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제68회 그래미 어워즈는 매년 돌아오는 화려한 음악 시상식을 넘어 지금 이 시대의 긴장과 입장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기억될 만하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무대 위에서는 음악이, 레드카펫에서는 스타일이 존재했지만, 그 이면에는 분명한 정치적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

올해 시상식에서는 특히 미국 내 이민 정책과 연관된 논쟁이 두드러졌다. 트럼프 정부의 강경한 이민 단속을 겨냥해 여러 아티스트들이 “ICE OUT미국 이민세관단속국 철폐”이라는 구호를 외치거나 배지를 달며 목소리를 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아티스트 배드 버니가 대표적이다. 스페인어 앨범 〈데비 티라르 마스 포토스DeBÍ TiRAR MáS FOToS〉로 올해의 앨범, 베스트 뮤지카 어바나 앨범, 베스트 글로벌 뮤직 퍼포먼스까지 수상했는데, 수상 직후 “하느님께 감사드리기 전에 이렇게 말하고 싶다”며 “ICE OUT”을 외쳐 객석의 호응을 받았다. 이로써 67년 만에 비영어권 음반이 수상하는 기록을 남겼는데, 이와 대비되는 현실적인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호스트를 맡아 시상식을 진행한 트레버 노아는 엡스타인 문건*에 도널드 트럼프가 언급된 것을 풍자했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반발하며 노아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예고하는 등 논쟁이 이어졌다. ICE OUT 배지를 차고 나온 빌리 아일리쉬 역시 ‘와일드플라워WILDFLOWER’로 ‘올해의 노래’ 수상 소감에서 수상에 대한 기쁨보다는 작금의 현실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며 “도난당한 땅에서는 누구도 불법이 아니다”라고 단호히 말했다.
*엡스타인 문건: 미국 법무부가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에 관한 수사 문건을 공개하면서 이름이 언급된 정치인과 유명인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레드카펫의 의상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과장된 드라마와 즉각적인 주목을 노린 스타일 대신, 이번 그래미의 의상들은 눈에 띄게 차분하고 절제된 방향으로 이동했다. 이는 트렌드의 변화라기보다, 혼란한 현실 앞에서 셀러브리티와 브랜드가 선택한 태도의 표현에 가깝다.
레드카펫을 빛낸 드레스들
각종 시상식 가운데 그래미 어워즈에서의 패션은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과감하며, 개성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특성이 있다. 카메라 앞에서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음악과 뮤지션 본인을 표현하는 도구로서의 패션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6년 그래미 어워즈의 인상은 정치적 긴장감이 흐르는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인지, 절제된 분위기가 주를 이루었다. 물론 채플 론처럼 도발적인 선택을 한 이들도 있었으나, 드레스보다는 수트, 장식보다는 실루엣을 강조한 의상들로 레드카펫이 주로 채워졌다.


〈Mayhem〉으로 최우수 팝 보컬 앨범상과 댄스 팝 레코드상을 수상했다 ©Grammy


올해의 앨범, 베스트 뮤지카 어바나 앨범, 베스트 글로벌 뮤직 퍼포먼스까지 3관왕을 차지했다 ©Grammy



저스틴 비버는 ‘YUKON’으로 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Grammy

지암바티스타 발리가 디자인하고 로 로치가 스타일링한 드레스가 돋보인다 ©Grammy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Golden’은 미디어 삽입곡상을 수상했다 ©Grammy



과장된 어깨와 화려한 브로치 장식이 돋보이는 셀린느의 바이커 재킷 수트를 입었다 ©Grammy


무대 위에서 완성된 2026 그래미의 공기


그래미 시상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퍼포먼스들. 아티스트 각자의 음악을 십분 표현하기 위해 다채롭게 준비된 무대 연출을 올해에도 감상할 수 있었다. 시상식의 포문은 브루노 마스와 로제의 ‘APT.’가 열었다. 두 아티스트는 화려한 장치 대신 안정적인 밴드 사운드와 호흡에 집중한 퍼포먼스로 시작을 알렸다. 특히 로제는 케이팝 솔로 아티스트라는 이례적인 위치에서 오프닝 무대를 맡으며, 그래미 무대의 확장된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레이디 가가는 ‘Abracadabra’를 중심으로 한 퍼포먼스를 통해 시상식 중반의 흐름을 단단히 잡았다. 필립 트레이시의 등나무 머리 장식과 알렉산더 맥퀸의 2009 FW 컬렉션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섰는데, 특유의 극적인 서사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록 사운드와 신체 움직임에 집중했다.


사브리나 카펜터는 승무원 콘셉트로, 비행기와 수화물을 세트로 구성해 유쾌한 감성의 ‘Manchild’ 퍼포먼스를 완성했다. 그런 가운데 이번 그래미 퍼포먼스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무대 중 하나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무대였다. 컬트 무비를 보는 듯한 연출, 곡의 구조와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동선, 통제된 에너지가 돋보였다. 반면 저스틴 비버는 트렁크 언더웨어만 입고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거울 하나만을 소품으로 삼고 조명만을 활용해 음악에 집중하는 방식을 택해 미니멀하면서도 감성적인 무대를 연출했다. 보여주기 위한 장치가 사라진 자리에서, 음악과 퍼포머만이 남았을 때 어떤 힘이 발생하는지를 증명한 순간이었다.
이번 2026 그래미 어워즈는 화려한 음악 축제의 자리이자 아티스트들이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 현장이기도 했다. 정치적 긴장과 사회적 발언이 특유의 공기를 형성한 가운데, 배드 버니를 비롯해 다양한 배경과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주요 부문에서 수상하며 시상식의 다양성을 확장했다. 특히 케이팝 아티스트들의 약진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오프닝 무대에 선 로제를 비롯해, 케이팝 아티스트들은 더 이상 초청된 존재가 아니라 시상식의 흐름을 구성하는 주체로 자리했다. 이는 장르의 확장이라기보다, 그래미가 받아들이는 글로벌 음악 지형 자체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