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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면서 의미를 만드는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전시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는 보존과 유지가 아닌 ‘소멸’을 통해 앞으로의 미술과 미술관의 역할을 묻는다. 15개 팀이 선보이는 50여 개 작품은 언젠가 사라질 운명에 순응하며 공존과 순환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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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면서 의미를 만드는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전시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는 보존과 유지가 아닌 ‘소멸’을 통해 앞으로의 미술과 미술관의 역할을 묻는다. 15개 팀이 선보이는 50여 개 작품은 언젠가 사라질 운명에 순응하며 공존과 순환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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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면서 의미를 만드는 작품, 국립현대미술관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전시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는 보존과 유지가 아닌 ‘소멸’을 통해 앞으로의 미술과 미술관의 역할을 묻는다. 15개 팀이 선보이는 50여 개 작품은 언젠가 사라질 운명에 순응하며 공존과 순환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국립현대미술관

끊임없이 변하며 사라지는 작품, 미술관의 다음을 묻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1월 30일부터 5월 3일까지 국제 기획전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언젠가 썩어 갈 운명을 시인하는 작품, 차라리 무엇도 남기지 않기로 마음먹은 작품, 자신의 분해를 공연히 상연하는 작품을 ‘삭는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국내외 작가 15팀의 작품 50여 점을 소개한다. 사라짐으로써 오히려 더 깊은 의미를 감기며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펼쳐 보인다.

전시는 ‘삭다’라는 단어가 품은 이중성에 주목한다. 생기를 잃고 상한다는 의미 너머로 ‘발효’와 같은 질적 전환의 가능성을 읽어낸다. 작품이 삭아 허물어진 자리에 풀이 자라고 생명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그것을 다시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그렇다면 그 작품의 주체는 누가 될지 질문을 던진다. 보존과 유지를 핵심 역할로 삼아 온 국립미술관에서 소멸과 분해를 전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기존 관습에 균열을 내는 시도로 읽힌다.

그동안 미술관이 작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가치를 유지하는 장소였다면, 이번 전시는 그 역할을 재고하게 만든다. 미술관이 인간을 넘어 다양한 존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삭히기로 선택한 작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이제는 보존보다 ‘어떻게 잘 분해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아닌지 묻는다. 기후 위기와 생존의 문제가 맞물린 시대에서 미술은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분해와 소멸의 방식을 탐구하며 미술관의 역할을 새롭게 규정하도록 이끈다.

전시는 예술 작품은 반드시 불변하고 불멸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뒤흔든다. 흙, 풀, 바람, 미생물 등 비인간 요소가 시간을 입고 순환하는 작품은 인간 중심의 창작 세계를 뒤흔들며 공존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썩음과 발효라는 상반된 의미를 지닌 ‘삭다’처럼 작품은 부패와 소멸을 향하는 과정 속에서 공존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전시는 ‘서막’을 시작으로 1막 ‘되어가는 시간’, ‘막간’, 2막 ‘함께 만드는 풍경’까지 네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주제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아사드 라자 〈흡수〉 ⒸAsad Raza, Berliner Festspiele/Immersion

서막에서는 ‘삭는 미술’의 핵심을 직관적으로 제시한다. 아사드 라자Asad Raza의 〈흡수〉는 ‘경작자’로 공개 모집된 시민들이 서울의 폐기물로 재생한 토양 ‘네오소일Neosoil’을 비옥하게 가꾼다. 관람객은 직접 흙을 만지거나 재사용 용기에 담아갈 수도 있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분해가 곧 생성과 분배, 순환과 공동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체감하게 된다.

유코 모리 〈분해〉 ⒸYuko Mohri, Project Fulfill Art Space

1막 ‘되어가는 시간’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삭아가는 작품들이 자리하는데, 작품은 끊임없이 변성하는 안료가 잠시 머무는 장소가 됨을 보여준다. 유코 모리Yuko Mohri의 〈분해〉는 썩어가는 과일에서 비롯된 에너지로 빛을 밝히고 소리를 만들어내는데, 취약함이 아름다움으로 뒤바뀌는 순간을 마련함으로써 상호 의존과 돌봄에 관한 사유를 제안한다. 작가의 손길뿐 아니라 작품을 구성하고 변화시키는 모든 물질이 능동적으로 존재하며 퍼포먼스를 확장한다.

고사리 〈초사람〉 Ⓒ고사리
김주리 〈물 산〉 Ⓒ김주리, 모바이캔

‘막간’은 실내와 야외를 잇는 중정인 전시마당에서 펼쳐진다. 내부와 외부, 작품과 자연, 인간과 비인간, 생성과 소멸이 교차하는 중간적인 공간에서 고사리의 〈초사람〉과 김주리의 〈물 산〉이 마주한다. 계절을 지나며 작품은 서서히 형태를 잃어가고, 허물어진 자리에는 새싹이 움트면서 소멸이 생성으로 전환되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에드가 칼렐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 ⒸEdgar Calel, Liverpool Biennial

2막 ‘함께 만드는 풍경’은 눈앞의 장면이 인간만의 결과물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에드가 칼렐Edgar Calel의 〈고대 지식 형태의 메아리〉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던 마야 선주민의 지혜를 현재의 실천으로 불러온다. 2023년 영국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Tate Modern은 이 작품의 소유자가 아닌 ‘보호자’가 되기로 결정했다. 마야인들의 사고방식을 따라 작품을 소유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조상의 지혜를 함께 돌봄으로써 책임의 관점을 변화시킨 선택이다.

전시기간 동안 작가와의 대화, 워크숍 등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로 신청할 수 있다. 전시실의 구조와 작품에 사용된 재료를 촉감으로 경험하는 ‘촉지도’, 전시실 바닥의 안내 유도선, 이동 약자를 위한 접근성 안내원 등 관람 환경 전반에 세심한 배려를 더했다. 배우 봉태규는 재능 기부로 오디오가이드에 참여해 관람의 이해를 한층 높였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에 대해 “동시대 환경 인식을 반영하는 미술의 변화에 주목하고, 그에 부응하는 급진적인 미술관의 모델을 상상하는 시도다. 앞으로도 미래를 탐색하는 국립미술관의 공적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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