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서킷을 질주하는 브랜드 아이덴티티, F1 리버리 디자인

시속 300km로 달리는 F1 머신 위의 색과 그래픽은 몇 초 만에 팀과 브랜드를 각인시킨다. 리버리는 공기역학, 무게 규정, 스폰서 계약, 중계 환경까지 반영된 정교한 그래픽 시스템이다. 공학과 미학의 우아한 공존, F1 리버리 디자인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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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킷을 질주하는 브랜드 아이덴티티, F1 리버리 디자인

시속 300km로 달리는 F1 머신 위의 색과 그래픽은 몇 초 만에 팀과 브랜드를 각인시킨다. 리버리는 공기역학, 무게 규정, 스폰서 계약, 중계 환경까지 반영된 정교한 그래픽 시스템이다. 공학과 미학의 우아한 공존, F1 리버리 디자인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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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킷을 질주하는 브랜드 아이덴티티, F1 리버리 디자인

시속 300km로 달리는 F1 머신 위의 색과 그래픽은 몇 초 만에 팀과 브랜드를 각인시킨다. 리버리는 공기역학, 무게 규정, 스폰서 계약, 중계 환경까지 반영된 정교한 그래픽 시스템이다. 공학과 미학의 우아한 공존, F1 리버리 디자인을 알아본다.

Mercedes-AMG F1 W15 E Performance ⒸMercedes-AMG Petronas F1 Team

포뮬러 원Formula 1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스포츠이자, 동시에 가장 비싼 광고판이다. 시속 300km를 넘는 속도로 트랙을 질주하는 동안 차체 위의 색과 그래픽은 전 세계 수억 명의 시청자에게 반복적으로 노출된다. 몇 초 동안 화면을 스치는 장면 속에서 관객은 팀을 알아보고 브랜드를 인식한다. 이토록 짧은 순간을 위해 설계된 것이 바로 리버리Livery다.

F1에서 리버리는 단순한 도색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공기역학 구조, 무게 규정, 스폰서 계약, 방송 중계 환경까지 다양한 요소를 동시에 고려해 만들어진 정교한 시각 언어이자 그래픽 시스템에 가깝다. 차량의 기술적인 부분에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동시에 광고주의 요구에 부합해야 하는 것. 이렇기에 레이스카는 정교한 공학적 산물이기도 하면서 미학적으로 굉장히 철저하게 설계된 결과물이다. 0.001초를 다투는 머신인 동시에 수억 명에게 노출되는 하나의 광고 플랫폼인 셈이다.

정교한 그래픽 설계의 산물, 리버리 디자인

Ferrari SF-26 ⒸScuderia Ferrari

다른 스포츠에서 브랜드는 대개 별도의 광고판에 등장한다. 그러나 F1에서는 머신 자체가 브랜드 매체가 된다. 출발 그리드에서 카메라는 차량 전체를 비추고, 코너에서는 사이드 포드Side Pod, 직선 구간에서는 리어 윙Rear Wing 등을 담아낸다. 중계 화면이 끊임없이 머신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때 시청자가 가장 먼저 인식하는 것은 팀명이 아니라 컬러와 그래픽이다. 페라리Ferrari의 붉은색, 메르세데스-AMGMercedes-AMG의 실버, 레드불Red Bull의 네이비와 레드처럼 특정 컬러와 그래픽은 이미 팀 자체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몇 초 동안 화면을 스치는 장면에서도 관객이 팀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F1 머신은 스포츠 장비이면서 동시에 브랜드 홍보 플랫폼이며, 리버리는 그 플랫폼 위에서 작동하는 아이덴티티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F1 리버리는 예상보다 훨씬 복잡한 설계 과정 위에서 만들어진다. F1 머신은 시속 300km 이상으로 달리는 공기역학적 구조로 설계되는데, 차량의 모든 요소는 공기 흐름을 제어하기 위해 존재한다. 디자이너의 과제는 이러한 공학 구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브랜드 그래픽을 적용하는 것. 실제로 디자이너들은 리버리 설계의 첫 번째 규칙을 ‘공기 흐름을 시각적으로 방해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복잡한 사이드 포드 곡면 위를 따라 흐르는 그래픽 라인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차량의 공기역학적 형태를 시각적으로 보정하고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라인의 방향과 면 분할은 차를 더 낮고 길어 보이게 만들고, 복잡한 곡면을 정리해 머신의 비례를 안정적으로 보이게 하는 일종의 ‘착시의 디자인’이다.

리버리는 ‘광고’가 아닌 ‘설계된 그래픽’

Mercedes-AMG F1 W15 E Performance ⒸMercedes-AMG Petronas F1 Team

F1 리버리에서 사용되는 페인트와 데칼의 두께조차 매우 정밀하게 관리된다. 일부 팀에서는 페인트 두께를 수 마이크로미터μm 단위로 관리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차체 표면의 미세한 단차가 공기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리버리는 미적 요소이면서 동시에 공기역학적 구조와 공존해야 하는 기술적 디자인인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F1 디자이너들은 정지된 차량을 기준으로 리버리를 설계하지 않는다. 리버리 검토 과정에서는 피트에 멈춰 있는 차량 이미지보다 헬리콥터 샷, 트래킹 샷, 온보드 카메라 등 중계 화면에서의 시각 흐름을 시뮬레이션한 영상이 먼저 검토된다. 차량이 코너를 돌 때 카메라가 가장 오래 머무는 위치, 즉 ‘시각적 정점Visual Apex’을 기준으로 주요 스폰서 로고가 배치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로고가 실제 차체에서는 약간 왜곡되어 보이더라도, 특정 망원 렌즈 앵글에서 완벽한 비율로 보이도록 설계하기도 한다.

Red Bull RB20 ⒸOracle Red Bull Racing

이와 함께 F1 리버리 디자인에는 여러 현실적인 제약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기술 규정이다. 국제자동차연맹Federation Internationale de l'Automobile은 차량 구조와 크기를 엄격하게 제한한다. 노즈Nose 길이, 윙 크기, 사이드 포드 형태 등 대부분의 요소가 규정 범위 안에서 설계되어야 하며, 그래픽 역시 이 구조 위에서만 적용될 수 있다. 두 번째는 스폰서 계약이다. F1 팀 운영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차체에는 여러 기업의 로고가 들어간다. 스폰서는 자신의 로고가 잘 보이길 원하고, 팀은 이를 균형 있게 배치해야 한다. 세 번째는 시인성이다. F1 머신은 시속 300km 이상으로 움직인다. 디자인이 정지 상태에서만 아름다워서는 의미가 없다. 고속으로 움직일 때도 쉽게 인지될 수 있어야 하며, 강한 색 대비와 단순한 그래픽 구조가 자주 사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5개 브랜드의 리버리 디자인

그렇다면 이러한 조건 속에서 각 브랜드는 어떤 리버리 디자인을 구축해 왔을까. 팀 고유 컬러에 담긴 역사와 브랜드 정체성, 그리고 F1 역사에서 아이코닉하게 남은 리버리들을 함께 살펴본다.

페라리 ‘로쏘 코르사’: 이탈리아의 붉은 유산

Ferrari SF-23 ⒸF1
Ferrari SF-24 ⒸScuderia Ferrari

페라리의 붉은색은 F1에서 가장 오래된 시각 언어 중 하나다. ‘로쏘 코르사Rosso Corsa’라고 불리는 이 색은 단순한 팀 컬러가 아니라, 20세기 초 국제 자동차 경주에서 국가별로 정해졌던 레이싱 컬러에서 출발했다. 영국은 녹색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British Racing Green’, 프랑스는 파란색 ‘블루 드 프랑스Bleu de France’라고 불렸고, 독일은 은색을, 이탈리아는 빨간색을 사용했다. 엔초 페라리Enzo Ferrari가 1929년부터 1938년까지 알파 로메오Alfa Romeo 레이스팀을 운영하던 시절부터 사용된 이 빨간색은 이후 1947년 페라리 창립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그 결과 로쏘 코르사는 단순한 팀 컬러를 넘어 이탈리아 레이싱 문화 전체를 상징하는 색이 됐다.

여기에 페라리 로고 배경에 사용되는 노란색 ‘지알로 모데나Giallo Modena’가 더해진다. 이 색은 페라리 본사가 있는 모데나의 도시 색이다. 붉은색이 이탈리아를 의미한다면, 노란색은 모데나라는 지역 정체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페라리 리버리는 국가에서 도시, 그리고 다시 브랜드로 이어지는 정체성 구조를 갖는다. 수십 년 동안 스폰서와 세부 그래픽은 계속 바뀌었지만, 기본적으로 빨간 차체라는 원칙은 흔들리지 않았다.

다만 최근에는 이 전통적인 색 체계 안에도 분명한 변화가 보인다. HP와의 타이틀 파트너십 이후 리버리에 흰색 요소를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했고, 작년 SF-25 모델에서도 흰색 숫자와 흰색 포인트가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마이애미 스페셜 리버리에서는HP의 시그니처인 흰색과 파란색을 결합한 구성을 공식적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즉 페라리의 리버리는 여전히 빨강을 중심으로 유지되지만, 최근에는 HP 파트너십을 통해 흰색이 새로운 브랜드 레이어로 더해지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로터스 ‘존 플레이어 스페셜’: 스폰서가 디자인이 된 순간

Lotus 72 ⒸLotus F1 Team
Lotus E20 ⒸLotus F1 Team

1970년대 로터스Lotus 팀의 ‘존 플레이어 스페셜John Player Special’ 리버리는 F1 디자인 역사에서 가장 상징적인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1960년대까지 대부분의 팀은 국가 레이싱 컬러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1968년 담배 브랜드 ‘골드 리프Gold Leaf’가 로터스를 후원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기업 스폰서가 팀의 색을 결정하기 시작했는데, 이 변화는 F1 머신을 국가를 대표하는 스포츠 장비에서 글로벌 광고 매체로 바꾸는 사건이기도 했다. 이 흐름 속에서 등장한 JPS 리버리는 검정 차체 위에 금색 라인과 타이포그래피를 배치한 단순한 구조였다.

중요한 건 이 디자인이 단순히 로고를 붙인 수준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담배 브랜드 존 플레이어 스페셜의 패키지 디자인이 거의 그대로 머신 전체로 옮겨간 셈이었다. 검정과 금색의 조합은 강한 대비를 만들었고, 차체 전체를 하나의 고급스러운 제품 패키지처럼 보이게 했다. 당시 F1 리버리의 상당수는 담배 회사들이 만들었다. 말보로 페라리Marlboro Ferrari, 카멜 윌리엄스Camel Williams, 로스만스 윌리엄스 Rothmans Williams, 럭키 스트라이크 BARLucky Strike BAR 등 대부분의 팀이 담배 브랜드와 연결된 리버리를 사용했고, 이 시기 F1 머신은 사실상 움직이는 광고판에 가까웠다. 그중에서도 로터스의 블랙 앤 골드는 광고를 넘어 하나의 아이코닉한 스타일로 기억된다. 지금까지도 존 플레이어 스페셜 리버리는 F1 역사에서 가장 우아한 디자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맥라렌 ‘파파야 오렌지’: 시인성이 만든 브랜드 컬러

McLaren MCL60, MCL38 ⒸMcLaren F1 Team
McLaren MCL38 ⒸMcLaren F1 Team

맥라렌McLaren의 파파야 오렌지Papaya Orange는 단순한 미적 선택이 아니라 미디어 환경에서 나온 전략적 색이다. 1960년대 F1 중계는 대부분 흑백 TV로 이루어졌고, 화면 속 차량을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창립자 브루스 맥라렌Bruce McLaren은 트랙 위에서 가장 잘 보이는 색을 찾기 시작했고, 그 결과 선택된 색이 바로 파파야 오렌지였다. 이 색은 흑백 화면에서도 차량 형태를 비교적 또렷하게 드러냈고, 실제 레이스에서도 다른 차들과 빠르게 구별됐다. 즉 파파야 오렌지는 중계 환경과 시인성을 고려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이었다.

이후 맥라렌 리버리는 스폰서 변화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말보로 시대에는 레드 앤 화이트가 팀을 대표했고, 마찬가지로 담배 브랜드인 웨스트West와 함께하던 시기에는 실버와 검정을 중심으로 한 리버리가 등장했다. 이 색 조합은 당시 메르세데스 엔진을 사용하던 맥라렌-메르세데스McLaren-Mercedes 시대의 이미지를 반영한 것으로, 은색 차체와 검정 그래픽은 팀을 보다 기술적이고 공학적인 브랜드로 보이게 했다.

하지만 최근 맥라렌은 다시 파파야 오렌지를 브랜드 핵심 컬러로 활용하고 있다. 이 선택은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팀의 역사와 현재를 다시 연결하려는 전략에 가깝다. 하나의 색이 헤리티지를 상징하면서도 현대적인 카본 블랙Carbon Black과 결합해 새로운 시각 구조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레드불 레이싱 ‘더 무빙 캔’: 패키지가 된 레이스카

Oracle Red Bull Racing RB19 ⒸOracle Red Bull Racing
Visa Cash App RB VCARB 01 ⒸRB F1 Team

레드불 레이싱Red Bull Racing의 리버리는 다른 팀과 출발점부터 다르다. 대부분의 F1 팀이 스폰서와 결합한 구조로 디자인을 구성하는 것과 달리, 레드불은 브랜드 자체가 팀이다. 에너지 음료 브랜드 레드불이 직접 팀을 운영하기 때문으로, 레이스카 디자인 역시 브랜드 패키지 디자인과 거의 동일한 구조를 가진다. 짙은 네이비 배경 위에 붉은 황소 두 마리와 노란 원이 배치된 그래픽은 레드불 캔 디자인과 거의 유사하다. 이 구성이 차체 전체에 적용되면서 레드불 머신은 트랙 위에서 거대한 음료 캔이 시속 300km로 달리는 것 같은 인상을 만든다.

‘더 무빙 캔The Moving Can’이라 불리는 이 리버리의 강점은 로고를 얹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브랜드 패키지 전체가 곧 레이스카 디자인이 되기 때문에 차체의 어느 면을 보더라도 레드불의 시각 언어가 유지된다. 브랜드의 패키지 디자인이 그대로 레이스카로 확장된 사례이자, 현대 F1에서 가장 즉각적으로 인식되는 리버리 중 하나다. 많은 팀이 스폰서와 아이덴티티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애쓰는 반면, 레드불은 브랜드 그 자체가 팀이라는 구조 덕분에 가장 순도 높은 시각 언어를 유지하고 있다.

메르세데스 ‘실버 애로우’: 결핍에서 시작된 전통

Mercedes-AMG F1 W15 ⒸMercedes-AMG Petronas F1 Team

메르세데스Mercedes의 상징인 ‘실버 애로우Silver Arrow’는 독특한 역사에서 시작됐다. 1934년 레이스 규정은 차량 무게를 750kg 이하로 제한했고, 메르세데스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차체 페인트를 제거했다. 그 결과 알루미늄 차체가 그대로 드러난 은색 차량이 탄생했다. 이 은빛 차가 화살처럼 빠르게 달린다는 이유로 ‘실버 애로우’라는 이름이 붙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색이 애초에 미적 선택이 아니라 기술적 해결책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우연한 선택은 이후 메르세데스 레이싱 전체를 상징하는 전통이 됐다.

그런 점에서 메르세데스 리버리는 F1에서 기술과 상징이 가장 직접적으로 만나는 사례 중 하나다. 최근 메르세데스는 검정 리버리를 도입하며 다양성과 반인종차별 메시지를 표현하기도 했다. 이 변화는 리버리가 단순한 색이 아니라, 브랜드 철학과 시대적 태도를 담는 매체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은색이 메르세데스의 헤리티지라면, 검정은 현재의 메시지다. 기술적 필요에서 출발한 색이 전통이 되고, 다시 철학을 담는 상징으로 바뀌는 과정은 메르세데스 리버리의 가장 흥미로운 스토리라인이다.

Editor’s Comment

F1 리버리는 속도, 규정, 스폰서, 공기역학, 브랜드 전략이 동시에 작동하는 복합적인 디자인 시스템이다. 차체는 매 시즌 바뀌고 규정도 계속 달라진다. 리버리 역시 그 변화에 맞춰 새롭게 공개된다. 하지만 리버리의 본질적인 역할은 달라지지 않는다. 팀의 정체성과 스폰서 브랜드를 매우 빠른 속도에서도 정확하게 각인시키는 것. 이렇기에 F1머신은 시속 300km로 달리는 공학적으로 정교한 장비일 뿐만 아니라,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최전선에 놓인 하나의 ‘매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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