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헤리티지가 없던 제네시스의 콘셉트 카 전략

2015년, 독립 브랜드로서 원대한 포부를 안고 출범한 제네시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명분은 미비했고, 진입장벽은 높았다. 신생 브랜드가 살아남을 희망은 희박했다. 하지만 제네시스는 이러한 고난을 타개할 결정적인 '묘수'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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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가 없던 제네시스의 콘셉트 카 전략

2015년, 독립 브랜드로서 원대한 포부를 안고 출범한 제네시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명분은 미비했고, 진입장벽은 높았다. 신생 브랜드가 살아남을 희망은 희박했다. 하지만 제네시스는 이러한 고난을 타개할 결정적인 '묘수'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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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가 없던 제네시스의 콘셉트 카 전략

2015년, 독립 브랜드로서 원대한 포부를 안고 출범한 제네시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명분은 미비했고, 진입장벽은 높았다. 신생 브랜드가 살아남을 희망은 희박했다. 하지만 제네시스는 이러한 고난을 타개할 결정적인 '묘수'를 꺼내 들었다.

지난 1월, 제네시스가 새로운 콘셉트 카 ‘엑스 스콜피오 콘셉트X Skorpio Concept’를 발표했다. 브랜드 최초 익스트림 오프로드 콘셉트 카로, 기존 프리미엄 완성차 브랜드들이 쉽사리 발을 들이지 않았던 미개척 세그먼트와 스타일을 과감히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제네시스만의 독보적인 콘셉트 카 전략을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엑스 스콜피오 콘셉트 ⒸGenesis

엑스 스콜피오 콘셉트는 브랜드의 19번째 콘셉트 모델로서 제네시스는 지난 2015년 독립 브랜드 론칭 이후 연평균 약 2대의 콘셉트 카를 공개했다. 세그먼트 역시 스포츠카, 세단에 얽매이지 않고 SUV, 왜건, 오프로더 등 다양하게 확장했다. 깊이와 넓이를 모두 취하는 제네시스의 콘셉트 카 전략. 제네시스는 왜 이토록 빠르게, 그리고 다양하게 콘셉트 카를 공개해야 했을까? 역사가 없기에 미래를 먼저 만들어야 했던 제네시스의 콘셉트 카 전략을 파헤쳐 본다.

추격자에서 게임 체인저로 발돋움하기 위한 인고의 시간

제네시스는 브랜드의 디자인 철학 ‘역동적인 우아함’을 다양한 세그먼트의 콘셉트 카에 일관되게 투영해 왔다. 2017년 GV80 콘셉트를 통해 브랜드 시그니처인 ‘두 줄’ 쿼드 램프를 처음 공개한 이후, 파라볼릭 라인과 크레스트 그릴 등 고유 디자인 언어를 지속적으로 적용하며 브랜드 정체성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제네시스만의 독자적인 브랜드 기반을 공고히 다진 것이다. 그렇다면 제네시스는 그간 어떤 콘셉트 카를 선보였을까? 주요 세그먼트별 대표 모델을 통해 제네시스가 지향하는 비전과 디자인 언어가 각기 다른 카테고리에서 어떻게 변주되어 왔는지 살펴본다.

1. SUV

GV80 콘셉트 ⒸGenesis

제네시스의 SUV 연대기는 브랜드 디자인의 기점이 된 ‘GV80 콘셉트GV80 Concept’에서 시작된다. 방패 형상의 크레스트 그릴과 브랜드의 시그니처인 쿼드 램프, 그리고 차체를 우아하게 가로지르는 파라볼릭 라인까지 제네시스 디자인의 핵심 축을 집대성한 상징적 모델이었다. 실내 역시 동양의 ‘여백의 미’를 기조로 22인치 곡면 OLED 인피니티 디스플레이와 최고급 목재를 적용해 기존 럭셔리와는 궤를 달리하는 호화로움을 선보였다.

네오룬 콘셉트 ⒸGenesis

7년 뒤인 2024년, 제네시스는 브랜드의 새로운 플래그십 SUV 청사진인 ‘네오룬Neolun’을 통해 또 한 번의 진화를 제시했다. 한국의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네오룬은 불필요한 장식을 걷어낸 ‘환원주의적 디자인Reductive Design’의 정수를 보여준다. 특히 B필러를 제거하고 문이 서로 마주 보며 열리는 코치 도어를 채택해 압도적인 개방감을 선사하며, 이음새를 최소화한 심리스Seamless 디자인으로 조형적 완성도를 높였다. 실내에는 온돌에서 착안한 전사식 가열 시스템과 회전식 1열 시트를 적용해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삶을 영위하는 ‘주거 공간’으로 재정의했다.

엑스 그란 이퀘이터 ⒸGenesis

최근 공개된 ‘엑스 그란 이퀘이터X Gran Equator’는 이러한 럭셔리의 지평을 험로 위로 확장한 모델이다. 제네시스 최초의 모험 지향적 SUV인 이 모델은 전면부의 정교한 G-매트릭스 패턴과 거친 지형을 위한 높은 지상고, 그리고 조명이 내장된 견고한 루프 랙을 통해 강인한 실루엣을 완성했다. 사막의 모래에서 영감을 얻은 전용 컬러와 기능성 소재로 마감된 실내는 제네시스가 추구하는 품격이 도심을 넘어 대자연의 극한 환경에서도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2. 쿠페 및 GT

에센시아 콘셉트 ⒸGenesis

제네시스의 디자인 비전이 가장 극적으로 반영되는 지점은 단연 쿠페와 GT라인업이다. 브랜드의 핵심 가치인 ‘역동성’을 극대화하는 이 세그먼트는 2018년 ‘에센시아Essentia’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에센시아 콘셉트는 전기차 기반의 고성능 GT카로, 탄소 섬유 모노코크 바디를 채택해 초경량 구조를 구현했다. 에센시아의 가장 큰 특징은 투명한 글래스 후드다. 보닛 내부의 서스펜션과 전기차 구동 시스템을 외부로 노출하며 기술적 자신감을 드러냈다. 여기에 전면부에서 후면부까지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는 파라볼릭 라인과 공기역학적 효율을 극대화한 덕 테일Duck-tail 형상의 후면 디자인을 적용하는 등 고전적인 GT 디자인을 제네시스만의 해석으로 풀어냈다.

엑스 콘셉트 ⒸGenesis
엑스 컨버터블 콘셉트 ⒸGenesis

이후 2021년, 제네시스는 ‘제네시스 엑스Genesis X’ 시리즈를 통해 전동화 시대의 디자인 방향성을 확립했다. 엑스는 전면부 쿼드 램프가 휠 아치를 관통해 측면까지 길게 이어지는 ‘두 줄’의 시각적 연결성을 완성한 모델이다. 휠에는 G-매트릭스 패턴을 적용한 입체적인 디자인을, 실내는 콕핏 형태의 레이아웃을 적용해 운전자가 오롯이 주행 경험에 집중하도록 했다.

디자인의 완성도는 ‘엑스 컨버터블X Convertible’에서 극에 달했다. 브랜드 최초의 오픈 톱 모델인 이 차량은 한국 전통 가옥의 지붕에서 영감을 얻은 ‘기와 네이비’와 ‘단청 오렌지’ 컬러를 내외장에 적용해 한국적 럭셔리의 정체성을 시각화했다. 하드탑 루프가 열리는 과정에서도 제네시스 특유의 파라볼릭 라인이 유지되도록 설계되었으며, 이는 정지 상태에서도 달리는 듯한 긴장감을 만들어냈다.

엑스 그란 베를리네타 콘셉트 ⒸGenesis

마지막으로 고성능 프로그램인 마그마Magma의 정점을 보여주는 ‘엑스 그란 베를리네타X Gran Berlinetta’는 모터스포츠의 감성을 담았다. 공기역학적으로 설계된 리어 스포일러와 강렬한 오렌지 컬러는 제네시스가 추구하는 럭셔리가 단순히 안락함에 머물지 않고 파워풀한 주행 성능과 감성적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암시했다.

3. 특수 세그먼트

민트 콘셉트 ⒸGenesis

2019년 공개된 ‘민트Mint’는 도심형 럭셔리 시티카를 표방하며 제네시스만의 미니멀리즘을 시각화한 모델이었다. 가장 큰 특징은 차체 측면이 위로 열리는 버터플라이 방식의 수납공간. 협소한 도심 환경에서 적재 편의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능적 설계이자, 브랜드의 창의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이었다. 실내 역시 물리적 버튼을 최대한 배제하고 6개의 사용자 인터페이스 화면을 배치해 작지만 품격 있는 소형 모빌리티의 전형을 제시했다.

G90 윙백 콘셉트 ⒸGenesis

2025년에는 ‘G90 윙백G90 Wingback’을 통해 플래그십 세단의 지평을 고성능 그랜드 투어러GT 왜건으로 확장했다. G90 롱 휠베이스 플랫폼을 기반으로 루프라인을 후면까지 매끄럽게 연결한 슬릭한 실루엣이 특징이며, 고성능 브랜드 마그마의 정체성을 투영한 공격적인 범퍼와 22인치 전용 단조 휠을 통해 고유 존재감을 완성했다. 후면의 듀얼 스포일러와 디퓨저를 통해 공기역학적 효율을 이뤄내는 동시에 정적인 세단의 이미지를 과감히 탈피했다.

제네시스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제네시스의 첫 콘셉트 카 ‘뉴욕 콘셉트’ ⒸGenesis

10년의 여정을 숨 가쁘게 지나온 제네시스. 이들이 이토록 치열하게 달려와야 했던 배경에는 ‘절박함’이라는 강력한 동기가 자리한다.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브랜드에게 전통과 헤리티지는 필수 불가결인 요소다. 인고의 시간을 견뎌온 헤리티지는 그 자체로 브랜드의 독보적인 경쟁력이자 미래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자본만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어쩌면 유일한 영역일지도 모른다. 신생 브랜드인 제네시스에게 단 하나 부재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헤리티지였다. 프리미엄의 명분을 내세우기엔 근거가 부족했고, 벤츠, BMW, 렉서스 등 견고한 성벽을 구축한 선행 주자들과의 경쟁은 치열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그들과의 격차를 좁히기 역부족이었다.

엑스 그란 베를리네타 콘셉트 ⒸGenesis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네시스가 선택한 묘수는 ‘역설계’였다. 미래의 비전을 먼저 그려낸 뒤 이를 현재의 유산으로 적용하는 독특한 전략을 취했다. 제네시스는 대형 SUV부터 소형 시티카까지 폭넓은 세그먼트를 자신들의 스타일로 재해석했고, 그 과정에서 ‘역동적인 우아함’이라는 가치를 집요하게 고수했다. 연평균 2대의 모델을 일관된 디자인 언어로 쏟아낸 행보는 대중의 뇌리에 강력한 시각적 고착을 형성했다.

이제 사람들은 두 줄 램프만으로도 제네시스임을 직관한다. 제네시스는 방대한 양의 콘셉트 카를 통해 이러한 시각적 정체성을 빠르게 안착시켰다. 아직 양산되지 않은 미래(콘셉트 카)를 선제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현실(양산차)에 즉각 반영하는 이른바 ‘미래에서 온 유산’이라는 모순적 개념을 현실에서 구현해냈다.

에센시아 콘셉트 ⒸGenesis

더불어 제네시스는 찰나의 트렌드보다 영속적인 가치에 무게를 두었다. 달항아리를 연상시키는 유려한 외관, 여백의 미를 담아낸 인테리어, 온돌에서 영감받은 전사식 가열 시스템 등 영속적인 문화적·정서적 코드에 브랜드의 비전을 연결했다. 시간이 흐르면 퇴색되는 기계적 스펙 대신 이를 한국적 가치와 결합한 점은 제네시스가 단기적인 성과를 넘어 장기적인 안목으로 브랜드를 경영하고 있음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제네시스는 2025년 글로벌 누적 판매량 150만 대를 돌파했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 연 8만 대 이상의 안정적인 판매고를 기록하며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천천히 구축해 가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성취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안다. 자신들의 불리함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고, 이를 정교한 실행력으로 옮긴 결실이 비로소 맺히고 있는 것. 신생 브랜드를 넘어 유서 깊은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정받는 그날까지, 제네시스의 행보를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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