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텔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일곱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초여름 오후,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자며 나와 동생을 고운 원피스로 갈아입히고 소공동의 한 호텔로 데려간 그날이다. 은그릇에 올려진 알록달록한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이 입 안에서 퍼지며 피어나던 미소는 내 유년기의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그보다 더 선명한 건 호텔 라운지에 흐르던 어떤 공기와 분위기였다. 화려하고 도톰한 카펫을 밟는 이들의 보드라운 발걸음 소리, 벽면을 가득 채운 아름다운 초록의 풍경화, 엄마의 얼굴을 유난히 예쁘게 만들어주던 노오란 조명…. 무엇보다 사람들의 표정이 온화하고 느긋했으며, 속삭이는 작은 목소리들이 공기 속을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그날 호텔의 모든 풍경은 어린 나의 눈에도 새롭고 경이로운 세계였다.


여행할 결심이 서면 나는 어느 호텔에 묵을지를 먼저 고민한다. 공항, 기차역, 레스토랑, 광장, 버스 안 등 연속해서 마주치는 여러 낯선 곳들의 종착지인 호텔은 그 어떤 장소들보다 여행자와 밀접하고 친밀하다. 지나온 여정을 상기하며 긴 호흡으로 긴장을 내려놓는 시간. 낯선 도시에서 잠시나마 ‘유일하게 사적인 공간’이 되는 호텔은 그래서 사소하지 않은 여행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때로는 오로지 마음에 품은 호텔에 가고 싶은 마음 하나로 먼 여행을 감행하기도 한다. 어느 도시에선가는 닷새를 머무는 동안 네 군데의 호텔을 방문한 적도 있다.
최상의 편안함과 만족감을 제공하려는 호텔의 노력은 저마다의 ‘탁월한 선택’으로 드러난다. 호텔의 건축과 인테리어, 가구, 비품에 이르는 물리적인 요소부터 호텔이 가진 히스토리, 각자가 추구하는 서비스와 브랜딩을 포함해 보이지 않는 요소까지 말이다. 심지어 객실에 비치된 타월과 어메니티가 어느 브랜드의 제품인지에 따라 그 호텔의 아이덴티티를 읽어낼 수 있고, 곳곳에 어떤 책을 구비해 두었는지를 보면 그 호텔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다. 객실의 전기 주전자에 물을 올릴 때, 그 많은 제품들 가운데 이것 하나를 택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을지를 떠올리면 나는 그것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스톡홀름을 기반으로 여러 개의 호텔을 운영하는 노비스 호스피탤러티 그룹Nobis Hospitality Group의 설립자 알레산드로 카테나치Alessandro Catenacci는 “호텔의 플레이 리스트를 체크하기 위해 로비에 14시간을 앉아 있기도 했다”고 말한다. 그만큼 호텔을 구성하는 A부터 Z까지의 모든 요소들은 세심하고 구체적이다.

최근 건축과 가구, 제품을 아우른 전방위적인 디자인의 최전선은 다름아닌 호텔이라고 할 수 있다. 호텔들이 자체의 기획력으로 유명 건축가나 디자이너, 아티스트와 적극적으로 협업해 탁월한 브랜딩과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최고의 럭셔리를 지향한 결과물뿐 아니라 개성을 강조하며 키치와 팝, 때론 의도적으로 험블한 것을 뒤섞은 것까지 다채롭다. 규모가 작은 호텔일수록 각자가 내세우는 운영 전략은 전형성을 벗어나 전복과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기도 한다. 가령 유서 깊은 클래식 호텔들이 고수하는 서비스맨십의 친절함이 아니라 조금은 냉담하고 쿨한 태도를 취하는 식이다. 또한 몇몇 호텔들은 매체나 출판을 통한 홍보를 의도적으로 꺼린다. 그들의 목적이 많은 손님을 끌어들여 매출 상승을 최대화하려는 게 아니라는 걸 의미한다. 그들은 호텔이 가진 고유한 문화와 분위기를 유지하며, 기존 고객들과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가꾸어가는 데 섬세한 노력을 기울인다. 호텔이 어느 정도의 배타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번 KIOSK와 함께 하는 ‘호텔 미감Hotel Aesthetic’ 시리즈에서는 호텔은 물론, 스테이까지 이야기의 공간을 확장한다. 스테이는 호텔과는 또 다른 개별적 의미를 지닌다. 호텔이 하나의 브랜드라면, 스테이는 개인의 첨예한 삶과 취향을 간직한 단 하나의 공간인 셈이다. 피렌체의 어느 뮤지엄 관장의 업무실이었던 고풍스런 라운지 공간, 독일의 19세기 은행건물 2층의 은행장이 살았던 아파트먼트, 100년 전 공장 노동자들이 함께 지내던 라이프치히의 거대한 공용숙소 같은 곳들은 내가 머무는 동안에는 오롯이 나만의 장소가 된다. 보편적인 여러 투숙객들을 만족시켜야하는 호텔과 달리 스테이는 그곳에 매혹되어 찾아온 단 한 사람을 응대한다는 일종의 특권을 갖는다. 하나의 방 혹은 유일한 집은 그러므로 놀라움과 파격, 은밀하게 쌓아올린 이야기가 공존하는 일종의 분더캄머가 될 수도 있다. 쉼없는 호텔여행 사이에 신선하게 삽입하는 스테이 여행은 더욱 예상할 수 없는 놀라운 만남과 발견으로 나를 뒤흔든다.
나의 글은 취재가 아닌 경험에 기반한다. 공간의 작은 흔적과 소리에도 마음을 기울였고, 호텔의 직원들과 우연히 나눈 이야기를 단서로 하룻밤을 더욱 밀도 있게 보낼 수 있었다. 4성급, 5성급 혹은 우버 럭셔리 같은 카테고리에 경중을 두지 않고 모든 호텔들이 시어詩語처럼 때로는 사소설私小說처럼 내 소중한 이야기들의 배경이 되어주었다. 낯선 도시에서 침대 곁의 흐린 조명을 켜고 잠시 포근했던 그 많은 시간들은 모두 수필이 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