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의 소설로 익숙한 ‘오리엔트 익스프레스Orient Express’는 허구의 무대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100여 년 전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던 장거리 열차였다. 동유럽과 서유럽을 잇는 여정 속에서 이 열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공간으로 기능했다. 오늘날로 이어진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럭셔리 경험을 더해 기차 여행의 낭만을 완성한다.
20세기 초 유럽의 럭셔리 헤리티지를 안고 달리는 열차
20세기 초, 유럽 대륙을 횡단하던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열차는 소설과 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할 만큼, 상류층의 낭만적인 여행 중 하나로 여겨졌다. 국경을 건너는 장거리 여정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경험이 됐다. 침대칸과 식당칸, 살롱칸을 갖춘 열차는 서두르지 않는 리듬 속에서 식사와 사교가 이뤄지면서 호텔을 옮겨놓은 듯한 호화로움을 자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재정비된 철도망과 함께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전성기를 맞으며 유럽 횡단의 상징으로 상류층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과 항공 산업의 성장 속에서 이동의 기준이 속도로 전환되며, 1977년을 끝으로 운행을 멈췄다.
‘비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졌던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의 낭만은 오래지 않아 복원됐다. 럭셔리 호스피탈리티 기업 벨몬드Belmond의 창립자 제임스 셔우드James Sherwood는 유럽 곳곳에 흩어졌던 1920~1930년대에 제작된 고급 객차를 수집해 1982년,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를 되살렸다. 당시의 아르데코 디자인을 복원하고, 현대적 운영 시스템을 결합해 럭셔리라는 콘셉트는 유지하면서 경험에 무게를 둔 ‘베니스 심플론-오리엔트-익스프레스Venice Simplon-Orient-Express’를 선보였다. 현재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라는 이름을 따르는 노선을 여러 개지만, 벨몬드는 오리지널 객차를 복원해 본래의 맥락을 이어간다는 차별점이 있다. ‘심플론’이라는 명칭 역시 과거 노선의 주요 경로에서 비롯됐다. 프랑스 파리에서 스위스 로잔, 이탈리아 밀라노를 거쳐 베네치아로 이어지는 노선은 알프스를 관통하는 심플론 터널을 포함하는데, 이는 20세기 초반 오리엔트 익스프레스가 달리던 대표 경로 중 하나였다. 역사적 루트의 흐름을 여정에 반영해 객차뿐 아니라 노선과 이동 방식까지 원형을 계승한다.



지금의 노선은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이동의 순간까지 여행의 일부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재구성됐다. 고정된 경로 대신 기존 루트를 기반으로 여러 도시를 조합하며, 시즌마다 다른 흐름을 따른다. 심플론 루트의 중심 구간인 파리 – 베네치아는 1박 2일 동안 프랑스의 평야와 스위스의 호수,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북부까지 이어지는 풍경을 한 번에 경험하는,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의 정체성을 응축한 ‘클래식’ 여정이다. 파리 – 이스탄불 노선은 약 6일에 걸쳐 유럽을 횡단하는 장거리 여정으로, ‘대륙 횡단’의 의미를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1년에 1~2회 운행하는 이벤트성 루트로, 제한된 기회만큼 상징성과 밀도가 강조된다. 다가올 5월부터는 파리 – 아말피 해안 노선이 신규 운행되는데, 열차에서의 1박과 목적지에서의 2박을 결합해 이동 이후의 체류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간다.
아르데코 위에 더해진 현대적 럭셔리



그러다 2018년 LVMH 그룹이 벨몬드를 인수하면서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의 경험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열차를 중심으로 호텔, 와인, 다이닝, 패션 등 그룹 내 요소들이 연결되며, 여정이 하나의 연속된 경험으로 설계됐다. 또한 프리미엄 럭셔리를 강조해 ‘그랜드 스위트’ 객실을 도입한 점도 눈에 띈다. 다이닝 역시 셰프 협업을 통해 식사 이상의 경험으로 재구성되었다.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과거의 형식을 재현하는 데서 나아가, 그 위에 현대적 럭셔리를 덧입히며 현재의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객실은 캐빈부터 스위트, 그랜드 스위트까지 다양하게 구성되며, 객차는 모두 1920~1930년대 제작된 차량을 기반으로 한다. 역사적 구조를 유지한 채 복원된 공간 위에 현대적 감각을 더한 것이다.





한편 ‘로브세르바투아르L’Observatoire’는 객차 한 칸 전체를 하나의 공간으로 구성한 단일 스위트로, 프랑스 출신의 아티스트 JR과의 협업을 통해 완성됐다. 고정된 장소와 도시 공간을 새로운 이미지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이어온 그는 열차를 하나의 서사를 품은 공간으로 전환시킨다. 침실과 라운지, 욕실, 서재를 포함한 이 객차는 독립된 구조를 형성해 열차 안에 마련된 독립 레지던스에 가깝다.
인테리어는 역시 아르데코 양식을 기반으로, 설계 과정에서 원형 객차의 도면과 사진, 관련 아카이브를 참고했다. 당시 열차 제작에 목재 인테리어와 가구 디자인으로 참여한 르네 프루René Prou, 식당칸과 살롱칸에 설치된 유리 공예를 제작했던 르네 랄리크René Lalique 등 과거 디자이너들이 남긴 디테일을 바탕으로 공간을 재구성했다. 부드러운 곡선을 중심으로 설계된 내부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열차의 움직임을 연상시키고, 정교한 목재 세공과 스테인드글라스, 대리석 욕조 등 곳곳에 공예적 요소를 강조해 객차에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더한다.
여정을 따라 움직이는 미식 경험


(오) 그린 컬러를 테마로 클래식한 분위기를 만드는 에투알 뒤 노르 식당칸


다이닝은 단순히 창밖의 풍경을 배경으로 삼은 식사 이상의 경험을 선사한다. 메뉴 구성은 미쉐린 스타 셰프 장 앵베르Jean Imbert가 총괄해, 디올Dior 등과 협업하며 프렌치 미식을 다양한 플랫폼으로 확장해 온 그의 감각이 반영됐다. 메뉴는 고정된 시그니처를 따르기보다, 프렌치를 기반으로 여정과 계절에 따라 미식의 코스를 달리한다. 열차가 지나가는 이동 경로에 따라 각 지역의 제철 식재료를 활용하며 ‘움직이는 미식’을 선보인다. 저녁이 깊어지면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바 칸으로 옮겨진다. 객차 번호에서 이름을 딴 ‘바 3674Bar 3674’에서는 그랜드 피아노 연주가 공간을 채우고, 낮 동안 이어지던 이동의 리듬에 칵테일 한 잔이 더해지며, 여유로우면서도 밤의 활기를 담은 속도로 전환된다.


(오) 목재를 중심으로 디자인된 우드톤 인테리어로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로리앙탈 식당칸
식당칸은 세 개의 객차로 나뉜다. 에투알 뒤 노르Étoile du Nord는 1920~1930년대 파리와 암스테르담을 잇던 열차의 이름을 이어받았다. 짙은 색감의 목재와 기하학적 패턴이 강조된 아르데코 인테리어가 클래식한 분위기를 완성한다. 코트다쥐르Côte d’Azur는 르네 랄리크가 제작했던 오리지널 열차의 유리 패널이 보존돼,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빛에 따라 다른 무드를 만들며, 마지막 공간인 로리앙탈L’Oriental은 상대적으로 어두운 톤의 목재와 섬세한 장식이 중심을 이룬다. 곡선과 디테일이 강조된 구성은 색다른 공간감을 만들어낸다. 식당칸은 객실을 기준으로 배정되지만, 여정에 따라 여러 공간을 순환하며 경험하도록 조정되기도 한다.
열차 밖, 여유로운 휴양으로 여행의 마침표



열차에서의 경험이 목적지에서까지 이어지도록, 벨몬드는 체류 여정을 함께 설계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8년 LVMH의 인수 이후 이러한 흐름은 하나의 전략으로 정착했다. 열차 안의 경험이 호텔과 도시로 연장되며, 이동과 머무름이 하나의 흐름 안에서 작동하도록 구성된다.
약 6일에 걸친 파리 – 이스탄불 여정은 중간 도시에서 숨을 돌린다. 부다페스트나 빈 등 주요 도시에서 하차해 하루 이상 머무르는데, 이때의 숙박 역시 열차의 배경이 되는 20세기 초 유럽 미학을 반영한 공간으로 연결된다. 부다페스트 그레셤 궁전Gresham Palace의 포시즌스Four Seasons 호텔처럼 아르데코 디자인의 맥락을 공유한다. 음악 공연, 디너 갈라 등이 포함된 체류 프로그램을 즐긴 뒤 다시 열차에 탑승해 이동과 머무름이 하나의 결을 따른다.
파리 – 아말피 노선은 보다 밀도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열차에서의 1박 이후, 라벨로Ravello 지역에 위치한 벨몬드 호텔 카루소Belmond Hotel Caruso에서 머물며 여행의 새로운 챕터가 열린다. 11세기에 지어진 궁전의 벽화와 구조를 현재의 감각으로 재해석해, 아말피 해안의 역사를 그대로 안고 있는 장소에서 음악 공연과 갈라 디너가 진행된다. 또한 보트 투어와 폼페이 유적 방문,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쿠킹 클래스 등 지역의 맥락을 반영한 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다. 이 여정은 짧은 휴가가 아닌, 한 도시에 여유롭게 머무르며 휴식을 즐기는 이탈리아의 휴양 문화 ‘빌레지아투라Villeggiatura’를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한 방식이다. 여정은 나폴리 기차역이나 공항으로 이어지는 VIP 이동 서비스로 마무리된다.

Editor’s Comment
베니스 심플론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이동의 기능을 넘어, 기차 여행의 낭만과 럭셔리 여행을 하나로 결합한다. 20세기 초의 미학과 오늘의 럭셔리가 교차하며, 단순한 휴양이 아닌 경험을 중심으로 설계된 여행을 제안한다. 이 열차가 말하는 럭셔리는 더 빠르게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를 어떻게 채우는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