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현재를 붙잡는 행위: MoMA의 영구 소장


연말이 되어 한 해를 회고하는 일은 과거를 남기는 행위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지금을 붙잡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이는 미술관이 시대의 변화를 아카이브 하는 방식과 닮았다. 하나의 해가 닫힐 때 개인이 자신의 기록을 가다듬듯이, MoMA는 시대를 가장 정확히 드러내는 것을 보관한다.
안민정 작가의 <자화상>(2024)이 80년대생 한국 작가 최초로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영구 소장되었다. 백남준, 양혜규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뒤를 이어, 안민정의 합류는 한국 작가 30여 명이 MoMA 컬렉션에 자리 잡는 이정표가 된다. MoMA에 영구 소장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기준은 명확하다. 시장 가치나 유명세가 아니라, 현대 디자인과 예술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미학적 완성도와 혁신성을 동시에 지녔는지다. 안민정의 작업은 출산 이후의 신체 변화를 수학적 기호와 설계도로 번역했다는 점에서 이 기준을 충족한다. 사적 경험을 기술적 언어로 치환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디자인의 역사는 언제나 기술의 진보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삶에서 때론 우연이 의도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듯, 예기치 않은 실패와 실험의 잔여에서 새로운 조형이 탄생한다.
기술과 우연이 만들어낸 가구들
MoMA가 영구 보관한 가구들은 바로 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미학으로 전환되는 자리를 기록한다. 우연이라는 틈에서 사물의 생명력이 피어난 순간들이다.
알바 알토의 스툴 60: 통제와 유연함 사이의 발견

알바 알토Alvar Aalto의 스툴 60은 기술이 우연과 만난 장면을 담고 있다. 그는 나무를 금속처럼 통제하고자 합판을 휘는 실험을 거듭했지만, 목재는 살아있는 재료였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휘어졌다. 알토는 바로 이 의도하지 않은 휨을 활용하여 다리를 ‘ㄴ’자로 굽혀 하중을 안정적으로 지지하는 독창적인 ‘L-레그’ 구조를 발견한 것이다.
찰스와 레이 임스의 LCW: 전쟁의 기억과 따뜻한 곡선

이 의자는 전쟁 중 부상병 운반을 위한 합판 성형 기술에서 출발했다. 인간의 몸을 고정하는 부목이나 들것의 기능으로 생명을 지탱하던 산업의 기술이 인간의 몸을 감싸는 우아한 곡선으로 재탄생했다. 합판이라는 산업의 논리가 인간의 신체적 편안함이라는 감각으로 전환된 순간, LCW는 감정을 받아들일 수 있는 따뜻한 언어를 갖게 되었다.
마르셀 브로이어의 바실리 체어: 계산을 앞지른 관찰

바실리 체어는 직선과 대칭으로 이루어진 냉정한 형태지만 일상적인 사물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대중화된 자전거 강철 튜브의 가벼움과 강도를 관찰하며 산업적인 재료를 의자의 구조로 쓸 수 있다고 직관했고, 기계의 언어로 만들어진 최초의 가구로 조명되었다. 역설적으로 기술의 냉철함이 오히려 현대적 감각과 미학을 가장 잘 대표하게 된 순간이었다.
이사무 노구치의 커피 테이블: 감각이 기술을 되돌리다

조각가였던 노구치는 커피 테이블의 나무다리를 의도적으로 비대칭으로 설계했다. 이는 가구 디자인의 대칭적 질서를 일부러 벗어난 것이다. 다리 자체는 아슬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는 조각처럼 보이지만 시각적 균형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조각가의 직관이 발견한 균형의 흔적을 담은 작품이다.
연말을 위한 에필로그: 2025년이라는 컬렉션을 정리하며
디자인의 역사는 기술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우연의 역사다. 인간은 세계를 통제하려 하지만, 통제의 틈에서 예측하지 못한 우연이 발생한다. 그 사이에서 만들어진 형태들이 지금 우리의 미학을 구성한다.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야심 차게 계획했던 매일의 설계도와 달리, 한 해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실수와 실패, 예기치 못한 변수 같은 통제되지 않는 순간에서 발견된다. 우리는 소중한 것을 보관하려는 존재, 호모 콜렉투스Homo Collectus다. 특히 사물을 모으는 행위는 수집가 자신의 기억이라는 혼돈을 정리하려는 인간의 본능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MoMA가 현재를 관통하며 시대의 불완전함을 아름답게 보존하는 것처럼, 우리 역시 올 한 해의 완벽했던 순간들뿐만 아니라 우연과 균열 속에서 발견한 의미 있는 순간을 ‘삶의 영구 소장품’으로 기록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