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옥 단계의 클래식

우리는 오래된 것이 아이콘이 되거나 잊히는 이분법의 시대를 산다. 하지만 그 사이, 명확한 분류를 거부한 채 여전히 생활 속에서 숨 쉬는 사물들이 있다. 1970년대의 오디오, 기계식 카메라, 수동 타자기… 이들은 '쓰기엔 낡았고 박물관에 가기엔 이른' 모호한 시간대에 머문다. 단테의 연옥처럼 지옥(폐기)과 천국(박물관) 사이에서 유예된 사물들이 갖는 독특한 긴장감과, 그 불편한 물리적 감각이 어떻게 현대의 우리에게 불완전함의 역설, 그리고 시간이 기능으로 남아 있는 경험이라는 새로운 미학적 가치를 제공하는지를 들여다본다.

연옥 단계의 클래식

우리는 오래된 것이 아이콘이 되거나 잊히는 이분법의 시대를 산다. 하지만 그 사이, 명확한 분류를 거부한 채 여전히 생활 속에서 숨 쉬는 사물들이 있다. 1970년대의 오디오, 기계식 카메라, 수동 타자기… 이들은 '쓰기엔 낡았고 박물관에 가기엔 이른' 모호한 시간대에 머문다. 단테의 연옥처럼 지옥(폐기)과 천국(박물관) 사이에서 유예된 사물들이 갖는 독특한 긴장감과, 그 불편한 물리적 감각이 어떻게 현대의 우리에게 불완전함의 역설, 그리고 시간이 기능으로 남아 있는 경험이라는 새로운 미학적 가치를 제공하는지를 들여다본다.

연옥 단계의 클래식

우리는 오래된 것이 아이콘이 되거나 잊히는 이분법의 시대를 산다. 하지만 그 사이, 명확한 분류를 거부한 채 여전히 생활 속에서 숨 쉬는 사물들이 있다. 1970년대의 오디오, 기계식 카메라, 수동 타자기… 이들은 '쓰기엔 낡았고 박물관에 가기엔 이른' 모호한 시간대에 머문다. 단테의 연옥처럼 지옥(폐기)과 천국(박물관) 사이에서 유예된 사물들이 갖는 독특한 긴장감과, 그 불편한 물리적 감각이 어떻게 현대의 우리에게 불완전함의 역설, 그리고 시간이 기능으로 남아 있는 경험이라는 새로운 미학적 가치를 제공하는지를 들여다본다.

*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시간의 망명자들: 버려짐과 영원 사이의 중간 지대

Bang & Olufsen Beomaster 1900 Receiver ⒸMoMA

1970년대 알루미늄 오디오 시스템에 대해 데얀 수직Deyan Sudjic은 그의 저서 <사물의 언어The Language of Things>에서 이렇게 썼다.

“They now inhabit a design purgatory —
too dated for use, too recent for museums.”
“그것들은 지금 디자인의 연옥에 머문다 — 쓰기엔 낡았고, 박물관에 두기엔 아직 이르다.”

이 문장은 오래된 물건이 처한 시간적 아이러니를 정확히 짚는다. 여기서 디자인의 ‘연옥Purgatory’은 사물이 겪는 일종의 시간적 유예 기간을 의미한다. 단테가 그린 연옥이 지옥의 절망과 천국의 환희 사이에서 정화를 기다리는 영혼들의 산이라면, 이 물건들이 머무는 곳 또한 그와 닮았다. 완전히 과거라는 지옥(폐기)으로 유배되지도, 박물관이라는 천국(영원한 클래식)에 영원히 안치되지도 못한 상태다. 이들은 기능적으로는 구식이지만, 감정적으로는 놀랍도록 생생하다. 버튼 하나를 누를 때, 다이얼을 돌릴 때 느껴지는 묵직한 저항감, 낡은 알루미늄 표면의 미세하게 산화된 질감. 이 모든 것은 그 시대를 관통하던 공기와 물성을 고스란히 담아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여전히 작동한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유리 진열장 속 유물이 아니라 오늘도 곁에서 숨을 쉰다. 바로 이 중간 지대, 실사용이 가능한 고전의 경계에서 우리는 ‘연옥 단계의 클래식’을 마주한다.

불완전함의 역설: 기술이 놓치고 감각이 붙잡은 것들

Rollei 35 S Silver ⒸWikimedia Commons

이 디자인의 연옥에는 몇 가지 공통된 긴장이 존재한다. 첫째는 시간과 기능의 불균형이다. 현대 기술은 엄청나게 진보하여 모든 기능을 더 효율적이고 작게 만들었지만, 사물을 대하는 인간의 감성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옛 자리에 머물러 있다. 예를 들어 오디오의 볼륨 다이얼을 돌리는, 묵직하고 정확한 손맛, 기계식 타자기의 경쾌하고 분명한 타건감,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 셔터가 작동하며 내는 물리적 음색은 모두 현대 기술이 완벽히 능가하지 못하는 감각의 층위에 속한다. 이는 디지털 기기의 매끄러운 터치스크린과 ‘즉각적인’ 반응 속도에서는 얻을 수 없는, 일종의 ‘지연된 미학’이다. 둘째는 완벽하지 않은 완성도가 주는 매력이다. 시대적 제약이 만든 결함, 즉 기술의 한계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 결함이 남긴 여백과 어설픔이 오히려 지금의 완벽한 디지털 제품들과는 다른, 예측 불가능하고 인간적인 생기를 불어넣는다. 셋째는 감정의 복원 가능성이다. 이 물건들을 사용하는 일은 시간을 되짚어 ‘다시 느끼는’ 행위다. 개인적인 역사와 추억을 물리적으로 복원하는 의식과 같다. 완전히 낡지 않았기에, 여전히 작동하기에 가능한 이 경험 자체가 연옥 단계의 제품이 가지는 가장 강력한 특권이다.

한계의 미학: 불완전한 유산의 감도

Braun Regie 510 silver radio tuner ⒸBraun Design

가구, 시계, 오디오, 필름 카메라 등 다양한 영역의 물건들이 이 연옥의 문턱에 서 있다. 구체적인 예로는 1960~1970년대를 관통한 브리온베가Brionvega 라디오나 디터 람스Dieter Rams의 브라운Braun 오디오, 그리고 즉석카메라의 미학을 완성한 폴라로이드 SX-70이나 80년대의 소니 워크맨 같은 제품들이 그렇다. 이들은 완전히 클래식의 지위, 즉 박물관의 대접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 시대가 만든 합리성과 미감이 아직 퇴색되지 않고 견고하게 남아있다.

당시의 기술은 명확한 한계(공간, 전력, 부품 등)를 품었고, 흥미롭게도 그 한계가 오히려 형태를 간결하거나 아름답게 빚어냈다. 예를 들어, 반도체 회로가 아무리 발전해도 아날로그 진공관의 따뜻하고 풍부한 음색을 완전히 재현하지 못하는 것처럼, 디지털 제품의 해상도와 완벽함은 종종 이런 불완전한 유산이 지닌 감도를 희미하게 만든다. 즉 ‘결핍이 주는 깊이감’이 바로 연옥의 물건들이 가진 대체 불가능한 가치다.

사용할 수 있는 유산: 시간이 기능으로 남아있는 경험

Polaroid SX-70 ⒸWikimedia Commons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이 ‘연옥 단계’의 물건들이 여전히 사용할 수 있는 유산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70년대에 만들어진 스피커와 앰프로 당시의 음악을 듣는 행위는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음악이 만들어진 시기에 그 소리를 생생히 재생하던 기기로 듣는다는 행위에는 낭만과 ‘시간이 기능으로 남아 있는’ 경험이 있다. 단순히 소리를 듣는 결과를 넘어 진공관이 예열되는 기다림이나 바늘이 엘피판의 골을 타는 물리적 마찰처럼 그 시대의 속도와 물성을 지금의 내 몸으로 직접 통과시키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기능으로 작동한다. 수집가들이 이 단계를 사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옥의 물건은 보존과 사용이 공존하는 마지막 형태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맥박이 뛰는 유산

Sony Walkman TPS-L2 ⒸWalkman.land

결국 ‘연옥 단계의 클래식’이란, 과거로 가라앉지 않으면서도 미래로 도약하지 않는 사물들의 영역이다. 완벽한 복원도 완전한 폐기도 거부한 채 우리의 일상에서 여전히 맥박이 뛰고 있는 유산. 그것은 기능의 유효기간과 감정의 유효기간이 겹치는 찰나의 시간대다. 디자인의 역사에서 이런 물건들은 늘 잠시 머문다. 너무 낡아서 새롭고, 너무 새로워서 낡은. 그 연옥의 시간 속에서 사물은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세대를 이어 기억되는 감각의 기록이 된다.

완전한 고전은 멈춘 정적인 아름다움이지만, 연옥의 물건은 여전히 움직이는 살아있는 시간인 것이다.

01

조지아 오키프와 마이크로 뷰티

02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시지프의 유머

03

호모 콜렉투스 – MoMA가 수집한 사물들

04

연옥 단계의 클래식

05

첫 권의 문학: 세계를 여는 방식에 대하여

06

손의 여운, 사물이 살아 있는 시간: 루시엔 데이와 마가렛 호웰

07

악의 미학을 위한 클래식

08

미완성과 우연의 초상, <휘슬재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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