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패션 인플루언서에서 업계 일잘러가 되기까지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다가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로 발을 넓히는 이들의 행보는 인플루언서로서의 유명세를 넘어선다. 코이세이오의 서지수, 파르벵의 김선영, 그리고 스타일리스트 소쟌과 이현하. 이들의 작업은 개인의 감도 높은 비주얼이 어떻게 견고한 브랜드 로직으로 치환되는지 그 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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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인플루언서에서 업계 일잘러가 되기까지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다가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로 발을 넓히는 이들의 행보는 인플루언서로서의 유명세를 넘어선다. 코이세이오의 서지수, 파르벵의 김선영, 그리고 스타일리스트 소쟌과 이현하. 이들의 작업은 개인의 감도 높은 비주얼이 어떻게 견고한 브랜드 로직으로 치환되는지 그 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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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인플루언서에서 업계 일잘러가 되기까지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다가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로 발을 넓히는 이들의 행보는 인플루언서로서의 유명세를 넘어선다. 코이세이오의 서지수, 파르벵의 김선영, 그리고 스타일리스트 소쟌과 이현하. 이들의 작업은 개인의 감도 높은 비주얼이 어떻게 견고한 브랜드 로직으로 치환되는지 그 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패션계의 권력 지형이 변하고 있다.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명문 패션 스쿨과 하우스 브랜드의 엄격한 도제 시스템을 거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자신만의 세계관’을 소셜 미디어를 통해 먼저 증명해 낸 이들이 그 중심에 선다. 인플루언서라는 이름으로 대중과 호흡하던 이들이 이제는 디자이너와 스타일리스트라는 구체적인 직함 아래 패션업계의 진정한 ‘일잘러(일 잘 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다. 단순히 옷을 잘 입는 단계를 넘어, 자신의 미학을 상업적 가치로 설계하는 이들의 궤적을 추적해 본다.

코이세이오 서지수

모델로서 패션업계에 발을 들인 서지수는 인플루언서의 개인적 취향이 어떻게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동시대적인 예시다. 그녀가 SNS를 통해 구축해 온 키치하면서도 로맨틱한 무드는 브랜드 코이세이오COISEIO 의 뿌리가 되었다.

주근깨와 썬번 메이크업으로 유니크한 룩을 보여주는 서지수 Ⓒ서지수

그녀의 스타일링은 정형화된 여성성을 거부한다. 썬번 메이크업Sunburn Makeup과 주근깨를 디폴트로 하는 뷰티 룩은 빈티지한 무드를 극대화하며, 레이스나 리본 같은 로맨틱한 요소들을 거친 데님 또는 스포티한 트랙 팬츠와 믹스매치하는 방식은 90년대 런던, 혹은 일본의 거리를 유영하는 반항적인 소녀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미감에 따라 탄생한 브랜드가 바로 코이세이오. 뉴진스가 입은 것을 계기로 한 번 더 성장을 이룬 코이세이오는 ‘새로운 소녀다움’을 정의하며 Z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매 시즌 발매 즉시 품절되거나 일부 제품의 경우 프리미엄을 얹어 주고 구매해야 할 정도라고. 눈 큰 인형인 블라이스와 협업한 컬렉션, 장난스러운 프린팅의 슬리브리스 등 넉넉한 핏에 위트를 더한 디테일로 ‘불편하지 않으면서도 예쁜 옷’을 완성시킨다.

파르벵 김선영

브랜드 파르벵FARVEN을 전개하는 김선영은 인플루언서 출신 브랜드가 가질 수 있는 ‘가벼움’이라는 편견을 정교한 테일러링으로 정면 돌파한다. 그녀의 개인적인 스타일은 언제나 ‘절제’와 ‘세련미’라는 단어로 수렴되어 왔다. 팔로워의 문의에 따라 뷰티 팁까지 가감 없이 공유하는 그녀의 행보는 팬덤과 인플루언서 사이의 거리를 좁히며 강력한 신뢰를 구축하고 있다.

파르벵의 옷은 베이직한 디자인에 약간의 트위스트를 더해 시크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동시대 여성들이 원하는, 일상 속에서 스타일리시한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무채색의 톤온톤 배색, 여유로운 실루엣의 와이드 슬랙스, 섬세하게 가공된 니트웨어는 유행에 휘둘리지 않는 타임리스한 가치를 지향한다. 이처럼 김선영 디렉터의 안목은 복잡한 디테일을 걷어내는 과정에서 빛을 발한다. 팔로워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파르벵을 브랜드로 안착시킨 배경에는 실제로 김선영이 즐겨 입는 옷이라는 사실이 있다. 세심한 연출이 들어간 룩북과는 별개로, 그녀가 직접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을 통해 리얼웨이에서 이 옷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것이 파르벵이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를 잡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 파르벵이라는 브랜드의 중심에는 김선영의 스타일, 그리고 팔로워와의 두터운 관계가 있다.

스타일리스트 소쟌

소쟌의 작업물은 정형화된 스타일링의 문법을 기분 좋게 배반한다. 그녀는 하이 패션의 우아함과 길거리 서브컬처의 거친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미학을 구축했다. 이전 직업은 패션에 관심이 많은 UI 디자이너로,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와 스타일을 거침없이 선보였던 것이 인플루언서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브랜드와의 협업을 이어가다가 마침내 백예린의 제안을 통해 스타일리스트로서 역할을 맡게 된 것.

그녀의 스타일링에서 가장 돋보이는 지점은 과감한 시도와 예상치 못한 소재의 조합이다. 실크 드레스 위에 투박한 워크웨어를 얹거나, 클래식한 진주 목걸이를 키치한 액세서리와 믹스하는 식의 실험적인 시도는 보는 이의 시각적 쾌감을 자극한다. 백예린이 선호하는 다크한 고딕 무드를 잘 이해하는 소쟌은 그것을 극대화했고, 배우 김민하에게는 하이패션적인 무드를 더해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했다. 이어서 키키의 데뷔 작업에 참여해 전에 없던 무드의 아이돌 그룹의 이미지를 완성했고, 지금은 레드벨벳 슬기의 파트너가 되어 어떠한 행보를 보여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스타일리스트 이현하

반면 이현하는 동시대 가장 힙한 여성들이 지향하는 쿨한 무드의 정수를 정확히 관통한다. 이전의 직업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로, 언뜻 패션업계와는 먼 듯한 인상이나 그녀만의 스타일로 팔로워들을 빠르게 모은 케이스다. 덕분에 인플루언서, 모델로 활동하다가 이제는 어엿한 스타일리스트로 자리 잡고 있다. 그녀가 제안하는 룩은 단순히 예쁜 옷의 나열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그저 자신대로 드러내는, 실제적이면서도 로우한 비주얼적 결과물이다. 어떤 날은 스포티하고, 어떤 날은 사랑스럽다. 때로는 그 둘이 묘하게 섞여 있기도 하다.

이현하의 스타일링은 힘을 뺀 듯, 무심하게 툭 걸친 아이템들로 완성된다. 의도된 무심함을 통한 극적인 대비인 것이다. 특히 소재와 실루엣의 변주가 돋보이는데, 아일릿과 함께한 작업물에서 볼 수 있듯 겹겹이 쌓인 화이트 레이스와 시폰 소재의 연약함 위에 투박한 부츠나 스포티한 삭스를 매치하는 식의 불협화음이 주는 조화를 즐긴다. 신체의 선을 드러내는 대신 오버사이즈 테일러링이나 길게 늘어진 리본, 과감한 레이어링으로 자유로운 태도를 부여하는 것. 그녀가 조율한 비주얼 속에서 모델들은 단순히 예쁘게 보이기보다는 각자의 캐릭터를 지닌 주체로 서 있다.

이들의 성공은 단순히 팔로워 숫자에 기인하지 않는다. 대형 하우스 브랜드가 거대한 자본으로 이미지를 만든다면, 이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 증명해 온 취향을 제품과 비주얼에 이식한다. 소비자들이 익명의 거대 브랜드보다, 자신과 비슷한 감도를 공유하는 ‘개인’의 안목을 더 신뢰하는 시대에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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