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조지아 오키프의 거대한 꽃

“아무도 꽃을 제대로 보지 않는다. 꽃은 너무 작고 우리는 시간이 없어서.
나는 사람들이 꽃을 보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크게 그렸다.”
어느 날 마주한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이 문장은 작은 것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었다. 이것은 단순히 사물을 크게 묘사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응시의 방향을 바꾸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캔버스를 가득 채우는 흰독말풀, 〈White Jimson Weed No.1〉. 하늘을 향해 피는 흰 꽃잎은 중심으로 천천히 말려 들어가고, 안쪽으로 갈수록 색은 조용히 가라앉는다. 잎맥을 따라 부드럽게 휘어지는 곡선과 흰색에서 회색으로 번져가는 미세한 농담. 그것만으로도 얇은 꽃잎의 두께와 피어나는 방향이 드러난다. 가장자리의 날카로운 흰색은 살짝 안쪽으로 말려들어가고, 시선이 멈추는 중심부에는 오묘한 빛의 수술이 자리한다. 모든 곡선이 이곳을 향해 수렴한다.
오키프는 1920년대부터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던 대상을 거대하게 그려왔다. 그중에서도 이 ‘악마의 나팔꽃’은 오키프가 직접 정원에서 가꾸며 반복해 관찰한 소재다. 〈White Jimson Weed No.1〉은 형태·구성·표면의 완성도가 가장 높다는 평가와 함께, 소더비Sotheby's 경매에서 여성 작가의 작품 중 최고가로 낙찰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작품이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다. 주요 미술관에 걸린 그녀의 작품 앞에서 관람객은 한참을 서서 바라보고, 꽃의 실제 모습에 대해 찾아보고 다시 그림을 바라본다. 평소라면 스쳐 지나갔을 작은 꽃이 거대해짐으로써 비로소 ‘응시의 대상’이 된 것이다. “나는 바쁜 뉴욕 사람들조차 내가 꽃에서 보는 것을 보도록 시간을 쓰게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던 오키프에게 확대는 테크닉이 아니라, 사람들이 꽃을 찾아보고 바라보게 만든 수단에 가깝다. 손바닥만 한 꽃이 사람의 키만큼 커지면서 일어난 변화다.
수백 점의 꽃을 그리며 발견한 것, 마이크로 뷰티


오키프는 평생 수백 점의 꽃을 그렸다. 다양한 꽃들을 반복해 그렸는데 사람들은 그 안에서 여성성에 대한 은유, 순결, 침묵 같은 상징을 읽어내려 했다. 그러나 오키프가 선택한 것은 관습적인 상징이 아니라 식물의 표면 그 자체였다. 단순한 구조,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는 곡선, 보이는 그대로의 형태를 극도로 확대한 표면. 그래서 오키프의 꽃은 때로는 추상처럼 보이고, 때로는 그녀가 머물렀던 뉴멕시코의 황량한 지형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마이크로 뷰티Micro Beauty라는 감각이 자리한다. 단순히 작은 사물의 아기자기함이나 미세한 아름다움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돋보기를 들이대듯 사물의 가장 작은 단위까지 시선을 밀어 넣었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무언가다. 꽃잎의 작은 생채기, 수술에 붙은 미세한 꽃가루, 빛이 꺾이는 각도. 멀리서는 스쳐 지나가던 디테일이 가까이 다가갔을 땐 그 사물이 통과해온 시간이 남긴 단서가 된다. 오키프의 붓은 이 표면을 지나며 자연에 대한 사소한 발견을 기록했다. 들여다보고 탐구하며, 그 발견이 내면에 남기는 파동을 다시 캔버스에에 풀어내는 일. 결국 작은 것의 내부에는 전체가 접혀 있다.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은 이를 ‘소우주’라 불렀다. 인간의 내면에 우주 전체의 구조가 반영되어 있다는 사유다. 오키프의 꽃은 그 구조를 시각적으로 옮겨놓은 것처럼 보인다. 선이 아닌 면으로 표현된 꽃잎의 색채는 생명력을, 자연의 질서를, 그리고 감정의 파동을 보여준다. 그것이 작은 것을 깊게 들여다보는 일의 의미다.
세상의 가치를 이해하는 방법: 아이콘, 인덱스, 심볼

오늘날, 빠른 속도로 표면을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는 단편적인 인상과 피로만을 남긴다. 이미지의 화각은 점점 확대되지만 시야가 확장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백 년 전 오키프의 선언을 다시 끄집어낸다. 그녀는 구체적인 형상Icon인 꽃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표면에 남은 빛과 색채의 흔적Index을 읽어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작은 꽃 한 송이를 자연의 이치와 내면을 담은 상징Symbol으로 완성했다.
그래서 이 시리즈의 이름을 기호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의 개념을 빌려 ‘아이콘·인덱스·심볼Icon・Index・Symbol’이라 이름 지었다. 하나의 형상을 보고, 표면에 남은 단서를 읽고, 그 안에서 천천히 의미를 발견해 보는 일. 한 송이의 꽃이 우주 전체를 설명할 수는 없어도 그 안에 자연의 질서가 담겨있듯, 작은 것 하나는 전체에 다가가는 가장 단단한 출발점이 된다. 오키프의 꽃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시선의 중심에 있다. 보이지 않던 것에 형태를 주고, 들리지 않던 것에 이름을 부여하는 방식. 작은 것을 들여다보는 이 짧고 조용한 집중 속에서, 우리가 다시 감각해야 할 세계의 리듬이 서서히 드러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