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ation

평생 좋은 의자를 꿈꾼 디자이너의 집, ‘뮤지엄 웨그너’

한스 웨그너가 태어나 목공을 배우며 성장한 덴마크 남부 퇴네르. 젊은 시절 그가 수채화로 남기기도 했던 이곳의 오래된 농가 헤스트홀름에 그의 삶과 가구, 디자인 철학을 담은 뮤지엄 웨그너가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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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좋은 의자를 꿈꾼 디자이너의 집, ‘뮤지엄 웨그너’

한스 웨그너가 태어나 목공을 배우며 성장한 덴마크 남부 퇴네르. 젊은 시절 그가 수채화로 남기기도 했던 이곳의 오래된 농가 헤스트홀름에 그의 삶과 가구, 디자인 철학을 담은 뮤지엄 웨그너가 문을 열었다.

Curation

평생 좋은 의자를 꿈꾼 디자이너의 집, ‘뮤지엄 웨그너’

한스 웨그너가 태어나 목공을 배우며 성장한 덴마크 남부 퇴네르. 젊은 시절 그가 수채화로 남기기도 했던 이곳의 오래된 농가 헤스트홀름에 그의 삶과 가구, 디자인 철학을 담은 뮤지엄 웨그너가 문을 열었다.

‘좋은 의자를 만드는 일에 결코 완성이란 없다.’라는 말을 남긴 한스 J. 웨그너Hans J. Wegner. 완벽한 의자를 향한 그의 집념 어린 태도를 잘 보여주는 문장이다. 평생 약 500점의 의자를 디자인한 웨그너는 형태와 기능, 재료와 제작 방식 사이의 균형을 끊임없이 고민했다.

  한스 J. 웨그너 ⒸPP Møbler

진정으로 완벽한 의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계속해서 추구해야 할 이상향일 뿐이다.

─ 한스 J. 웨그너(Hans J. Wegner)

의자의 거장, 한스 웨그너

자신이 디자인한 CH24 위시본 체어와 함께한 한스 J. 웨그너 ⒸCarl Hansen & Søn

위시본 체어Wishbone Chair, 더 체어The Chair, 피콕 체어Peacock Chair, 셸 체어Shell Chair처럼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명작도 여럿 남겼다. ‘의자의 거장’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목수로 출발한 그는 정교한 목공 기술에 현대적인 조형 감각을 더해 자신만의 디자인 언어를 구축했고, 덴마크 모던 디자인의 황금기를 이끈 대표적인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했다.

한스 웨그너가 수채화로 그린 그의 고향 헤스트홀름의 풍경 ⒸPP Møbler

웨그너의 손끝이 향한 곳은 목재뿐만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인 그는 드로잉과 수채화도 꾸준히 남겼다. 고향인 덴마크 남부 퇴네르Tønder의 풍경도 화폭에 담았다. 그중에는 퇴네르 외곽의 오래된 농장 헤스트홀름Hestholm을 그린 1959년의 수채화가 있다. 훗날 자신의 이름을 건 뮤지엄이 들어설 바로 그곳이다.

한스 웨그너의 첫 독립 뮤지엄

ⒸCobe

퇴네르 도심에서 벗어나면 풍경이 먼저 달라진다. 건물이 드문드문 낮아지고, 시야 끝까지 평평한 습지가 펼쳐진다. 그 한가운데 오래된 농가 헤스트홀름이 자리한다. 2026년 4월 2일, 이곳에 뮤지엄 웨그너Museum Wegner가 문을 열었다. 마침, 이날은 1914년 4월 2일 태어난 웨그너의 112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퇴네르는 웨그너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자 목수로서 첫발을 내디딘 도시다. 열네 살 무렵 가구 장인의 도제로 들어가 목재를 다루고 가구를 만드는 법을 익혔다. 이후 코펜하겐으로 떠나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됐지만, 그의 작업을 떠받친 목공의 감각은 이곳에서 시작됐다. 세계 곳곳의 미술관과 집 안으로 퍼져 나간 웨그너의 의자가 한 세기가 흐른 뒤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Cobe

현재 문을 연 뮤지엄 웨그너는 전체 프로젝트의 첫 단계다. 기존 헤스트홀름의 본채와 마구간을 리노베이션해 800㎡가 넘는 공간에 전시장과 카페, 뮤지엄 숍, 워크숍 등을 마련했다. 오래된 건물의 흔적은 말끔히 지우지 않았다. 본채의 초가지붕을 복원하고, 마구간을 새로운 쓰임에 맞게 고쳤다. 곳곳에 난 창과 개구부 너머로는 습지와 초원, 물길이 보인다. 전시를 보다가 고개를 들면 다시 퇴네르의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웨그너의 가구와 그를 길러낸 장소와 함께 이해하게 하는 공간이다.

명작의 탄생

전시장에 들어서면 우리가 익히 아는 웨그너의 의자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곳이 보여주는 것은 완성된 명작만이 아니다. 스케치와 드로잉, 모델과 작업 자료를 나란히 놓고 하나의 가구가 어떤 생각에서 출발해 형태를 갖추어가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도록 이끈다. 개관 전시 역시 웨그너의 다양한 디자인 과정과 그가 덴마크 주거 문화에 남긴 영향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이러한 전시의 바탕에는 가족의 역할이 컸다. 웨그너의 두 딸 에바Eva와 마리안네Marianne는 아버지에 관한 지식과 소장품, 개인 아카이브를 뮤지엄에 제공하며 설립 과정부터 함께했다. 덕분에 관람객은 완성품 너머, 한 디자이너의 작업실을 들여다보듯 그의 사고와 흔적을 좇을 수 있다. 지금은 너무도 익숙한 의자 역시 수많은 고민과 수정, 재료와 구조에 대한 실험을 거쳐 완성됐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웨그너에게 디자인은 한 번에 답을 찾는 일이 아니었다. 만들고, 시험하고, 다시 고치는 과정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의자 한 점보다 그 주변을 함께 보는 편이 흥미롭다. 목재의 곡선과 접합 방식, 사람의 몸을 받치는 각도와 비례를 살피다 보면 하나의 의자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집요하게 고민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좋은 의자를 만드는 일에 결코 완성이란 없다”는 그의 말도 이곳에서는 한층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의자 밖으로 넓어진다. 목공과 재료, 장인의 기술과 생산 방식, 나아가 이런 가구가 태어난 덴마크의 생활 문화까지 이어진다. 웨그너의 의자는 조각처럼 아름답지만 결국 매일 앉고 사용하는 생활 도구였다. 형태와 기능, 공예와 산업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연결한 것. 이곳은 한 사람의 작품을 보여주는 데서 멈추지 않고, 덴마크 디자인이 어떻게 어떻게 일상에 뿌리내렸는지를 함께 보여준다. 나아가 웨그너의 유산을 보존하는 공간을 넘어, 공예와 디자인을 둘러싼 새로운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장소를 지향한다.

의자의 철학을 담은 건축

ⒸCobe

전시실을 둘러본 뒤 건물 자체를 다시 바라보면 웨그너와 닮은 부분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전체 건축 계획은 코펜하겐의 건축사무소 코베COBE가 맡았다. 이들이 세운 원칙은 명확했다. 오래된 헤스트홀름을 흔적을 남기되, 그렇다고 웨그너의 가구를 그대로 닮은 건물을 만들지도 않을 것. 대신 농가의 구조와 웨그너가 가구를 만들던 태도 사이에서 접점을 찾았다.

가장 먼저 이어지는 것은 재료다. 웨그너가 평생 즐겨 다룬 나무가 건축에서도 중심을 이룬다. 구조와 접합 방식은 숨기지 않는다. 헤스트홀름의 박공지붕*과 길게 내려오는 지붕선, 목조 구조도 새로운 건축의 단서가 됐다. 재료의 성질을 억지로 감추지 않고, 구조 자체를 디자인으로 드러내는 방식이다. 나무를 깎고 잇는 방법에서 가구의 형태를 찾아냈던 웨그너의 태도와 자연스럽게 겹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정면과 뒷면이 따로 없는 건축’이라는 발상이다. 웨그너는 의자를 정면에서만 바라보는 가구로 만들지 않았다. 옆에서 보든 뒤에서 보든 하나의 완결된 입체여야 했다. 코베 역시 뮤지엄에 뚜렷한 정면과 후면을 설정하지 않았다. 공간을 지나며 시선이 계속 바뀌고, 내부에서는 다시 창 너머 습지가 눈에 들어온다. 한 점의 의자를 천천히 빙 둘러보며 등받이와 다리, 접합부를 발견하듯 건물 역시 여러 방향에서 경험하게 한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뮤지엄

헤스트홀름에서의 경험은 여기서 끝나지만, 뮤지엄 웨그너 자체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지금 관람객이 만나는 농가는 전체 계획의 첫 장에 해당한다. 앞으로 주변에 새로운 목조 건물을 더해 약 5,000㎡ 규모로 확장할 예정이다. 전시장과 워크숍, 도서관, 가구 아카이브, 오디토리엄, 이벤트 공간과 카페 등이 하나의 건축군을 이루는 계획이다. 새 건축은 습지의 자연스러운 물 흐름과 주변 생태를 고려해 땅 위에 가볍게 자리하도록 계획됐다. 구체적인 다음 단계의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사실 퇴네르가 웨그너를 기억해 온 역사는 이보다 훨씬 길다. 1995년 웨그너와 아내 잉가Inga는 자신들이 직접 고른 의자 37점을 고향에 기증했다. 이를 위해 1902년에 지어진 퇴네르 시내의 옛 급수탑이었던 ‘워터타워Vandtårnet’가 전시 공간으로 바뀌었다. 더욱 특별한 점은 작품을 눈으로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앉아볼 수 있었다는 것. 피콕 체어와 더 체어 등에 몸을 맡기며 눈으로는 알기 어려운 비례와 곡선, 착석감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Cobe

3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이야기는 헤스트홀름에서 한층 넓어졌다. 워터타워가 웨그너의 의자를 몸으로 이해하는 곳이었다면, 뮤지엄 웨그너에서는 그 의자가 태어난 생각과 과정, 재료와 기술, 그리고 그를 길러낸 풍경까지 함께 만난다. 퇴네르의 작은 목공소에서 시작된 한 디자이너의 이야기가 세계를 한 바퀴 돌아 다시 고향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좋은 의자를 만드는 일에는 결코 완성이 없다고 말했던 웨그너처럼, 그의 뮤지엄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앞으로 새로운 건축과 전시가 더해지며 계속 모습을 바꿔 갈 예정이다. 어쩌면 그 점이 가장 웨그너답다. 더 나은 의자를 향했던 그의 오래된 질문은 지금도 고향 퇴네르에서 여전히 머물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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