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 밤새 삶과 사랑을 이야기하던 도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바람에 몸을 맡긴 채 걷는 도시. 오스트리아 빈에는 뻔한 일에서 잠시 벗어나게 되는 낭만이 흐른다. 〈비포 선라이즈〉와 〈풍향고2〉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화면 속에 머물던 이야기에 새로운 감상이 더해진다. 나만의 영화를, 나만의 예능을 만들어 줄 장소들로 향해보자.

빈의 800년 역사가 깃든 ‘슈테판 대성당’




빈 시내를 감싸는 반지 모양의 ‘링 거리Ringstrasse’, 보석과 같은 상징인 슈테판 대성당Stephansdom. 137m에 이르는 첨탑은 도시 어디에서나 눈에 띄는 표식처럼 자리한다. 빈 역사지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덕분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기 어려워 더욱 돋보이는 랜드마크다. 성당은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설을 시작해 14세기 고딕 양식을 따라 증축했고, 두 양식이 혼합되어 16세기에 이르러 완공됐다. 내부에 들어서면 오랜 시간과 종교적 무게감을 품은 유산들이 경건한 압도감을 선사하고,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진 곳이라는 사실은 역사적 의미를 더한다. 슈테판 대성당은 빈이 축적해 온 시간을 가장 차분하고 깊이 있게 드러내는 장소다. 북측 탑 꼭대기에 자리한 무게 17톤의 푸메린The Pummerin 종은 지금도 새해나 국가 행사 때면 도시 전역에 울림을 전한다. 〈풍향고2〉 멤버들이 찾았던 탑 전망대에 오르면 붉은 지붕과 촘촘히 이어진 골목이 펼쳐진다.
ADD. Stephansplatz 3, 1010 Wien
영화적 추억을 완성해 줄 ‘프라터 놀이공원’



1766년 문을 연 프라터 놀이공원Wiener Prater에는 1897년부터 운영을 시작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관람차가 빈의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지나온 시간만큼 수많은 이야기와 추억이 켜켜이 쌓인 곳, 그 안에 스민 이야기 중 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빼놓을 수 없다. 연인과 함께 떠난 비엔나 여행이라면, 대관람차라는 장소를 낭만의 대명사로 만든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프라이빗한 저녁 식사 데이트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해가 진 저녁 시간에 대관람차 안에서 90분 동안 3코스 메뉴와 와인이 제공되는 ‘캔들라이트 디너’ 패키지를 예약하면 로맨틱한 여행의 한 장면을 남길 수 있다. 한편 〈풍향고 2〉가 만난 낮의 놀이공원은 한결 가볍고 들뜬 모습으로, 대관람차 외에도 다양한 놀이기구가 즐비해 즐거운 분위기가 시청자들에게도 전해졌다. 놀이공원은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으며, 이용을 원하는 놀이기구마다 티켓을 구매하는 방식이다. 카드 결제는 어려울 수 있으니 현금을 준비하는 걸 추천한다. 하루의 끝을 로맨틱하게 채우기도, 활기찬 낮을 만끽하기에도 어울리는 곳이다.
ADD. Wiener Prater, 1020 Wien
예약 필수 슈니첼 맛집 ‘피그뮐러’



예약 없이 ‘오픈런’을 시도했던 〈풍향고2〉 멤버들이 아쉬움을 남긴 채 발길을 돌려야 했던 레스토랑, 피그뮐러Figlmüller. 1905년 문을 연 이곳은 ‘슈니첼의 원조’로, 슈니첼이 가진 본연의 맛에 집중해 현지인과 여행자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시내 관광 명소와 가까워 접근성이 좋아 언제나 사람이 몰리는 곳으로, 예약 없이 방문하면 빈자리를 만나기 어려운 맛집이다. 방문을 계획하고 있다면 레스토랑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해 두는 편이 안전하다. 대표 메뉴는 고기를 넓게 저며 바삭하게 튀겨낸 슈니첼과 상큼한 드레싱의 감자샐러드. 부드러운 송아지 고기를 매우 얇게 펴낸 이곳의 슈니첼은 접시를 다 덮을 만큼 큰 사이즈와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튀김의 묵직한 풍미를 가볍게 정리해 주는 감자샐러드를 곁들이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슈니첼과 함께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인 굴라쉬도 선보이고 있으니 이곳에서 오스트리아의 미식을 한 번에 경험해 봐도 좋겠다. 참고로 1호점에서는 와인만 판매하며, 2호점에서는 맥주까지 즐길 수 있다고.
ADD. Wollzeile 5, 1010 Wien
시간과 예술이 수놓인 야경 ‘알베르티나 미술관’



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대표하는 장면 중 하나는 한산해진 빈의 밤, 제시와 셀린이 석조 테라스에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던 순간일 것이다. 그들이 낯선 도시에서 은밀한 사랑을 키우던 장소는 바로 알베르티나 미술관ALBERTINA Museum Wien의 2층 테라스. 늦은 시간, 국립 오페라 극장Wiener Staatsoper에 조명이 켜지면 영화 속 한 장면이 그대로 재현된다. 테라스 공간은 일반인들에게 별도의 입장료 없이 개방되며,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밤 9시까지 야간 개장을 이어간다. 미술관은 본래 합스부르크 왕의 궁전으로 사용됐던 곳으로, 당시 사용되던 영접실과 홀 등 역사 깊은 공간을 곳곳에 보존한 채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2008년에는 건축가 한스 홀라인Hans Hollein의 설계로 60m 길이의 티타늄 날개를 달아 고전적인 외관에 현대적인 실루엣을 덧입혔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작품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빈의 시간 속에서 예술과 영화가 교차되는 감상이 비로소 우리의 여행을 완성한다.
ADD. Albertinaplatz 1, 1010 Wien
자허토르테가 탄생한 성지 ‘카페 자허’

빈의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곳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수백 년간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사교와 문화를 발전시킨 공간으로 기능하며 사회적 가치를 품은 문화로 인정받아 ‘빈의 커피하우스 문화Viennese Coffee House Culture’ 자체가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현지인들은 카페를 ’커피하우스‘라 부르며 마치 거실에 머무는 듯 서두르지 않는다. 시간에 커피를 곁들이며 책장을 넘기고, 생각을 정리하고, 대화를 이어간다.


빈의 ‘3대 카페’로 손꼽히는 카페 자허Cafe Sacher는 1832년 파티시에 프란츠 자허Franz Sacher가 처음 문을 열었다고 전해지며, 이곳만의 스페셜한 레시피로 만들어진 초콜릿케이크 ‘자허토르테’의 탄생지로 잘 알려져 있다. 초콜릿케이크 시트 사이에 살구잼을 더하고, 겉면을 진한 초콜릿 가나슈로 덮은 자허토르테는 씁쓸함과 상큼함이 기분 좋은 대비를 이룬다. 호텔 자허Hotel Sacher 1층, 국립 오페라 극장 맞은편에 자리해 알베르티나 미술관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공연이나 전시를 본 뒤 잠시 쉬어가거나 야경을 기다리기에도 부담이 없다.
ADD. Philharmoniker Str. 4, 1010 Wien
〈비포 선라이즈〉와 〈풍향고2〉는 스마트폰 없이 발길이 닿는 대로 걷게 되는 빈의 매력을 담았다. 목적지를 향해 서두르지 않아도, 계획에서 조금 벗어나도 조급해지지 않는 도시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기꺼이 곳곳을 헤매며 거닐고 싶게 만드는 힘은 빈이 가진 큰 매력이다. 마음의 경계를 풀고, 낭만을 힘껏 품게 하는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우연히 마주치는 풍경은 여행의 특별한 서사가 될지도 모른다. 예기치 않은 순간을 기대하며 느긋하게 걸어봐도 좋은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