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7월 벤틀리의 새로운 ‘윙드 BWinged B’ 엠블럼이 공개되었다. 1919년 처음 등장한 이후 네 번째 변화이자, 벤틀리 역사상 다섯 번째 윙드 B 엠블럼이다. 100년 넘게 이어진 브랜드 상징을 바꾼다는 점에서, 그리고 새 디자인 스튜디오와 EXP 15 콘셉트카 공개 등 향후 브랜드 방향성과 맞물려 진행된 변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벤틀리의 윙드 B는 브랜드의 얼굴과도 같은 존재다. 중앙의 B, 양쪽으로 펼쳐진 날개, 정교한 깃털 표현은 벤틀리가 말해온 속도와 장인 정신, 영국식 럭셔리를 상징해왔다. 그만큼 벤틀리는 창사 이래 로고 변화에 신중했다. 1919년 원형이 만들어진 뒤, 1931년과 1990년대, 2002년을 거치면서도 아주 제한적으로만 다듬어왔다. 그런 벤틀리가 2025년에 다시 로고를 손봤다는 것은 브랜드가 다음 시대로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새로운 변화의 흐름 속에서 벤틀리는 브랜드의 출발점에 가까운 상징부터 다듬는 선택을 했다.
벤틀리가 지금 로고를 바꾼 이유

자동차 브랜드의 로고는 역사와 기술, 브랜드 이미지를 압축한 상징이다. 특히 벤틀리에게 윙드 B는 그 막중한 역할을 100년 넘게 맡아온 중요한 시각 요소이다. 최근 벤틀리는 전동화 전환을 추진하며 전기차 구조에 맞춘 차체 비례, 공기 저항을 줄이기 위한 외장 디자인, 디지털 중심의 실내 인터페이스까지 전반적인 제품 경험을 재정립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컨티넨탈 GT와 대형 AWD 세단 ‘플라잉 스퍼Flying Spur'를 시작으로 디자인 언어를 통일하고, 향후 전기차 라인업까지 이어질 브랜드 이미지를 새롭게 정리하는 중이다. 새 엠블럼은 이 변화의 출발점이다. 차체가 전기차 구조에 맞춰 달라지고, 그릴과 램프, 실내 인터페이스가 새롭게 해석되는 상황에서 로고 역시 더 간결하고 선명한 형태가 필요해진 것이다.

기존 윙드 B가 클래식한 럭셔리의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면, 지난해 발표된 새로운 엠블럼은 더 날렵하고 정제된 이미지를 강조한다. 하단 깃털을 없애고, 날개를 더 선명한 각도로 다듬었으며, 중앙의 B는 입체적인 보석처럼 보이도록 정리했다. 오래된 상징을 유지하되, 앞으로의 벤틀리 디자인에 맞게 세심하게 조율한 것이다.
1919년, 윙드 B의 시작

윙드 B의 시작은 19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W.O. 벤틀리는 자신의 이름을 건 자동차 회사를 세우면서 브랜드의 방향을 보여줄 상징이 필요했다. 이에 당시 유명 자동차 일러스트레이터였던 F. 고든 크로스비F. Gordon Crosby에게 엠블럼 디자인을 의뢰했다. 크로스비는 움직임의 쾌감과 속도를 상징하는 날개를 ‘B’ 양 옆에 더해 엠블럼을 구성했다. 이는 W.O. 벤틀리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항공기 엔진 개발에 관여했던 배경과도 연결된다. 벤틀리의 초기 정체성이 자동차와 항공 기술, 속도와 내구성 사이에서 형성된 것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초기 윙드 B가 완전한 좌우 대칭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크로스비는 왼쪽 날개에 10개의 깃털, 오른쪽 날개에 11개의 깃털을 배치했다. 이는 브랜드 상징을 더 독특하게 만들고 위조를 어렵게 하기 위한 선택으로, 비대칭성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초기부터 브랜드를 구분하기 위한 영리한 디테일이었다.
70년간 다듬어진 날개

벤틀리 로고는 1931년에 한 차례 크게 달라졌다. 벤틀리가 롤스로이스 소유로 편입되며 두 번째 윙드 B가 만들어졌고, 엠블럼은 더욱 대칭에 가깝게 바뀌었다. 양쪽 날개의 깃털 수는 각각 10개로 수정되었으며, 중앙의 B는 더 단순한 검은색 타원 안에 들어갔다. 이 시기의 로고는 벤틀리 역사에서 가장 오래 사용된 형태 중 하나이다. 초기 로고가 속도와 개성을 강하게 드러냈다면, 1931년 이후에는 더 정돈되고 안정적인 럭셔리 브랜드로서의 인상을 만들었다. 벤틀리가 롤스로이스와 함께 영국 고급차 이미지를 구축하던 시기의 분위기가 로고에도 반영된 것이다.
1990년대에는 다시 원형에 가까운 요소가 돌아왔다. 중앙의 B는 크로스비가 만든 1919년 원형을 떠올리게 다듬어졌고, 날개에는 더 장식적인 곡선이 더해졌다. 벤틀리 특유의 비대칭성도 돌아왔다. 2002년에는 또 한 번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폭스바겐그룹 인수 이후 벤틀리는 컨티넨탈 GT를 앞세워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윙드 B는 1919년 원형을 존중하면서도 기존보다 선을 더 또렷하게 다듬고, 날개와 중앙 ‘B’의 비례를 정리해 고급 브랜드에 어울리는 균형감과 가독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재설계됐다. 왼쪽 10개, 오른쪽 11개의 비대칭 깃털 구조가 적용됐고, 이 엠블럼은 이후 20년 넘게 벤틀리의 주된 얼굴로 사용됐다.
깃털을 덜어낸 새로운 엠블럼

2025년형 윙드 B는 이전보다 더 과감하게 정리됐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중앙 B 아래쪽에 있던 하단 깃털을 완전히 덜어낸 점이다. 덕분에 전체 형태는 더 가볍고 선명해졌고, 차체 위에 붙었을 때 불필요한 장식이 줄어든 인상을 자아낸다.
날개 형태도 달라졌다. 기존보다 더 날카롭고 위로 치켜올라갔는데, 벤틀리는 이를 송골매의 날개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설명했다. 부드럽고 넓게 펼쳐진 날개에서, 더 빠르고 긴장감 있는 날개로 바뀐 셈이다. 럭셔리 브랜드의 안정감은 유지하면서도, 스포티하고 현대적인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중앙의 B 역시 새롭게 다듬어졌다. 벤틀리는 이 부분을 ‘센터 주얼Centre Jewel’이라고 설명하는데, 날개 없이도 독립적인 그래픽으로 사용할 수 있게 설계했다. 특히 고급 시계에서 볼 수 있는 디테일을 참고해 가장자리에 유리처럼 살짝 깎인 듯한 입체감을 주고, 금속 테두리에는 모서리를 사선으로 깎은 듯한 챔퍼 디테일을 더했다. B가 표면 아래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 로고의 중심부가 하나의 정교한 오브제처럼 보이도록 다듬었다.
이 변화는 디지털 환경에서도 중요하다. 로고는 앱 아이콘부터 인포테인먼트 화면, 디지털 키, 브랜드 영상, 조명 그래픽까지 다양한 디지털 환경에서 쓰인다. 새 윙드 B가 더 단순하고 선명한 구조를 가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리적인 엠블럼과 디지털 그래픽 모두에서 쉽게 인식될 수 있도록 형태를 정리한 결과다.
EXP 15와 더 뉴 플라잉스퍼로 이어진 차세대 디자인


새로운 윙드 B는 EXP 15 콘셉트 카와 함께 벤틀리의 다음 디자인을 예고한다. EXP 15는 앞으로 벤틀리 디자인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보여주는 비전 콘셉트다. 전통적인 세단이나 쿠페 형식에 머무르기보다, 전동화 시대의 새로운 차체 비례와 실내 구성을 실험하는 모델에 가깝다.
EXP 15 콘셉트 카는 ‘블루 트레인Blue Train’으로 흔히 알려진 1930년형 ‘벤틀리 스피드 식스 거니 너팅 스포츠맨 쿠페’에서 영감을 받되, 전기차 시대에 맞는 비례와 조명, 디지털 인터페이스로 재해석했다. 긴 보닛 라인, 후방으로 배치된 캐빈, 넓고 매끈하게 이어지는 차체 표면은 과거 벤틀리의 그랜드 투어러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지만, 디테일은 훨씬 현대적으로 정리됐다.
이 흐름은 최근 공개된 ‘더 뉴 플라잉스퍼’에서도 이어진다. 벤틀리는 이 모델을 통해 4세대 컨티넨탈 GT 패밀리와 맞닿은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세단 라인업으로 확장했다. 가장 큰 변화는 전면부다. 벤틀리 4도어 세단에서 1962년 S2 이후 처음으로 싱글 프런트 헤드램프가 다시 적용됐고, 기존의 네 개 램프로 구성된 얼굴은 더 간결하고 집중된 인상으로 바뀌었다.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도 범퍼와 더 자연스럽게 통합됐다. 기존의 윙 벤트 디테일은 사라지고, 앞바퀴 뒤쪽 배지와 매끄러운 프런트 펜더로 정리됐다. 차체 표면을 더 깨끗하게 만들고, 장식보다 비례와 면의 흐름을 강조하려는 변화다. 후면 역시 새 트렁크 리드와 리어램프, 차체색 번호판 주변 패널을 적용해 전체 이미지를 더 정돈했다. 특히 새 리어램프는 점등 시 더 날카로운 ‘B’ 그래픽을 드러내며, 브랜드의 상징을 조명 디자인으로 표현했다.


이 변화는 새 윙드 B 엠블럼과도 같은 방향을 공유한다. 하단 깃털을 덜어내고 더 날렵하게 정리한 로고처럼, 더 뉴 플라잉스퍼 역시 불필요한 장식을 줄이고 표면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현대적인 벤틀리 이미지를 구축한다. EXP 15가 벤틀리의 미래 디자인을 실험한 콘셉트라면, 더 뉴 플라잉스퍼는 그 변화가 양산차 라인업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보여준다.
새 디자인 스튜디오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벤틀리는 영국 크루 본사에 새로운 디자인 스튜디오를 열고, 앞으로의 모델을 이곳에서 설계한다고 밝혔다. 로고, 콘셉트 카, 더 뉴 플라잉스퍼, 디자인 스튜디오는 개별적으로 나타나는 변화가 아니다. 벤틀리가 브랜드의 상징과 차의 얼굴, 디자인을 만드는 공간까지 함께 정리하며 다음 세대의 럭셔리 이미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상 다섯 번째 엠블럼에 담긴 의미

벤틀리의 로고 디자인은 늘 시대의 변화와 함께 움직였다. 1919년 원형은 속도와 항공 기술, 새로운 자동차 브랜드의 도전 정신을 담았다. 1931년 변화는 더 정돈된 럭셔리 이미지를 만들었다. 1990년대와 2002년의 변화는 벤틀리가 다시 독자적인 고급차 브랜드로 힘을 회복하고, 컨티넨탈 GT를 통해 더 넓은 시장으로 나아가던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2025년 새 윙드 B의 등장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벤틀리는 전동화 전환을 추진하고 있으며, 현재는 ‘비욘드100 플러스Beyond100+’ 전략을 통해 2035년 완전 전동화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의 내연기관 중심 요소뿐 아니라, 디지털 인터페이스, 지속 가능한 소재 등 새로운 요소를 통해 브랜드 경험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 출발점이 바로 로고 디자인이다. 벤틀리는 윙드 B의 기본적인 구조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중앙의 B, 양쪽 날개, 안쪽 날개의 다이아몬드 패턴은 유지했다. 대신 깃털을 덜어내고 선을 날카롭게 다듬으며, 더 깨끗하고 강한 인상을 만들었다. 오래된 상징을 보존하면서도, 새 시대의 차체와 화면 안에서 더 또렷하게 보이도록 정리했다.
결국 벤틀리가 다섯 번째 윙드 B를 선보인 이유는 상징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징을 지속적으로 진화시키기 위해서다. 100년 넘게 유지된 윙드 B는 그대로 멈춰 있지 않았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조금씩 형태를 조정했고, 그 과정에서 벤틀리가 생각하는 럭셔리의 기준도 함께 달라졌다. 2025년의 새 엠블럼은 전동화 시대를 앞둔 벤틀리가 자신의 과거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날렵하고 현대적인 이미지를 갖춘 브랜드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