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거장들의 영혼을 깨운 무구한 사물들

현대 디자인과 예술의 정점에 서 있는 거장들이 의외로 투박하고 이름 없는 이들이 손으로 만들어낸 포크 아트(Folk Art)에 매료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예술가들은 작품들에 둘러싸여 살면서도 공예품을 수집하며 산업 사회 속의 그 옛날 ‘인간적인 온기’와 ‘근원적인 생명력’을 되찾기 위한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 각자의 분야에서 완벽함을 추구하던 이들이 왜 이토록 때 묻지 않은 무구한 사물에 시선을 두었는지, 네 명의 거장과 그들의 수집품을 살펴보았다.

Editorial

거장들의 영혼을 깨운 무구한 사물들

현대 디자인과 예술의 정점에 서 있는 거장들이 의외로 투박하고 이름 없는 이들이 손으로 만들어낸 포크 아트(Folk Art)에 매료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예술가들은 작품들에 둘러싸여 살면서도 공예품을 수집하며 산업 사회 속의 그 옛날 ‘인간적인 온기’와 ‘근원적인 생명력’을 되찾기 위한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 각자의 분야에서 완벽함을 추구하던 이들이 왜 이토록 때 묻지 않은 무구한 사물에 시선을 두었는지, 네 명의 거장과 그들의 수집품을 살펴보았다.

Editorial

거장들의 영혼을 깨운 무구한 사물들

현대 디자인과 예술의 정점에 서 있는 거장들이 의외로 투박하고 이름 없는 이들이 손으로 만들어낸 포크 아트(Folk Art)에 매료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예술가들은 작품들에 둘러싸여 살면서도 공예품을 수집하며 산업 사회 속의 그 옛날 ‘인간적인 온기’와 ‘근원적인 생명력’을 되찾기 위한 영감의 원천으로 삼았다. 각자의 분야에서 완벽함을 추구하던 이들이 왜 이토록 때 묻지 않은 무구한 사물에 시선을 두었는지, 네 명의 거장과 그들의 수집품을 살펴보았다.

*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찰스와 레이 임스: 오악사카의 진흙 종과 ‘발견된 형태’

레이 임스와 찰스 임스 부부 ⒸEames Office

찰스 임스Charles Eames와 레이 임스Ray Eames 부부는 1940년대 후반, 멕시코 오악사카를 처음 방문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무광택 검은 진흙으로 빚은 결혼 촛대와 종, 손으로 엮은 바구니들을 사들였다. 오악사카의 진흙 공예는 유약을 바르지 않고 굽는 방식 덕분에 흙 특유의 먹먹하고 부드러운 질감이 드러난다. 이 물건들은 이후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집 곳곳에 놓였고, 그들이 설계한 알루미늄 체어나 사리넨의 가구 곁에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잡았다.

Interior of Case Study House #8 Photographs by Rich Stapleton ⒸEames Office

누군가는 그들의 집을 보며 ‘취향의 수집’이라고 불렀을 테지만 임스 부부에게는 취향의 나열이라기보다 디자인의 근원을 찾는 과정에서 발견한 사물에 가까웠다. ‘형태는 어디서 오는가. 좋은 것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그들은 포크 아트가 가진 정직한 생명력이 현대적인 대량 생산 제품과 만날 때 주거 공간에 인간적인 서사가 부여된다고 믿었다.

Wedding bell at Case Study House #8 ⒸEsoteric Survey

오악사카의 종은 그들이 드나드는 문 초인종으로 쓰이며 매일 디자인의 본질이 ‘사용하는 사람의 삶을 어떻게 풍요롭게 할 것인가’에 있음을 상기시키는 부적과도 같았을 것이다.

조지아 오키프: 뉴멕시코의 흙과 영혼을 담은 카치나 인형

조지아 오키프의 애비큐 집 외관 ⒸArchEyes
조지아 오키프의 애비큐 집 내부 ⒸArchEyes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를 떠올리면 먼저 사막이 떠오른다. 1929년, 처음 뉴멕시코의 타오스를 방문한 이후 그 땅에 단단히 묶였다. 고스트 랜치Ghost Ranch와 아비큐Abiquiu의 집은 그녀의 그림처럼 여백이 있는데 그 고요한 공간의 창가와 책상 위를 지켰던 것은 호피Hopi 부족이 정령을 형상화해 만든 카치나Kachina 인형이었다. 원주민들이 흙과 나무, 깃털로 빚어낸 이 인형들은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믿음이 결합된 결정체였다.

오키프는 이 인형들의 대담한 색면 구성과 기하학 형태에서 자신이 지향하던 미학의 원형을 발견했다. 그녀는 수백 년간 그 땅을 지켜온 토착 예술과 공명하듯,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내고 본질적인 형상에만 집중했다. 그녀의 회화 속에 반복되는 동물의 뼈, 건조한 흙의 질감, 붉고 흰 지층은 오키프가 아주 오래전부터 그 땅을 지켜온 사람들의 예술과 맞닿아 있었다.

콘스탄틴 브랑쿠시: 루마니아 농가의 목공예에서 발견한 수직의 본질

Endless Column version I, Constantin Brâncuși, 1918. ⒸMoMA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âncuși는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나무를 깎는 법을 농촌 공동체에서 먼저 배웠다. 루마니아 농가의 문기둥에 새겨진 기하학적 문양들(능형, 나선, 수직)은 훗날 그가 파리에서 완성한 〈무한의 기둥〉의 구조와 겹친다.

루미니아의 전통 목조 건축 ⒸPeasant Art Craft

브랑쿠시는 파리의 세련된 예술계에서 활동하면서도 고향의 민속 전통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그의 아틀리에 사진에는 루마니아에서 가져온 조각들이 완성된 작품들 사이에 아무렇지 않게 놓여 있다. 매일 그 곁을 지나다니고 먼지가 쌓이는 것을 보고 빛이 비치는 것을 관찰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조각을 농촌 목공예의 연장이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감추지도 않았다.

16개의 주철 모듈이 강철 중심축에 꿰어지듯 연결되어 있다. ⒸCentrul de Cercetare, Documentare și Promovare „Constantin Brâncuși”

그에게 포크 아트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기준이 되어주었다. 아틀리에 한구석에서 매일 마주하는 무심한 사물 하나가 조각가의 눈에 익어가고, 결국 그의 작품 속으로 스며들었을지도 모른다.

이사무 노구치: 기후현의 전통 등이 선사한 빛의 조각

ⒸThe Isamu Noguchi Foundation and Garden Museum
이사무 노구치가 일본에서 아카리를 제작하는 모습, 1968. ⒸThe Isamu Noguchi Foundation and Garden Museum

1952년, 이사무 노구치Isamu Noguchi는 일본 기후현에서 전통 등인 ‘조친’을 만드는 장인들을 만났다. 대나무 살과 화지로 만든 조친의 구조는 단순했다. 접으면 평면이 되지만, 펼치면 입체적인 형태를 갖추는 것. 노구치는 대나무가 만드는 경선과, 화지를 투과해 번지는 빛의 질감에 주목했다. 종이를 통과하며 번지는 빛과 안팎의 경계를 흐리는 반투명의 물성에 매료되었다.

이사무 노구치가 오제키(Ozeki)에서 아카리를 제작하는 모습, 1978. ⒸThe Isamu Noguchi Foundation and Garden Museum
이사무 노구치가 디자인한 아카리 조명의 제작 과정 Ⓒvitra

그는 장인들과 협업해 ‘아카리Akari’ 시리즈를 개발했다. 노구치는 전통 공예의 제작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이를 ‘빛의 조각’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했다.

아카리의 제작 과정 ⒸThe Isamu Noguchi Foundation and Garden Museum

아카리는 현재까지도 그의 예술적 조각과 동등한 위상으로 생산된다. 그는 전통과 현대, 실용과 예술 사이에 선을 긋지 않았다. 그는 협업을 통해 과거의 방식을 박제된 채로 둔 것이 아닌 현재에 다시 활용할 수 있게 만들었고, 그렇게 포크 아트는 오늘날 우리의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매일 밤 따스한 빛을 내뿜는 일상이 되었다.”

사물이 건네는 위로, 가장 원초적인 것에 대하여

임스의 종, 오키프의 인형, 브랑쿠시의 기둥, 노구치의 등은 이름 없는 이들의 손끝에서 시작되었으나, 동시대 가장 예민한 감각을 지녔던 거장들의 곁에 머물렀다. 우리는 왜 유독 이런 사물들에 마음을 뺏기는 것일까. 요즘의 시공간은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SNS를 통해 전 세계의 시야와 가치관이 실시간으로 공유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거대한 연결망은 매 순간 우리에게 수많은 잣대를 들이댄다. 무언가를 좋아하기에 앞서 그것이 환경에 해롭지는 않은지, 공정하게 생산되었는지, 혹은 지금의 시대적 담론에 부합하는 도덕적 결함은 없는지를 먼저 검토해야 하는 시대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마주할 때마다 ‘이것은 올바른가’라는 질문을 통과시키느라 정작 그것이 가진 본연의 감각을 마주할 여유를 잃어버리곤 한다.

반면, 거장들이 수집한 이 무구한 사물들은 그런 검열의 기준이 세워지기 이전의 시간 속에서 왔다. 기교와 이데올로기가 배제된 그 사물들 속에는, 사회적 가면을 쓰기 전 인류가 지녔던 가장 원초적인 감각이 숨 쉬고 있다. 흙으로 빚은 도자기와 거칠게 다듬은 나무는 그 긴장을 허문다. 인간의 손이 남긴 불완전한 형태는 우리에게 ‘무엇이 옳은가’를 따져 묻지 않는다. 그저 거기 놓여 있음으로써 우리가 타인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는 그 자유로운 마음을 회복하게 할 뿐이다. 이름 없는 손이 오랜 시간 다듬어온 형태는 유행을 타지 않고, 땅에서 그리고 삶에서 나온 것은 정직한 형태를 보인다. 완벽히 디자인된 기성품 사이에서 포크 아트가 뿜어내는 기분 좋은 불균형은 그 투박함을 통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무언가를 상기시킨다. 위대한 손들이 멈추는 곳은 다른 손이 먼저 가다듬었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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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요크의 시각적 유산, 그 궤도를 수놓은 비주얼리스트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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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찰나를 포착했던, 하이엔드 포인트 앤 슛 카메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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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빙 펜에서 더 로우까지, 비워냄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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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구아다니노가 그린, 에로스와 타나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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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은 빈 방에서 태어난다, 도널드 저드와 릭 루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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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들의 영혼을 깨운 무구한 사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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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스카르파와 아바텔리스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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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실재가 빚어낸 초현실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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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제약, 상상력을 붙잡아두는 창조의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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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법, 움베르토 에코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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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자키 쿄코와 도시적 에로티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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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라는 완벽한 질서, ‘우연 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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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흔적을 지우는 기술, 스프레차투라에 대하여

08

미완성과 우연의 초상, 〈휘슬재킷〉

07

악의 미학을 위한 클래식

06

손의 여운, 사물이 살아 있는 시간: 루시엔 데이와 마가렛 호웰

05

첫 권의 문학: 세계를 여는 방식에 대하여

04

연옥 단계의 클래식

03

호모 콜렉투스 – MoMA가 수집한 사물들

02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시지프의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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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오키프와 마이크로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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