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3일간의 코펜하겐 디자인 산책, ‘3daysofdesign 2026’ 리뷰

2013년 소규모 전시로 시작해 현재 400여 개 브랜드가 참여하는 북유럽 대표 디자인 축제로 성장한 3daysofdesign. 올해는 6월 10일부터 12일까지 코펜하겐 전역에서 열리며 북유럽 디자인 허브로서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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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간의 코펜하겐 디자인 산책, ‘3daysofdesign 2026’ 리뷰

2013년 소규모 전시로 시작해 현재 400여 개 브랜드가 참여하는 북유럽 대표 디자인 축제로 성장한 3daysofdesign. 올해는 6월 10일부터 12일까지 코펜하겐 전역에서 열리며 북유럽 디자인 허브로서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Editorial

3일간의 코펜하겐 디자인 산책, ‘3daysofdesign 2026’ 리뷰

2013년 소규모 전시로 시작해 현재 400여 개 브랜드가 참여하는 북유럽 대표 디자인 축제로 성장한 3daysofdesign. 올해는 6월 10일부터 12일까지 코펜하겐 전역에서 열리며 북유럽 디자인 허브로서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3daysofdesign의 가장 큰 특징은 여타의 디자인 축제처럼 거대한 전시장이나 단일한 중심 베뉴에 기대지 않는다는 점이다. 쇼룸과 갤러리, 박물관, 거리와 항구를 따라 도시 곳곳을 무대로 삼고, 디자인에 관심 있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이러한 개방성과 평등한 접근성은 이 축제가 눈부신 성장을 이룬 중요한 동력으로 손꼽힌다. 올해의 주제는 ‘이 순간을 의미 있게(Make This Moment Matter)’. 더 많이 만들고 소비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왜 선택하고 만드는지 묻는 태도는 축제 전반에 깊이 스며 있었다. 2026년 여름, 코펜하겐 곳곳에서 디자인의 현재를 더욱 의미 깊게 만든 여덟 가지 하이라이트를 소개한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의 장

ⒸStefania Zanetti
ⒸGio Staiano

코펜하겐에서 6월은 디자인의 계절이다. 운하와 항구, 역사적인 건축물과 현대적인 쇼룸 사이로 전시와 만남이 이어지고, 관람객은 거대한 전시장에 들어서는 대신 도시를 걸으며 디자인을 경험한다. 3daysofdesign이 여타의 디자인 축제와 구별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컨벤션 센터나 단일한 중심 베뉴에 집중하는 방식이 아닌, 코펜하겐 전역을 거점으로 삼는다는 것.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문을 열고 들어가 보고, 앉아 보고, 대화하며, 일상에 스며든 디자인을 발견할 수 있다. 민주적이면서 동시에 포용적인, 모두에게 열린 디자인 축제라는 정체성은 3daysofdesign을 북유럽을 대표하는 디자인 플랫폼으로 성장시킨 가장 중요한 근간이다.

ⒸStefania Zanetti
ⒸMatteo Bellomo

소규모 전시에서 북유럽 대표 페스티벌로 성장하기까지

사실 3daysofdesign은 처음부터 거대한 페어가 아니었다. 2013년, 코펜하겐에는 도시를 대표할 만한 디자인 축제가 부재했다. 그 공백을 감지한 몬타나Montana, 에릭 요르겐센Erik Jørgensen, 앙커앤코Anker & Co, 크바드라트Kvadrat 총 네 개의 덴마크 브랜드는 노르하운Nordhavn의 오래된 창고에서 작은 전시를 열었다. 항구를 바라보는 창고 지구의 조용한 실험은 해마다 도시 안으로 스며들었고,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지금 3daysofdesign은 코펜하겐 전역을 디자인 쇼케이스로 바꾸는 북유럽 대표 축제로 성장했다. 이제 수백 개 브랜드의 전시와 신제품 발표가 이어지고, 전 세계에서 수만 명의 방문객이 모여든다. 리빙 브랜드 네 곳이 만든 작은 틈은 이제 코펜하겐 전체를 디자인으로 연결하는 거대한 장이 되었다.

디자인의 본질을 향한 질문

매년 하나의 테마를 선정해 축제의 방향을 제시해 온 3daysofdesign. 올해 주제인 ‘이 순간을 의미 있게Make This Moment Matter’는 과거의 유산과 미래의 가능성 사이에서, 디자인이 가장 깊이 바라봐야 할 순간은 결국 현재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는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소비하는 흐름에서 벗어나, 지금 무엇을 왜 만들고 선택할 것인지 묻는 태도와 맞닿아 있었다. 디자인의 지속 가능한 유산, 재료와 제작 방식의 책임, 공동체와 웰빙에 대한 고민은 축제 곳곳에서 다양한 전시와 대화로 이어졌다. 올해 3daysofdesign은 덴마크 디자인의 현재를 보여주는 동시에, 앞으로의 디자인 커뮤니티가 어떤 가치와 태도를 공유해야 하는지 묻는 성찰의 장의 역할을 맡았다.

ⒸStefania Zanetti

여덟 개의 디자인 디스트릭트 그리고 커뮤니티

올해 3daysofdesign을 읽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커뮤니티’였다. 새롭게 마련된 프로그램 ‘롱 테이블 디너Long Table Dinners’은 그 방향을 가장 잘 보여줬다. 루프 탑과 운하, 보트, 정원 등 전시와 행사가 진행되는 지역들의 장소성을 살린 공간에서 긴 테이블에 함께 앉아 식사를 나눴고, 디자이너와 브랜드, 취재진와 방문객들은 자연스럽게 교류했다. 디자인이 단지 전시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나누고 교환하는 문화임을 보여준 자리였다.

ⒸAndreas Aicka Thomsen

엔터링 더 나우 심포지엄Entering the Now, 디자인 뮤지엄 덴마크Design Museum Denmark에서 열린 디자인 카운슬 살롱Design Council Salon, 다양한 디자인 토크와 워크숍도 축제의 밀도를 더했다. 의견을 나누고 질문을 이어가는 시간 속에서 3daysofdesign은 덴마크 사회의 신뢰 기반 커뮤니티가 디자인 문화로 확장되는 방식을 보여줬다.

3daysofdesign이 처음이라면, 여덟 개의 디자인 디스트릭트(Design Districts)를 따라 동선을 짜볼 것을 권한다. 왕실과 문화 기관이 밀집한 프레데릭스스타덴(Frederiksstaden), 광장과 극장, 샤를로텐보르 궁전을 품은 콩엔스 뉘토르(Kongens Nytorv), 옛 해군 기지의 흔적과 현대 디자인 브랜드가 공존하는 홀멘(Holmen), 산업 항구에서 신도시로 변모 중인 노르하운(Nordhavn) 등 각 지역은 저마다 다른 흥미로운 장소성을 지닌다. 

2026년 여름, 코펜하겐이라는 도시를 따라가며 마주한 여덟 개의 하이라이트 전시를 소개한다.

넥스트 디자인을 향한 무토의 비전

ⒸMuuto

코펜하겐 중심부 외스테르가데Østergade에 자리한 무토Muuto의 쇼룸은 올해 3daysofdesign의 열기를 가장 활발히 체감할 수 있는 장소였다. 쉴 새 없이 흘러드는 관람객의 분주한 흐름 속에서 무토가 꺼낸 질문은 명확했다. 창립 20주년을 맞은 지금,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무토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다음 장Next Chapters in Scandinavian Design’이라는 제목 아래, 브랜드가 바라보는 미래를 차분히 펼쳤다.

가장 눈에 띈 것은 20주년을 기념해 선보인 ‘넘버드 에디션 디자인Numbered Edition Designs’이었다. 그중 코펜하겐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 ‘스페이콘Spacon’의 ‘클로즈 투 하트 체어Close to Heart Chair’는 압출 알루미늄의 정교한 구조 안에 작은 하트 모양의 연결부를 숨긴 조각적인 스타일의 의자였다. 차갑고 합리적인 소재와 구조가 예기치 않은 온기로 전환되는 순간이 이 작품의 핵심이었다. 지난해 드림 뷰 벤치Dream View Bench로 주목받은 디자이너 리세 베스터Lise Vester의 ‘이너 뷰 오브젝트Inner View Object’도 만날 수 있었다. 성찰과 회복의 디자인을 탐구해 온 그의 태도는 이번 작품에서도 이어졌다. 무라노에서 입으로 불어 제작한 유리 오브제는 빛과 반사를 따라 시선을 겹겹이 확장하며, 자신을 다시 바라보도록 이끌었다.

무토의 디자인 콘테스트Muuto Design Contest 수상작도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중 인상적인 작품은 대상에 오른 한국인 디자이너 김기현의 ‘APSA Piece of Seating’이었다. 하나의 스툴을 반복되고 공유되며 새롭게 배열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라본 이 작품은 일상 속 작은 가구가 어떻게 관계와 사용의 방식을 확장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이외에도 밀라노 기반 디자이너 가브리엘라 모조Gabriella Mozo의 ‘이로전 컨테이너Erosion Container’, 파리 기반 디자이너 쥘 샤르베Jules Charvet의 ‘코르크 스툴’도 함께 소개되며, 무토가 차세대 디자이너를 통해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어떻게 탐색하고 있는지 보여줬다.

사운드로 경험한 프리츠한센의 장인 정신

올해 프리츠한센Fritz Hansen은 전시장을 작은 리스닝 클럽으로 탈바꿈시켰다. 전시 제목은 〈사운드 클럽Sound Club〉. 일본 오디오 브랜드 ‘테크닉스Technics’와 함께 선보인 이 프로젝트는 사운드를 매개로 가구와 조명, 소재가 공간의 분위기를 어떻게 바꾸는지 탐구했다. 전시는 리스닝 라운지와 리스닝 바, 플래그십 스토어를 따라 이어졌다. 라운지에 들어선 방문객은 프리츠한센의 좌석에 몸을 맡긴 채 새롭게 공개된 팟캐스트를 감상할 수 있었다. 인접한 리스닝 바에서는 버건디 컬러의 테크닉스 턴테이블과 한정판 카이저 이델KAISER idell™ 램프가 낮은 조도 아래 아날로그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코트야드에서도 사운드 클럽은 계속됐다. 라이브 DJ 세션이 흐르고, 방문객들은 아웃도어 가구에 앉아 베이커리와 음료를 곁들이며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는 가구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도구’와 ‘소재’의 소리를 배경으로 2026 가을 신제품이 공개됐다. 카이저 이델의 새로운 모델, 세실리에 만즈Cecilie Manz의 업데이트 디자인, 넨도nendo가 확장한 N02™ 리사이클 시리즈, 새롭게 해석한 슈퍼엘립스Superellipse™ 등이 그 주인공이었다. 올해 프리츠한센은 디자인이 형태와 물성 뿐 아니라 리듬과 기억, 감각으로도 완성된다는 사실을 선명히 일깨웠다.

동시대적 리빙 라이프스타일을 품은 네 개의 방

ⒸGubi

노르하운 수변에 자리한 ‘구비 하우스GUBI House’는 구비의 폭넓은 컬렉션을 보여주기에 이상적인 무대였다. 올해 구비는 ‘구비 신스GUBI Scenes’를 통해 집을 네 개의 리빙 신으로 풀어냈다. 덴마크 디자인 스튜디오 ‘나디아 올리브 슈나크Nadia Olive Schnack’의 스타일링 아래 거실, 다이닝 룸, 침실, 아틀리에가 각각의 리듬을 지닌 공간으로 구성됐고, 신작과 아카이브 피스, 책과 도자기, 예술 작품과 오브제가 한데 어우러졌다.

해안의 분위기에서 출발한 ‘혼백 포터블 램프Hornbæk Portable Lamp’는 은은한 빛으로 계절감을 더했고, 피에르 폴랭Pierre Paulin의 F300 라운지 체어는 몰레Molé로 새롭게 깊이를 얻었다. 스페이스 코펜하겐Space Copenhagen의 그래비티 컬렉션Gravity Collection은 참신한 대리석 표현으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수변에서는 구비 × 보나치나 1889GUBI x Bonacina 1889의 ‘P3 컬렉션’을 공개했다. 손으로 엮은 라탄의 질감, 항구의 빛, 야외 생활의 여유가 맞물린 장면이었다. 탁 트인 하늘과 항구의 물 빛, 산업 지구 특유의 거친 풍경은 특히 아웃도어 컬렉션의 매력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헤이가 보여준 유쾌한 일상

올해 헤이HAY는 코펜하겐 중심부의 헤이 하우스HAY House를 떠나, 오버가덴 네덴 반데트 17Overgaden Neden Vandet 17에서 관람객을 맞았다. 장소는 달라졌지만, 일상의 사물을 더 경쾌하고 명료하게 만드는 헤이다움은 그대로였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거창한 설치 작품이 아닌 의자와 소파, 조명처럼 일상적인 물건들이었다. 앉고, 접고, 켜고, 옮기는 단순한 행위가 헤이의 손을 거치며 간결한 구조와 기능성, 위트를 지닌 사물로 탄생했다.

신작 중 시선을 끈 것은 필립 말루앙Philippe Malouin의 ‘미미 소파Mimi Sofa’였다. 단정하게 재단한 실루엣과 짙은 올리브 톤은 헤이 특유의 밝고 실용적인 감각에 한층 차분한 분위기를 더했다. 또한 클레어 라바브르Claire Lavabre의 ‘포스토 데스크 램프Posto Desk Lamp’는 간결한 형태로 조명의 기본을 다시 바라보게 했다. 장식적인 제스처를 덜어낸 채, 빛을 놓는 방식 자체에 집중한 디자인이 흥미로웠다.

아이슬란드 디자이너, 구드문두르 루드빅Gudmundur Ludvik은 접고 펼치는 단순한 움직임에 주목한 ‘폴딩 체어’를 선보였다. 가볍게 옮기고 필요할 때 꺼내 쓰는 구조 안에서 헤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연한 사용성이 드러났다. 또한, ‘슈퍼 노멀Super Normal’을 탐구해 온 재스퍼 모리슨Jasper Morrison은 ‘팩 체어Pack Chair’를 선보이며 헤이의 실용주의를 한층 더 명료하게 보여줬다. 일상적인 행위인 조립과 사용, 보관과 이동을 디자인의 일부로 끌어들인 작업이었다.

2026년에 소환된 베르너 팬톤의 빛과 색채

Ⓒ&Tradition

올해 3daysofdesign의 주요한 흐름 중 하나는 디자인 사의 역사적인 아이콘을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불러내는 것이었다. 마침 올해는 덴마크 디자이너 베르너 팬톤Verner Panton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플라워팟Flowerpot 조명과 팬톤 체어Panton Chair 등으로 디자인 사에 강렬한 색과 형태를 남긴 그의 유산은 코펜하겐 곳곳에서 다시 호명됐다. 디자인 뮤지엄 덴마크와 덴마크 건축 센터Danish Architecture Centre, 몬타나 등이 각자의 방식으로 팬톤을 기렸고, 크론프린세세가데 4번지Kronprinsessegade 4에 자리한 앤트래디션&Tradition 쇼룸 역시 그 흐름의 연장선이었다.

앤트래디션은 팬톤의 대표작 중 하나인 플라워팟 조명을 중심에 두고 그의 유산을 오늘날에 맞게 다시 펼쳐 보였다. 1968년 출시된 플라워팟은 두 개의 반구가 마주 보는 단순한 구조 안에 팬톤 특유의 낙관적인 에너지와 실험 정신을 담아낸 아이콘이다. 이번 전시에서 앤트래디션은 익숙한 조명의 형태를 재해석했다. 특히 팬톤이 생전에 구상했지만 실제로 구현되지 않았던 플라워팟의 배열을 인스톨레이션 피스로 완성해 공간 경험으로 확장했다. 색과 빛, 반복과 리듬이 쇼룸의 첫 번째 방을 채우는 순간, 과거의 명작은 박제된 유산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 디자인으로 다가왔다.

쇼룸 곳곳에서는 앤트래디션의 새로운 컬렉션도 만날 수 있었다. 희 웰링Hee Welling이 디자인한 ‘릴라이Rely 체어 컬렉션’은 간결한 실루엣과 실용적인 구조를 통해 일상 속 의자의 역할을 환기했다. 장식보다 균형에 가까운 태도, 오래 머물 수 있는 편안함이 돋보였다. 일본과 프랑스 아를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야나기하라 테루히로Teruhiro Yanagihara의 조명은 섬세한 빛을 선보였다. 빛을 형태로 과시하기보다, 공간 안에 조용히 머무르게 하는 접근이 인상적이었다.

건축물이 된 이딸라의 아이코닉 피스

이딸라의 화병, 알토 베이스 Ⓒlittala

이딸라Iittala는 코펜하겐 항구와 맞닿은 오펠리아 플라스Ofelia Plads에 ‘알토 90 파빌리온Aalto 90 Pavilion’을 세웠다.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화병, 알토 베이스의 출시 90주년을 기념한 이 설치물은 7미터 높이의 구조물로, 시민들의 산책로이자 공연과 전시가 열리는 광장 위에 자리했다. 1936년 처음 구상된 알토 베이스는 유기적인 곡선과 자유로운 실루엣으로 현대 디자인의 언어를 바꿔온 상징적인 오브제다. 이번 파빌리온은 그 형태를 단순히 확대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관람객이 직접 안으로 들어가 곡선 아래를 걷고, 빛과 그림자, 반사와 소리가 흐르는 공간을 지나도록 이끌었다.

Ⓒlittala
Ⓒlittala

이딸라는 노르웨이의 알루미늄 및 재생 에너지 기업 ‘하이드로Hydro’를 비롯해, 라스 벨러 피에틀란드Lars Beller Fjetland, 타블로 코펜하겐TABLEAU CPH 등 북유럽의 디자인 스튜디오들과 협업해 화병의 곡선을 건축적 경험으로 확장하며 금속 구조로 번역하는데 주력했다. 하이드로의 저탄소 알루미늄을 사용하고, 해체와 재조립이 가능한 모듈 구조를 적용해 설치 이후의 이동과 재활용까지 고려했다. 작은 테이블 위 오브제가 도시의 스케일로 확장되면서, 알토 베이스는 근방을 지나는 이들을 위한 휴식 장소가 되었다.

Ⓒlittala
Ⓒlittala

파빌리온 안에는 ‘알토 90 시티 베이스 컬렉션Aalto 90 City Vase Collection’이 놓였다. 헬싱키부터 도쿄, 암스테르담, 코펜하겐, 뉴욕, 베를린까지 여섯 도시의 빛과 기후, 리듬을 알토의 곡선 안에 담아낸 한정판 시리즈다. 표면에 은은한 깊이와 반사를 더하는 러스터 기법을 적용한 것이 특징. 그중 코펜하겐 에디션은 목재의 온기, 구릿빛 지붕, 카페 불빛이 번지는 거리를 떠올리게 하는 리오 브라운 컬러로 완성됐다. 도시의 인상을 색과 표면으로 번역한 이 컬렉션은 알토 베이스가 여전히 동시대의 언어로 새롭게 읽힐 수 있음을 보여줬다.

코펜하겐을 사로잡은 현대 한국 공예

덴마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덴프스Denps’는 코펜하겐 플래그십 스토어 오프닝을 기념해 한국 공예 전시 〈ENOUGH〉를 열었다. 한국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스튜디오 KKANN이 기획한 이번 전시에는 서지혜, 위캔드랩WKND Lab, 윤여동, 정혜진, 최영환, 하수민 등 여섯 팀의 작가들이 참여했다. 〈ENOUGH〉가 주목한 것은 사물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과 태도였다. 한국 전통 공예의 재료와 기법을 바탕으로, 일상에서 함께 쓰이고 머무는 오브제로 확장했다. 물성, 행위, 형태라는 세 축 아래 유리, 섬유, 금속, 레진과 석재 등 서로 다른 재료가 동시대의 생활 오브제로 다시 태어났다.

현지 관람객의 반응도 뜨거웠다. 북유럽 디자인에 익숙한 관람객들은 한국 공예가 지닌 절제된 조형감과 섬세한 물성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백자의 비례를 유리로 해석한 서지혜의 오브제부터 전통 매듭을 다기능 쿠션 겸 스툴로 확장한 위캔드랩, 신라 금제 장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윤여동의 금속 오브제, 섬유로 ‘작은 숲’을 구현한 정혜진의 설치 작업 등 각기 다른 방식으로 쓰임과 감상의 경계를 흔들었다.

한편, 이번 코펜하겐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은 덴마크와 한국의 라이프스타일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글로벌 여정의 신호탄이기도 하다. 덴프스는 내년 상반기 부산에 대니시 라이프스타일을 집약한 쇼룸과 스테이 공간을 선보일 계획이다. 코펜하겐에서 시작된 교류가 한국의 일상으로 확장되는 셈이다. 〈ENOUGH〉는 한국 공예의 현재를 보여준 전시이자, 두 도시의 절제된 생활 미감이 만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예고한 자리였다.

아크 저널의 큐레이션 플랫폼, 〈DESIGN / DIALOGUE〉

코펜하겐 오슬로 플라스Oslo Plads에 자리한 덴 프리 우드스틸링Den Frie Udstilling은 이름이 상징하듯 ‘자유로운 전시’를 위해 태어난 공간이다. 보수적인 전시 제도에 대한 대안으로 1891년 문을 연 이곳은 오랫동안 실험적인 예술과 독립적인 목소리를 품어왔다. 스칸디나비아의 건축, 디자인, 예술을 소개해온 ‘아크 저널Ark Journal’은 이 역사적인 건물을 올해 3daysofdesign 기간 동안 〈DESIGN / DIALOGUE〉의 무대로 삼았다. 세 번째 에디션을 맞은 이번 전시는 디자인, 예술, 건축, 인테리어가 하나의 장면 안에서 교차하는 큐레이션 플랫폼이었다. 씨-시 타피스cc-tapis, 몰테니앤씨Molteni&C, 모로소Moroso, 바르니Vaarnii 등 25개 이상의 브랜드와 디자이너가 참여하며 아크 저널 특유의 조용하지만 밀도 높은 미감을 펼쳐 보였다.

ⒸFritz Buziek

그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로스앤젤레스 기반 디자인·아트 갤러리 마르타Marta와 에디터이자 컬렉터인 둥 응오Dung Ngo가 선보인 〈Knife, Fork, Spoon 3.0〉이었다. 전시는 커틀러리를 식탁 위의 기능적인 도구가 아니라, 문화와 기술, 조형의 가능성을 품은 작은 오브제로 바라봤다. 라파엘 드 카르데나스, 미샤 칸, 그렉 린, 니페미 마커스-벨로, 마르친 루삭 등 12명의 디자이너와 작가가 참여했으며, 한국 디자이너 김민재도 이름을 올렸다.

식기 컬렉션 12종으로 구성된 〈Knife, Fork, Spoon 3.0〉 ⒸMarta Losangeles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한 김민재의 ‘Dining Set For A Visitor’ ⒸMarta Losangeles

그중 김민재의 ‘Dining Set For A Visitor’는 젓가락을 포함한 식기 세트였다. 작가는 커틀러리를 서구식 나이프와 포크, 스푼의 범주에 가두지 않고, 손과 입, 도구와 식문화가 맺는 관계 속에서 다시 바라봤다. 제작 방식도 눈길을 끈다. 모델링 클레이로 직접 빚은 손의 형태를 3D 프린팅으로 구현하며, 손끝의 감각과 디지털 제작 기술을 한 작품 안에서 맞물리게 했다. 가장 일상적인 도구를 통해 식문화의 다양성과 현대의 제작 방식의 변화를 나란히 보여준 점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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