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람보르기니가 지난 한 해 동안 전 세계에 총 10,747대의 차량을 인도하며, 브랜드 역사상 최고 판매 기록을 또다시 갈아치웠다. 2024년 전년 대비 6% 성장한 10,687대를 인도하며 신기록을 달성한 지 불과 1년 만에 다시 한번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섰다. 단순히 물량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매출액은 34억 유로를 돌파, 영업이익률은 약 27%로 알려져 있다. 가히 브랜드 역사상 유례없는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 거세지는 환경 규제와 내연기관의 축소, 고금리와 지정학적 불안정으로 혼란스러운 세계 경제 상황 속에서도 람보르기니는 여전히 견고한 우상향을 그려내고 있다. 연속된 신기록 달성은 단순한 우연으로 보기 힘들다. 이는 브랜드 존립을 위협하는 외부 상황 속에서 람보르기니가 얼마나 현명하고 전략적으로 준비해 왔는지를 증명하는 성공 서사와 같다. 비쌀수록 더 잘 팔리는, 람보르기니의 기묘한 상황에 주목해 본다.
브랜드의 스펙트럼을 넓힌 우루스

람보르기니 성장의 일등 공신은 단연 슈퍼 SUV, ‘우루스Urus’다. 2023년 한 해 동안 총 6,087대가 인도됐는데, 이는 전체 판매량의 57%에 달한다. 2024년에 이어 2년 연속 전체 실적의 절반 이상을 책임진 셈이다. 이는 우루스가 브랜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하는 안정적인 수익 모델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음을 시사한다. 우루스의 성공은 단순히 글로벌 SUV 트렌드에 편승한 결과 이상이다. 그보다 근본적인 점은 람보르기니라는 브랜드의 스펙트럼 확장에 있다. 2인승 미드십 슈퍼카에 국한되었던 포트폴리오에 SUV를 추가한 것은 브랜드가 공략할 수 있는 고객층이 확장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람보르기니는 우루스를 통해 속도와 운전의 즐거움을 위해 일상의 기능을 양보해야 했던 제약에서 벗어나 친구,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브랜드로 탈바꿈했다.


5인승 좌석과 2열 폴딩 시 최대 1,596리터까지 확보되는 넉넉한 적재 공간은 차량의 성격을 일상 영역으로 밀착시켰고, 이는 곧 고객층 확대로 이어졌다. 실제로 우루스를 타고 세계를 일주한 사례가 입증하듯, 우루스는 람보르기니의 활동 반경을 트랙과 고속도로라는 한정된 공간을 넘어 일상 삶 속으로 넓혀 놓았다. 이와 더불어 2024년 말 공개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인 ‘우루스 SE’는 일상화의 정점을 찍으며 2025년 실적을 견인했다. 25.9kWh 배터리를 탑재해 순수 전기 모드로만 60km 이상을 주행할 수 있으며, 전기 모드 최고 속도는 시속 130km에 달한다. 도심 속을 조용하게 이동하고, 복잡한 도심 정체 구간에서는 불필요한 연료 소모도 줄인 ‘실용적 슈퍼카’가 된 것. 우루스 SE는 출시 직후 2025년 생산 예정 물량이 모두 매진되는 등 우루스의 인기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
람보르기니에게 전동화는 위기가 아닌 기회였다


전 세계적인 탄소 절감 이슈와 자동차 산업의 전동화 전환은 람보르기니에게 있어 브랜드 존립을 위협하는 요인이었다. 브랜드의 정체성이자 핵심 셀링 포인트인 대배기량, 고출력 내연기관의 종말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람보르기니는 회피보다 정면 돌파를 선택했는데, 그것이 바로 ‘황소자리의 심장을 향하여Direzione Cor Tauri’ 전략이다. 2021년 발표된 이 전략은 람보르기니의 유산을 유지하면서 전동화를 향한 미래로 나아가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전략은 총 세 단계로 구성됐다. 1단계는 브랜드의 역사를 상징하는 V12 엔진 모델 등 내연기관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제품들을 선보이며 과거와 현재를 기린다. 이 때 출시된 모델이 아벤타도르 얼티매Aventador Ultimae, 쿤타치 LPI 800-4Countach LPI 800-4 등이었다.

2단계는 전 라인업을 하이브리드화하는 단계로, 2025년 초까지 제품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50% 감축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마지막 3단계는 순수 전기차를 출시로, 2029년경 브랜드 최초 순수 전기차를 출시하고 이후 전기 SUV 등을 추가하여 라인업을 완성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람보르기니에게 있어 작년은 전략의 2단계로서, 레부엘토Revuelto부터 우루스 SE, 우라칸Huracán의 후속인 테메라리오Temerario 등 전 라인업에 하이브리드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 중 2023년 출시된 V12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슈퍼카 레부엘토의 성공이 2025년 실적에 크게 기여를 했다.


레부엘토는 람보르기니의 상징인 6.5리터 V12 자연 흡기 엔진에 3개의 전기 모터를 결합해 합산 최고 출력 1,015마력을 구현했다. 전기 모터의 즉각적인 토크가 V12의 고회전 출력과 만나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가속력을 제공한 것이 전 모델과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람보르기는 레부엘토를 통해 전동화가 타협이 아닌 진화임을 증명했다. 전동화는 역으로 V12 엔진 및 고성능의 전통을 보존하는 영리한 생존 전략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현재 레부엘토는 주문 시 최소 2년 이상을 대기해야 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세상에 오직 한 대뿐인 예술품을 소장하다


2025년 실적을 견인한 또 다른 동력은 맞춤형 제작 프로그램 ‘애드 퍼스넘Ad Personam’이다. 개별 고객의 페르소나를 차량에 투영하는 개인화 프로그램으로서, 300가지가 넘는 정교한 컬러 팔레트부터 다이아몬드 가루가 함유된 투명 페인트와 같은 초고가 비스포크 옵션을 제공한다. 람보르기니는 ‘세상에 단 한 대뿐인 나만의 차’를 소유하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함으로써 브랜드 로열티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대당 부가가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고객은 단순한 자동차가 아닌 ‘나를 위한 예술품’을 소장하고, 브랜드는 이를 통해 ‘소량 판매-최대 수익’이라는 윈윈Win-Win 구조를 완성한 것이다.
어쩌면 람보르기니의 전성기는 아직일지도 모른다

람보르기니의 거침없는 순항은 영민한 트렌드 리딩, 시대의 변화를 관통하는 유연함, 그리고 견고한 비즈니스 구조라는 세 박자가 완벽하게 맞물린 결과다. 숫자로 대변되는 ‘양적 성장’과 브랜드의 핵심 가치인 ‘희소성’ 사이를 정교하게 줄타기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람보르기니는 ‘많이 팔리고 있지만, 여전히 마주치기 힘든 차’라는 모순적 가치를 구현해 냈다. 브랜드 품격은 유지하면서도 수익성과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동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영리하게 잡아낸 셈이다.
지난 50여 년간 람보르기니는 V12 엔진이라는 브랜드 유산을 고집스럽게 지켜왔다. 그러나 브랜드 경영에 있어서 만큼은 결코 이에 갇히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유산을 지켜내기 위해 현실과 다가오는 미래를 적극 수용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존 전략을 택했다. 투쟁적인 황소 로고 이면에는 시대의 흐름을 읽는 유연함과 냉철한 현실 자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올해부터는 엔트리 라인업인 ‘테메라리오Temerario’가 더욱 본격적으로 인도되기 시작한다. 과연 이에 힘입어 람보르기니가 또다시 브랜드 판매 신기록을 경신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람보르기니의 전성기는 아직 그 정점에 도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