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미학을 위한 클래식

아름다움은 오래도록 선(善)의 증거처럼 취급되어 왔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가장 잔혹한 장면은 언제나 질서 정연하다. 비명 대신 교향곡이 흐르고, 혼란 대신 완벽한 구도가 폭력을 감싼다.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를 기점으로 고전음악은 더 이상 숭고함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광기를 은닉한 채 작동하는 가장 세련된 형식이 되었고, 무질서한 폭력보다 더 깊은 불안을 남긴다. 이 글은 고전음악과 폭력이 결합하며 만들어낸 ‘정돈된 악’의 미학과 그 지속되는 영향력을 따라간다.

악의 미학을 위한 클래식

아름다움은 오래도록 선(善)의 증거처럼 취급되어 왔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가장 잔혹한 장면은 언제나 질서 정연하다. 비명 대신 교향곡이 흐르고, 혼란 대신 완벽한 구도가 폭력을 감싼다.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를 기점으로 고전음악은 더 이상 숭고함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광기를 은닉한 채 작동하는 가장 세련된 형식이 되었고, 무질서한 폭력보다 더 깊은 불안을 남긴다. 이 글은 고전음악과 폭력이 결합하며 만들어낸 ‘정돈된 악’의 미학과 그 지속되는 영향력을 따라간다.

악의 미학을 위한 클래식

아름다움은 오래도록 선(善)의 증거처럼 취급되어 왔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가장 잔혹한 장면은 언제나 질서 정연하다. 비명 대신 교향곡이 흐르고, 혼란 대신 완벽한 구도가 폭력을 감싼다.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를 기점으로 고전음악은 더 이상 숭고함의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광기를 은닉한 채 작동하는 가장 세련된 형식이 되었고, 무질서한 폭력보다 더 깊은 불안을 남긴다. 이 글은 고전음악과 폭력이 결합하며 만들어낸 ‘정돈된 악’의 미학과 그 지속되는 영향력을 따라간다.

*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주인공 알렉스를 강렬하게 그려낸 말콤 맥도웰(Malcolm McDowell), 영화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은 아이코닉한 분장과 우유를 들고 있는 장면. ⒸWarner Bros.

베토벤의 합창이 흐르는 동안 화면 위로 폭력이 펼쳐진다.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의 걸작 <시계태엽 오렌지>는 영화사상 최초로 폭력을 철저히 음악적으로 연출해낸 문제작이었다. 스크린 위로 펼쳐지는 잔혹한 행위에 성스러운 선율이 덧입혀지는 순간, 관객은 청각과 시각을 어떻게 구분지어야 할 지 모르는 인지부조화에 빠진다. 이것은 저급한 악과 고급 예술의 대비가 아니라 예술의 가장 숭고한 정점을 빌려와, 가장 비열한 악을 고양시키는 하나의 새로운 형식, 즉 ‘악의 미학화’ 선언이었다. 큐브릭은 이 충격적인 시청각적 결합을 통해 예술이 윤리를 넘어설 때 발생하는 명확한 불안을 폭로했다. 아름다움이라는 절대적 가치는 어떤 상황에서든 강렬하고, 완벽하게 통제된 질서 위에서라면 때로 무분별한 혼돈보다 더 깊은 공포를 자아낸다.

폭력의 문법이 된 선율

영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오프닝 중 하나로 손꼽히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서막, 기둥 모양의 모노리스(Monolith)는 인류의 진화를 촉발한다. ⒸMGM

그 이후로 ‘고전음악의 선율 위에 흐르는 폭력’은 할리우드와 세계 영화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확고한 문법이 되었다. 큐브릭 자신이 연출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가 울려 퍼질 때, 그 웅장한 도입부는 단순히 우주의 신비를 예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도구를 손에 쥔 유인원이 모종의 폭력 행위로 진화의 도약대에 오르는 순간, 즉 인류의 진화 자체가 폭력에 기반하고 있으며 스스로 신의 위치에 오르려는 인간의 오만을 상징하는 섬뜩한 축배였다. 1990년대 스릴러의 걸작들인 <세븐>과 <한니발> 시리즈는 이러한 문법을 더욱 세련된 형태로 계승했다. 바흐Bach의 ‘G선상의 아리아Air on G’나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Variationen’은 피비린내 나는 범죄 현장이나 인육을 탐미하는 식사 자리에 냉정한 공기처럼 배치되어, 고도로 발달한 교양과 상상 초월의 잔혹함이 한 인물 안에 공존할 수 있음을 형상화했다.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은 말러Mahler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Symphony No. 5: IV. Adagietto’의 탐미적인 선율로 죽음의 장엄함을 보여주며,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결국 파멸과 맞닿는 비극적 순간을 포착해 냈다. 또한 모차르트Mozart의 ‘레퀴엠Requiem’이나 슈베르트Schubert의 ‘아베 마리아Ave Maria’ 같은 종교적 색채의 곡들은 <아마데우스>, <케이프 피어>, <엘리펀트 맨> 같은 영화 속에서 깊은 죄의식과 초월에 대한 갈망, 그리고 신성함과 타락이 교차하는 모호함을 열어 보이는 열쇠가 되었다.

질서 속에 은닉된 광기

네오 누아르의 대표작, 데이비드 핀처의 범죄 스릴러 영화 <세븐>에서 모건 프리먼(Morgan Freeman)이 연기한 서머셋은 인간의 7대 죄악을 모티브로 삼은 연쇄살인범을 추적한다. ⒸWarner Bros.

살펴보면 이 음악들은 하나의 원리를 공유한다. 그것은 바로 폭력이 시끄러운 불협화음이나 무질서한 소음 속에서가 아니라, 완벽히 맞춰진 균형을 배경으로 작동할 때 더욱 섬뜩해진다는 역설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돈된 선율, 그 매끄러운 표면 아래 감춰진 차가운 이성이야말로 악의 진짜 얼굴일지 모른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다혈질적 악당들이 고함과 폭발음, 분노의 과잉으로 자신을 과시한다면, 이 미학적 세계의 악은 오히려 침묵과 균형, 절제된 우아함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아름다운 구조, 완벽한 화성학적 조화, 그리고 그 견고한 틀 안에서 멈추지 않는 세포처럼 증식하는 인간의 광기. 그것이 바로 큐브릭이 심어놓은 남긴 새롭고도 치명적인 악의 형태였다.

클래식이 장치가 될 때

“예술은 아름다움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형식을 통해 진실을 말할 뿐이다.”라는 명제는 클래식과 악의 이 기묘한 동거 관계를 가장 정확히 요약한다. 이 문법 안에서 클래식은 인물의 선함을 대변하는 윤리적 배경음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윤리를 해체하고 조롱하는 가장 강력한 장치다. 폭력은 우발적인 무질서가 아니라 계산된 완벽한 질서 속에서 더 정교하고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영화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악의 장면들은 언제나 지독할 정도로 잘 조율되어 있다. 치밀하게 계산된 카메라의 앵글과 구도, 감정을 배제한 조명의 질서, 그리고 그 위에 얹히는 유려한 음악의 선율까지, 모든 요소가 하나의 거대한 설계도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큐브릭을 위시한 거장들은 그 숨 막히는 정교함 속에서 역설적으로 인간이 가진 가장 비인간적인 심연을 드러냈다.

인간의 마음을 비추는 클래식

배우 비요른 안데르센(Björn Andrésen)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년>에 담긴,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과 함께한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 촬영 현장의 모습. ⒸMantaray Film

<시계태엽 오렌지>가 던진 충격 이후, 대중문화 속에서 고전음악은 더 이상 고귀함이나 순수함만의 상징으로 남을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악의 형식을 완성하기 위한 가장 정제된 언어이자 재료가 되었다. <한니발> 렉터 박사가 우아하게 인육을 요리하는 식사 장면의 정갈함, <세븐>의 범인이 단테Dante의 <신곡>을 인용하며 구성한 범죄 현장의 치밀함, <베니스에서의 죽음> 속 썩어가는 도시에서 맞이하는 느린 파국의 아름다움 속에서도 그 문법은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한다. 음악이 도덕적 판단을 초월해 버리고, 미학적 형식이 인간의 감정을 대체할 때, 우리는 매끄럽게 포장된 순수한 폭력의 실체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예술은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가려주는 아름다운 장막이 아니라, 그 잔혹한 심연을 가장 정직하고 투명하게 비추는 거울이 된다.

세련된 공포의 소비와 안도

이 문법은 오늘날의 영상 미학에도 깊고 넓게 스며들어 있다. 고급 승용차의 광고, 하이엔드 패션 필름, 스타일리시한 게임의 시네마틱 영상, 심지어 현대 미술 전시 공간의 사운드트랙에 이르기까지 고전음악은 여전히 세련된 폭력의 기호와 힘의 상징으로 소비된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불안을 느끼기보다 안도한다. 서서히 화면 속의 감정과 폭력이 계산된 완벽한 구조로 맞아떨어지는, 그 인공적인 완벽함이 주는 미적 쾌감 때문일 것이다. 그 앞에서 생각해 본다. 우리는 악을 두려워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그것의 형식을 사랑하는가. 아름다움에 취해 스크린을 보며 잠시 사유를 멈추는 순간, 악은 우리의 가장 세련된 취향 속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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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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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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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연옥 단계의 클래식

05

첫 권의 문학: 세계를 여는 방식에 대하여

06

손의 여운, 사물이 살아 있는 시간: 루시엔 데이와 마가렛 호웰

07

악의 미학을 위한 클래식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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