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회색 천 앞에 선 사람들

1943년 〈보그Vogue〉의 표지에 가방과 장갑, 레몬이 놓인 정물 사진이 실렸을 때 지금에야 익숙하지만 당시 패션잡지에서는 전례가 없는 파격이었다. 모델이 없는 패션 표지라는 발상은 당시 보그의 사진가들은 이 구성을 거부했고 아트 디렉터 알렉산더 리버만Alexander Lieberman이 어빙 펜Irving Penn에게 직접 촬영을 맡겼다고 한다. 사물로 한 사람의 존재를 암시하는 이 이미지는 이후 60여 년간 이어질 그의 작업 세계를 예고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펜은 20세기 최고의 아트 디렉터이자 편집 디자이너였던 알렉세이 브로도비치Alexey Brodovitch 밑에서 디자인을 배웠다. 한때 화가를 꿈꿔 멕시코에서 1년간 그림을 그렸지만 결과에 실망해 작품을 모두 파기한 후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165개의 보그 표지를 만들었다. 그가 보그에서 가장 먼저 바꾼 것은 바로 배경인데, 당시 패션 사진은 의례히 화려한 배경으로 촬영했지만 펜은 그 모든 시각적 소음을 지우고 회색 천 한 장을 세웠다.

그래서 시선이 갈 수 있는 곳은 모델뿐. 놀라운 점은 펜이 이 낡은 극장 커튼을 1950년부터 생의 마지막 촬영까지 무려 45년간 똑같은 천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배경을 고정함으로써 대상의 본질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낸 것이다.
코너 포트레이트: 심리적 무장을 해제하는 폐쇄 공간




어빙 펜의 독창성은 이 사진이 가장 잘 드러낸다. ‘코너 포트레이트Corner Portraits’라고 부르는데 스튜디오에 두 개의 패널을 세워 90도보다 좁은 구석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사람을 세워두었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파이프를 쥔 채 좁은 벽 사이로 몸을 비틀었고,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는 양팔과 다리를 넓게 벌렸고,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는 구석에서 렌즈를 똑바로 응시했다.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 같은 당대의 이름들이 그 좁은 틈 안에 섰다.

펜은 이 장치에 대해 “이 좁은 공간이 사람들을 오히려 편안하게 만들었다”라고 회상했다. 모서리는 서 있는 사람의 심리적인 방어 기제를 무너트렸고 가공되지 않는 ‘진짜 본질’을 끄집어내는 심리적 장치였다. 배경도 소품도 없는 구석에서 오직 인물의 몸짓과 시선만이 그 사람을 드러내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그 사람을 알 것만 같은 이미지들이다. 특히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를 촬영한 1957년 사진은 얼굴이 극단적으로 잘려있다. 얼굴 절반에는 깊은 명암이 걸쳐 있고 한쪽 눈에는 창문이 반사되어 있다. 입체파는 세계의 파편을 깨트렸지만 이 사진가는 다시 한번 그 파편을 깨버렸다.
담배꽁초와 플래티넘 프린트: 질감에 대한 집착


정물 사진 분야에서도 펜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특히 1971년 그의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였으며 지독한 애연가였던 아트 디렉터 알렉세이 브로도비치가 세상을 떠난 뒤, 펜은 뉴욕 거리에서 버려진 담배꽁초를 줍기 시작했다. 짓이겨진 필터와 흙이 묻은 종이, 타다 만 잎을 스튜디오로 가져와 흰 배경 위에 놓고 대형 카메라로 촬영했다. 그는 이를 19세기 인화 기법인 ‘플래티넘-팔라듐 프린트Platinum-Palladium Print’ 방식으로 인화했다. 일반적인 흑백 사진보다 훨씬 넓은 계조와 깊이 있는 어둠, 그리고 종이 표면의 결까지 드러내는 이 방식은 잡지 인쇄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으로, 뉴욕 현대 미술관MoMA에서 전시하게 된다. 펜은 대상의 위계를 두지 않았다. 사물 하나, 썩어가는 과일, 버려진 담배꽁초 하나에도 인물 사진과 동일한 조명과 진지함을 유지했다고 한다. 도시가 버린 것에 그가 빛을 비추고 시간을 들여 인화한 결과물은, 하찮은 것도 시선이 바뀌면 숭고해질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렇게 볼 수 있는 사물의 본질을 대하는 어빙 펜의 태도를 증명한다.
제거의 계보: 플래티넘 프린트에서 더 로우까지

어빙 펜이 보여준 물성과 절제에 대한 집착은 시대를 건너뛰어 현대 패션계의 ‘더 로우The Row’로 이어진다. 런던의 새빌 로Savile Row에서 이름을 가져온 이 브랜드는 테일러링과 탁월한 소재의 힘으로 승부를 보며 완벽한 흰 티셔츠 한 장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옷 어디에도 눈에 보이는 로고를 두지 않는다. 창립 후 3년간 애슐리 올슨Ashley Olsen과 메리 케이트 올슨Mary-Kate Olsen 자매는 일체의 인터뷰를 고사했고 패션쇼에서의 촬영을 금지하기도 했다. 펜이 구석이라는 물리적 제약으로 인물의 가식을 벗겼다면, 더 로우는 마케팅이라는 외부 소음을 지워냄으로써 옷 자체의 촉감과 구조에만 시선을 모은 것이다.





이러한 미에 대한 관점은 2018년 뉴욕 패션위크 기간 중 이사무 노구치 뮤지엄에서 열린 더 로우의 쇼에서 절정을 이룬다. 모델들은 2.5m 높이의 청동 조각 〈Bird Song〉을 비롯한 노구치의 조각 13점 사이를 조용히 걸어갔다. 애슐리 올슨은 이에 대해 “노구치의 조각에서 본 것을 우리의 디자인에 풀어냈다”고 밝혔는데, 이는 선과 면으로 이루어져 표면의 질감이 부각될 수밖에 없는 조각의 특성을 의복으로 치환해 낸 순간이었다. 펜이 옷을 기하학적 형태로 바라보며 조각처럼 사진을 찍었듯, 더 로우 역시 의복이 조각의 표면을 닮아가도록 연출한 셈이다.
제거는 결핍이 아닌 집중

그는 내게 뻔한 것 너머를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펜은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는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과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 필리스 포스닉 〈Stoppers: Photographs from My Life at Vogue〉 中 –
하나의 물음이 남는다. 무엇을 남기기 위해 무엇을 지울 것인가. 펜은 회색 천 하나로 패션 사진에 새로운 장을 열었고 더 로우의 옷에서도 로고가 빠졌기에 좋은 소재의 촉감이 두드러진다. 펜에서 더 로우로 이어지는 제거는 시각적 소음을 끄는 작업에 가깝다. 남길 것만 남기겠다는 하나의 원리가 수십 년의 간격을 건너 두 미학을 잇는다. 무엇을 남기기 위해 지운 것인지, 혹은 지웠기에 비로소 남게 된 것인지는 때에 따라 다를 것이다. 다만 이 모든 것에 앞서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아무도 찍으려 하지 않았던 1943년 〈보그〉 표지의 구성을 펜이 홀로 받아들였다는 것. 제거에는 용기가 가장 먼저 필요하다. 과감하게 지울 줄 아는 사람만이 남길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