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션계에는 단순히 유행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있고, 시대의 정서를 재정의하는 설계자가 있다. 피비 파일로Phoebe Philo는 명백히 후자다. 그녀가 그린 실루엣은 단순히 천의 조합으로서의 옷이 아니라, 현대 여성이 세상과 마주하는 ‘태도’ 그 자체였다. 지난 30년간 그녀가 걸어온 길을 따라가며, 왜 우리가 여전히 ‘파일로이즘Philo-ism’에 열광하는지 그 연대기를 추적해 본다.
런던의 비트와 현실의 감각

피비 파일로의 미학적 뿌리는 90년대 런던에 맞닿아 있다. 1973년 파리에서 태어났지만 런던에서 성장한 그녀는, 패션 명문인 영국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Central Saint Martins 시절부터 남다른 행보를 보였다. 당시 동급생들이 알렉산더 맥퀸식의 파격적이고 극적인 예술성에 매몰되어 있을 때, 피비는 거리의 생동감에 집중했다. 그녀는 골드 후프 귀걸이를 즐겨 하고 힙합 음악을 들으며, ‘실제로 여자들이 거리에서 입고 싶어 하는 옷’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녀의 졸업 작품은 금색 비키니와 스포티한 요소가 가미된 컬렉션이었다. 이는 하이 패션의 권위를 해체하고 일상의 쿨함을 수면 위로 올리려는 그녀의 첫 번째 시도였다. 졸업 후, 그녀는 절친한 친구인 스텔라 맥카트니의 어시스턴트로 발탁되어 1997년 파리 끌로에Chloé 하우스에 입성한다. 당시 이 듀오는 ‘런던의 쿨함’을 파리의 우아함에 수혈하며 침체되었던 끌로에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스텔라가 브랜드의 가치관을 세웠다면, 피비는 그 밑바닥에서 옷의 구조와 여성의 신체가 만나는 지점을 정교하게 다듬으며 자신의 내공을 쌓아가기 시작한 것.
끌로에 시대: ‘잇백’의 탄생과 화려한 퇴장


2001년, 스텔라 맥카트니가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하며 떠나자 27세의 젊은 피비 파일로가 끌로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이어받았고, 이때부터 ‘피비 파일로’라는 이름은 패션계의 중심부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1970년대의 빈티지한 감성을 현대적으로 비튼 ‘보헤미안 시크’를 선보였다. 하이웨이스트 진, 베이비돌 드레스, 나무 굽의 웨지 힐은 전 세계 여성들의 위시리스트가 되었다.


특히 2005년 출시된 ‘패딩턴 백Paddington Bag’은 패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거대한 자물쇠가 달린 이 가방은 출시 전부터 수천 명의 대기자 명단을 만들며 ‘잇백It Bag’ 트렌드를 고착화했다. 하지만 그녀의 진정한 가치는 비즈니스 성과에만 머물지 않았다. 피비는 대형 하우스의 수장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공식 출산 휴가를 사용하며, 일과 가정의 균형을 중시하는 ‘인간 피비 파일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러던 2006년, 커리어의 정점에서 그녀는 돌연 사임을 발표했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아내다. 패션은 내 삶의 큰 부분이지만, 내 삶 전체는 아니다. 나는 내 아이들이 엄마가 일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기억하길 바란다.”는 그녀의 말에서 당시 가장 성공한 여성 디렉터로서 가졌던 고민이 엿보인다. 업계는 충격에 빠졌지만, 이는 성공보다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선택하는 그녀의 철학이 드러난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녀는 런던으로 돌아가 약 2년간 철저히 베일에 싸인 채 평범한 엄마이자 아내로서의 삶을 살며 에너지를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셀린느 시대: 미니멀리즘으로 쓴 여성의 선언문

2008년, LVMH 그룹의 끈질긴 구애 끝에 피비 파일로는 셀린느Céline의 수장으로 복귀한다. 그녀가 복귀하며 내건 조건은 단 하나, 브랜드의 본거지를 파리가 아닌 자신의 가족이 있는 런던으로 옮겨달라는 것이었다. 거대 자본이 개인 삶의 방식에 굴복한 이 사건은, 그녀가 브랜드 위에서 휘두를 영향력을 짐작케 했다.






패션업계에 복귀한 피비 파일로의 셀린느는 혁명이었다. 그녀는 화려한 로고와 장식을 걷어내고, 완벽한 재단의 슬랙스, 오버사이즈 코트, 터틀넥을 제안했다. 이는 남성의 시선에서 정의된 ‘섹시함’이 아닌, 여성이 스스로를 지적으로 느끼고 활동하기 편안하게 만드는 ‘뉴 미니멀리즘’의 탄생의 순간이었다.

그녀는 쇼 피날레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아디다스 스탠 스미스를 신고 등장해 전 세계 하이힐 열풍을 잠재웠고, 조안 디디온을 모델로 기용하며 패션 업계의 반향을 일으켰다. 셀린느의 얼굴이 된 80세의 조안 디디온은 에디터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일하는 여성’이라는 피비 파일로의 정체성, 그리고 그녀가 바라보는 여성상에 딱 맞아 떨어지는 인물이었다.



군더더기 없는 형태의 ‘클래식 박스 백’, 가방의 옆면을 빼낸 기하학적인 디자인의 ‘트라페제 백’,
마이클 라이더가 기존의 러기지를 재해석해 10년만에 재출시한 ‘뉴 러기지 백’ ©Céline
그녀가 만든 ‘클래식 박스 백’, ‘트리오 백’, ‘러기지 백’은 유행을 타지 않는 타임리스 아이템이 되었고, 그녀를 추종하는 팬덤 ‘파일로 필즈Philo-Philes’를 형성되었다. (러기지 백은 최근 마이클 라이더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기도 했다.)
나는 평범함을 견디기 힘들다.
옷을 만들 때 단순히 옷을 만드는 것이 아닌, 하나의 ‘태도’가 되기를 원한다.
복귀 당시 인터뷰에서 드러난 그녀의 의도가 정확히 여성 소비자들의 마음을 간파한 것이다. 피비 파일로는 10년간의 셀린느 생활을 통해 패션이 단순한 옷이 아닌, 여성을 당당하게 만드는 권력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독립과 희소성의 미학

2017년 셀린느를 떠난 후, 피비 파일로는 다시 한번 긴 침묵에 들어갔다. 6년이라는 공백기 동안 패션계는 그녀의 복귀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녀가 디자인에 참여한 셀린느 컬렉션이 ‘올드 셀린’이라고 불리며 컬트적인 지위를 얻었고, 이에 따라 중고 셀린느 제품들이 활발하게 판매되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그녀의 부재가 그녀가 남긴 미학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 계기다. 그리고 2023년,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 ‘피비 파일로PHOEBE PHILO’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누군가의 고용인이 아닌, 대주주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완벽한 독립을 선언한 상태였다.



그녀의 새로운 브랜드는 운영 방식부터 기존의 틀을 깼다. 봄/여름(S/S)이나 가을/겨울(F/W) 같은 전통적인 시즌제 대신 컬렉션은 알파벳으로 구분되며,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공개하며, 과잉 생산을 지양하고 판매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녀의 옷은 여전히 날카로운 테일러링과 고급스러운 소재, 그리고 입는 사람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특유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 브랜드에서 그의 옷은 이전보다 더 솔직하다. 더 무겁고, 더 관능적이며, 더 나이 든 몸을 전제로 한다. 이는 젊음이나 새로움을 지향하기보다는 충분히 살아온 이후에야 가능한 시선이다. 역시나 첫 번째 에디션이 공개되자마자 고가의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아이템이 솔드아웃되며 그녀의 건재함을 알렸다.
피비 파일로의 계승자들

그녀가 셀린느를 떠난 후에도 ‘파일로이즘’은 멈추지 않았다. 피비 파일로 사단에서 일하며 배운 이른바 ‘파일로 군단’은 그녀가 가르친 ‘태도의 미학’을 각자의 방식으로 변주하고 있다. 셀린느 시절 레디 투 웨어의 핵심 멤버였던 다니엘 리Daniel Lee는 보테가 베네타를 거쳐 현재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하고 있으며, 피터 도Peter Do는 피비 파일로의 감각에 좀 더 날카로운 감성을 더해 헬무트 랭과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피터 도는 인터뷰를 통해 직접 그녀를 언급하며 “나는 피비로부터 ‘옷은 입는 사람보다 돋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 옷은 그저 그 사람의 배경이 되어야 한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현재 샤넬을 이끄는 마티유 블라지Matthieu Blazy는 셀린느에서 그녀와 함께 시니어 디자이너로 일했던 인물로, 그가 라프 시몬스와 메종 마르지엘라를 거치며 다진 ‘개념적 패션’의 감각을 피비의 ‘현실적 럭셔리’에 이식했다는 평을 듣는다. 마티유 블라지가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재직했을 당시, ‘올드 셀린’의 가장 강력한 대안으로 꼽히기도 했다.
피비 파일로의 퇴장과 복귀를 반복하는 여정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여전히 그녀를 기다리는가?” 그 답은 그녀의 옷 아래 숨겨진 ‘존중’에 있다. 개인으로서도, 디자이너로서도 그녀는 여성을 인형처럼 꾸미지 않는다. 대신 여성이 걷고, 일하고, 아이를 돌보고, 사색하는 모든 순간에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가장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한다. 이처럼 그녀의 옷이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그것이 유행을 좇지 않고 언제나 삶의 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