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도시를 이루는 오래된 형태들

알도 로시Aldo Rossi는 1931년 밀라노에서 태어나 건축가이자 이론가, 드로잉 작가, 디자이너 등으로 활동했고, 1990년 이탈리아인 최초로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다. 1966년 출간한 대표 저서 <도시의 건축>에서 로시는 도시를 도로·용도·기능으로 정리되는 체계가 아니라, 오랜 시간 남겨진 건축적 흔적의 층위로 바라본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광장, 탑, 극장, 묘지 등은 일상 속 고정된 풍경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도시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집단적 기억Collective Memory이며,
기억과 마찬가지로 사물 및 장소와 연관된다.
─ 알도 로시, <도시의 건축L'architettura Della Città> 中 ─
그래서 그의 건축에는 인류가 오래 활용한 건축의 유형인 집, 탑, 원통, 아치, 창문 등의 기본 형태가 반복된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를 발명하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것들의 비율을 바꾸고 다시 놓았다. 그의 건축이 낯선데도 묘하게 본 적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죽은 자들을 위한 집, 산 카탈도 묘지

이러한 관점은 그의 대표작, ‘산 카탈도 묘지Cimitero di San Cataldo’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잔니 브라기에리Gianni Braghieri와 공동 설계한 이 묘지는 1971년 모데나 시 국가 공모전에서 당선된 프로젝트다.




붉은 벽돌의 정육면체 건물과 반복되는 정사각형 창문은 얼핏 공동주택처럼 보인다. MoMA는 이 건축물을 ‘죽은 자들을 위한 집’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지붕 없는 벽과 방, 열린 문과 창이 더 이상 피난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이들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로시는 살아 있는 도시의 형태를 죽은 자들의 공간으로 옮겨오며 죽음도 삶과 마찬가지로 도시의 기억을 구성하는 일부로 끌어들였다.
산 카탈도 묘지는 공모 당시부터 논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5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계획했던 것에 비해 절반 가까이 완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완성인 상태야말로 로시가 바라본 도시의 본질에 가장 맞닿아 있을지도 모른다. 알도 로시에게 도시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짐을 싸서 떠나고 누군가는 새로 들어오며, 견고해 보이던 건물이 허물어진 자리에 또 다른 형태가 세워진다. 그렇기에 도시는 하나의 매끈한 완성품이 아니라, 끊임없이 수정되고 덧칠해지는 거대한 초안이다.
물 위의 극장과 작은 기념비들


로시의 작업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형이상학적 회화와도 맞닿아 있다. 텅 빈 광장, 길게 드리운 그림자, 사람보다 더 크게 서 있는 건축의 침묵. 마치 꿈속의 한 장면 같은 이미지를 로시는 실제 건축물로 옮겼다.


베네치아의 바다 위를 부유하는 ‘세계의 극장Teatro del Mondo’은 그 중 가장 상징적인 사례다. 1979년 베네치아의 무대 공간 프로젝트를 계기로 만들어진 이 임시 극장은 1980년 첫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나무로 된 입방체 위에 팔각 지붕을 얹은 작은 건축물은 베네치아 사람들에게 도시의 종탑과 등대, 축제용 임시 구조물 등을 떠올리게 했다. 땅에 고정되지 않은 건축이었지만, 도시의 기억 안에는 더 오래 정박했다.

오늘날 이탈리아 현대 복합 공간의 교과서로서 세계 건축학도들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Burcin YILDIRIM





로시의 디자인 언어는 비단 대형 건축물에서만 작동하지 않았다. 몬테 아미아타 주거 단지의 긴 회랑, 보너판턴 미술관의 돔, 알레시를 위해 디자인한 원뿔형 커피포트 ‘라 코니카La Conica’까지, 제각기 다른 크기와 기능을 가졌지만 같은 어휘를 공유하는 작품들이다. 사각형·원통·원뿔·반복되는 창 같은 고전적 형태가 과감하게 활용되는데, 익숙한 것이 낯설게 배치되며 생기는 미묘한 불안감이 오히려 생동감을 만든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상상과 기억 사이에 놓인 도시

알도 로시의 스케치를 보고 있으면 미래 도시의 청사진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기억 지도처럼 느껴진다. 현실의 장소, 개인의 경험, 집단의 기억, 상실된 장면, 오랫동안 살아남은 형태들이 겹겹이 덧입혀져 있다. 그는 1981년 출간한 자서전 <과학적 자서전Autobiografia Scientifica>에서 “내가 관찰해온 모든 것들이 도구처럼, 식물도감처럼, 카탈로그처럼, 사전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다”고 썼다. 로시에게 도시는 바로 그러한 카탈로그였을 것이다. 현실의 장소를 닮았지만 완전히 현실에 속하지 않는 지형. 경험과 상실과 오래된 형태가 끝없이 이어지는 내면의 영토. 그곳은 로시만의 내면의 제국, 다시 말해 인랜드 엠파이어Inland Empire에 가까웠다. 그는 ‘도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의 스케치 속에는 창, 탑, 비어 있는 광장이 다음 시대의 기억을 기다리듯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