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의 여운, 사물이 살아 있는 시간: 루시엔 데이와 마가렛 호웰

디자이너가 자신의 세계관을 가장 투명하게 드러내는 순간은, 자신이 경외하는 타인의 작업을 자신의 공간으로 끌어오는 선택에 있다. 마가렛 호웰이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달력의 주제로 루시엔 데이의 직물을 고른 것은 단순한 큐레이션이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디자인의 기원은 이것이다’라는 선언처럼 보인다. 1950년대의 잿빛 일상에 심어놓은 데이의 유기적인 리듬은, 반세기를 지나 호웰의 옷을 관통하는 가장 단단한 첫 문장이 되었다. 새해의 첫 면을 장식한 색채가 아름다운 직물을 보며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당신의 일상을 시작하게 할 감각은 무엇인가.

손의 여운, 사물이 살아 있는 시간: 루시엔 데이와 마가렛 호웰

디자이너가 자신의 세계관을 가장 투명하게 드러내는 순간은, 자신이 경외하는 타인의 작업을 자신의 공간으로 끌어오는 선택에 있다. 마가렛 호웰이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달력의 주제로 루시엔 데이의 직물을 고른 것은 단순한 큐레이션이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디자인의 기원은 이것이다’라는 선언처럼 보인다. 1950년대의 잿빛 일상에 심어놓은 데이의 유기적인 리듬은, 반세기를 지나 호웰의 옷을 관통하는 가장 단단한 첫 문장이 되었다. 새해의 첫 면을 장식한 색채가 아름다운 직물을 보며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당신의 일상을 시작하게 할 감각은 무엇인가.

손의 여운, 사물이 살아 있는 시간: 루시엔 데이와 마가렛 호웰

디자이너가 자신의 세계관을 가장 투명하게 드러내는 순간은, 자신이 경외하는 타인의 작업을 자신의 공간으로 끌어오는 선택에 있다. 마가렛 호웰이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달력의 주제로 루시엔 데이의 직물을 고른 것은 단순한 큐레이션이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디자인의 기원은 이것이다’라는 선언처럼 보인다. 1950년대의 잿빛 일상에 심어놓은 데이의 유기적인 리듬은, 반세기를 지나 호웰의 옷을 관통하는 가장 단단한 첫 문장이 되었다. 새해의 첫 면을 장식한 색채가 아름다운 직물을 보며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당신의 일상을 시작하게 할 감각은 무엇인가.

*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매일 한 장씩 넘겨지는 달력의 숫자 위로 루시엔 데이Lucienne Day의 유기적인 선들이 흐르고 있었다. 마가렛 호웰Margaret Howell이 루시엔 데이의 직물을 전시하며 이를 한 해의 시간을 기록하는 달력의 주제로 삼은 것을 보았을 때, 나는 두 디자이너가 공유하는 공기의 농도를 비로소 짐작할 수 있었다. 예술은 단상 위에서 박수받을 때보다, 누군가의 분주한 아침 식탁이나 낡은 책상 위에서 일상의 소란과 섞일 때 가장 생생한 맥박을 얻는다.

1950년대 영국의 텍스타일 지형을 혁명적으로 바꾼 루시엔 데이와,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뒤에도 여전히 ‘입는 것’의 본질을 묻는 마가렛 호웰. 이들은 서로 다른 시대를 통과했으나, 결국 하나의 일관된 개념을 나누어 쓴 동시대적 디자이너들이었다. 그들은 예술을 고상한 관념의 영역에 박제해 두는 대신, 매일 손끝이 닿고 무뎌지는 물건의 표면 위로 그 가치를 조심스럽게 옮겨놓았다.

완벽한 형태보다 오래 쓰인 물건의 표면, 기능의 효율보다 손에 남는 기억. 그들은 디자인을 차가운 산업의 결과물에서 뜨거운 인간의 감각으로 되돌려놓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잿빛 도시 위에 겹친 유기적인 리듬

Lucienne Day, Calyx (Drapery Fabric), 1951, Photograph by R. H. Hensleigh and Tim Thayer. ⒸCranbrook Art Museum

1950년대 초, 루시엔 데이는 전후의 피로감이 짙게 깔린 영국의 풍경 속에 생소한 색과 움직임을 불어넣었다. 산업화의 질서가 지배하던 잿빛 일상에서 그녀는 직물이라는 캔버스 위에 살아 있는 자연의 형태를 그려 넣었다. 그녀의 대표작인 <Calyx>는 그 정점에 있다. 식물의 꽃받침에서 영감을 얻은 이 패턴은 단순히 장식적인 요소를 넘어, 전후 영국 사회가 갈구하던 ‘회복’과 ‘성장’의 상징이었다.

Lucienne Day, Silk Mosaics. ⒸMargaret Howell

그녀의 직물에는 규칙적인 반복이 존재하지만, 기계적인 대칭은 없다. 색은 면을 균일하게 채우지 않으며 선은 미세하게 흔들린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숲을 바라볼 때처럼 그 안에는 예측 불가능한 생명력이 고여 있다. 데이는 대량 생산이라는 산업적 질서 위에 인간적인 시간감을 겹쳐 놓았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리듬 속에서도 손으로 직접 그린 붓 터치의 흔적을 남겨두었기에 그녀의 직물은 벽에 걸린 장식이 아니라, 만져지고 덮이며 생활의 표면으로 스며들 수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멈출 줄 아는 태도, 시간이 완성하는 옷

Margaret Howell in her London studio, Photographed by Nina Manandhar, May 2019. ©Sotheby’s

마가렛 호웰은 루시엔 데이가 직물 위에 구현했던 그 생동하는 감각을 의복이라는 형태로 구현했다. 그녀는 패션의 화려한 화법 대신, 옷감이 가진 물성과 입는 사람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호웰이 믿는 디자인은 완벽하게 다듬어진 실루엣이 아니라, 입는 사람과 함께 시간이 쌓이게 되는 옷이다. 다려지지 않은 린넨 셔츠의 구김, 공기를 적당히 머금은 성긴 짜임의 니트, 계절의 빛을 닮은 채도 낮은 색감들.

“나는 잘 만들어지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물건을 좋아한다”라는 그녀의 말은 단순한 기호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사물이 가진 본연의 가치를 존중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호웰에게 단순함은 단순히 비워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지점에서 멈춰야 할지를 아는 절제된 태도였다. 옷의 형태를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것은 그 옷을 입고 걷는 사람의 움직임과 겹겹이 쌓이는 계절, 그리고 살아가는 시간이다. 그녀의 옷은 매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보다, 누군가의 옷장에서 몇 해를 보낸 뒤에야 비로소 가장 자연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현재형으로 작동하는 과거의 감각

이 두 거장의 공감은 단절되지 않고 물리적인 전시를 통해 연결되었다. 2011년 런던, 그리고 2013년 도쿄 오모테산도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마가렛 호웰은 루시엔 데이의 텍스타일 작업을 다시 꺼내 들었다. 조용하고 정갈한 공간에 걸린 1950년대의 패턴들은 여전히 현대적인 세련미를 잃지 않은 채 현재형의 감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호웰은 데이의 작업에 대해 “따뜻함과 움직임이 있고, 무엇보다 인간적인 무언가를 느끼게 한다”라고 평했다. 그녀가 발견한 것은 시간이 스며들 수 있는 여백, 그리고 그 여백을 채우는 질감이었다. 두 디자이너는 유행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견고한 이상을 각자의 영역에서 일구어냈다.

낡지 않는 리듬, 살아 있는 아름다움

Lucienne Day with small silk mosaics at her Cheyne Walk home, London, 1997-98. ©Robin and Lucienne Day Foundation

루시엔 데이는 일상의 도구들을 예술의 층위로 끌어올렸고, 마가렛 호웰은 그 예술적 감각을 다시금 평범한 일상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데이가 산업의 틀 안에서 유기적인 생명력을 발견했다면, 호웰은 그 생명력을 이어받아 인간의 신체 위에 안착시켰다. 이들의 작업은 철학을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 손바닥에 닿는 촉각적인 경험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형태보다는 사용을, 완성보다는 지속을, 순간의 강렬함보다는 시간의 축적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디자인은 좀처럼 낡지 않는다. 물건은 세월에 따라 빛을 잃거나 해질 수 있지만, 그 안에 깃든 리듬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물건의 표면에는 사용자의 습관과 기억이 층층이 쌓여 고유한 깊이를 더한다.

완벽은 언제나 닫혀 있어 더 이상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지만, 생활은 언제나 열려 있어 타인의 온기를 받아들인다. 루시엔 데이와 마가렛 호웰이 남긴 세계는 바로 그 틈새에 존재한다. 정제된 완성의 미학보다 손끝에 남는 희미한 여운에 마음이 가는 세계. 그들의 디자인은 손길이 닿은 사물이 우리 주위에 있는지 둘러보게 하고, 그 지점이 어쩌면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아름답고도 영속적인 형태의 유산일지도 모른다.

01

조지아 오키프와 마이크로 뷰티

02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시지프의 유머

03

호모 콜렉투스 – MoMA가 수집한 사물들

04

연옥 단계의 클래식

05

첫 권의 문학: 세계를 여는 방식에 대하여

06

손의 여운, 사물이 살아 있는 시간: 루시엔 데이와 마가렛 호웰

07

악의 미학을 위한 클래식

08

미완성과 우연의 초상, <휘슬재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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