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오카자키 쿄코와 도시적 에로티시즘

80년대 일본 도시의 화려함 뒤에 숨은 공허함을 가장 잘 그려낸 작가, 오카자키 쿄코. 작가는 도시가 우리의 몸과 감정을 어떻게 세련되게 '편집'하고 '소비'하는지 차갑게 보여준다. 사랑이 아닌 편의점 조명 아래에서 시작되는 그녀의 에로티시즘이 지금 더 생생하게 읽히는 이유를 찾아본다.

Editorial

오카자키 쿄코와 도시적 에로티시즘

80년대 일본 도시의 화려함 뒤에 숨은 공허함을 가장 잘 그려낸 작가, 오카자키 쿄코. 작가는 도시가 우리의 몸과 감정을 어떻게 세련되게 '편집'하고 '소비'하는지 차갑게 보여준다. 사랑이 아닌 편의점 조명 아래에서 시작되는 그녀의 에로티시즘이 지금 더 생생하게 읽히는 이유를 찾아본다.

Editorial

오카자키 쿄코와 도시적 에로티시즘

80년대 일본 도시의 화려함 뒤에 숨은 공허함을 가장 잘 그려낸 작가, 오카자키 쿄코. 작가는 도시가 우리의 몸과 감정을 어떻게 세련되게 '편집'하고 '소비'하는지 차갑게 보여준다. 사랑이 아닌 편의점 조명 아래에서 시작되는 그녀의 에로티시즘이 지금 더 생생하게 읽히는 이유를 찾아본다.

*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해석 대신 감각으로: 수전 손택의 에로틱스

<헬터 스켈터> 한국판 표지. Drawing by Okazaki Kyoko ©Okazaki Kyoko, goat(고트)

흥미로운 일들은 대개 의도되지 않는다. 돌연 발생하고 그것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감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예술을 해석하지 말고, 에로틱하게 경험하라고 말했다.

해석학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의 성애학이다.

여기서 에로티시즘은 단순히 쾌락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이 이성보다 먼저 반응하는 상태를 뜻한다. 이해하거나 설명하기 전에 먼저 느껴지는 것. 이 태도를 도시로 옮겨오면 욕망은 더 이상 개인의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순수한 샘물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시선과 그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각종 광고, 브랜드 같은 환경을 통해 편집된 상태로 도착해 열람된다. 오카자키 쿄코의 만화는 바로 그 지점을 포착한다. 그녀의 에로티시즘은 에로스가 아니라, 도시가 인간의 몸과 감각을 다루는 방식에 가깝다.

에로스가 사라진 자리, 디자인된 에로티시즘

〈헬터 스켈터〉 미국판 내지. Drawing by Okazaki Kyoko ⒸVertical Comics(Kodansha USA)

오카자키 쿄코Okazaki Kyoko의 작품에서 에로티시즘은 침실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은 편의점 조명 아래에서, 잡지의 표지와 광고 카피 사이에서, 누군가의 시선에서 태어난다. 그녀는 욕망을 사랑으로 포장하지 않고, 미화하지도 않는다. 대신 도시가 인간의 몸을 어떻게 읽고, 소비하고, 또 스스로가 그 소비 방식을 내면화하는지를 건조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오카자키 쿄코의 에로티시즘은 관능의 미학이라기보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쾌락이 유통되는 방식, 혹은 감정이 디자인되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악어와 오피스 레이디, 〈핑크〉

〈핑크〉 스페인판 표지. Drawing by Okazaki Kyoko ⒸPonent Mon

낮에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밤에는 애완용 악어를 키우기 위해 성을 일종의 경제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거로 주인공 유미의 일상을 다룬 〈핑크Pink〉. 〈핑크〉는 그 ‘도시적 에로티시즘’의 원형에 가깝다. 여기서 성은 낭만이 아니라 일상이며, 일상은 감정이 아니라 경제다. 오카자키는 이 관계를 비극으로 그리지 않고 당사자와 주변 인물들에게 얼마나 자연스럽게 굴러가는지를 보여준다. 도시에서는 무엇이든 콘텐츠가 되고, 소비가 되고, 캐릭터가 된다. 그리고 그 캐릭터가 ‘나’라는 얼굴을 대신하는 순간이 온다. 오카자키 쿄코의 인물들은 자주 스스로를 연기한다. 문제는 그 연기가 들키지 않는다는 데 있다. 들키지 않기 때문에 더 깊이 들어간다. 본인도 알지 못하는 채로.

90년대 도시적 에로티시즘

오카자키 쿄코가 다루는 에로티시즘은 늘 ‘매력’과 붙어 있다. 매력은 도시에서 가장 효율적인 생존 기술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매력은 누군가의 시선을 끌어오는 능력이고, 그 시선은 반대로 주인공이 더 깊게 매력을 추구하도록 이끄는 순환의 구조를 이룬다. 작가는 이 과정을 로맨틱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룩, 포즈, 말투, 브랜드, 취향 같은 디테일로 구축한다. 네일, 립 컬러, 옷의 실루엣, 신발의 앞코. 도시의 욕망은 늘 작은 물건들로 번역된다. 그래서 오카자키의 컷들은 종종 패션 화보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화보가 늘어날수록 캐릭터에는 균열이 간다. ‘예쁨’이 무너지는 순간, 그 얇은 막이 찢어지는 소리.

〈핑크〉 스페인판 내지. Drawing by Okazaki Kyoko ⒸPonent Mon

또 하나 중요한 지점은, 오카자키 쿄코의 세계에서 욕망이 ‘개인의 내면’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욕망은 외부에서 공급된다. TV, 잡지, 광고, 클럽, 거리의 유행. 도시에서 욕망은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환경의 결과물에 가깝다. 그래서 그녀의 인물들은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정해진 각본 위를 걷는다. “나답게” 보이기 위한 선택들이 오히려 더 강한 규격이 되는 아이러니. 이것이 도시적 에로티시즘의 잔인한 점이다. 벗어나는 순간이 아니라, 맞춰 들어가는 순간에 즐거움이 발생한다는 것. 오카자키는 바로 그 ‘쾌감의 메커니즘’을 해부한다.

〈헬터 스켈터〉: 제조된 아름다움과 스스로를 감시하는 공포

전신 성형을 통해 최고의 스타가 되었으나, 몸이 무너져 내리는 부작용과 결핍에 시달리는 리리코의 파멸을 그린 〈헬터 스켈터Helter Skelter〉로 오면, 이 구조는 한층 더 노골적인 형태를 보인다. 여기서 몸은 더 이상 사적인 것이 아니다. 몸은 프로젝트가 되고, 상품이 되고, 브랜드가 된다. 외모의 완성도가 곧 존재의 설득력이 되는 세계. 아름다움은 축복이 아니라 계약이며, 유지되지 않으면 파기된다. 오카자키는 그 계약서를 찢는 대신, 계약서의 문장을 하나씩 읽어 내려간다. “어떻게 해야 사랑받는가”가 아니라 “사랑받는 얼굴은 어떻게 제조되는가.” 그리고 제조된 얼굴은 결국 자기 자신을 삼킨다. 욕망이 더 이상 타인을 향하지 않고 스스로를 향할 때, 타인의 시선이 내 몸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몸을 감독하는 상태 그 자체가 고요한 공포로 바뀐다.

목격자 오카자키 쿄코: 도시의 피부가 완성되는 순간

Okazaki Kyoko ⒸOkazaki Kyoko

그녀의 에로티시즘이 특별한 이유는 자극적이어서가 아니다. 성을 ‘숨겨진 비밀’로 만들지 않고 너무 흔하게, 너무 노출된 상태로 소비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90년대의 도시적 에로티시즘은 현실의 냄새를 갖는다. 오카자키의 인물들은 깊이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랑을 할 여유가 없는 구조 속에 있다. 그 구조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가 설계한 속도와 경쟁, 이미지의 경제 때문이다. 결국 오카자키 쿄코가 보여준 것은 “도시가 인간의 욕망을 편집하는 방식” 그 자체다. 우리가 원했던 것이 정말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사랑처럼 보이는 매혹적인 ‘장면’이었는지, 작가는 그 서늘한 질문을 우리 앞에 남겨둔다. 욕망은 몸에서 시작되지만, 도시에서 완성된다. 오카자키 쿄코는 그 완성 직전의 표면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정확하게 바라본 목격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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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실재가 빚어낸 초현실의 미학

13

아름다운 제약, 상상력을 붙잡아두는 창조의 도구

12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법, 움베르토 에코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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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자키 쿄코와 도시적 에로티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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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라는 완벽한 질서, ‘우연 연산’

09

노력의 흔적을 지우는 기술, 스프레차투라에 대하여

08

미완성과 우연의 초상, 〈휘슬재킷〉

07

악의 미학을 위한 클래식

06

손의 여운, 사물이 살아 있는 시간: 루시엔 데이와 마가렛 호웰

05

첫 권의 문학: 세계를 여는 방식에 대하여

04

연옥 단계의 클래식

03

호모 콜렉투스 – MoMA가 수집한 사물들

02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시지프의 유머

01

조지아 오키프와 마이크로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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