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의 플래그십을 평가하는 일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출력과 주행거리, 충전 속도에 소프트웨어의 완성도까지 살펴야 한다. 그러나 시승을 마치고 남는 인상은 그 수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달리는 동안 몸이 얼마나 편안했는지, 정보를 확인하는 일이 얼마나 자연스러웠는지, 공간 안에서 어떤 감각을 경험했는지. 볼보 EX90은 기술의 진보가 탑승자의 편안함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펴보게 하는 차다.
2022년 11월 세계 최초로 공개된 EX90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 SPA2와 코어 컴퓨팅Core Computing을 기반으로 개발한 볼보의 순수 전기 플래그십 SUV다. 차량의 주요 기능을 소프트웨어로 통합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하는 새로운 구조를 택했지만, 이를 구현하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추가적인 소프트웨어 개발과 시험으로 양산이 미뤄졌고, 첫 고객 인도는 2024년 하반기에야 시작됐다. 미래를 향한 선언만큼 현재의 완성도를 증명하는 일이 중요해진 배경이다.

국내에 선보인 모델은 800V 전기 시스템과 강화된 코어 컴퓨팅을 적용해 충전 성능과 연산 능력을 높였다. 가격도 적극적으로 책정했다. 트윈 모터 플러스 7인승은 1억620만원, 트윈 모터 울트라 7인승은 1억1,620만원부터 시작한다. 플러스 7인승의 시작가는 XC90 T8 울트라보다 1천만원 낮다. 기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플래그십을 고려하던 고객이 순수 전기 모델도 함께 살펴볼 만한 가격 구도다.
가격이 관심의 계기를 만든다면, 선택의 근거는 차 안에서 찾아야 한다. 이번 시승에서는 EX90의 주행과 공간, 디지털 경험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지에 주목했다. 새로운 기술을 탑재했다는 사실보다, 그 기술이 이동의 부담을 얼마나 덜어주는지가 궁금했다.
고요함을 설계한 주행


EX90의 첫인상은 차체의 규모와 움직임 사이에서 생긴다. 전장 5m가 넘고 공차중량이 약 2.7톤에 달하지만, 달리는 동안 그 크기와 무게가 운전자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전해지지는 않았다. 시승한 울트라 트림의 듀얼 챔버 에어 서스펜션Dual-Chamber Air Suspension은 요철에서 올라오는 충격을 부드럽게 받아내고, 뒤따르는 차체의 상하 움직임도 빠르게 정돈했다. 노면을 충분히 걸러내면서도 중심을 유지해, 부드러운 승차감과 안정적인 자세가 함께 느껴졌다.
속도를 높인 뒤에도 바람 소리와 노면 소음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가속과 감속 사이의 흐름도 매끄러웠다. 트윈 모터 퍼포먼스의 최고출력은 680마력. 가속 페달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이지만, 그 힘을 전달하는 방식에는 여유가 있다. EX90의 주행에서 인상적인 것은 강한 출력을 일상적인 속도에서도 편안하게 다룰 수 있도록 조율한 점이다.


시트 역시 이러한 승차감에 힘을 보탠다. 나파 레더의 표면은 유연하고 매끄러우며, 넉넉한 좌판과 등받이가 허벅지와 등을 넓게 지지하는데, 소파를 연상시키는 안락함 속에서도 몸을 안정적으로 받쳐주는 감각이 남는다. 서스펜션과 차음, 시트가 차례로 작용하면서 노면의 충격과 소음이 몸에 닿는 강도를 낮추었다. 이처럼 EX90의 고요함은 여러 설계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빛과 소재로 완성한 공간


주행에서 느낀 차분함은 디자인에서도 이어진다. 차체의 면을 매끄럽게 정리하고, 플러시 도어 핸들과 프레임리스 미러 등으로 돌출되는 요소를 줄였다. 큰 차체에 간결한 인상을 부여하면서 공기저항계수 0.29를 구현한 외관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볼보의 시그니처인 ‘토르의 망치’ 헤드램프에 HD 픽셀 라이트 기술을 더했는데, 이는 익숙한 형태를 유지하면서 빛을 제어하는 정밀도를 높인 접근이다.

컬러에서도 스칸디나비아의 자연을 향한 시선이 드러난다. 샌드 듄과 데님 블루 등 차분한 외장색에 카다멈·차콜·던의 내장색을 조합한다. 색상의 수보다 눈여겨볼 것은 색과 소재가 하나의 분위기를 만든다는 점이다. 넓은 차체와 실내를 채우는 색조가 서로 부딪히지 않으면서 공간의 인상을 차분하게 정돈한다.



평평한 바닥과 넓은 시야를 갖춘 실내에서는 공간의 여유가 먼저 다가온다. 큼직한 스티어링 휠은 손에 안정적으로 잡히고, FSC 인증 목재를 사용한 우드 데코는 디스플레이가 자리한 대시보드에 자연스러운 질감을 더했다. 또 썬라이크 LED는 자연광에 가까운 빛으로 소재의 표면과 색을 드러낸다. 시각적인 단정함에 손끝의 촉감까지 더하면서, 실내에 머무는 경험을 세밀하게 구성한 지점이다.
일렉트로크로믹 글라스 루프Electrochromic Glass Roof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유리의 투명도를 전기적으로 조절해 들어오는 빛을 제어하는 장치로, 탁 트인 개방감을 확보하는 데서 나아가, 탑승자가 받아들이는 빛의 양까지 조율한다. 글라스 루프로 햇빛을 차단하지 않는 순간에도 기본적인 고기능 열차단 성능을 탑재하고 있다고. EX90의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은 이처럼 형태와 색, 촉감과 빛이 몸에 어떻게 닿는지를 함께 다룬 모습이다.

움직이는 청음실

차음 설계의 효과는 음악을 재생했을 때 더욱 분명해진다. 외부 소음이 억제된 실내에서는 음악의 세부가 또렷하게 드러나고, 소리가 공간을 채우는 방식에도 집중하게 된다. 주행 중에도 차 안이 하나의 청음 공간처럼 느껴진 이유다.
울트라 트림에는 바워스앤윌킨스Bowers & Wilkins와 개발한 1,610W급 오디오 시스템과 25개의 스피커를 적용했다. 헤드레스트와 천장에 배치한 스피커는 소리의 높이와 깊이를 형성하고, 돌비 애트모스와 애비 로드 스튜디오 협업 모드는 서로 다른 공간감을 제공한다. 풍부한 음량만큼 인상적인 것은 소리가 머무를 환경까지 함께 설계했다는 점이다. 부드러운 승차감과 정숙한 실내가 받쳐주면서 오디오 역시 이동 경험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자리한다.
필요한 정보를 가까이에

감각적인 편안함이 이어지려면 디지털 기능을 사용하는 과정도 자연스러워야 한다. 화면이 크고 기능이 많더라도 필요한 정보를 찾는 데 주의를 빼앗긴다면, 잘 정돈된 공간의 효과는 줄어들기 마련. 이 점에서 운전대 바로 앞의 9인치 디스플레이가 에디터에게는 매우 유용했다. 지도와 주행 정보를 가까운 시선 안에서 확인할 수 있었고, 헤드업 디스플레이가 전방을 바라보는 동안 필요한 정보를 보탰다. 14.5인치 센터 디스플레이는 내비게이션과 미디어, 차량 설정 등을 담당하는 등 각 화면에 역할을 나눠 배치한 구성이 실제 주행 중 정보 확인을 수월하게 했다.

시승 중 인포테인먼트의 반응도 빠른 편이었다. 다만 화면의 응답 속도와 소프트웨어 전반의 신뢰성은 구분해 평가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기능이 여러 사용 조건에서 일관되게 작동하는지, 업데이트 이후에도 안정성을 유지하는지는 더 긴 사용을 통해 확인할 부분이다. 이번 시승에서 긍정적으로 읽힌 것은 주행 중 필요한 정보를 확인하는 과정의 자연스러움이었다. 필요한 정보를 찾는 부담을 덜고 운전에 집중하도록 돕는 역할만큼은 충분히 해냈다.
일상의 빈틈을 살피는 안전

EX90의 안전 기술 역시 탑승 경험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볼보가 제시하는 ‘안전 공간 기술’은 차량 주변의 위험과 운전자의 상태를 함께 살피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은 눈과 머리의 움직임 등을 바탕으로 상태를 파악하고, 경고에도 반응이 없을 경우 차량을 정지시키도록 설계됐다.
실내 승객 감지 시스템은 주행이 끝난 뒤까지 보호의 범위를 넓힌다. 실내 레이더가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해 어린이나 반려동물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감지 시 문이 잠기지 않도록 하면서 운전자에게 알려준다. 또 조건이 허용하는 동안 실내 온도 조절까지 이어진다. 차체의 안전 케이지가 충돌 순간의 보호를 맡는다면, 이러한 기능은 일상에서 놓칠 수 있는 상황을 살피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한편 국내 모델에는 최초 공개 당시 강조했던 라이다가 탑재되지 않는다. 볼보는 라이다 유무와 관계없이 코어 컴퓨팅과 센서 시스템을 통해 자사의 안전 기준을 충족한다고 설명한다. 다만 라이다 탑재 모델과 모든 상황에서 동일한 감지 성능을 발휘하는지는 별도로 검증할 문제다. 한 차례의 시승만으로 안전 성능 전반을 판단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설계의 방향은 분명하게 읽힌다. 차량 밖의 위험은 물론 운전자의 상태와 하차 후 남은 탑승자를 살피며,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상황까지 보호의 범위를 넓혔다는 점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모델이다.

Editor’s Comment
시승을 마친 뒤 EX90에서 가장 설득력 있게 남은 것은 편안함의 일관성이었다. 노면을 걸러내는 방식과 몸을 받치는 시트, 실내의 빛과 소리, 필요한 정보를 보여주는 위치가 같은 방향으로 조율돼 있었다. 각각의 장비가 얼마나 고급스러운지를 넘어, 그 장비들이 함께 작동할 때 어떤 시간을 만들어내는지가 이 차의 가치를 설명한다.
소프트웨어의 장기적인 안정성과 안전 기술의 실효성은 계속 확인해야 할테지만, 그럼에도 이번 시승에서 경험한 주행과 공간의 완성도는 분명했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이동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EX90은 설득력 있는 선택지가 되어줄 것으로 보인다. 이 차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동화 시대의 럭셔리를 주행부터 실내 경험까지 일관되게 구현한 편안함으로 구체화했다는 것. 이번 시승에서 확인한 EX90의 가장 확실한 경쟁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