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가볍게 소비하며, 금세 잊히는 콘텐츠가 일상을 채운다. 그러다 느리게 흘러가는 것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곱씹을수록 깊은 맛을 내는 텍스트, ‘독서’다. 요즘의 독서는 고요한 취미나 지식 축적에 머물지 않는다. 함께 읽고, 나누고며 삶의 리듬을 조정하는 라이프스타일로 확장 중이다. 이 느릿한 행위가 다시 ‘힙’해진 이유는 뭘까. 우리는 여전히 읽고 싶고, 잠시 멈추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숨을 고르는 라이프스타일

뻔한 주류 문화를 답습하지 않고, 빠르게 변하는 흐름을 감각적으로 포착하는 일. 요즘 이런 태도는 흔히 ‘힙하다’는 말로 요약된다. 그 감각이 어느 순간, 조용하고 느린 ‘텍스트’와 만났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수많은 콘텐츠를 스쳐 가듯 소비하는 일상에서, 느릿하게 문장을 따라가는 행위가 신선한 선택으로 떠올랐다. 이를 ‘텍스트힙’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몇 년 사이 독서는 트렌드를 넘어 삶의 리듬을 조정하는 방식에 가까워졌다.
‘독서’라고 하면 마땅한 취미가 없을 때 빈칸을 채우는, 지루하고 뻔한 일로 여겨지곤 했다. 언젠가부터는 한 달에 1권을 읽는 것마저 ‘챌린지’처럼 느껴질 정도로 어려워졌다. 독서는 시간이 남으면 하는 일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하지만 최근 독서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미션’이 아니라, 삶을 정돈하는 라이프스타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것. 혼자 읽는 것을 넘어, 함께 읽고 나누는 방식으로 확장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숏폼에 맞서 롱폼이 주목받듯,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지는 콘텐츠 사이에서 차분한 호흡을 따라가는 독서는 새로운 감각을 선사한다.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며 문장을 곱씹는 순간, 그 여백 속에서 일상과 생각을 정돈하고 집중을 회복한다. 디지털 피로도가 높아진 요즘, 독서는 숨을 가다듬고 사고의 밀도를 높이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이런 이유로 독서는 덜어내며 채우는, 나를 돌보는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다. 리딩파티, 교환독서처럼 독서를 매개로 한 경험이 늘어나며 딱딱하게 즐기던 책 읽기는 어느새 유연하고 다채롭게 확장된다. 감성과 물성을 가진 매체를 손에 쥐고 느리게 호흡하는 일, 지금의 독서는 그 자체로 리프레시가 된다.
셀럽이 초대하는 독서로의 세계


(오) 뉴욕 공립 도서관에서 도서와 함께하는 대담회를 연 모습. ⒸDua Lipa 인스타그램 (@dualipa)
유명인들이 독서 문화의 확산을 이끄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대표적 인물은 팝 스타 두아 리파Dua Lipa다. 오래전부터 애독가로 알려진 그는 2021년, 독서를 중심으로 한 라이프스타일 웹 매거진 ‘서비스95Service 95’를 론칭했고, 이듬해부터 뉴스레터를 통해 독서 관련 콘텐츠를 구체화했다. 온라인 북클럽을 운영하며 직접 작가를 인터뷰하는데, 질문의 깊이나 대화의 밀도에서 단순한 취향 공유를 넘어 사유의 확장이 느껴진다. 무대 위 파워풀한 모습과 상반되는 진중한 해석이 그와 함께하는 독서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아일랜드 출신 뮤지션 레이베이Laufey 역시 북클럽을 통해 팬들과 새롭게 소통한다. 디스코드를 통해 직접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오프라인 서점과 연계해 북클럽 굿즈를 선보이거나 선정한 책과 어울리는 음료를 함께 소개하는 등 독서를 하나의 경험으로 확장한다. 지난해에는 전 세계 곳곳의 서점과 연계한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한국의 아크앤북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다. 음악과 책, 공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말 그대로 독서의 세계를 확장해 서로를 연결하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의 독서 관련 셀럽을 꼽자면 배우 박정민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직접 책을 쓰기도 했고, 배우라는 직업과 출판사 대표를 겸하고 있으니 관련 셀럽보다는 종사자가 알맞을 거다. 그가 소개하고 추천하는 책들은 연일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며 영향력과 안목을 증명하고 있다. 그의 출판사 ‘무제’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주목 받는 출판사 중 하나로,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얻었다. 이렇게 출판사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로 주목받는 사례는 흔치 않다.
아이브의 장원영 역시 독서 트렌드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녀가 언급한 책들은 빠르게 화제가 되며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단순한 추천을 넘어, 어떤 책에서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독서로 연결된다. <초역 부처의 말>,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처럼 철학서나 고전처럼 다소 진입 장벽이 있는 책을 언급함에도 대중에게 도전해 볼만한 용기와 동기부여를 준다.
텍스트 밖으로 나온 독서
SNS를 통해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익숙한 시대, 사람들은 취향과 가치관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을 찾는다. 그중에서도 책은 비교적 명확하고 솔직한 매체다. 무엇을 읽는지, 어떤 문장을 간직하는지, 어떤 페이지에 오래 머무는지가 곧 나를 표현하는 언어가 된다. 더불어 오프라인 모임도 다양해지며 관계를 형성하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개인의 취향과 취미에 머물렀던 독서가 텍스트 밖으로 나와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소통 방식이 된 것. 혼자 읽으면서도 다른 이와 함께 느끼고, 감상을 공유하는 일도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했다.


뉴욕에서 시작된 리딩리듬Reading Rythms의 ‘리딩파티Reading Party’가 이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쉽게 다가오는 이름처럼 전통적인 북클럽, 독서 모임과 달리 가볍게 즐길 수 있다. 정해진 책을 읽은 뒤 발언과 토론을 이어가는 대신, 한 공간에서 그저 각자 책을 읽는 행위에 집중한다. 모두 다른 책을 읽어도 상관없다. 독서 사이 사이에 가벼운 대화를 이어갈 뿐이다. 책의 내용보다 ‘함께 읽는 경험’에 집중한다.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가진 매력에 공감하며 함께 머무는 시간만으로 느슨한 소속감을 만들어낸다. 한국에서도 뉴욕의 리딩파티를 레퍼런스로 삼은 다양한 오프라인 모임이 등장해 인기를 얻고 있다.


조금 더 친밀하게, 하지만 우회적으로 소통하며 책을 읽는 ‘교환독서’도 인기다. 책을 읽으며 여백에 떠오르는 생각, 함께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적는 것. 마치 낙서처럼 댓글을 다는 방식이다. 다 읽은 뒤에는 다른 사람과 책을 교환한다. 이야기가 쌓일수록 함께 읽는 생생한 느낌에 독서가 재미있어진다. 이제는 개인차원의 교환 독서를 넘어서, 출판사나 서점에서 서평단이 아닌 ‘교환독서단’을 모집해서 진행하기도 한다.


한 편, 독서를 외부 자극 없이 즐기는 ‘쉼’의 도구로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로지 책을 읽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북캉스, 북스테이, 리딩 리트릿이 새로운 웰니스 라이프스타일로 떠오르고 있다. 외부 자극을 최소화한 공간에서 온전한 휴식을 즐기며 책 읽기에 몰입한다. 텍스트와 나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재충전하는 휴식의 시간. 마치 요가나 명상처럼 마음을 정돈하는 방법이 되고 있다.
책과 함께 천천히 호흡하기
최근 독서 트렌드는 기존의 책 읽기가 주던 압박감에서 벗어나 있다. 깨달음이나 지식을 얻기 위한 무거운 목표에서 벗어나 읽는 행위 자체에 집중한다. 그저 각자의 속도대로 자유롭게 읽고, 무엇을 읽는지보다 어떻게 공유하는지가 중요해졌다. 따로, 또 같이 읽으며 느슨하게 연결되거나, 홀로 몰입하며 회복하는 방식으로 재정립되고 있다. 방식은 달라도 모두 같은 곳을 바라본다. 빠르게 흘러가는 사회의 속도와 잠시 멀어져, 한 페이지에 느긋하게 머무르는 마음. 지금 독서가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을 읽는 모습을 SNS에 올리는 일이 과시처럼 보일 수도 있고, 독서 문화가 유행처럼 빠르게 소비된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지적 허영’이라는 말이 따라붙는 이유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떠한가. 숏폼과 디지털 콘텐츠가 일상을 잠식한 지금, 차근히 책장을 넘긴다는 것 자체가 반갑다. 책은 손에 쥐어지는 물성과 시간을 요구하는 매체이고, 여기에 기꺼이 일상을 내어주는 사람이 늘어났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의 리듬이 이전과 다른 방향을 추구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또한 독서의 방식이 어떻든 간에 우리가 여전히 ‘읽고 싶어 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완벽하지 않아도, 깊지 않아도 괜찮다. 책을 펼치는 순간만큼은 잠시 호흡을 정돈하고, 느림의 미학을 느끼며 차분히 흘러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