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음악의 세계를 그린 ‘음악 영화’에 대하여

음악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는 기존의 형식과는 다른 감상의 세계를 열어준다. 앨범을 ‘보는’ 방식으로 확장한 네 편의 영화들. 뮤지션마다 고유한 개성이 녹아든 음악 영화를 통해 시각적으로 그려진 세계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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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세계를 그린 ‘음악 영화’에 대하여

음악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는 기존의 형식과는 다른 감상의 세계를 열어준다. 앨범을 ‘보는’ 방식으로 확장한 네 편의 영화들. 뮤지션마다 고유한 개성이 녹아든 음악 영화를 통해 시각적으로 그려진 세계를 들여다본다.

Editorial

음악의 세계를 그린 ‘음악 영화’에 대하여

음악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는 기존의 형식과는 다른 감상의 세계를 열어준다. 앨범을 ‘보는’ 방식으로 확장한 네 편의 영화들. 뮤지션마다 고유한 개성이 녹아든 음악 영화를 통해 시각적으로 그려진 세계를 들여다본다.

예술 작품은 때로 본래의 형식을 벗어나 다른 장르의 언어를 빌리며 더욱 넓은 세계로 뻗어나간다. ‘영화 음악’과 ‘음악 영화’. 단어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이지만, 두 표현은 전혀 다른 장르를 의미한다. 음악 먼저, 그리고 음악을 담기 위해 탄생한 ‘음악 영화’들. 음악의 이해도를 높이는 것은 물론, 음악을 시각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들은 감각을 확장시키고, 새로운 감상 방식을 제안한다.

우즈의 첫 정규 앨범과 배우 데뷔를 알린, 〈슬라이드 스트럼 뮤트〉

가수 우즈WOODZ가 3월 4일 정규 1집 발매를 앞두고 뜻밖의 작품을 먼저 공개했다. 2월 26일 개봉한 영화 〈슬라이드 스트럼 뮤트〉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것. 영화 〈다섯 번째 흉추〉와 〈지느러미〉 등으로 뚜렷한 색채를 각인시킨 박세영 감독이 연출을 맡았는데, 강렬한 비주얼과 거친 질감에 매력을 느낀 우즈가 협업을 제안했다. 영화는 성공을 가져다주는 ‘저주받은 기타’를 손에 넣은 뒤 욕망에 집착하는 주인공을 따라간다. 제목 〈슬라이드 스트럼 뮤트〉 역시 우즈가 직접 지었는데, 주인공의 삶을 기타 연주 기법에 비유한 것이다. 기타의 넥을 쓸어내리는 ‘슬라이드Slide’, 여러 줄을 한 번에 치는 ‘스트럼Strum’, 그리고 소리를 죽이는 ‘뮤트Mute’. 이 세 가지 주법처럼 매끈히 흘러가는 이야기, 몰아치는 사건, 그 이후의 고요한 순간을 보여준다.

충동적으로 기타를 연주한 뒤 성공을 향한 욕망에 잠식된 우진은 비이성적인 행동을 이어간다. ⒸATNINEFILM
수상한 기타의 수리를 의뢰하는 ‘남기’는 할리우드 배우 저스틴 민(Justin H. Min)이 연기했다.
모든 대사를 한국어로 소화하며 기이한 캐릭터를 인상 깊게 그려냈다. ⒸATNINEFILM

뮤지션으로서 성공을 꿈꾸며 누나와 기타 수리점을 운영하는 주인공 ‘우진’에게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남자 ‘남기’가 고장 난 기타의 수리를 맡긴다. 남기는 33개의 부품이 필요하다며 복잡한 설계도와 기타만 남겨두고 사라진다. 우진이 하나둘 부품을 찾아 기타를 완성해 갈수록 그의 성공도 가까워지지만, 손에서부터 시작된 흉터와 불에 그을린 듯한 흔적은 팔을 타고 몸 전체로 번진다.

연출에도 ‘고장’이라는 설정이 적극적으로 반영됐다. 150년이 넘은 곰팡이 낀 렌즈, 망가진 스피커를 사용하는 등 실험적인 방법을 활용했다. 박세영 감독 특유의 시각적 표현이 우즈의 음악과 만나 더욱 극적인 효과를 낸다. 영화 속에서 우진이 성공한 모습은 우즈가 과거 발표했던 앨범의 비주얼 콘셉트를 연상시키며 팬들에게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무엇보다 정규 1집의 일부 곡이 선공개됐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데뷔 13년 만에 발표한 첫 정규 앨범 프로젝트의 일부로 기획되어 우즈가 앞으로 펼쳐갈 여정을 예고한 색다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톰 요크가 보여주는 무의식의 세계, 〈아니마〉

얼터너티브 록의 가능성을 넓힌 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프런트맨 톰 요크Thom Yorke가 2019년 발표한 앨범 〈ANIMA〉는 동명의 넷플릭스 단편 영화를 통해 몽환적인 음악 세계를 영상으로 구현했다. 제목 〈아니마〉는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의 개념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인간의 무의식과 내면의 자아를 상징한다. 영화는 앨범의 수록곡 ‘Not the News’, ‘Traffic’, ‘Dawn Chorus’ 함께 무의식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톰 요크는 중력과 다수의 움직임이라는 정해진 법칙을 거스르는 몸짓을 보여준다. ⒸNetflix

〈펀치 드렁크 러브〉, 〈마스터〉, 〈팬텀 스레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까지 규모와 장르를 넘나드는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이 연출을 맡았다. 그의 영화 세계는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을 만큼 각 작품이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공통점이 있다면, 그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사랑 혹은 어떠한 목표를 열망하며 움직인다는 것. 이런 점은 〈아니마〉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톰 요크는 지하철에서 마주친 여성과 작업용 철제 가방을 집요하게 쫓는다. 영화는 초기 무성영화 시대의 형식처럼 대사 없이 진행되며 움직임의 몰입도를 높인다. 톰 요크가 직접 주인공으로 등장해 안무가 다미앵 잘레Damien Jalet*의 안무를 소화한다.

*다미앵 잘레: 신체의 형태와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독창적인 안무로 주목받는 벨기에 출신의 안무가. 무용, 미술, 영상, 음악을 넘나들며 마돈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루카 구아다니노 등과 협업해 왔다. 오는 6월에는 GS아트센터의 기획으로 내한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한 지하철 출근길, 톰 요크는 모두가 동일하게 반복하는 움직임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그는 무의식으로 빠져들 듯 깊은 지하로 향하고, 자동화된 일상과 중력처럼 갇힌 질서에서 벗어나 욕망을 갈구한다. 톰 요크는 끝내 자신이 원하던 것과 마주하면서 작은 희망을 남긴다. 15분 동안 관객은 무의식의 세계를 잠시 들여다보고, 현실로 돌아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현실의 나 역시 기계화된 움직임에 갇힌 것은 아닌지, 내면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말이다.

아프리카 디아스포라를 향한 비욘세의 헌사, 〈블랙 이즈 킹〉

음악과 퍼포먼스 전반에서 꾸준히 흑인 문화를 향한 존경을 표현해 온 비욘세Beyoncé. 장편 영화 〈블랙 이즈 킹〉은 그녀의 뿌리를 이루는 문화에 바치는 헌사다. 이는 비욘세가 성우로 참여했던 영화 〈라이온 킹〉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앨범 〈The Lion King: The Gift〉를 확장한 프로젝트다. 약 1시간 25분 동안 등장인물의 대사 대신 내레이션과 〈라이온 킹〉의 일부 대사, 그리고 오직 음악만 이어지며 앨범 전체를 하나의 서사로 완성한다.

비욘세와 가나 출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콰시 포드주르Kwasi Fordjour가 공동 연출했으며, 앨범과 영화 모두 아프리카 출신의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시인 워산 샤이어Warsan Shire*는 내레이션 작가로 협업해 주제를 관통하는 문장을 적었다. “역사는 너의 미래다.History is your future.”라는 말처럼, 영화는 아프리카 전통문화의 역사와 과거에서 발굴한 정체성으로부터 미래로 나아갈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워산 샤이어: 난민, 흑인 여성, 아프리카 디아스포라의 경험을 글로 풀어내는 시인. 1988년 소말리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영국으로 이주했다. 2013년 ‘런던의 젊은 시인(Young Poet Laureate for London)’으로 선정됐으며, 비욘세의 비주얼 앨범 〈Lemonade〉에 시가 인용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아프리카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애니멀 패턴, 강렬한 색감, 헤어 피스 등의 소품들이
〈블랙 이즈 킹〉의 패션과 무드를 완성한다. ⒸParkwood Entertainment

〈블랙 이즈 킹〉이라는 제목이 전하는 메시지도 분명하다. “왕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것을 지키는 일이다. 개인적인 욕심이 아니라, 공동체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Being a king is taking what’s yours. But not just for selfish reasons, but to actually build up the community.” 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타자화되고 억압받았던 역사를 극복하고 문화와 정체성을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의 왕으로 군림해야 한다는 선언이 된다. 〈라이온 킹〉의 심바처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왕의 자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외계 밴드로 은유 된 다프트 펑크, 〈인터스텔라 5555〉

2021년 2월 22일, 갑작스러운 해체를 알린 지 어느덧 5년이 지났지만 다프트 펑크Daft Punk는 여전히 대체할 수 없는 아이콘이다.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음에도 이들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다름 아닌 ‘헬멧’이다. 로봇 헬멧이라는 페르소나를 내세워 프렌치 하우스와 전자음악을 대중음악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다프트 펑크. 이들의 이색적인 행보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1년 발매한 앨범 〈Discovery〉을 기반으로 제작된 1시간 5분의 애니메이션 〈인터스텔라 5555〉다. 영화는 대사나 내레이션 없이 오직 음악으로만 채워져, 앨범에 수록된 14곡이 하나처럼 이어진다. 앨범을 단절 없이 감상하게 만들고 싶었다는 제작 의도가 반영된 결과다.

영화의 주인공인 밴드 크레센돌스(Cresendolls)의 멤버들. 크레센돌스라는 이름은 극 중 이들을 지구로 납치한
다크우드 백작이 지은 것으로 등장하며, 〈Discovery〉 앨범의 수록곡 제목이기도 하다. ⒸToei Animation

애니메이션의 그림체는 어딘가에서 본 듯 낯이 익다. 〈은하철도 999〉로 잘 알려진 작가 마츠모토 레이지松本零士가 제작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의 오랜 팬이었던 다프트 펑크가 협업을 요청해 성사된 만남이었다. 전자음악 사운드와 마츠모토 레이지 특유의 우주적 상상력이 만나 독특한 세계를 완성했다. 〈은하철도 999〉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 디자인, 다프트 펑크의 카메오 출연 등 숨은 재미도 발견할 수 있다.

영화의 서사 또한 다프트 펑크의 태도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음악 산업의 권력자인 악당이 외계 행성의 밴드를 납치해 지구로 데려온 뒤 성공을 위해 이용하고 착취한다. 결국 악당은 패배하고, 인기 밴드의 정체가 푸른 피부를 가진 외계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의 음악을 사랑한다. 헬멧 뒤에 가려진 다프트 펑크의 실제 얼굴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음악 자체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는 메시지다. 그렇게 〈인터스텔라 5555〉는 앨범 전곡을 하나의 이야기로 경험하게 하는 동시에, 다프트 펑크의 정체성을 확인시킨다.

음악을 담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들은 부가 콘텐츠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음악에서 파생된 서사와 이미지는 곧 음악이 흘러갈 공간이 되고, 앨범을 ‘보는’ 경험은 감각의 영역을 넓힌다. 장르를 넘나드는 아티스트들의 시도는 작품을 해석하는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음악과 영화가 만나는 지점은 감상의 범위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서로 다른 예술이 만나 어떤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실험이자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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