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엣츠앤펑크스의 신간 <파티를 위한 파이팅>에 수록된 음악과 함께 기사를 즐겨보세요.
오선희에게 편집은 지면을 구성하는 기술보다 사람과 물건, 장소 사이에 새로운 맥락을 만드는 태도에 가깝다. 〈하퍼스 바자 코리아〉에서 9년간 에디터로 일한 그는 2017년 가방 브랜드 ‘바이에딧’을 론칭했고, 이듬해 출판사 ‘포엣츠앤펑크스’를 설립했다. 지면에서 상품으로, 다시 책으로 다루는 대상은 달라졌지만, 고유한 이야기를 발견해 하나의 관점으로 엮는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포엣츠앤펑크스를 시작할 무렵 런던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그는 한국의 음식과 건축, 음악을 국제적인 언어로 풀어내며 편집의 반경을 넓혔다.
이러한 확장은 서울 삼청동에 문을 연 서점 ‘커리큘럼’에서 더욱 입체적인 형태를 얻었다. 오선희에게 책은 한 권으로 완결되는 결과물이 아니라, 공간을 구성하고 사람을 모으며 브랜드와 도시를 연결하는 출발점이다. 런던의 로컬 가게와 머천다이즈를 만들고, 브랜드를 위해 지역의 사람과 장소를 콘텐츠로 엮으며, 서울을 해석하는 책장을 구성하는 지금의 작업도 모두 그 연장선에 있다. 서로 다른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것은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무엇을 연결하고, 그 사이에 어떤 맥락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태도다. 서울과 런던을 오가는 오선희의 작업 안에서 편집은 매체에 머물지 않고, 사업과 공간을 만들며 도시의 문화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Interview with 포엣츠앤펑크스・커리큘럼 디렉터 오선희

지면에서 브랜드로 옮겨간 감각


ㅡ 2017년 가방 브랜드 ‘바이에딧BYEDIT’을 론칭했습니다. 9년간의 〈하퍼스 바자 코리아〉 패션 에디터 생활을 마치고, 직접 브랜드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에디터 일을 그만둔 뒤 몇 년간 패션업계에서 일했어요. 그러다 한 기업에서 신규 가방 브랜드 컨설팅 의뢰가 들어와 샘플 작업까지 모두 마쳤는데, 도중에 프로젝트가 엎어졌죠. 그래서 브랜드 측에 이왕 만들어 놓은 거니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권한을 넘겨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렇게 디자이너와 함께 대표 상품 하나를 만들어 판매해 본 것이 바이에딧의 시작이었죠.


그렇게 탄생한 바이에딧은 고유한 정체성으로 많은 이의 사랑을 받았다.
(왼) 부산 삼익 비치 아파트의 색에서 영감 받은 ‘삼익 비치 에디션 에딧백’ (오) 부산 가이드북 〈edit Busan〉 Ⓒ바이에딧
— 바이에딧이라는 레이블 아래서 〈에딧 부산〉, 〈에딧 파스타 쿡북〉과 같은 활자가 살아 움직이는 책을 지속적으로 출간하셨어요. 패션 브랜드에서 지속적으로 책을 펴낸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종의 죄책감이었달까요. 바이에딧이 기대 이상으로 너무 큰 성공을 거뒀으니까요. 죽기 살기로 뛰어든 것도 아닌데 어쩌다 얻어걸려 쉽게 돈을 번다는 기분이 들었고, 받은 만큼 사회에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업하는 사람은 사회에 빚지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제가 아버지한테 받은 가장 중요한 지적 재산이에요.

ㅡ 그 생각이 에디터 출신으로서 가장 익숙한 방식인 책 만드는 일로 구현된 셈이네요.
‘나는 원래 책을 만들던 사람이야. 이게 오선희라는 사람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어’라고 나름 증명하려 애썼던 거죠.
낯선 도시에서 세운 출판의 기준



— 2018년에는 독립출판사 ‘포엣츠앤펑크스Poets & Punks’를 설립했습니다. 〈안주와 반주〉,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올해 신간 〈파티를 위한 파이팅〉까지 세 권의 책을 펴냈는데요. 도서를 기획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한국, 그리고 서울의 문화를 국제적인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요. 이 세 권의 책을 저는 음식, 건축, 음악으로 이어지는 ‘한국 3종 시리즈’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 문화가 가진 독특하고 고유한 특성을 가장 동시대적인 언어로 풀어내려고 하고요. 그저 외국 출판사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포엣츠앤펑크스만의 시선과 방향을 만들어가기 위해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 우정욱 셰프님의 레시피를 담은 〈안주와 반주〉를 처음 봤을 때, 무척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그저 유명 레스토랑 셰프를 섭외했다면 덜 재밌었을 거예요. 우정욱 선생님은 저에게 ‘1980년대 세련된 서울 엄마’라는 캐릭터로 다가오거든요. 그 특성을 부각하면서 내추럴 와인과의 페어링이라는 또 하나의 콘셉트를 더하면, 일반적인 요리책과는 조금 다른 책이 되지 않을까 기대한 거죠.

— 포엣츠앤펑크스를 설립한 무렵, 익숙한 한국을 떠나 런던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습니다. 새로운 시작의 장소가 런던이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나라에 대한 환상은 1998년 영국문화원이 뮤지션 윤상, 신해철과 함께 만든 런던 가이드북에서 시작된 것 같아요. 이후 여행과 출장으로 영국을 자주 찾았고, 데번Devon에서 어학연수를 하면서 ‘언젠가는 이곳에 정착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됐죠. 런던에만 오면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그곳은 제가 누구인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를 끊임없이 돌아보게 만든 도시예요.

자신만의 출판사를 꾸리겠다는 구상은 독립 문화의 토양이 깊은 런던으로 이주를 준비하면서 비로소 싹텄다. ⒸKIOSK
— 기존의 커리어를 뒤로한 채 머나먼 이국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선택이 두렵지는 않았나요?
제 나이대 사람들 보면 돈은 많은데 꿈은 없어 보이는 사람들 많아요. 저도 그렇게 될까 봐 두려웠어요. 배우 윤여정 선생님이 한창 잘나가던 시절에 결혼하고 10년 넘게 미국에서 살다 오신 적이 있거든요. 그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인생을 사는 순간이 꼭 필요하다고. 저도 어쩌다 보니 에디터 커리어 정점을 찍었을 때 영어 공부 해야겠다면서 어학연수를 다녀왔고, 바이에딧으로 최고 매출을 기록할 때 런던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어요. 저한테 정말 중요한 건 따로 있었던 것 같아요.

동시에 극단적인 취향 모두를 존중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포엣츠앤펑크스
— 별다른 기반과 네트워크가 없던 런던이라는 도시에서 새로운 출판사를 운영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무슨 책을 내고 어떤 콘텐츠를 선보여도 쉽게 외면받지는 않을 거라는 최소한의 자신감은 있었어요. 런던은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아카이브거든요. 어떤 소재든 콘텐츠로 풀어낼 수 있는 토양이 잘 갖춰져 있어요. ‘혹스턴 미니 프레스Hoxton Mini Press’ 같은 출판사만 봐도 〈London Green Spaces〉, 〈Queer London〉, 〈London Pubs〉 처럼 도시를 다양한 키워드로 세분화해 보여주잖아요. 거기서 영감을 얻어 ‘이렇게 탄탄한 토양에서 내가 가장 익숙한 한국 문화를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 오랜 시간 런던에서 지냈지만,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운 점도 있을까요?
응답이 빨리 오지 않는 게 가장 힘든 점 같아요. 런던에 온 지는 6년 정도 됐고, 팬데믹으로 집에만 머물렀던 시간을 빼면 실질적으로는 4년 정도 이곳에서 생활한 셈이죠. 그런데 이제야 조금씩 사람들과 연결고리가 생기고 있다는 걸 느껴요. 영국 사람들은 친절하지만 쉽게 마음을 열지는 않거든요. 누군가 아무리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내놓아도 처음에는 “그래서 당신은 누구죠?”라는 반응을 보이죠. 충분한 시간을 들여 관계를 쌓고 신뢰를 얻어야 비로소 로컬로 인정받고, 그때부터 진짜 교류가 시작돼요.
— 작고 새로운 시도에는 열려 있지만,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또 다른 시간과 과정이 필요한 셈이네요.
맞아요. 무언가를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관대하지만, 결과물 하나만으로 곧바로 관계 안에 받아들이지는 않아요. 무엇을 만들었는지만큼 그 사람이 어떤 태도로 얼마나 꾸준히 관계를 이어가는지를 중요하게 보는 것 같아요. 다만 그 시간을 쌓아갈 수 있도록 처음의 문턱은 기꺼이 낮춰주죠. 포엣츠앤펑크스 머천다이즈로 가드닝 재킷을 만들 때도 그랬어요. 한국에서는 회사 규모와 상관없이 공장에 제작을 맡기면 50개나 100개처럼 정해진 최소 수량을 맞춰야 하잖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최소 수량을 묻자 “네가 원하는 만큼”이라고 답하더라고요. 시작부터 완성된 가능성을 증명하라고 요구하기보다, 우선 해볼 수 있는 여지를 내주는 태도에서 큰 용기를 얻었어요.


웨스트 요크셔주 칼더 밸리 중심부에 위치한 ‘브리즈번 모스’의 고품질 면으로 50벌 한정 제작되었다. ©포엣츠앤펑크스
— 가드닝 재킷을 완성하는 과정에는 제작자뿐 아니라 아파트 이웃들도 함께했다고요.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관계를 맺어간 과정도 궁금합니다.
50벌 한정으로 제작하면서 재킷 안쪽 라벨에 주민들의 손글씨를 담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파트 이웃 50명에게 참여를 부탁했죠. 솔직히 누가 선뜻 응해줄까 걱정했는데, 그 시간이 무색하게 모두 흔쾌히 도와줬어요. 판매 수익의 일부를 동네 카페에 후원하겠다는 취지에도 공감해 주셨고요. 그 경험을 통해 이곳에서는 요청하고 돕는 일이 일방적인 호의가 아니라 관계를 시작하는 자연스러운 방식이라는 걸 배웠어요. 도움이 필요할 때는 괜히 주저하거나 스스로를 낮추지 말고, 당당하게 이야기하자고 생각하게 됐죠. 당시에는 꽤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과정마저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네요.(웃음)
한 권의 책이 확장되는 방식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팝업 서점으로, ‘The Manner of Girl’을 첫 번째 주제로 문을 열며 오선희답게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KIOSK
— 재작년에는 서울 북촌에 서점 ‘커리큘럼’을 오픈했습니다. 주제별 북 큐레이션뿐만 아니라 책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지는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하는 곳이죠. 당시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계셨는데, 서울에 서점을 열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원래는 런던에서 시작하려고 했어요. 갤러리의 성격을 갖춰 한국의 문학과 공예를 제대로 소개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2년 넘게 적당한 공간을 찾아 헤맸지만, 외국인이 런던에서 가게를 구하는 일은 예상보다 훨씬 어렵더라고요. 제가 너무 속상해하자 남자친구가 “서울에서 먼저 시작해보면 어떻겠냐”라고 제안했어요. 의욕이 사라지기 전에 빠르게 준비했고, 결국 삼청동에 먼저 문을 열게 됐습니다.

— 런던의 다양한 창작자와 브랜드를 지켜보며, 출판을 기반으로 다른 영역까지 확장하는 방식에 영감을 받은 사례가 있었나요?
예술과 패션, 음식을 아우르는 문화 잡지 〈LUNCHEON〉이 떠올라요. 건물 지하에는 매거진 오피스가 있고, 1층에는 매거진이 직접 운영하는 레스토랑 ‘The Yellow Bittern’이 자리하는데요. 이름에 걸맞게 점심 식사만 제공하고, 전화와 엽서로만 예약을 받는 독특한 곳이에요. 저 역시 길게 봤을 때, 궁극적으로는 이런 구조를 만들고 싶은 것 같아요. 출판사 사무실과 같은 건물 안에 우리가 만든 텍스트 기반의 콘텐츠를 더욱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거죠. 레스토랑이든 갤러리든, 출판을 중심에 두면 패션과 예술, 음식 등 여러 영역으로 유연하게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언젠가 런던에서도 커리큘럼을 만날 수 있는 걸까요?
그럼요. 런던에 커리큘럼을 여는 것이 제 최종 목표예요. 오늘도 인터뷰를 오면서 ‘언젠가는 이 동네에도 자리 잡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로컬과 브랜드 사이에서 작동하는 편집


— 지난 5월, 포엣츠앤펑크스는 런던 뉴잉턴 그린Newington Green의 정육점 ‘스텔라스Stella’s’와 협업한 머천다이즈를 선보였습니다. 단골 가게와의 인연이 하나의 프로젝트로 이어진 계기가 궁금했어요.
제가 사는 뉴잉턴 그린은 지금 런던에서 가장 힙한 동네 중 하나예요. 이곳의 개성 있는 가게들과 무언가 함께해 보고 싶던 차에, 평소 단골로 다니던 스텔라스에 먼저 제안했죠. 예전에는 자체 굿즈를 만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작을 중단한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기획과 제작, 공급까지 맡을 수 있으니 다시 한번 함께 만들어보자”고 했더니 제안을 무척 반갑게 받아들였어요. 저 역시 이 프로젝트를 당장의 매출을 위한 협업으로 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로컬과의 연결고리를 이어 가며 새로운 콘텐츠를 시도하고, 포엣츠앤펑크스가 동네 안에 자연스럽게 뿌리내리기 위한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했죠.


(왼) 런던 치즈 전문점 ‘Jumi Cheese’ (오) 런던 펍 ‘The Pocket’ ⒸHAZZYS
— 국내 의류 브랜드 헤지스HAZZYS의 에디토리얼 ‘HAZZYS Ordinary People’의 기획과 디렉팅도 맡았습니다. 런던 로컬의 얼굴을 브랜드 콘텐츠로 담아낸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헤지스 팀과 우연히 미팅할 기회가 있었고, 그 자리에서 제가 먼저 제안한 아이디어였어요. 브랜드가 지향하는 ‘British Heritage’를 2층 버스나 빨간 공중전화 부스처럼 익숙한 상징물 대신, 지금 런던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보여주면 어떻겠냐고 했죠. 정육점 ‘Stella’s’, 치즈 전문점 ‘Jumi Cheese’, 펍 ‘The Pocket’, 레스토랑 ‘Trullo’ 등 제가 평소 단골로 찾거나 네트워크를 통해 알게 된 공간과 사람들을 섭외했고, 브랜드 측에서도 무척 만족해 주셨어요. 한정된 예산 안에서 이런 로컬을 섭외하는 일은 현지에서 꾸준히 관계를 쌓아오지 않았다면 쉽지 않거든요. 그동안 런던에서 만든 연결고리가 브랜드 콘텐츠의 차별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작업이었죠. 앞으로는 이런 프로젝트를 규모와 깊이 모두 한층 확장해 보고 싶어요.


마그마라는 세계와 에너지를 전달하기 위해 국적과 시대를 넘나드는
자동차 서적과 서예, 사운드 아트, 건축, 미술, 시집 등으로 큐레이션을 완성했다. ⒸSunhee Oh
— 서점 ‘커리큘럼’을 기반으로 외부 북 큐레이션 컨설팅도 활발하게 하고 계시죠. 특정 브랜드를 위한 책장을 기획하고 완성하는 과정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프로젝트의 목적과 방향성을 충분히 공유받는 데서 시작해요. 브랜드가 제시한 콘셉트와 테마에 맞춰 책을 구성하고, 실제로 공간에 놓을 수 있도록 확보하는 과정까지 이어지죠. 하나의 테마도 특정 장르에 한정하지 않고 여러 방향으로 확장해 생각하는 편이에요. 만화부터 시집까지, 동시대 국내 도서부터 고전 문학까지 시야를 넓히면 선택지는 무궁무진하거든요. 어떤 책을 소개할지 결정하는 것만큼 실제 책을 찾아 나서는 과정도 중요해요. 그런 점에서 런던은 더할 나위 없는 도시죠. 자동차 관련 서적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중고 서점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 적도 있어요.


<POPEYE> 매거진 1987년 한국 특집호부터 1960년대 미국에서 유통된 오랜 한식 요리책까지 한데 모았다. ⒸSunhee Oh
— 최근 국내 최대 규모로 재탄생한 유니클로UNIQLO 명동점의 북쉘프 〈서울, 명동을 읽는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방문객들이 꽤 오랫동안 머물며 책을 살펴보더라고요.
유니클로와는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춰왔어요. 제가 ‘북 큐레이터’라는 역할을 본격적으로 밀고 나가도 되겠다는 확신을 갖게 해준 클라이언트이기도 하죠. 이번 작업은 단순히 흥미로운 책장을 만드는 것 이상의 사명감으로 접근했어요. 유니클로 명동점이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서울과 한국의 맛과 멋을 보여줘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거든요. 모든 스태프가 그 방향성을 공유하며 함께 책장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 자체가 참 즐거웠죠.
— 한국과 서울을 다루는 도서로 어떤 책들을 소개하셨나요?
박완서 작가의 소설과 황인숙 시인의 에세이, 사진가 한영수의 사진집에서는 그 시절 서울 풍경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고요. 1987년에 발행된 매거진 <POPEYE>의 한국 특집호와 1960년대 미국에서 유통된 오래된 한식 요리책도 어렵게 구해 함께 비치했어요. 요리책에 관련된 재밌는 스토리가 있는데요. 1977년 재미교포로 추정되는 분이 구매해 누군가에게 선물한 책이었나 봐요. 책 사이 끼워진 정성스러운 손 편지가 정말 좋았는데, 조명받지 못할까 괜한 염려가 됐었거든요. 다행히 유니클로 팀에서 센스를 발휘해 별도로 프레임에 넣어 전시해 두었더라고요. 이럴 때 협업하는 즐거움과 짜릿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 신간 〈파티를 위한 파이팅〉을 알리는 활동도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이어지고 있죠. 독자들과는 어떤 자리에서 만나고 있나요?
런던 소호의 복합 문화 공간 ‘ROVR’와 드 보부아 타운De Beauvoir Town에 있는 사운드 펍 ‘Godet’에서 출간 기념 이벤트를 진행했어요. 오는 10월 말에는 서울레코드페어에 셀러로 참여할 예정이고요. 런던에서 먼저 선보인 책을 서울의 독자들에게 직접 소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 역시 기대가 커요. 하나의 책이 두 도시에서 서로 다른 사람과 장면을 만나며 확장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 앞으로 포엣츠앤펑크스와 커리큘럼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고 확장할까요? 고유한 색을 지키면서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지점도 궁금합니다.
‘포엣츠앤펑크스’와 ‘커리큘럼’이 가진 역량을 하나의 구조로 연결하고 싶어요. 자체적으로 텍스트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고, 주제에 맞는 책을 큐레이션해 제안하는 역량도 갖추고 있죠. 여기에 ‘출판 네트워크’와 ‘런던’이라는 시장도 있고요. 이런 강점을 바탕으로 책을 중심에 둔 크리에이티브 아이디어와 솔루션을 여러 기업과 브랜드에 제공하고 싶어요. 자체 출판물을 만드는 일과 외부 컨설팅이 서로를 지탱하는 구조를 구축하는 거죠. 출판사와 서점을 기반으로 에디토리얼 콘텐츠와 북 큐레이션, 공간과 이벤트 기획까지 확장하되, 우리가 가진 관점과 색은 잃지 않는 것이 목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