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과 우연의 초상, <휘슬재킷>

우리는 빨간색을 보면 어떤 느낌을 받는가? 색채는 언어보다 먼저 도착하는 감각이다. 그중에서도 붉은색은 문화권의 경계를 막론하고 가장 강렬하고 상징적인 색이다. 이 뜨거운 에너지 위로 '말’이라는 존재가 겹쳐질 때, 그 상징적 파동은 더욱 선명해진다. 말은 귀족적인 상징이자 신화 속 존재에 이르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 강력한 상징 '붉은색과 말'이 한 화면에서 조우하는 지점에 18세기 영국 화가 조지 스텁스의 〈휘슬재킷〉이 서 있다. 2026년 병오년, '붉은 말의 해'를 기념하며 새해의 시작에 작은 이야기를 곁들여본다.

미완성과 우연의 초상, <휘슬재킷>

우리는 빨간색을 보면 어떤 느낌을 받는가? 색채는 언어보다 먼저 도착하는 감각이다. 그중에서도 붉은색은 문화권의 경계를 막론하고 가장 강렬하고 상징적인 색이다. 이 뜨거운 에너지 위로 '말’이라는 존재가 겹쳐질 때, 그 상징적 파동은 더욱 선명해진다. 말은 귀족적인 상징이자 신화 속 존재에 이르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 강력한 상징 '붉은색과 말'이 한 화면에서 조우하는 지점에 18세기 영국 화가 조지 스텁스의 〈휘슬재킷〉이 서 있다. 2026년 병오년, '붉은 말의 해'를 기념하며 새해의 시작에 작은 이야기를 곁들여본다.

미완성과 우연의 초상, <휘슬재킷>

우리는 빨간색을 보면 어떤 느낌을 받는가? 색채는 언어보다 먼저 도착하는 감각이다. 그중에서도 붉은색은 문화권의 경계를 막론하고 가장 강렬하고 상징적인 색이다. 이 뜨거운 에너지 위로 '말’이라는 존재가 겹쳐질 때, 그 상징적 파동은 더욱 선명해진다. 말은 귀족적인 상징이자 신화 속 존재에 이르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 강력한 상징 '붉은색과 말'이 한 화면에서 조우하는 지점에 18세기 영국 화가 조지 스텁스의 〈휘슬재킷〉이 서 있다. 2026년 병오년, '붉은 말의 해'를 기념하며 새해의 시작에 작은 이야기를 곁들여본다.

*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질주보다 강렬한 멈춤의 순간

George Stubbs, Whistlejacket, 1762. ⒸThe National Gallery, London

<휘슬재킷Whistlejacket>은 마주하는 첫 순간부터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로 2.4미터, 세로 2.9미터에 달하는 캔버스 중앙에는 실물 크기에 가까운 아라비아산 명마 한 마리가 앞발을 치켜든 채 서 있다. 그러나 시선을 옮기는 순간 기묘한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말의 발치에는 딛고 서야 할 땅이 없고, 머리 위에는 펼쳐져야 할 하늘이 없다. 풍경도, 인물도, 그 흔한 서사적 장치도 모두 휘발된 채 오직 말 한 마리만이 진공 상태 같은 황금빛 공간 속에 고립되어 있다. 더군다나 그 말은 어떠한 균형의 가운데에 있다. 넘어지기 직전이거나, 혹은 중력을 거스르며 더 크게 솟구치기 직전의 찰나로 보인다.

조지 스텁스George Stubbs는 이 장면을 ‘발생 중인 사건’으로 제시한다. 화가이기 이전에 해부학자이었던 스텁스는 18개월 동안 말의 근육과 골격을 들여다보며 탐구했고, 그의 광기는 <휘슬재킷>에서 극도의 사실성으로 녹아들었다. 하지만 실제로 미술관에서 이 작품을 봤을 때 압도당했던 이유는 정밀한 재현이 구현하는 ‘움직임의 잠재력’에 있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근육에 시선이 가는 순간 관람객은 평면 속 살아있는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배경을 지우고 홀로 선 존재

이 그림이 미술사에서 오랫동안 논쟁의 중심에 섰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배경’ 때문이다. 18세기 영국에서 말 초상화는 단순한 예술품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소유주의 부와 혈통, 그리고 광활한 영지를 증명하는 표현의 수단이었기에 전형적인 명마 초상에는 반드시 화려한 저택이나 주인의 모습 같은 요소가 배치되어야 했다. 그러나 스텁스는 이 모든 부차적인 ‘소유의 기호’들을 소거했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의 해석에 따르면 이는 화가의 주제를 단일화하기 위한 철저히 의도된 선택이었다. 배경이 사라진 자리에서 휘슬재킷은 누군가의 재산이나 탈것이 되기를 거부한다. 장식과 설명을 덜어냄으로써 말은 비로소 어떤 맥락에도 갇히지 않는 독립적인 존재로 홀로 서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의 소멸’은 현대 미술의 추상성을 예견하는 대담한 시도였다. 대상으로부터 이름과 소속을 빼앗았을 때 남는 것은 오직 생명체 본연의 박동뿐이다. 스텁스는 풍경이라는 또 하나의 멋진 서사를 지워버림으로써 움직일 것 같은 말의 긴장감만을 오롯이 응시하게 만든다. 

미완의 미학: 어긋난 계획이 선물한 가능성

작품을 지탱하는 가장 본질적인 매력은 ‘미완Non-finito’과 ‘우연’의 미학에 있다. 미술사적 가설 중 <휘슬재킷>은 본래 말 위에 올라탄 국왕 조지 3세의 기마상으로 기획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권력자와 의뢰인 사이의 갈등, 혹은 완성된 말의 모습 그 자체에 압도된 후작의 변심이라는 우연이 개입하며 인물은 끝내 그려지지 않았다. 계획의 어긋남이 빚어낸 이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작품을 영원히 닫히지 않는 열린 결말로 남겨두었다.

만약 이 그림이 당대의 규범대로 완벽한 배경과 인물을 갖추고 완성되었다면 영국 귀족 사회의 훌륭한 유산 정도로 미술관 어딘가에 조용히 걸려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작 과정의 예기치 못한 중단은 이 작품을 시대를 앞서간 모더니즘적 걸작으로 변모시켰고, 지금 이 말은 내셔널 갤러리를 대표하는 얼굴이 되었다. 배경이 사라진 공백 속에서 앞발을 치켜들고 뒷발로만 서 있는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만 남아있다. 우리는 이 말이 어디에서 달려왔는지, 어느 방향으로 달려갈지 짐작할 수 없다. 다만 근육의 떨림과 박동에서 질주 직전의 정적, 모든 방향으로의 가능성을 느낄 수 있다. 재밌게도 미완처럼 보이는 형식은 관객에게 더 많은 해석의 자유를 허용했고, 바로 그 지점에서 작품은 시대를 초월하는 생명력을 얻었다.

2026년에 다시 바라보는 휘슬재킷

과거의 내가 <휘슬재킷>이 뿜어내는 생명력 그 자체에 감탄했었다면, 지금 다시 마주한 이 그림은 다른 부분에 눈길이 간다. 도약할 준비를 마친 말의 ‘자세’다. 앞발을 들어 올린 말의 몸에는 아직 서사가 없고, 그래서 더 큰 힘이 남아있다.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자유로운 상태. 조지 스텁스가 의도했든 혹은 우연히 멈췄든 <휘슬재킷>은 완벽하게 완성된 상징을 거부하며 우리에게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초상이 되어준다. 그래서 이 말 한 마리를 2026년 붉은 말의 해를 여는 우리 각자의 서사에 바치고 싶다.

01

조지아 오키프와 마이크로 뷰티

02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시지프의 유머

03

호모 콜렉투스 – MoMA가 수집한 사물들

04

연옥 단계의 클래식

05

첫 권의 문학: 세계를 여는 방식에 대하여

06

손의 여운, 사물이 살아 있는 시간: 루시엔 데이와 마가렛 호웰

07

악의 미학을 위한 클래식

08

미완성과 우연의 초상, <휘슬재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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