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아마 소피아Kiama Sophia의 그림 앞에 서면 문득 어떤 순간이 떠오른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던 시간, 공원에서 흘려보낸 여유로운 오후, 와인 한 병을 사이에 두고 대화가 이어지던 밤.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오래 마음에 남는 하루들 말이다. 키아마의 작업은 일상의 장면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깃든 감정을 이끌어낸다. 음식과 식탁에서 비롯된 사적인 기억은 선명한 색채와 유희적인 구성을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풍경으로 확장된다.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낸 시간 속에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지, 그 다정한 시선을 따라 키아마 소피아와 작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Interview with 키아마 소피아
어린 시절의 풍경이 작업이 되기까지

— 만나서 반가워요.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페인터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키아마 소피아입니다. 남편, 그리고 고양이 지미 헨드릭스와 함께 브뤼셀에서 살고 있어요. 주로 회화 작업을 하지만, 사실 모든 종류의 예술 작업을 좋아합니다.
— 언제부터 예술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는지 궁금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작가를 꿈꿨어요. 하지만 브뤼셀로 이주하고 나서야 비로소 ‘정말 한번 해보자!’고 마음먹게 됐죠. 낯선 곳에서 새롭게 시작할 때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 있는 것 같아요.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고,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말이에요. 저는 그 감각에 몸을 맡기고 과감히 도전하기로 했어요. 다행히 브뤼셀은 젊은 예술가들에게 매우 열린 도시였고,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많은 것들이 맞아 떨어졌어요. 물론 갖은 노력과 결단도 필요했고요.


— 퍼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죠. 그때의 환경은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풍부한 자연 곁에서 자라면 상상력도 그만큼 자유롭게 뻗어나가게 되는 것 같아요. 제 경우도 분명 그랬고요! 어린 시절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아 나만의 이야기와 놀이를 만들어내곤 했어요. 그러한 경험은 지금의 작업에 큰 자산이 되었죠. 요즘도 늘 그림으로 옮기고 싶은 목가적이고 이상적인 장면들을 상상하거든요. 가령 겨울에는 따뜻한 날씨를 자주 꿈꾸고, 여름날의 풍경을 그리며 그 안으로 잠시 도피하듯 빠져들기도 해요. 햇살이 가득한 도시에서 자랐다는 건, 세상의 많은 것들을 더 밝고 행복하게 바라보게 된다는 뜻이기도 해요. 어렸을 적의 경험들은 제 작업의 색채에도 분명히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죠.
— 현재 살고 있는 도시인 브뤼셀은 작가님께 어떤 변화를 가져왔나요?
재능 있는 창작자들이 많아 창작자로서 큰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고, 스스로에게 도전하게 되며, 익숙한 영역 밖으로 나아가게 되죠. 또 제가 자라온 곳에 비해 이곳에는 예술가들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훨씬 많다고 느껴요. 그래서인지 브뤼셀에서는 꿈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만 같아요. 그 믿음이 제 삶에 정말 큰 변화를 가져왔어요.
음식과 색채, 기억으로 그려낸 다정한 순간들

— 작가님의 작품에는 식사, 카페 테이블, 꽃, 과일처럼 일상 속 친밀한 요소가 자주 등장해요. 이런 소재에 끌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삶에서 사랑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반영하고 있어요. 저는 집에 늘 생화를 두고, 음식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좋아해요. 요리하는 일, 먹는 일, 사람들과 나누는 일, 그리고 음식의 시각적인 아름다움까지요. 또 향수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에도 깊이 끌립니다. 그러한 순간들을 그림으로 옮기는 일은 스쳐 지나가는 시간을 잠시 붙잡아두는 마법과 비슷해요. 사라져버릴 장면을 그림 안에 고요히 멈춰 세우는 일이죠.
ㅡ 작가님의 색채와 위트 있는 구성은 무척 자유롭고 본능적으로 느껴져요. 작품을 구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붙잡고 싶은 하나의 감정이 먼저 떠올라요. 실제로 경험한 기억에서 비롯된 감정인 경우가 있고, 언젠가 경험해보고 싶다고 꿈꾸는 감정일 때도 있습니다. 그 감정이 먼저 생기고 나면, 색이나 형태는 자연스레 따라와요.
ㅡ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제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떠올릴 때 가장 기뻐요. 일례로 케이크와 럼, 담배, 카드가 놓인 테이블을 그린 적이 있습니다. 온전히 상상을 통해 만든 장면이었는데, 그 그림을 보고 아버지와 함께 보냈던 시간이 떠올랐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어요. 저는 그런 순간이 정말 특별하다고 느낍니다. 결국 제가 포착하고 싶은 것은 기분 좋은 순간들이에요.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르게 경험하지만, 동시에 누구나 어딘가에서 공감할 수 있는 감각들이죠. 제 그림이 그러한 기억과 감정을 일깨우는 매개체가 되었으면 해요.

ㅡ 다양한 브랜드, 창작자와의 협업 역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을까요?
2년 전 브뤼셀의 혹스턴 호텔The Hoxton Hotel을 위해 회화 시리즈 세 점을 제작한 적이 있어요. 디너 파티가 진행되는 동안 하나의 테이블 위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따라가는 작업이었습니다. 세 작품을 나란히 두면 하나의 길게 이어진 식탁처럼 보이도록 구성했죠. 첫 번째 그림은 앙트레로 가득한 테이블에서 시작해요. 이어 두 번째 그림에서는 해산물 요리가 중심이 되는 메인 코스가 펼쳐지고, 마지막에는 케이크와 디저트가 등장합니다. 저는 이 시리즈에 ‘The Dinner Party’라는 제목을 붙였는데요. 세 작품이 모두 서로 다른 컬렉터에게 판매되었어요. 그래서인지 이 그림들이 지금도 세계 각국에 흩어져 디너 파티를 계속 이어가는 것처럼 느껴져요.


ㅡ 최근 진행한 자라 키즈 × 까사 라와Zara Kids × Casa Lawa 프로젝트도 대중적으로 무척 좋은 반응을 얻었죠.
정말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까사 라와와 저는 작업을 바라보는 태도나 각자가 만들어가는 세계가 꽤 닮아 있다고 느껴요. 밝은 색, 음식, 장난스러운 느낌 등을 좋아하죠. 그래서인지 자라 키즈 티셔츠를 위한 디자인도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어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이 있다면, 생각보다 많은 어른들이 재미있는 티셔츠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성인용 버전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정말 많이 받았거든요.

ㅡ 브뤼셀의 호텔, ‘래디슨 컬렉션 그랜드 플레이스 브뤼셀Radisson Collection Grand Place Brussels’을 위해 제작한 벽화는 거대한 아트리움을 몰입감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어요. 캔버스 작업과는 꽤 다른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처음에는 대규모 작업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감을 잡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어요. 작품이 놓일 환경을 이전보다 훨씬 입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죠. 관람자와 작품 사이의 거리, 작품 뒤편에서 비쳐 들어오는 빛, 호텔 아트리움이라는 공간이 지닌 스케일과 분위기까지도요. 기존 작업에서는 깊이 고려해본 적 없던 요소들이었어요. 그리고 디지털로 디자인한 뒤 출력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제대로 완성할 기회가 오직 한번 뿐이라는 점이 조금 두렵기도 했죠. 하지만 그 긴장감 덕분에 더욱 신중하게 작업할 수 있었고, 최종 결과물에 대해서는 클라이언트와 저 모두 무척 만족하고 있습니다.
함께 머무는 시간에서 발견한 삶의 풍요로움

ㅡ 요즘은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었나요?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일기를 쓰며 하루를 시작해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운동하러 갑니다. 매일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조금 답답해지는 편이라서요. 이후에는 그림을 그리고, 드로잉을 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가능한 한 오래 행정 업무를 미루며 보냅니다. (웃음)
ㅡ 창작의 동력을 유지하는 특별한 비결이 있을까요?
영감이 떠오르지 않거나 번아웃이 온 것처럼 느껴질 때면, 그 감정을 그대로 느끼도록 내버려둡니다. 억지로 무언가를 창작하려고 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더 막막해지고 답답해지기만 하거든요. 그래서 미술관에 가거나, 오래 산책을 하거나, 영화를 보고 책을 읽습니다. 빈티지 숍을 천천히 둘러보는 것도 좋아하고요. 새로운 아이디어를 돌보는 일만큼이나, 그런 시간을 잘 돌보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ㅡ 최근 영감이 되어준 특별한 순간을 꼽는다면요?
남편과 함께 보낸 요리 시간이 떠오르네요. 저희 둘 다 음식을 무척 좋아해요. 예전에 함께 주방에서 일한 적도 있었죠. 새로운 식재료를 발견해 다루는 일은 일상에 새로운 리듬을 만들며 자연스럽게 영감을 가져다 주죠. 그래서 요리하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식탁을 함께 나누는 일을 자주 즐겨요. 최근에는 매주 작은 의식이나 루틴처럼 저희만의 메뉴를 짜기 시작했어요. 도전하고 싶은 레시피를 고르고 토요일에 시장에 들러 재료를 산 뒤, 함께 요리하며 남은 하루를 보냅니다. 때로는 친구들을 초대하지만, 대부분은 저희 둘만의 시간을 가져요.



ㅡ 작업물을 알리는 데 인스타그램, 틱톡 등 소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고 계시죠. 작가님을 비롯한 젊은 예술가들에게 소셜 미디어는 어떤 역할을 한다고 보시나요?
소셜 미디어는 예술가로 살아가는 일의 반경을 넓혀 준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작업을 어떻게 보여주고,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지 배우다 보면 새로운 기회가 정말 많이 열리죠. 그런 면에서 현 시대가 무척 흥미롭게 느껴져요. 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작업을 소개하고, 자신이 꿈꾸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으니까요. 예전보다 훨씬 쉽고 빠르게 사람들을 소통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협업과 새로운 가능성이 생겨나고 있어요.

ㅡ 앞으로 새롭게 탐구하고 싶은 매체가 있나요?
요즘 제 그림 속에 등장하는 요소들을 크게 오려낸 카드보드 형태로 만들며 실험해보고 있어요. 평면 안에 머물던 이미지들이 실제 공간으로 걸어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 흥미롭게 작업하고 있어요. 저만의 작은 오브제 세계를 구축해가는 것 같아 즐겁게 시도하고 있어요.
ㅡ 조만간 선보일 작업이나 프로젝트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6월 14일에 여름을 테마로 한 새로운 회화 컬렉션을 공개할 예정이에요. 그 전날에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작품을 가장 먼저 보여주는 프리뷰 파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 집이자 스튜디오인 공간을 하루 동안 아트 갤러리처럼 꾸며보려 해요.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죠?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