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완벽하지 않아서 더 완벽한, 키키라는 세계

정형화된 미학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오류를 즐기는 다섯 소녀. 2026년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키키가 제안하는 낯설고도 매혹적인 자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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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아서 더 완벽한, 키키라는 세계

정형화된 미학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오류를 즐기는 다섯 소녀. 2026년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키키가 제안하는 낯설고도 매혹적인 자유에 대하여.

Editorial

완벽하지 않아서 더 완벽한, 키키라는 세계

정형화된 미학을 거부하고 자신들만의 오류를 즐기는 다섯 소녀. 2026년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키키가 제안하는 낯설고도 매혹적인 자유에 대하여.

완벽한 대칭과 정제된 미학이 지배하는 K-POP 신에 기분 좋은 균열이 생겼다. 스스로를 ‘오류’라 부르며 망상의 세계를 현실로 소환한 다섯 소녀, 키키KiiiKiii. 이들이 제안하는 이질적이고도 매혹적인 노스탤직 에스테틱을 입체적으로 해부했다.

404, 시스템 밖에서 찾은 자유

키키의 새 앨범 〈Delulu Pack〉의 ‘404(New Era)’ 콘셉트 포토 ⒸKiiKii

현대 사회에서 ‘망상’ 혹은 ‘착각’을 뜻하는 슬랭 ‘Delulu’는 부정적인 의미를 넘어 하나의 생존 전략이 되었다. 현실이 팍팍할수록 자신이 믿고 싶은 세계를 견고히 구축하는 젠지Gen Z의 특성을 키키는 이번 앨범 〈Delulu Pack〉을 통해 영리하게 관통한다. 타이틀곡 ‘404 (New Era)’는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웹 페이지를 찾을 수 없을 때 뜨는 ‘404 Not Found’ 메시지처럼, 이들은 기존의 틀에 박힌 시스템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자신들만의 좌표를 찍는다. 이는 기성세대가 구축해 놓은 매끄러운 시스템 안에서 ‘발견되지 않겠다’는 자발적 선언에 가깝다.

뮤직비디오 속에서 멤버들은 픽셀이 깨진 모니터 화면과 현실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2000년대 초반의 테크노 낙관주의와 현대의 허무주의가 기묘하게 섞인 이 비주얼은 관찰자로 하여금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인가, 아니면 이들의 정교한 꿈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비주얼이 ‘위어드 코어Weirdcore’를 표방한다면, 키키의 음악은 글리치 팝Glitch Pop과 로우파이 하이퍼팝Lo-fi Hyperpop의 경계에 서 있다. 이들의 음악적 지향성은 단순히 듣기 좋은 멜로디에 머물지 않고, 청각적인 ‘오류’를 의도적으로 배치하여 불완전함의 미학을 완성하는 데 있다. 가사 속에서도 이들은 정답을 강요하는 사회를 향해 “오답이라도 괜찮아, 이건 나만의 알고리즘이니까”라고 노래한다. ‘망상Delulu’이라는 키워드는 음악 속에서 현실 도피가 아닌, 나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주체적인 태도로 재해석된다.

에디터의 시선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Y2K’라는, 이미 소모될 대로 소모된 키워드를 비트는 방식이다. 단순히 그 시절의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불완전한 기술력’이 주던 로우파이 질감을 이번 앨범의 핵심으로 삼았다. 거친 노이즈가 섞인 영상과 낮은 채도의 색감, 그리고 테이프가 늘어지는 듯한 왜곡된 사운드는 오히려 피로감을 느낀 대중에게 신선한 시각적, 청각적 휴식을 제공한다.

‘좌표 바깥’을 이야기하는 전복적 패션

익숙함과 이질감을 동시에 자아내는 위어드 코어의 미학을 살린 패션 ⒸKiiKii

키키의 스타일링을 담당하는 비주얼 디렉팅 팀은 이번 앨범에서 ‘위어드 코어’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단순히 ‘이상한 옷’을 입는 것이 아니다. 익숙한 아이템을 낯선 방식으로 재배치해 불균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무드를 자아내는 고도의 전략이다. 안무 연습실에서 시작해 멤버 각자의 어릴 적 순간들을 담은 영상들, 이들이 우상이라고 부를만한 디바들의 장면이 짧게 지나가고 비로소 뮤직비디오가 시작된다.

2000년대 초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듯한 화질과 색감을 강조한 콘셉트 포토 속 수이, 이솔, 지유 ⒸKiiKii

‘404 (New Era)’의 앨범 사진들을 살펴보자. 먼저 일부러 화소를 떨어뜨리거나 2000년대 유행했던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듯한 색감이 눈에 들어온다. 리더 지유와 이솔은 짝이 맞지 않은 니삭스를 신고 있으며, 완성된 사진이라고 보기에는 뜬금없는 형광색 스크런치를 손목에 감고 있다. 키야는 2000년대 스타일링을 그대로 옮겨온 듯 핑크색 레오퍼드 콘셉트의 의상에 글리터 장식의 스니커즈와 본더치Von Dutch의 핸드백을 매치했다. 이러한 ‘부조화의 조화’는 키키가 지향하는 ‘정답 없는 자아’를 시각적으로 증명한다. 이들의 스타일이 영감의 원천이 되는 이유는 빈티지 숍에서 방금 찾아낸 것 같은 보물 같은 아이템들을 무심하게 툭 걸친 듯한 ‘개인적인 취향’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스타일리스트의 최예지의 미학

이번 앨범이 비주얼적으로 한층 날이 서 있는 이유는 최근 패션 신에서 가장 뜨거운 감각을 보여주는 최예지 스타일리스트의 참여 덕분이다. 최예지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아이돌다움’을 거부하고, 모델 본연의 개성을 극대화하는 ‘리얼리티 기반의 판타지’를 구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녀는 이번 앨범에서 멤버들을 시스템 속 인형이 아닌, 각자의 방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아웃사이더’로 설정했다.

몽환적인 콘셉트의 ‘Delulu’ Track Film ⒸKiiKii
최예지가 스타일링한 ‘Delulu’ Track Film 속 키키의 패션 Ⓒyeajichoi_work

최예지가 키키를 위해 선택한 핵심 전략은 ‘결함의 전시’다. 올이 풀린 니트, 비뚤게 맨 넥타이, 짝짝이 양말 같은 디테일은 그녀가 추구하는 불완전함의 미학을 여실히 드러낸다. 특히 ‘Delulu’ 트랙 필름에서 선보인 착장들은 하이패션 브랜드의 아카이브 피스와 동묘 구제 시장에서 발견한 듯한 빈티지 아이템을 과감하게 믹스한 룩으로,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키키만의 독보적인 실루엣을 완성했다. 최예지의 손길을 거치며 키키는 단순한 걸 그룹을 넘어 동시대 서브컬처를 대변하는 패션 아이콘으로 완벽히 자리매김했다.

K-POP의 새로운 문법

과거의 아이돌이 범접할 수 없는 신비로운 우상이었다면, 키키는 함께 놀고 싶은 영감을 주는 친구에 가깝다. 이들의 소셜 미디어는 화려한 스튜디오 사진보다 멤버들이 직접 찍은 흔들린 사진, 작업실 구석의 소품들, 영감을 받은 전시회의 티켓 등으로 채워진다.

공식 데뷔 직전부터 키키가 많은 관심을 모았던 이유도 같은 맥락에 있다. 푸드 디자이너 수아, 휴지에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 헬레나 밍기노비치Helena Minginowicz 등 알려지지 않은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으로 일상적인 듯 범상치 않은 비주얼로 인스타그램을 채웠던 것. 호주 출신의 제이미-마리 쉽튼Jamie-Maree Shipton의 비주얼 제작 참여도 한몫했다. 러블리하면서도 빈티지하고, 일상적이면서도 어딘가 낯선 비틀린 시선이 시그니처인 그녀의 감각이 빛을 발한다.

키키의 등장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진다. “우리는 언제까지 타인이 규정한 완벽함에 자신을 맞춰야 하는가?” 이들은 2,500자가 넘는 이 분석조차 무색하게 만들 만큼 자유롭다. 앨범 제목처럼 이들의 행보가 누군가에겐 망상처럼 보일지라도, 그 망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목격하게 된다. 키키는 이미 그 문턱을 넘었다. 이제 우리가 그들의 오류 가득한 유토피아에 접속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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