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버려진 산업 유산의 미학적 환생, 무덱과 폰다지오네 프라다

2015년 밀라노 엑스포가 열리던 해, 도시 남쪽의 오래된 공장 지대에서 두 개의 공간이 나란히 문을 열었다. 하나는 밀라노 시가 국제 공모를 통해 15년 만에 완성한 시립 박물관 '무덱'이고, 다른 하나는 패션 하우스가 사유지에 세운 예술 재단 '폰다지오네 프라다'다. 두 곳 모두 20세기 초 산업 시설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점은 같지만, 들여다보면 정반대의 논리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뚝뚝한 회색빛 건물은 안으로 들어설수록 투명하게 열려 있고,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건물은 외부와 거리를 둔 채 자신들만의 독립적인 세계를 공고히 유지하고 있다.

Editorial

버려진 산업 유산의 미학적 환생, 무덱과 폰다지오네 프라다

2015년 밀라노 엑스포가 열리던 해, 도시 남쪽의 오래된 공장 지대에서 두 개의 공간이 나란히 문을 열었다. 하나는 밀라노 시가 국제 공모를 통해 15년 만에 완성한 시립 박물관 '무덱'이고, 다른 하나는 패션 하우스가 사유지에 세운 예술 재단 '폰다지오네 프라다'다. 두 곳 모두 20세기 초 산업 시설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점은 같지만, 들여다보면 정반대의 논리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뚝뚝한 회색빛 건물은 안으로 들어설수록 투명하게 열려 있고,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건물은 외부와 거리를 둔 채 자신들만의 독립적인 세계를 공고히 유지하고 있다.

Editorial

버려진 산업 유산의 미학적 환생, 무덱과 폰다지오네 프라다

2015년 밀라노 엑스포가 열리던 해, 도시 남쪽의 오래된 공장 지대에서 두 개의 공간이 나란히 문을 열었다. 하나는 밀라노 시가 국제 공모를 통해 15년 만에 완성한 시립 박물관 '무덱'이고, 다른 하나는 패션 하우스가 사유지에 세운 예술 재단 '폰다지오네 프라다'다. 두 곳 모두 20세기 초 산업 시설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점은 같지만, 들여다보면 정반대의 논리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무뚝뚝한 회색빛 건물은 안으로 들어설수록 투명하게 열려 있고,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건물은 외부와 거리를 둔 채 자신들만의 독립적인 세계를 공고히 유지하고 있다.

*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공간을 이해하려면 건축가의 사유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무덱MUDEC(Museo delle Culture)을 설계한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는 ‘모든 건물은 시민적 행위’라고 믿는 건축가다. 공간은 반드시 도시에 무언가를 이바지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기에 그는 형태보다 장소의 맥락을 우선했다. 과거를 지워내지 않고 그 위에 현재의 시간을 조심스럽게 쌓아 올렸다. 반면 폰다지오네 프라다Fondazione Prada의 렘 콜하스Rem Koolhaas는 조금 더 복잡한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그는 현대 건축이 자본주의와 결합하며 본질을 잃어가는 과정을 비판해 왔다. 그는 철학 없이 냉방 장치와 에스컬레이터로 유지되며 끊임없는 소비만을 유도하는 영혼 없는 공간을 ‘정크 스페이스Junk space’라 불렀다. 박물관 같은 공공건물마저 쇼핑 센터화 되어가는 현실을 지적하던 그가, 자본주의의 가장 노골적인 상징인 ‘금’을 건물 하나에 입혔다는 사실은 이 글의 흥미로운 시작점이 되었다. 이 금박의 역설은 ‘금박이 페인트보다 유지비가 싸다’라는 지극히 경제적인 논리 위에 있다. 자본주의적 공간을 혐오하지만 가장 자본주의적인 재료를 사용한 건축가. 이 아이러니가 렘 콜하스를 이해하는 매력적인 키워드이자, 밀라노의 이 장소를 즐기는 재미있는 포인트다.

어두운 외관의 공공 공간, 무덱

Museo delle Culture ⒸOskar Da Riz

무덱의 첫인상은 투박한 회색빛 금속 패널로 이루어진 네모난 덩어리 같다. 흔한 간판이나 유리창조차 거의 없어, 밖에서 보아서는 이곳이 박물관인지 여전히 가동 중인 공장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러한 모호함은 건축가의 철저한 의도였다. 치퍼필드는 기관차와 전차를 생산하던 이 땅의 시간을 함부로 삭제하고 싶지 않았기에, 신축 건물임에도 기존 공장 부지와 같은 티타늄 패널로 마감하여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일부러 흐릿하게 만들었다. 이는 정돈된 외벽 뒤로 안뜰이 숨겨져 있는 밀라노 특유의 공간 구조를 계승한 것이기도 하다. 차가운 외벽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The central hall at Museo delle Culture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지붕이 유리로 덮인 거대한 중정, ‘아고라Agorà’다. 네모난 금속 박스 안에 숨겨진 꽃잎 모양의 투명한 유리 온실을 두고 치퍼필드는 이를 ‘안뜰 안의 안뜰A court within a court’이라 불렀다. 이러한 구조는 공간이 도시에 기여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과 닿아 있다. 갤러리들이 중심 공간을 고리 형태로 둘러싸고 있어 관람객은 언제든 다시 아고라로 돌아올 수 있으며, 공간 자체가 하나의 나침반이 된다.

Museo delle Culture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무덱의 주인은 밀라노 시와 시민들이다. 과묵한 회색 건물은 밤이 되면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밤에 피는 꽃처럼 내부의 유리 랜턴이 환하게 빛을 발하면, 이 어두운 상자는 도시를 밝히는 따뜻한 광장으로 변모한다. 한 가지 뒷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치퍼필드는 정작 무덱의 개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가 2년간 지적하며 예산을 자비로 보태겠다고까지 한 바닥 시공 하자를 밀라노 시가 해결하지 않은 채 엑스포 일정에 맞춰 개관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Giovanni Leioni, David Chipperfield, Giuseppe Zampieri 〈MUDEC Museo delle Culture〉 ⒸDavid Chipperfield Architects

화려한 외피 속에 구축된 감각의 요새, 폰다지오네 프라다

Fondazione Prada ⒸFondazione Prada

폰다지오네 프라다는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보는 이를 압도한다. 4층짜리 증류소 창고였던 낡은 건물의 벽 전체를 장인들이 한땀 한땀 24캐럿 금박으로 덮은 ‘헌티드 하우스Haunted House’가 시선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이름도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가 직접 붙였다. 설계팀인 OMA는 페인트부터 타일까지 수많은 마감재를 고민한 끝에 결국 금을 택했다. 선택의 이유가 흥미로운데 금은 부식되지 않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칠을 새로 해야 하는 페인트보다 훨씬 경제적이라며 프라다 재단을 설득했다. 결국 이 황금 건물은 ‘가장 낡은 것 위에 가장 화려한 것을 덧입히는’ 렘 콜하스식 재해석이자 공간의 가치를 뒤집어버리는 예술 행위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헌티드 하우스 맞은편에는 정반대의 논리로 세워진 ‘시네마Cinema’ 건물이 서 있다. 표면 전체가 거울로 덮여 문을 닫으면 주변 풍경을 반사하며 스스로 존재를 지워버린다. 황금빛으로 시선을 끄는 건물 바로 옆에 사라지도록 설계된 건물을 놓은 것은 쿨하스의 전략이 선명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제각각인 공간들을 공존시켰다.

Fondazione Prada ⒸFondazione Prada

올라갈수록 천장이 1미터씩 높아지는 60미터 높이의 백색 타워 ‘토레Torre’, 웨스 앤더슨 감독이 1950~1960년대 밀라노 카페를 완벽하게 재현한 ‘바 루체Bar Luce’까지. 이 화려한 풍경들은 프라다의 소유이기에 가능했다. 입장료가 있고, 이곳의 컬렉션은 미우치아 프라다가 그간 모아온 사유 예술품들이다. 특히 헌티드 하우스는 예약제로 가장 화려하고 가장 폐쇄적이다.

같은 해, 같은 도시, 다른 논리

밀라노의 남쪽 공장 지대의 버려진 공간은 나란히 문을 열었지만, 되살아나는 방식은 서로 달랐다. 건물이 도시에 기여하길 바랐던 치퍼필드의 무덱은 자세를 낮춰 시민들을 향해 열렸고, 서로 다른 가치들이 만들어내는 충돌을 즐기는 쿨하스의 폰다지오네 프라다는 독립적인 세계를 구축한 채 선별된 이들을 맞이한다. 결과적으로 어떤 건물은 도시가 공유하는 기억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컬렉터의 아름다운 유산이 되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 때 이 두 곳을 함께 걸어본다면, 건축가의 사유가 도시의 한 영역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그 속에 담긴 태도의 차이에 대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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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함이라는 가업, 계승되는 천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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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산업 유산의 미학적 환생, 무덱과 폰다지오네 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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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요크의 시각적 유산, 그 궤도를 수놓은 비주얼리스트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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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찰나를 포착했던, 하이엔드 포인트 앤 슛 카메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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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빙 펜에서 더 로우까지, 비워냄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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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구아다니노가 그린, 에로스와 타나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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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은 빈 방에서 태어난다, 도널드 저드와 릭 루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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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들의 영혼을 깨운 무구한 사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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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스카르파와 아바텔리스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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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실재가 빚어낸 초현실의 미학

13

아름다운 제약, 상상력을 붙잡아두는 창조의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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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법, 움베르토 에코의 웃음

11

오카자키 쿄코와 도시적 에로티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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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라는 완벽한 질서, ‘우연 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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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흔적을 지우는 기술, 스프레차투라에 대하여

08

미완성과 우연의 초상, 〈휘슬재킷〉

07

악의 미학을 위한 클래식

06

손의 여운, 사물이 살아 있는 시간: 루시엔 데이와 마가렛 호웰

05

첫 권의 문학: 세계를 여는 방식에 대하여

04

연옥 단계의 클래식

03

호모 콜렉투스 – MoMA가 수집한 사물들

02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시지프의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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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오키프와 마이크로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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