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NBA 선수는 어떻게 패션의 주연이 되었나

패션계의 얼굴이 바뀌고 있다. 런웨이를 걷는 모델 대신, 경기장 터널을 통과하는 NBA 선수가 브랜드의 세계관을 대표하는 시대다. 최근 몇 년간 하우스들은 선수들을 단순한 홍보 대상이 아닌 내러티브의 주연으로 기용하며, 패션과 스포츠의 경계를 새롭게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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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선수는 어떻게 패션의 주연이 되었나

패션계의 얼굴이 바뀌고 있다. 런웨이를 걷는 모델 대신, 경기장 터널을 통과하는 NBA 선수가 브랜드의 세계관을 대표하는 시대다. 최근 몇 년간 하우스들은 선수들을 단순한 홍보 대상이 아닌 내러티브의 주연으로 기용하며, 패션과 스포츠의 경계를 새롭게 쓰고 있다.

Editorial

NBA 선수는 어떻게 패션의 주연이 되었나

패션계의 얼굴이 바뀌고 있다. 런웨이를 걷는 모델 대신, 경기장 터널을 통과하는 NBA 선수가 브랜드의 세계관을 대표하는 시대다. 최근 몇 년간 하우스들은 선수들을 단순한 홍보 대상이 아닌 내러티브의 주연으로 기용하며, 패션과 스포츠의 경계를 새롭게 쓰고 있다.

농구 코트로 향하는 짧은 동선이 패션의 미래를 바꾸고 있다. 터널을 걷는 선수들은 더 이상 경기에 준비하는 운동선수만이 아니다. 그들은 브랜드의 상징이자, 새로운 서사를 입고 움직이는 패션의 주연 배우다. 럭셔리 하우스가 그들을 선택하는 이유는 단순한 인지도 이상의 힘에서 비롯된다.

터널은 이제 런웨이다

최근 패션 브랜드들의 얼굴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모델이나 배우가 브랜드의 이미지를 대표했다면, 이제는 셰이 길저스-알렉산더Shai Gilgeous-Alexander, 러셀 웨스트브룩Russell Westbrook, 카일 쿠즈마Kyle Kuzma 같은 NBA 선수들이 정식 모델이자 캠페인 주연, 때로는 브랜드 세계관의 확장자 역할까지 수행한다.

시작은 2005년, 당시 NBA 리그 총재이자 1984년부터 30년간 구단의 조직과 개혁을 이끌며 지금의 미국 프로농구를 성장시킨 장본인 데이비드 스턴David Stern이 리그의 품격을 통제하기 위해 도입한 ‘품위 유지 규정’ 명목이다. 드레스 코드는 셔츠와 스포츠 재킷, 드레스 슈즈를 위시로 한 비즈니스 캐주얼을 착용할 것. 티셔츠나 체인, 청바지 등은 금지다. 그러나 2010년대로 들어서면서 리그는 개인의 스타일을 점차 브랜딩 요소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소셜 미디어의 부상, 경기장 외부 패션이 기여하는 선수 인지도, 스포츠와 패션 하이브리드 문화의 확산이 그 배경이었다. 이후 팬데믹으로 인해 오프코트 프로세스가 간소화되며 드레스 코드는 사실상 중립화되었고, 선수들이 라커 룸으로 이동하는 터널에서의 옷차림이 ‘터널 패션’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SNS상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자 ‘기본적인 품위 수준을 전제로 한 스타일 무대’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NBA의 ‘품위 유지 규정’은 선수들을 패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패션 에너지를 태동시킨 기반이 된 것이다. 제한이 사라진 순간, 그 기반 위에서 선수들은 브랜드의 얼굴로 성장했다.

품위 유지 규정 외에도 NBA 선수들이 패셔너블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신체 조건이다. 평균 190~205cm의 큰 키, 긴 팔, 다리와 강인한 어깨 비율을 가진 모델로서도 이상적인 프로포션을 갖고 있다. NBA 신인 연봉 또한 다른 리그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2025년 시즌 기준 최저 연봉은 약 115만 달러(약 15억 원) 수준이다. 각각 MLB가 76만 달러(약 10억 원), NFL이 84만 달러(약 11억 원) 수준인 것에 비해 약 1.5배 높다. 어린 선수들이 데뷔 직후 자신을 꾸미는 데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는 이유다. 그 밖에도 NBA는 태생적으로 스트리트 패션 문화와도 맞닿아 있다. 힙합 문화와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이 촉발한 스니커 컬처가 그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NBA는 거의 유일하게 브랜드 노출, 선수들의 스타일 정체성 구축, SNS 바이럴, 하이엔드 협업의 무대가 되는 도착 루트(터널)가 매일 촬영되고 보도되는 리그로 자리 잡았다.

현 시대를 대표하는 NBA 패션왕, 셰이 길저스-알렉산더

나이키와 협업한 ‘컨버스 셰이 001’의 캠페인. ⒸNike

지난 시즌 우승팀의 주인공이자, MVP 현역 가운데 가장 패션 영향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는 오클라호마시티의 셰이 길저스-알렉산더. 압도적인 커리어만큼이나 패션 업계에서도 손꼽히게 사랑받는 선수로, 벨기에·파리 기반의 아방가르드 및 미니멀 럭셔리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착용하며 테일러링과 스트리트의 경계 지점을 파고드는 인물이다. 자주 착용하는 브랜드는 릭 오웬스, 메종 마르지엘라, 보디, 로에베, 크롬 하츠 및 빈티지 제품 등으로 NBA 플레이어들이 전통적으로 좋아했던 거대 패션 하우스들의 이름을 비켜 가며 스타일리스트 없이 명민하게 본인을 스타일링한다. 넷플릭스가 매 시즌 핵심 멤버들을 섭외해서 촬영하는 NBA 다큐멘터리 <스타팅 5>에서는 자신은 한 번 입은 옷은 다시는 입지 않는다고 농담처럼 언급하며 동료들을 위해 플리마켓을 여는 장면도 포착되었다.

가장 먼저 그를 알아본 브랜드는 톰 브라운이다. 셰이 길저스-알렉산더는 2023 톰 브라운 S/S 컬렉션 런웨이에 모델로서 등장했으며, 2023년 멧 갈라에서는 톰 브라운의 의상을 입고 참석하는 등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킴 카다시안Kim Kardashian이 전개하는 이너웨어 브랜드 스킴스의 남성복 라인을 출시하자마자 선택한 모델도 그였다. 축구 스타로는 네이마르Neymar, NFL 선수로는 닉 보사Nick Bosa, 그리고 농구 부문에서는 셰이 길저스-알렉산더가 카메라 렌즈 앞에 서서 각자의 매력을 뽐냈다. 컨버스와는 신인 데뷔 직후부터 계약을 맺고 함께하고 있는데, 2025년 2월부터 컨버스 농구 부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도 발탁되었으며, 나이키와 협업한 농구화 ‘컨버스 셰이 001Converse SHAI 001’을 올가을부터 선보였다. 미디어에서도 종횡무진 중이다. <GQ>가 선정한 가장 스타일리시한 남성 50인에 선정되더니, 2025년 11월호 커버 모델로 발탁되어 시즌을 마무리한 소회와 옷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NBA 패션의 아방가르드 프론티어, 러셀 웨스트브룩

러셀 웨스트브룩은 NBA에서 가장 과감하고 독창적인 패션 언어를 가진 선수다. 그는 단순히 옷을 잘 입는 수준이 아니라, 오프코트 스타일의 규범을 완전히 다시 쓴 인물로 평가된다. 지금 ‘터널 패션’이라고 불리는 이 문화가 하나의 패션 장르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에는 웨스트브룩의 실험적인 시도와 대담함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슈가 되는 옷차림임에는 분명했다). 웨스트브룩의 스타일은 언제나 ‘다르게 입기’에서 출발한다. 누군가 트렌드를 따르는 동안, 그는 트렌드가 되지 않은 것을 먼저 입는다. 형광 컬러, 꽃무늬 셔츠, 오버사이즈 니트, 메탈릭 팬츠, 그리고 무엇보다도 톰 브라운의 스커트를 입고 나타났던 순간은 NBA 패션의 전환점이었다.

아크네 스튜디오 2019 S/S 시즌 캠페인 모델이 된 러셀 웨스트브룩. ⒸAcne Studios

그가 패션을 대하는 태도 덕분에 아크네 스튜디오의 2019년 S/S 시즌 캠페인 모델로 발탁되었으며, 이어 같은 해 F/W 캡슐 컬렉션에는 직접 참여해 데님 소재를 활용한 남성 의류 캡슐 컬렉션을 선보였다. 얼마 전 열렸던 뉴욕 패션위크의 펑첸왕Feng Chen Wang 2026 S/S 런웨이에서 모델로 데뷔해 아직까지도 패션계에 그의 저력이 남아 있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그의 패션 감각은 단순히 개인 취향으로 끝나지 않는다. 웨스트브룩은 자신의 브랜드 아너 더 기프트Honor The Gift를 2017년 설립하며 패션 창작자로서의 면모도 드러낸다. 국내에서는 제니가 착용해 화제가 되었던 브랜드로, HTG는 그가 나고 자랐던 로스앤젤레스의 거리 문화, 블랙 커뮤니티, 종교적 배경 같은 요소가 결합되어 그의 정체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는 선수로서가 아니라 패션 디렉터로서의 웨스트브룩을 보여준다. HTG는 미국 로컬 스트리트와 워크웨어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브랜드로, 컬렉션마다 ‘Inner City Love’, ‘Praise’ 등 서사를 부여해 컬렉션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처럼 구성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의 영광은 지금까지도, 앨런 아이버슨

전성기를 보냈던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에서의 앨런 아이버슨. ⒸAllen Iverson 인스타그램 (@theofficialai3)

게스 진이 얼마 전 발표한 협업 컬렉션이 있다. 바로 앨런 아이버슨Allen Iverson과의 한정판으로, 농구와 1990년대 스트리트 패션의 아이콘인 그에게 헌정하는 컬렉션을 완성했다. 이번 컬렉션은 아이버슨이 18세 시절 참여했던 1993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 화보에서 영감을 받았다. 당시 그는 가장 좋아하던 게스 티셔츠를 입고 촬영에 임했으며, 그 순간은 훗날 그가 ‘스타의 탄생’을 예고하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회자되었던 바 있다.

앨런 아이버슨은 NBA 패션의 역사에서 ‘원조 아이콘’이라고 불릴 만한 유일한 인물이다. 그의 패션은 오늘날 셰이 길저스-알렉산더나 러셀 웨스트브룩이 구축한 하이엔드 패션 기반 터널 문화와는 결이 다르다. 아이버슨의 스타일은 힙합, 스트리트, 블랙 커뮤니티의 감성을 코트 밖으로 끌어올린, 말 그대로 새로운 문화의 등장에 가까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리그는 그를 따라가지 못해 결국 ‘드레스 코드’를 만들었다. 바로 품위 유지 규정이 도입된 이유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아이버슨이었다.

아이버슨이 제작에 참여한 리복의 Answer 1. ⒸReebok
앨런 아이버슨과 게스가 함께 완성한 협업 컬렉션. ⒸGUESS

아이버슨을 이야기할 때 브랜드 협업은 절대 빠질 수 없다. 리복이 그의 파트너였는데, 아이버슨의 별명이었던 Answer, 그리고 Question 시리즈를 통해 농구화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꾼 장본인이다. 스니커 문화에서 그의 이름은 조던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시그니처 라인’을 가진 선수로 남아 있다. 리복은 그를 중심으로 스트리트 감성과 힙합 무드를 결합한 최초의 퍼포먼스 농구화를 만들었고, 이는 이후 20년 동안 복각 및 재출시가 반복될 정도로 강력한 브랜드 자산이 됐다.

규범을 무너뜨린 최초의 선수, 데니스 로드맨

시카고 불스에서 마이클 조던, 스카티 피펜Scottie Pippen과 함께하며 리그를 이끌었던 데니스 로드맨Dennis Rodman은 NBA 패션의 ‘급진적 근원’과도 같다. 그가 했던 모든 스타일 선택은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금기였지만, 오늘날의 기준으로도 혁명적인 면모를 지닌다. 로드맨의 스타일은 화려함도 아니고 단순한 스트리트도 아니다. 그는 90년대에 이미 젠더 플루이드, 펑크, 고스, 아방가르드 패션을 결합한 실험적 패션을 스스로 만들어냈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적도 있고, 펄 이어링과 실크 스커트, 메시 탑, 가죽 팬츠, 스모키 메이크업까지, 마초적인 분위기로 가득했던 리그 속에서도 로드맨에게 패션은 ‘남성 선수’라는 단어와 무관했다. 그는 패션을 자기 정체성의 확장으로 사용했고, 그 과정은 동시대 스포츠 문화 전체를 충격 속에 넣었다.

당시 패션계에서도 로드맨은 매우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롤링 스톤>(1997)과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1996)의 커버 모델로 등장해 파격적인 비주얼을 선보였다. 2021년에는 <GQ>가 다시 그를 카메라 렌즈 앞에 불러들여 그의 비상한 스타일을 미니멀한 감각으로 담아내기도 했다. 현대의 선수들이 ‘하우스의 뮤즈’로 평가받는 흐름보다 20~25년 앞선 셈이다. 독특하고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의 오클리Oakley의 아이 재킷은 그와 떼야 뗄 수 없는 아이템이 되었으며, 레오퍼드 패턴으로 화려하게 물들인 헤어스타일은 그의 시그니처가 되었다. 이처럼 그는 패션계의 컬트 아이콘으로 남았고, 브랜드들 역시 “로드맨이 입어준 것만으로 의미가 완성되는 룩”을 만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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