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삶의 태도를 정의하는 패션, 프루걸 시크와 포엣 코어

로고 플레이와 과시적 소비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낡은 듯 멋스러운 '검소함'과 문학적 '낭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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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태도를 정의하는 패션, 프루걸 시크와 포엣 코어

로고 플레이와 과시적 소비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낡은 듯 멋스러운 '검소함'과 문학적 '낭만'이다.

Editorial

삶의 태도를 정의하는 패션, 프루걸 시크와 포엣 코어

로고 플레이와 과시적 소비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낡은 듯 멋스러운 '검소함'과 문학적 '낭만'이다.

과잉의 시대가 저무는 걸까? 소비의 화려함 대신 태도의 명확함이, 트렌드의 속도 대신 감도의 밀도가 주요해졌다. 2026년 시작과 함께 패션 신을 가로지르는 두 개의 키워드는 흥미롭게도 상반된 듯 보이면서도 닮아 있다. 실용과 절제를 전면에 내세운 ‘프루걸 시크Frugal Chic’와 감성적 서사를 옷으로 풀어내는 ‘포엣 코어Poet Core’다. 하나는 덜어냄의 미학이고, 다른 하나는 감정의 직조다. 그러나 이 둘은 공통적으로 ‘태도’를 말한다.

스타일로 번역된 검소함, 프루걸 시크

프루걸 시크는 절약을 미덕으로 삼되 궁핍함으로 오해받지 않도록 한다. ‘검소한Frugal’과 ‘세련된Chic’의 합성어인 프루걸 시크는 단순히 돈을 아끼는 구두쇠 패션이 아니다. 이는 소비를 통제함으로써 오히려 삶의 주도권을 쥐려는 능동적인 태도다. 과장된 로고, 일회성 트렌드, 즉각적인 시각적 자극 대신 오래 입을 수 있는 구조적인 실루엣, 질 좋은 소재, 그리고 담백한 컬러 팔레트를 선택한다. 이 단어를 패션 키워드로 만든 인물은 런던 출신의 경제 콘텐츠 크리에이터, 미아 맥그래스Mia McGrath다. 그녀는 틱톡에서 누군가 그녀에게 “검소함과 조용한 럭셔리의 완벽한 조화”라는 댓글을 남긴 것에서 영감을 받아 ‘프루걸 시크’ 라는 키워드를 명명했다. 맥그레스는 단순히 지출을 줄이기보다는 보여 주기 식 소비를 줄이고 자산과 취향에 투자하라고 말한다. 싸구려 옷 10벌보다는 오래 입을 수 있는 질 좋은 옷 1벌을 고르고, 명품 로고로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보다는 통장 잔고와 내면의 단단함에서 오는 자신감을 추구하라고 이야기한다. 즉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돈을 쓰기보다는 스스로 삶의 통제권을 갖고 주체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소탈하면서도 개성있는 스타일의 패션 칼럼니스트 아자 바버 ⒸAja Barber

한편 패션 업계의 지속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삼는 패션 칼럼니스트이자 스타일리스트 아자 바버Aja Barber는 이러한 용어 사용에 거부감을 드러낸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트렌드라고 부를 때면 조금 걱정돼요. 우리 모두가 그냥 평범한 삶을 사는 방식이죠.’ 소셜 미디어로부터 촉발한 이 트렌드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이것 대신 저것을 사라’라고 소비를 부추기는 방향으로 조작되는 것에 대한 우려다. 사람들이 좀 더 의식적으로 사려 깊게 ‘지속 가능한 구매’를 실천하기를 바라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프루걸 시크를 실천하는 방법들

새것보다 빛나는 헌것

뉴욕을 대표하는 빈티지 스토어 ‘비콘즈 클로짓’ ⒸBeacon’s Closet
파리의 미니멀리즘 빈티지 스토어 ‘라 본 피오슈’ ⒸLa Bonne Pioche

프루걸 시크의 핵심은 ‘보물찾기’다. 당근마켓이나 번개장터, 빈티지 숍에서 찾아낸 90년대 가죽 재킷이나 브랜드 로고가 희미해진 셔츠가 신상 명품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 남들과 다른 ‘나만의 희소성’을 갖기 때문이다. 실은 같은 가격이어도 2000년대 패스트 패션 등장 이전의 빈티지 아이템들이 소재와 봉제, 내구성 측면에서 월등히 높다는 이유도 한몫한다. 옷이 너무 튼튼하면 소비자가 새 옷을 사지 않기 때문에 옷을 한 철 입고 버리는 소모품으로 전락시켰고, 그러한 ‘계획적 구식화’를 따르는 브랜드 비중이 급격히 늘었다는 것.

수선과 리폼의 미학

수선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제된 스타일의 브랜드 ‘포터리’ ⒸPottery
무상 수선 서비스를 제공하는 ‘파타고니아’의 원웨어 김천식 마스터 ⒸPatagonia

옷이 해지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워 입는다. 눈에 띄게 수선하는 기법인 ‘비저블 멘딩Visible Mending’은 그 자체로 하나의 디자인이 된다. 오래된 청바지를 롱스커트로 리폼하거나, 셔츠 단추를 서로 다른 것으로 교체하는 등 창의적인 재사용이 쿨함의 척도가 된다.

경제적 지속가능성

무리해서 명품을 사느라 라면을 먹는 것은 촌스러운 행위가 되었다. 하이엔드 브랜드 제품을 사고 싶다면, 어디에나 잘 어울리고 클래식한 디자인을 구매할 것. 뉴트럴 톤의 테일러드 재킷, 군더더기 없는 니트, 미니멀한 레더 백처럼 유행을 타지 않는 아이템들은 질 좋은 것으로 구매해 적절히 믹스매치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패션 고수의 영역으로 인정받는다.

거리로 나온 음유시인, 포엣 코어

테일러 스위프트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의 앨범 아트 ⒸRepublic Records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앨범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가 쏘아 올린 공은 패션계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전의 매끈한 피부와 미니멀리즘으로 대표되는 ‘클린 걸Clean Girl’ 과 화려한 ‘바비코어Barbie Core’와는 상반되는, 헝클어지며 어딘가 사연 있어 보이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모습이 꾸미지 않은 듯한 낭만으로 비쳐졌다. 도서관, 기록 보관소에서나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콘셉트가 느리고 깊은 것에 대한 갈망을 자극했던 것. 테일러 스위프트의 프로모션에서 보여진 모습은 디지털 세상의 빠른 속도에 대한 반작용처럼 보인다. 앨범 커버 속 침대 위에 웅크린 모습, 흑백과 세피아 톤의 뮤직비디오는 “완벽하지 않아도 돼, 우울해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시각화했고, 이러한 모습들이 하나의 스타일로 모여 ‘포엣 코어’라는 이름표를 지니게 되었다. 그렇게 탄생한 포엣 코어는 19세기 낭만주의 시인이나 도서관 구석에서 책을 읽는 문학청년의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스타일이다.

포엣 코어를 완성하는 것들

지적인 우울함

‘아모멘토’ 캠페인에서 포엣 코어다운 모습으로 등장한 모델 홍태준 Ⓒ홍태준

포엣 코어를 완성하는 무드는 헐렁한 카디건, 뿔테 안경, 코듀로이 팬츠, 그리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이다. 마치 밤새 시를 쓰다 나온 듯한 자연스럽고 약간은 예민해 보이는 분위기가 포인트다. 포인트는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

무드 있는 패션 아이템

차가운 합성 소재 대신 울, 트위드, 리넨 등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소재를 선호한다. 색감 역시 빛바랜 듯한 브라운, 그레이, 차콜 등 차분한 뉴트럴 톤이 주를 이룬다. 하이힐 대신에 굽이 낮은 로퍼나 메리 제인 슈즈를, 빳빳하고 빈틈없는 아이템보다는 흐르는 듯한 실루엣의 블라우스와 플리츠 스커트가 핵심 아이템이다.

디지털 디톡스의 상징

포엣 코어는 스마트폰 대신 종이책을 들고, 에어팟 대신 줄 이어폰을 꽂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지향한다. 이는 초연결 사회에서 느끼는 피로감에 대한 반작용이자,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무엇보다 ‘고뇌하는, 고통받는’이라는 뜻의 단어 ‘Tortured’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의 우울함이나 예민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이 쿨한 태도로 여겨진다.

두 흐름은 상반돼 보이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공유한다. 바로 자기 해석의 시대라는 점이다. 타인의 시선에 맞춘 소비가 아니라, 나의 감도와 삶의 맥락에 맞춘 스타일이 더욱 멋스럽다는 거다. 무엇을 입었느냐Brand보다는 어떻게 입었는가Attitude에 초점을 맞추는 것. 이 글 바깥에서는 여전히 눈길을 사로잡는 새로운 아이템들이 범람하고 있지만, 지금의 기류는 유행을 좇는 대신 태도를 살피라고 부드럽게 권하고 있다. 당신만의 서사로 공들여 쌓은 레이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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