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udi and Barcelona Club
1852년 스페인 카탈루냐Catalunya 지역에서 태어난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는 평생의 대부분을 이곳의 중심 도시인 바르셀로나에서 보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존 건축의 문법을 뒤엎는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전세계의 예술가들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는 존재이다. 자연을 정복이나 변형해야 할 존재가 아닌 순응과 관찰의 대상으로 삼고, 곡선을 ‘신의 선’이라 지칭하며 적극 활용해 당대 서양 건축의 전형과는 완전히 다른 건축 철학을 선보였다. 건축에 평생을 바친 가우디의 헌신은 건축물들과 함께 오랜 세월을 견뎌내며,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이들에게 경탄을 자아내고 있다. 그가 남긴 많은 걸작들 가운데 특유의 스타일이 싹을 틔워 꽃피는 과정까지 단계 별로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을 완공 연도 순으로 소개한다.
다종다양한 문화의 창의적 결합, 카사 비센스
건축 기간 | 1883년-1885년
완공 연도 | 1885년

2017년부터 박물관으로서 관람이 가능해졌다 ©Casa Vicens
가우디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작점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1885년 완공된 카사 비센스Casa Vicens는 그가 본격적으로 설계한 첫 번째 건축물로, 훗날 가우디를 대표할 건축 언어의 원형이 곳곳에 담겨 있다. 주식 중개인으로 알려진 마누엘 비센스 이 몬타네르Manuel Vicens i Montaner의 의뢰를 받아 여름 별장을 짓게 되었는데, 오리엔탈리즘과 자연주의, 스페인만의 독특한 기독교 건축 양식을 한데 결합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물을 완성했다.


카사 비센스를 설계할 당시 가우디는 건축 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재학 중 그는 중국, 일본, 인도 등 동양 미술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었기에 첫 작품에 자신의 취향을 마음껏 반영했다. 여기에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수백년 간 받으며 형성된 스페인의 고유한 건축 양식 ‘무데하르Mudejar’까지 접목하며 과감한 건축 실험을 벌였다.

무데하르 양식이 돋보이는 흡연실과 발코니는 단연 이 집의 포인트. 그중 코발트블루를 적극 활용한 벌집 구조의 흡연실 천장은 쳐다보는 것 만으로도 관람객들을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카사 비센스 안팎을 둘러보면 가우디의 시그니처 디자인이 곳곳에서 태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철과 석재, 타일 등 다양한 재료를 혼용한 것과 더불어, 식물에서 모티브를 얻은 장식도 눈에 띈다. 종려나무 잎사귀의 형태를 정교하게 구현한 담장, 메리골드를 그려넣은 타일은 건물의 인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디테일이다.
카사 비센스의 착공을 앞둔 어느 날, 가우디는 점검 차 부지를 방문했다가 우연히 종려나무와 흐드러지게 핀 메리골드를 발견한다. 땅을 가득 채운 식물들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곤충, 새 등을 보며 영감을 받은 그는 자신의 건축물에 이 인상적인 풍경을 표현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이 경험은 이 집의 건축 요소 전반에 깃들어있으며, 앞으로 그가 평생 설계하게 될 건축물들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걸출한 건축가의 등장을 예고하는 프롤로그였던 셈이다.
카사 비센스 (Casa Vicens)
주소 | Carrer de les Carolines, 20-26, Gràcia, 08012 Barcelona
운영 시간 | 09:00~20:00
홈페이지 | www.casavicens.org
인스타그램 | @casavicens
건축 철학을 꽃 피우는 온실, 팔라우 구엘
건축 기간 | 1886년-1890년
완공 연도 | 1890년


카탈루냐의 깃발, 지구본, 카탈루냐의 경제와 문화의 부흥을 상징하는 불사조를 조각한 장식품이 보인다. ©This Is Barcelona
가우디의 생애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명 있다. 바로 사업가이자 전폭적인 후원자였던 ‘에우세비 구엘Eusebi Güell’이다. 1878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가우디가 디자인한 가구를 보고 천재성을 한번에 알아본 그는 든든한 지지자로서 직간접적으로 다양한 도움을 주며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1890년 완공된 에우세비 구엘의 집인 ‘팔라우 구엘Palau Güell’은 두 사람의 특별한 관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가우디가 이 집의 건축과 공사를 위해 많은 예산을 지출한 것을 알게 된 구엘 가문의 재산 관리인이 에우세비 구엘에게 보고하자, 오히려 더 많은 예산을 편성해주었다는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바르셀로나 구 시가지의 좁은 부지 위에 세워진 도시 저택인 팔라우 구엘은 외관은 비교적 절제되어 있지만, 집 안으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천창을 통해 쏟아지는 빛,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공예품, 다채로운 스테인드글라스는 이 집에 들어선 이들에게 거룩하고 성스러운 느낌 마저 준다.



부유한 사업가를 위해 지어진 집인 만큼, 팔라우 구엘에서 중요한 곳은 스페인 왕실, 사업가, 지역 부호들과의 접견을 위해 쓰인 중앙 홀이었다. 가우디는 공간의 흐름을 방해하는 벽과 칸막이를 상당 부분 없애고, 층고를 높여 웅장한 느낌을 조성했다. 또한 방문객들이 구엘 가문의 위용과 부유함을 느낄 수 있도록 조명, 벽체, 천장 등에 화려한 장식들을 더했다.


옥상에 설치된 굴뚝들은 기능적인 설비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며 차기작으로 이어질 가우디의 조형 감각을 보여준다. ‘트렌카디스Trencadís’ 기법*을 적용한 점도 흥미롭다. 가우디는 고대 로마 시절부터 쓰여온 모자이크를 혁신적으로 재해석하며 독자적인 예술 기법으로 승화시켰다. 팔라우 구엘은 가우디와 스페인 예술이 활짝 꽃 피우기 위한 일종의 온실이었던 셈이다. 현재는 스페인의 국가 문화 유산이자 박물관으로서 가우디와 구엘 가문의 깊은 관계를 후대에 알리는 역할을 맡고 있다.
*트렌카디스Trencadís: 카탈루냐어로 ‘깨뜨리다Trencar’에서 유래한 말로, 깨진 세라믹 타일이나 도자기 조각을 이어 붙여 표면을 장식하는 모자이크 기법을 뜻한다.



팔라우 구엘Palau Güell
주소 | Carrer Nou de la Rambla, 3-5, Ciutat Vella, 08001 Barcelona
운영 시간 | 10:00~20:00, 월 휴무
인스타그램 | @palauguell
돌과 타일로 빚은 용의 전설, 카사 바트요
건축 기간 | 1904년-1906년
완공 연도 | 1906년 (신축 아닌 기존 건축물 개보수 프로젝트)



(오) 트렌카디스 기법을 활용해 제작한 굴뚝 ©Casa Batllo
1906년 완공된 ‘카사 바트요Casa Batllo’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함께 많은 이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가우디의 대표작 중 하나다. 이 건물은 기존 건물을 개조했지만, 사실상 완전히 새롭게 지은 것이나 다름없다. 물결치는 외벽과 뼈를 연상시키는 기둥, 해골처럼 보이는 발코니, 용의 비늘을 닮은 지붕은 건물 전체를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보이게 만든다. 특히 시선을 사로잡는 파사드는 시공 시 정확한 도면 없이 가우디의 지시에 의해 작업이 진행되었다는 일화로도 유명한데, 물의 파장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형태로 오늘날까지 구체적인 영감의 원천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뼈의 집’, ‘해골의 집’, ‘용의 집’ 등 이 집에 다양한 별명을 부여한 원인이 된 독특한 디자인은 용과 싸운 카탈루냐의 수호 성인, 성 게오르기우스Sant Jordi의 전설로부터 상당 부분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자연의 원리를 건축으로 번역하려는 가우디의 시도가 담겨 있다.

카사 바트요 인테리어의 주된 테마는 ‘바다’이다. 지중해의 푸른 바다를 연상시키는 컬러를 스테인드글라스, 타일 등 공간 곳곳에 반영해 집 밖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계로 진입한 듯한 느낌을 준다. 한편 푸른 타일들이 특징인 야외 공간 파티오Patio는 오늘날 관광객들의 포토 존으로 여겨질 정도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채광과 환기를 위해 만든 이 공간은 위로 올라갈 수록 어두운 계열의 푸른 색 타일을 사용했는데, 이는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햇빛이 강해진다는 점을 고려한 가우디의 섬세함이 빛나는 지점이다.


요즘 카사 바트요는 아름다운 유적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올해 1월, 수십 년간 관람객에게 공개하지 않았던 2층을 전면 개방해 현대 미술 갤러리 ‘카사 바트요 컨템포러리Casa Batlló Contemporary’로 운영 중이다. 연간 두 차례 전시를 개최하는 영구 갤러리인 이곳은 독창적인 아티스트들을 지원하며 전시, 프로젝션 맵핑, 다학제 간 협업 등을 통해 가우디의 유산을 현대 예술과 연결한다. 용의 전설을 입고 탄생한 공간이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동시대의 흐름과 공명하며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다.
카사 바트요 (Casa Batllo)
주소 | Pg. de Gràcia, 43, Eixample, 08007 Barcelona
운영 시간 | 08:30~22:30
홈페이지 | www.casabatllo.es
인스타그램 | @casabatllo
100년만의 귀환, 샬레트 델 카틀라라스
건축 기간 | 1901년-1908년
완공 연도 | 1908년

가우디의 건축 세계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0주년이 된 지금까지도 확장되고 있다. 그 증거가 카탈루냐 북부 산악지대에 위치한 ‘샬레트 델 카틀라라스Xalet del Catllaràs’이다. 1905년 완공되어 현재 아파트로 활용 중인 이 건물은 에우세비 구엘의 의뢰로 광산 기술자들을 위한 숙소로 설계되었다. 규모도 크지 않고 장식도 화려하지 않아 오랫동안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무엇보다 가우디의 설계작인지를 확인하기 어려워 오랫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올해 2월, 스페인 당국과 건축 전문가들이 추가 연구를 바탕으로 이 건물이 가우디의 작품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당시 가우디가 시공 과정을 직접 감독하지 않은 탓에 특색 있는 디자인이 다소 퇴색되었지만, 과거 문서 내용 일부와 아치, 돔, 45도 각도로 배치된 내벽 등을 토대로 가우디의 설계를 확인했다.


샬레트 델 카틀라라스는 다른 대표작들처럼 화려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건축물은 아니다. 대신 주변 산세와 조화를 이루는 배치와 공간 구성에서 가우디의 자연관을 읽을 수 있는 자료로서 기능한다. 가우디가 단순히 독창적인 형태를 만드는 것 뿐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고민했던 건축가였음을 보여준다.
샬레트 델 카틀라라스 (Xalet del Catllaràs)
주소 | 08696 La Pobla de Lillet, Barcelona
운영 시간 | 주말 00:00~24:00, 평일 휴무
역사성과 창의성 사이의 균형, 토레 벨레스가드
건축 기간 | 1900년-1909년
완공 연도 | 1909년



‘토레 벨레스가드Torre Bellesguard’는 사실 가우디의 대표작을 꼽을 때 종종 제외되며 ‘숨은 명작’이라고 불리는 건축물이다. 지역과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 중세 성채에 가깝게 설계하다보니 다른 대표작들처럼 외관에서부터 자신의 스타일을 확연히 보여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곳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지역과 역사를 존중하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시도하는 건축가의 균형 감각에 있다.


1909년에 지어진 토레 벨레스가드는 과거 12세기부터 18세기까지 스페인 동부에 존재했던 아라곤Aragon 왕국의 왕, 마르틴 1세Martín I의 궁전 터 위에 세워졌다. 지역성과 역사성을 고려해 설계한 신고딕 양식의 외관은 언뜻 보면 그의 특징이 잘 안 드러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다채로운 색을 활용한 타일, 곡선을 활용한 천장, 자연광을 활용하기 위한 독특한 창문 배치 등 자세히 살펴보면 인장과도 같은 요소들이 속속 드러난다.

이 성이 속한 지역인 카탈루냐의 상징색이기도 한 노란색과 빨간색을 활용한 십자가 탑은 훗날 구체화될 가우디 스타일의 초창기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이렇듯 공간 전반에서 중세 건축과 역사를 향한 존중과 실험 정신의 공존을 확인할 수 있다. 토레 벨레스가드를 통해, 가우디는 과거의 건축 문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할 수 있음을 여실히 증명했다.

토레 벨레스가드 (Torre Bellesguard)
주소 | Carrer de Bellesguard, 20, Sarrià-Sant Gervasi, 08022 Barcelona
운영 시간 | 10:00~15:00, 월 휴무
인스타그램 | @bellesguardgaudi
직선을 거부한 집, 카사 밀라
건축 기간 | 1906년-1912년
완공 연도 | 1912년

‘카사 밀라Casa Milà’는 가우디가 주거 건축에서 도달한 정점이다. 1912년 완공된 이 건물은 거대한 암석 덩어리를 닮았다는 이유로 당시 바르셀로나 시민들로부터 채석장, 스페인어로 일명 ‘라 페드레라La Pedrera’라 불리기도 했다. 건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직선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석재 외벽을 보고 있자면, 자연 상태의 바위가 자연스레 떠오르기 때문이다.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라는 말을 남길 만큼 곡선을 중요하게 여긴 가우디는 카사 밀라에서 특유의 건축 미학을 마음껏 펼쳐냈다. 설계 당시에는 독특한 외형 탓에 비웃음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세계적인 건축 문화 유산으로 자리잡았다.

곡선 중심의 외관 설계 외에도 자유로운 평면 구성, 자연 채광과 환기를 고려한 설계는 당시 유럽 건축계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카사 밀라는 또한 별도의 내력벽 없이 오로지 기둥과 열린 공간 만으로 지어졌는데, 이는 오늘날 현대 건축의 특징으로 여겨지는 개방적 공간 개념을 선제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옥상은 카사 밀라의 백미다. 병사의 투구를 연상시키는 굴뚝과 배기구, 환기탑 등은 기능적 요소와 조형 예술의 경계를 허문다.



©A Boy. A Girl + A Passport
카사 밀라는 흔히 사그라다 파밀리아 이전의 마지막 걸작으로 불린다. 이후 가우디는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성당 건설에 온 힘을 쏟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카사 밀라는 도시를 향해 남긴 그의 마지막 선언과도 같다.
카사 밀라 (Casa Milà)
주소 | Pg. de Gràcia, 92, Eixample, 08008 Barcelona
운영 시간 | 09:00~23:00
홈페이지 | www.lapedrera.com
인스타그램 | @lapedrera_barcelo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