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영화 제작사를 넘어 브랜드로, A24

독립영화를 배급하고 제작하는 스튜디오 ‘A24’는 팬덤을 보유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어떻게 독립영화계의 아이돌이자 아이콘이 되었을까?

Editorial

영화 제작사를 넘어 브랜드로, A24

독립영화를 배급하고 제작하는 스튜디오 ‘A24’는 팬덤을 보유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어떻게 독립영화계의 아이돌이자 아이콘이 되었을까?

Editorial

영화 제작사를 넘어 브랜드로, A24

독립영화를 배급하고 제작하는 스튜디오 ‘A24’는 팬덤을 보유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어떻게 독립영화계의 아이돌이자 아이콘이 되었을까?

‘씨네필’이라면 ‘믿고 본다’는 표현에 더욱 인색할 수밖에 없다. 확신이 없으면 꺼내기 어려운 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름만큼은 의심을 내려두고 믿어볼 만하다. A24. 영화 배급과 제작을 넘어 각종 굿즈, 멤버십, 레스토랑까지 스펙트럼을 확장하며 남다른 감각을 증명해 온 이들은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하며 새로움을 제시한다.

독립영화계의 아이돌이자 아이콘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그랜드아미GrandArmy가 디자인한 A24의 로고 오리지널 버전. ⒸGrandArmy

몇 년 사이 갑자기 등장한 혜성 같은 존재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A24는 이미 10년 넘게 독립영화를 배급하며 기반을 다져왔다. 마치 오랜 시간 트레이닝을 거쳐 마침내 자신만의 색을 찾아 데뷔한 아이돌 같달까. 업계에서 영화 배급과 제작 경험을 쌓은 창업자 다니엘 카츠Daniel Katz, 데이비드 펜켈David Fenkel, 존 호지스John Hodges는 뜻을 모아 2012년 A24를 설립했다. 2013년 첫 배급을 시작으로, 2016년에는 제작사로서 첫 작품 <문라이트> 선보였고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3관왕*을 거머쥐며 전 세계적 반향을 일으켜 A24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영화 <문라이트>는 2017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각색상, 남우조연상(배우 마허샬라 알리Mahershala Ali)을 수상했다.

A24라는 이름부터 무언가 심오한 뜻을 품고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특별한 의미나 상징을 가진 것은 아니다. 스튜디오 설립을 결심한 순간, 창립자 중 한 명인 다니엘 카츠가 달리고 있던 이탈리아의 고속도로 ‘오토스트라다 A24Autostrada A24’에서 이름을 따온 것. 영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기원이지만, 이조차 A24를 더 유니크하게 만든다. 고속도로의 이름을 가진 이곳은 지금, 영화계의 새로운 길을 열며 자신들만의 속도로 자유롭게 질주하는 중이다.

최근에는 제작과 브랜딩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매년 10편 이상의 작품을 공개하며 신뢰를 쌓았고, 이제는 ‘A24가 만들었다’라는 사실만으로도 화제가 될 만큼 영화 스튜디오를 넘어선 브랜드로서 위상이 높아졌다. 아이덴티티를 확립한 A24는 관객 이상으로 이들을 지지하는 ‘팬덤’을 견고히 하고자 멤버십 서비스를 론칭하고, 제작사 정체성을 강조한 굿즈도 선보였다. 최근에는 뉴욕의 극장을 인수하고, 레스토랑까지 운영하며 영화사라는 틀을 넘어 독보적인 브랜드로서 그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메이저가 된 A24의 마이너리티

매년 미국 아카데미를 비롯한 주요 시상식에서 존재감을 각인시킬 수 있었던 힘은 예술성, 대중성, 화제성을 놓치지 않는 균형으로 ‘A24 감성’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첫 제작 영화였던 <문라이트>가 흑인 퀴어 남성의 성장기를 다룬 작품이자 독립영화로서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며 전 세계가 이들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A24는 기존의 틀을 뒤흔드는 작품으로 화제를 이어갔다. 밝고 아름다운 자연 풍경 속에서 일어나는 충격적인 공포를 다룬 <미드소마>는 호러 장르의 새로운 문법을 썼다. 또 하나의 대표작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로, 이민자 가정의 삶을 섬세하게 풀어냈다. 이 작품으로 윤여정 배우는 한국인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세계적인 배우로 거듭났다.

이 밖에도 영화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백인 중심의 미국 주류 사회가 말하지 않았던 소수자의 목소리를 강렬하게 담았다. 단순 묘사를 넘어 복잡하게 얽힌 정체성과 사회적 관계를 현실적으로 풀어내며 폭넓은 공감을 끌어냈다. 마이너리티 속에서 보편성을 발굴해 내는 안목을 가진 A24가 제작사로서 능력과 경쟁력을 입증한 사례들이다.

독립영화 제작사답게 신인 감독 발굴에도 적극적이다. <문라이트>의 배리 젠킨스Barry Jenkins, <유전>과 <미드소마>의 아리 애스터Ari Aster, <패스트 라이브즈>의 셀린 송Celine Song 등이 대표적이다. 여러 감독이 창작의 자유를 보장받은 덕분에 ‘직업 만족도’가 높았다는 후기가 들리기도 한다. 제작사가 편집과 결말까지 좌우할 정도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 영화 산업에서는 드문 사례다.

A24는 독보적인 감성과 독창성을 유지하며 실험적인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여름에는 유튜브에서 누적 조회수 1억 5,000만 회 이상을 기록한 단편 공포 영화 시리즈 <백룸The Backrooms>을 장편 영화로 제작한다고 발표했다. 해당 시리즈를 만든 케인 파슨스Kane Parsons가 메가폰을 잡는데, 만 19세의 신예로 A24 역사상 최연소 감독으로 이름을 올릴 예정이다.

소장하고 싶은 브랜드가 되다

A24의 독창성과 차별성은 영화의 첫 장면에서부터 드러난다. 대부분 제작사 로고는 무심히 지나가지만, A24는 작품 분위기에 맞춰 오리지널 로고를 변주해 영화의 한 요소처럼 등장한다. 매번 바뀌는 디자인의 로고 플레이를 발견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오프닝 크레딧에서부터 시작한 A24의 차별화된 브랜딩은 스크린 밖에서도 그 감도를 유지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영화 <스프링 브레이커스>의 마케팅 이미지. ⒸA24

마케팅 방식 역시 독창적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영화 속 인물들로 패러디해 온라인을 장악했던 <스프링 브레이커스>의 바이럴은 소셜미디어 기반 영화 마케팅의 최초 사례로 꼽힌다. 이 밖에도 영화 캐릭터의 틴더 프로필을 만들어 대화로 영화를 홍보하거나, 최근에는 영화  <마티 슈프림> 홍보의 일환으로, Zoom 회의 녹화본을 실수로 공개한 듯한 영상을 공개해 디지털에 최적화된 전략을 활용했다. 

A24는 이처럼 여러 지점에서 기존 문법을 비틀며 확실한 정체성을 구축해 왔다. ‘힙함의 상징’이 되면서 취향으로 손꼽고 싶고, 소장하고 싶고, 디깅하고 싶은 브랜드가 된 것. 작품의 이름이 아닌 제작사의 이름이 언급된다는 사실 자체가 A24가 이어온 브랜딩의 성과가 아닐까.

A24는 이런 팬들을 위한 유료 멤버십을 론칭했다. 개봉작 관람권, 오리지널 콘텐츠, 할인권 등 혜택을 제공하며 관객을 팬으로, 팬을 커뮤니티의 고객으로 확장했다. 또한 영화 이미지를 차용한 굿즈가 아닌, A24 로고를 활용한 의류와 소품을 선보이며, 제작사 자체를 브랜드로 소비하고 싶어 하는 니즈를 충족시켰다. 영화 팬들의 소장욕구를 자극하는 이색적인 굿즈도 꾸준히 출시하고 있다. 씨네필의 마음을 저격하는 영화 기록 노트, 영화 속 캐릭터들이 숨어있는 1,000 피스 퍼즐 같은 무난한 제품부터,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 등장한 돌멩이를 ‘반려 돌’ 굿즈로 판매하거나, 기괴한 공포감에 압도되는 영화 <유전>을 크리스마스 오너먼트로 제작한다. 쉽게 떠올리지 못할 발상으로 굿즈에서도 뻔한 선택을 피하는 A24의 감각이 브랜드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든다.

A24의 첫 극장, 체리 레인 씨어터의 외관. ⒸCherry Lane Theatre 인스타그램 (@cherrylanetheatre)

2023년에는 뉴욕 웨스트 빌리지에 위치한 극장을 인수했다. 지어진 지 100년이 넘은 ‘체리 레인 씨어터Cherry Lane Theatre’를 이들만의 공간으로 꾸미겠다는 계획이다. 최근에는 극장 1층에 레스토랑 ‘와일드 체리Wild Cherry’를 오픈했다.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 프로듀서인 제브 스튜어트Jeb Stuart가 공간 디자인을 맡았고, 뉴욕의 유명 셰프 리 핸슨Lee Hanson과 리아드 나스르Riad Nasr가 메뉴를 총괄한다. 강렬한 레드 컬러의 입구와 영화 <대부>를 연상시키는 클래식한 인테리어가 기존 A24의 이미지와 다른 무드를 자아내면서 흥미를 자극한다. 영화 스튜디오가 브랜드로 확장되고, 그 세계관을 스크린에서 실제 공간으로 넓혀 나가며 앞으로 영화 외의 어떤 취향을 제안하고 실험해 나갈지 더욱 궁금해진다.

독립영화 배급사로 출발한 A24는 그 색을 잃지 않고 독창적인 작품을 꾸준히 선보이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스튜디오로 성장했다. 규모는 커졌지만 독립적인 태도와 실험적인 감각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작지만 거대한’, ‘마이너한 메이저’라는 상반된 수식어를 갖는다. 대중성과 실험성 그 사이의 아이러니를 정체성으로 삼은 셈이다. 새로운 시도를 향한 과감함, 경계를 넘나드는 유연함이라는 독립 스튜디오의 미덕을 성실하게 실천해 온 결과, A24라는 이름을 어느새 독보적인 ‘취향’의 상징이 되었다. 이제 A24를 말하는 것은 단순히 영화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세계와 감각을 추구하는지 드러내는 방식이다. 스크린을 나와 현실로 다가오는 A24의 세계는 또 어떻게 확장되어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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