않는다’는 그의 근본적인 시선을 암시한다. 이후의 커리어 전개는 이 초기 경험이 그의 창작 철학의 뿌리였음을 짐작 한다. 배우를 꿈꿨던 10대 후반, 그는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스튜디오 시어터Studio Theatre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연기와 무대 미술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무대의상과 의상 연출에 더 큰 흥미를 느끼며 점차 연극보다는 옷에 마음을 두게 된다. 조나단 앤더슨에게 이때의 경험은 단순히 옷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몸과 공간, 빛과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으로서의 패션에 대한 감각을 길러준 밑바탕이 되었다. 이후 그는 유럽으로 돌아와 아일랜드 더블린의 백화점에서 의류 판매 및 디스플레이 업무를 잠시 맡고 있다가, 런던으로 이동해 남성복 과정을 수강하기 위해 패션 명문으로 알려진 LCFLondon College of Fashion에 입학했다.
2005년 졸업 이후, 마침내 그는 패션 업계에 발을 디디게 된다. 졸업 직후 프라다의 매장 비주얼 머천다이저로 일하며, 당시 프라다의 핵심 스타일리스트이자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의 오른팔이었던 고故 마누엘라 파베시Manuela Pavesi 아래에서 옷이 놓이는 방식, 공간과 이미지의 배치, 럭셔리 브랜드가 지녀야 할 디테일과 분위기를 2년간 체득했다. 앤더슨은 <어나더 매거진Another Magazine>과의 인터뷰에서 그 시절을 회고하며 “프라다에서 윈도우 디스플레이를 하며 배운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기초”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시기는 그에게 단순한 디자인 실력보다, 패션이 어떻게 소비자에게 시각적으로 제시되고 인식되는지를 배우게 해 준 중요한 경험이었다.
JW Anderson: 젠더, 경계, 실험의 서막


ⒸJonathan Anderson 인스타그램 (@jonathan.anderson)


2008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 JW 앤더슨을 런던에서 설립하며 본격적인 디자이너 활동을 시작한다. 처음엔 그가 전공했던 남성복 위주였지만, 2010년 여성복 라인을 추가하며 곧바로 “젠더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펼쳤다. 같은 해 영국 패션 협회British Fashion Council의 후원을 받아 첫 런던 패션위크 컬렉션을 선보였고, 브랜드로서 인지도를 쌓기 시작했다. 그의 초기 컬렉션은 섬세하면서도 도발적이었다. 성별과 규범에 대한 편견을 당연시하지 않고, 옷을 통해 질문을 던지는 디자이너로 평가받았다. 특히 2012년 영국의 리테일 브랜드 탑샵Topshop과의 협업을 통해 실험성과 상업성의 균형을 시도한 것은 주목할 만한 행보였고, 같은 해 브리티시 패션 어워드British Fashion Awards의 기성복 부문 신진 디자이너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이어 2013년에는 베르사체의 세컨드 브랜드인 베르수스Versus의 리론칭 디자이너로 참여하면서 그의 젠더 블렌딩 감각과 실험적 디자인을 베르사체라는 대형 하우스의 콘텍스트에 적용했다.
이러한 초기 행보를 통해 그는 소위 말하는 아방가르드한 디자이너가 아니라, 자신의 미학을 넓은 시장에도 유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 시기에 그는 “패션은 정체성이자 실험이며, 동시에 삶의 방식”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확립하며 상업적 확장성을 입증했다. 그 덕에 델핀 아르노Delphine Arnault와 당시 LVMH의 임원이었던 피에르 이브 루셀Pierre-Yves Roussel의 관심을 끌었고, 루셀은 앤더슨에게 그의 브랜드 JW 앤더슨 지분을 투자하며 본격적으로 브랜드의 규모 확대와 미래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동시에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그를 임명했다.
LOEWE: 고루한 패션 하우스에 불어넣은 생명력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Council of Fashion Designers of America와의 인터뷰에서 조나단 앤더슨은 로에베의 오피스에 처음 방문했던 때를 떠올린다. “그들이 ‘이 공장에 가보지 않을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스페인 공장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비밀리에요. 그날, 온갖 가죽으로 가득 찬 방에 들어갔던 날을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이 브랜드에서 일하고 싶어.’라고 생각했죠. 아이디어들을 스크랩북처럼 만들어서 그들에게 발표했어요.” 당시 조나단 앤더슨은 아직 29세였고, 명문 하우스 출신도 아니며 실험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디자이너였다. 그런데도 LVMH는 그의 전통을 존중하는 감각과 현대적이고 실험적인 미감, 그리고 브랜드 전환을 위한 비전을 높이 평가했고, “전통을 현재와 미래로 연결할 적임자”로 판단해 모험을 감행했다. 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취임하기 직전 매출이 약 2억 유로 정도였던 반면(당시 로에베는 LVMH 산하 브랜드 중 가장 침체된 럭셔리 하우스였다) 2024년에는 약 10억 유로 수준으로 성장했다. 수치가 증명하듯 로에베는 조나단 앤더슨의 지휘 아래 스페인의 가죽 명가에서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중 가장 핫한 브랜드로 재건했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조나단 앤더슨은 남성 레디 투 웨어 컬렉션으로 2014년 로에베에서의 첫 데뷔를 치렀다. 이후 여성복과 액세서리, 가죽 제품까지 전 라인을 재정비하며 브랜드를 새롭게 써 나갔다. 특히 그는 명품 브랜드에게 가장 중요한 매출 지표인 가방을 여러 개 히트시키는 재능을 지니고 있다. 2013년 발표해 지금까지 시그니처 백으로 평가받는 ‘퍼즐 백’을 비롯해 기존 로에베의 가방을 리바이벌한 플라멩코, 바스켓, 바르셀로나까지 로에베의 아카이브와 본인의 감각을 잘 버무린 가방들은 우후죽순 팔려나갔다.



그럼에도 조나단 앤더슨이 로에베에 기여한 가장 큰 공로는 전통 공예에 기반을 두면서도 현대 예술 감각을 입힌 새로운 럭셔리 언어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로에베는 패션계를 넘어 문화 및 예술계에서도 화제를 모으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조나단 앤더슨은 2016년부터 현대 공예를 위한 로에베 재단 공예상LOEWE FOUNDATION Craft Prize을 본격적으로 도입해 예술가들을 독려하고 있으며, 또한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Victoria and Albert Museum 이사회에도 참여해 예술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런던 오퍼 워터맨Offer Waterman 갤러리에서는 그가 직접 큐레이팅한 <On Foot> 전시를 개최해 샤완다 코벳Shawanda Corbett의 도자기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의 그림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을 발판으로 그는 데뷔 직후부터 거의 매해 빠짐없이 패션 어워드에서 수상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2015년 더 패션 어워즈The Fashion Awards에서 남성복과 여성복 부문에서 동시 수상했고, 2023년과 2024년, 2025년 연속으로 올해의 디자이너 상을 수상했다.
Dior: 조나단 앤더슨의 새로운 챕터



2025년 3월, 11년이라는 긴 임기를 마친 조나단 앤더슨이 로에베에서 사임하는 것이 공식적으로 결정되었고, 한 달 후 조나단 앤더슨은 디올의 남성복 아티스틱 디렉터로 곧바로 임명되었다. 6월에는 여성복과 오트 쿠튀르까지 포함해 전체 크리에이티브를 총괄하는 단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공식 발표되었다. 이는 설립자 이후 처음 있는 일로 디올의 CEO 델핀 아르노Delphine Arnault는 앤더슨이 “그 세대 최고의 재능을 지닌 디자이너”이며, 디올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분명한 비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6월 27일, 그는 파리 패션위크에서 자신의 첫 디올 남성복 컬렉션(2026 S/S)을 공개하며 공식 데뷔했다. 무대는 전통적인 런웨이가 아니라, 마치 미술관 같은 절제된 공간에서 진행되었다. 그의 첫 컬렉션은 클래식 코트와 수트, 우아한 실루엣을 유지하면서도, 편안함과 여유, 스트리트 감각, 그리고 그의 실험적 미감을 교차시키는 ‘양가성’을 보여줬다. 이 변화를 통해 디올은 단순한 역사와 유산의 재현을 넘어 “과거와 현재, 클래식과 실험성, 위계와 자유의 공존”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어 하우스의 상징적 아이콘인 레이디 디올 백을 새롭게 선보이는 캠페인에 미아 고스Mia Goth, 그레타 리Greta Lee, 마이키 매디슨Mikey Madison까지, 젊고 부상하는 배우들을 앰버서더로 기용해 앤더슨의 디올이 나아갈 방향성을 예상케 했다. 지난 10월 1일에는 마침내 수많은 이들의 기대 가운데 2026 S/S 디올 여성복 컬렉션의 막이 올랐다. 디올의 바 재킷과 고전적 테일러링을 변주한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구조적인 형태의 모자나 재킷을 통해 그의 일관된 취향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조나단 앤더슨은 디올이라는 거대 하우스를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미국에서 오픈하는 디올 최초의 다이닝 공간인 ‘몽시외 디올 바이 도미니크 크렌Monsieur Dior by Dominique Crenn’으로,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디올의 베벌리힐스 플래그십 스토어 3층에 자리한다. 미국 최초의 미슐랭 3스타 여성 셰프로 이름을 알린 도미니크 크렌Dominique Crenn이 셰프로 주방을 지휘하며 디올 하우스의 예술적 감성을 반영한 미식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Jonathan Anderson: 24시간 일하는 조나단 앤더슨의 말

ⒸJonathan Anderson 인스타그램 (@jonathan.and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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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재직할 때 그와 <그라치아GRAZIA>가 나눈 인터뷰에서 조나단 앤더슨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는 로에베 디자인 스튜디오가 있는 파리와 JW 앤더슨의 디자인 스튜디오가 있는 런던에 살고 있으며, 매주 두 도시를 오가고, 매달 로에베의 가방 개발 및 제조를 위해 마드리드에 방문한다. 로에베는 10개, JW 앤더슨은 8개, 1년에 총 18개의 컬렉션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서 조나단 앤더슨의 작업은 군사 작전과도 같다. 그는 1년을 4개로 나누어 분기마다 두 개의 다른 ‘챕터’를 작업하는데, 매우 체계적으로, 항상 9개월 전에 미리 착수한다. 컬렉션 발표 직전의, 마지막 순간에 작업하지 않고, 스트레스가 되어서는 안 되며, 매우 계획적으로 작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주일에 5일 클럽에 다닐 수도 없고, 술을 많이 마실 수도 없고, 정신적인 여유가 필요해서 마약을 할 수도 없어요. 이 직업이 엄청나게 전문화됐죠. 운동선수처럼 규율이 있어야 하잖아요, 아시죠?”
비판과 상업적 압박감에 대해서도 말한다.
“디자이너들은 이제 창의성뿐 아니라 판매 실적으로도 평가받는 데 확실히 더 큰 압박감을 느낍니다. 저에게는 아드레날린과 같아요. 계속해서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그런 고조된 분위기가 필요하죠. 승리한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요. 만약 그런 느낌이 든다면, 더 이상은 안 할 거예요. 계속해서 약자처럼 느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