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와 아델Adele을 비롯해 21세기 영국 팝 신을 이끌고 있는 여러 뮤지션이 영국의 대중예술 전문학교 ‘브릿스쿨The BRIT School’ 출신이라는 점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제는 ‘팝 스타 등용문’이라 일컬을 만큼 영국 음악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브릿스쿨과 함께, 현재 영국 음악계를 움직이는 새로운 목소리들을 소개한다.
21세기 영국 팝의 산실

팝 음악에 재즈의 문법을 새롭게 녹여낸 에이미 와인하우스, 영국 팝의 역사를 다시 쓴 아델, 폭발적인 성량과 압도적인 가창력의 제시 제이Jessie J, 독창적 퍼포먼스로 주목받는 FKA 트위그스FKA twigs, 그리고 최근 새로운 감각을 더하는 레이Raye, 올리비아 딘Olivia Dean, 롤라 영Lola Young까지. 독보적인 색을 자랑하는 이들을 하나로 엮는 공통점은 바로 영국 런던 남부의 브릿스쿨이다.
1991년 문을 열어, 30년 이상 영국 대중문화의 중요한 갈래를 닦아온 브릿스쿨은 시작부터 특별했다. 1990년, 런던 외곽의 넵워스 컨트리 공원Knebworth Country Park에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엘튼 존Elton John 등 영국을 대표하는 전설적 뮤지션들이 한자리에 모여 브릿스쿨 설립을 위한 자선 콘서트를 열었다. 영국 대중문화의 지속과 발전에 뜻을 두고 모인 재능과 열정 덕분에 이듬해 브릿스쿨이 설립됐다.
브릿스쿨은 영국 유일의 공연예술 공립학교로, 학비는 전액 무료이며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모두가 입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디션과 면접을 통해 14세에서 19세 사이, 재능을 가진 학생을 선발한다. 오랫동안 예술이 상류층의 특권이자 전유물로 여겨졌던 영국에서 재능만으로 전문 예술 교육의 문을 열어준 공립 교육기관의 등장은 혁신적이었다. 예술적 잠재력을 기준 삼아 학생을 선발함으로써 장벽을 낮추고, 더욱 다양한 인재를 양성해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목표로, 30년 만에 영국 대중문화의 한 줄기를 만들었다.
장르를 넘나드는 독창적 예술 세계의 기반
브릿스쿨은 음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춤, 영화, 뮤지컬, 연극, 무대 예술, 디자인, 디지털 아트 등 대중예술 전반을 아우르는 전문학교다.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통해 작품의 기획부터 제작, 리허설과 실제 공연까지 모든 과정을 경험한다. 자신의 전공 외 분야의 학생들과 협력하며 예술 세계의 폭을 넓히고, 실제 현장과 맞닿은 경험을 바탕으로 졸업생 대부분이 관련 분야로 진출한다. 버버리, 워너뮤직, 올림피아 런던Olympia London* 등이 브릿스쿨의 협력 파트너로 이름을 올리며 학생들의 창작과 진출을 돕고 있다.
이러한 기반에서 브릿스쿨 출신의 새로운 얼굴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최근 영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목소리로 떠오르는 세 뮤지션이 모두 브릿스쿨 출신이라는 점도 화제가 되고 있다. 영국을 넘어 세계에서 사랑받는 레이, 올리비아 딘, 롤라 영이 그 주인공이다. 독창적인 음악 세계로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사운드를 선보이며 이미 많은 사람의 플레이리스트에 자리한 이들이다.
*올림피아 런던Olympia London: 영국 런던에 위치해 ‘올림피아 전시 센터Olympia Exhibition Centre‘라고도 불리는 전시·이벤트·콘퍼런스 공간이다. 한국의 ‘코엑스’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으로, 현재 대규모 재개발을 진행 중이며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영국 팝 신을 주도하는 BRIT의 여성들
차세대 영국 팝의 주인공, 레이(Raye)
높은 굽 없이도 무대를 장악하는 힘을 가진 ‘맨발의 디바’, 레이. 최근 영국 팝 신에서 가장 빠르게 존재감을 넓혀가는 아티스트다. 레이의 강렬하면서도 리드미컬한 음악은 영국 여성 보컬리스트의 정통을 잇는 듯하다. 지난해 제44회 브릿어워즈The BRIT Awards에서 올해의 아티스트, 올해의 노래, 올해의 음반, 올해의 작곡가, 올해의 신인상, 베스트 R&B 액트상까지 휩쓸며 아델을 넘어서는 6관왕의 기록을 세웠다. 그래미어워즈Grammy Awards에서도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르며 글로벌 영향력을 입증했다. 레이는 브릿스쿨에서의 시간을 기억하며 다양한 장르와 창작 환경을 접하면서 자신의 소리를 찾아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그의 음악은 지금 재즈, 올드팝, R&B, 가스펠, 랩까지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확장 중이다. 무대에서는 매번 다른 편곡을 선보이고, 묵직한 그루비함이 두드러지는 장악력으로 팬들을 사로잡는 레이. 올해 서울재즈페스티벌을 통해 한국 팬들과 처음 만났던 그가 앞으로 어떤 뮤지션으로 자리 잡을지, 다시 만나게 될 무대가 기대된다.
재즈와 소울의 달콤한 조화, 올리비아 딘(Olivia Dean)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 낸 신진 크리에이터에게 부여하는 인스타그램 링Instagram Rings의 2025년 주인공 중 한 명이자, 사브리나 카펜터Sabrina Carpenter의 투어 오프닝 공연을 맡으며 얼굴을 알렸다. 올가을 발매한 앨범 <The Art of Loving>과 싱글 ‘Man I Need’는 영국 앨범과 싱글 차트 1위를 석권했다. 이를 동시에 이룬 기록은 2021년 아델 이후 처음이다. 빌보드 핫100에서도 5위에 오르며, 미국과 세계 시장에서도 사랑받고 있다. 대표곡 ‘Dive’는 블랙핑크 로제를 비롯한 여러 케이팝 아티스트가 커버를 이어가며 한국 뮤지션과 리스너들에게도 사랑받는 노래다. 다양한 장르를 경험하며 융합하는 브릿스쿨 출신 답게, 재즈와 소울을 기반으로 보사노바, 브라스, 모타운 등을 조화시키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이뤄가는 중이다. 듣기 쉬우면서도 다양한 요소의 레이어가 쌓인 사운드는 음악적 완성도를 높였고, 브릿어워즈와 그래미어워즈 등에서 유력한 신인상 후보로 거론되며 더욱 주목받고 있다.
바이럴을 넘어선 새로운 아이콘, 롤라 영(Lola Young)
2001년생인 롤라 영은 2018년 브릿스쿨을 졸업한 뒤, 2021년 브릿어워즈 라이징스타 후보에 오르며 Z세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표곡 ‘Messy’가 틱톡에서 바이럴되며 이름을 알렸지만, 지금은 SNS 스타를 넘어 독창적인 세계를 가진 신인 뮤지션으로 손꼽힌다. 개성 강한 스타일과 솔직한 태도, 때로는 반항적으로 느껴지는 과감한 표현이 Z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팝, 펑크, 록, 컨트리를 오가는 폭넓은 스펙트럼과 허스키한 질감의 보컬은 롤라 영의 음악을 더욱 입체적으로 완성한다. 어느새 믿고 듣는 신예 아티스트로 굳건히 자리한 롤라 영. 틀에 박히지 않은 음악 세계 덕분에 신보가 발표될 때마다 리스너들의 기대와 애정이 높아진다. 도전적인 사운드를 시도하면서도 진솔한 가사는 변함이 없고,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무대 위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롤라 영 또한 이듬해 시상식의 유력한 신인상 후보로 거론되며 관심이 모인다.
진정한 색을 찾아가는 여정의 브릿스쿨
레이, 올리비아 딘, 롤라 영은 모두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창적 음악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의 선배인 에이미 와인하우스와 아델 역시 팝과 재즈, 소울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음악으로 사랑을 받았다. 브릿스쿨 출신 아티스트들의 음악이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한 이론 교육을 넘어 개인의 재능을 발견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지원했기 때문이 아닐까. 여러 예술이 교차하는 다양성을 기반으로 새로움을 창작해 가는 브릿스쿨은 영국 대중음악의 혁신을 이룬 곳이자, 꾸준히 변화를 주도하는 출발점으로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