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머무름으로 설득하는 공간, 코펜하겐 아우도 하우스

코펜하겐의 디자인은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아우도 하우스에 머무는 동안, 디자인은 ‘보는 것’이 아닌 ‘함께 지내는 것’이 된다. 디자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걸 몸소 알게 해준 3번 방에서의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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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름으로 설득하는 공간, 코펜하겐 아우도 하우스

코펜하겐의 디자인은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아우도 하우스에 머무는 동안, 디자인은 ‘보는 것’이 아닌 ‘함께 지내는 것’이 된다. 디자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걸 몸소 알게 해준 3번 방에서의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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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름으로 설득하는 공간, 코펜하겐 아우도 하우스

코펜하겐의 디자인은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아우도 하우스에 머무는 동안, 디자인은 ‘보는 것’이 아닌 ‘함께 지내는 것’이 된다. 디자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걸 몸소 알게 해준 3번 방에서의 일주일.

코펜하겐의 7월은 두툼한 스웨터를 걸쳐야 할 만큼 서늘함을 넘어 이따금 시리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이건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감각적 불일치였다. ‘추운 북구의 여름’을 체감함으로써, 나는 7월이라는 시간의 챕터를 새롭게 기록할 계기를 얻게 된 셈이다. 디자인 수도라 불리는 코펜하겐에서는 의외로 ‘디자인’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카페마다 위시본 체어Wishbone Chair라 불리는 한스 베그너Hans Wegner의 CH24가 아무렇지 않게 수십 개씩 놓여 있고,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이면 집마다 창가에는 폴 헤닝센Poul Henningsen의 PH 조명이 노란빛을 둥글게 퍼뜨리지만, 그 풍경 속에는 아름다움이 지닌 특출함이나 과시의 기색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호주머니에서 교통카드를 꺼내 단말기에 갖다 대는 범상한 행위처럼, 코펜하겐의 디자인은 일상생활이라는 무의식 속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핀 율이 가족과 함께 20년간 거주했던 핀 율 하우스의 내부 ⒸSunyoung Park

도시를 벗어나 찾아간 몇 개의 장소들은, 흩어져 있던 감각들을 끌어모아, 잠시 손에 쥐어보게 하는 순간들이었다. 코펜하겐이 난생처음이라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을 만큼 생생하고 호기 어린 나로 잠시 변모했다. 핀 율Finn Juhl이 서른 살에 짓고 50년을 살았던 새하얀 집에서 마주한 한 존재의 내면, 요른 웃존Jørn Utzon의 바스베르드Bagsværd 교회에서 뜻밖에 쏟아지던 빛과 곡선의 고요,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이 꿈꾼 총체적 디자인의 구현을 고스란히 살아내고 있는 뢰도브르Rødovre 도서관과 올리버 구스타프Oliver Gustav의 스튜디오에서 느껴진 회색 조의 단정함과 깊이.

북유럽 디자인과 구조를 간직한 코펜하겐 친구의 집 ⒸSunyoung Park

서로 다른 곳에 흩어져 있었지만, 이 도시가 피워낸 ‘모두를 위한 디자인’의 수평적이고 인간적인 시점을 실감케 했다. 전후의 공기가 아직 남아 있던 20세기 중반, 건축과 디자인이 분리되지 않은 채 삶을 다시 그려보려던 시기. 나는 그 흔적들을 따라, 흥미진진함과 긴장을 동시에 품은 채 종횡무진했다. 70여 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져 오고 있는, 단순하고 조화로운 디자인의 덕목을 청량한 느낌으로 체감하면서 말이다. 어느 날은, 덴마크 남자와 결혼해 살고 있는 친구 집에도 놀러 갔다. 코펜하겐 외곽에 자리한 반세기 된 단층집은, 목제 패널과 큰 창, 길게 이어진 복도까지 단정한 북유럽식 구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여름밤에도 벽난로에는 불이 은은하게 타고 있었고, 둥근 식탁 옆에는 시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는 아르네 야콥센의 오래된 앤트 체어Ant Chair가 몇 개가 놓여 있었다. 다리가 세 개 달린, 앤트 체어의 초기 버전이었다. 부모가 쓰던 것이 아들에게 건네지고, 다시 그다음 세대에게로 이어지는 방식. 그 풍경은 내가 며칠째 쫓아다니던 어떤 개념을, 가장 평범한 얼굴로 보여주고 있었다.

호텔은 쇼룸이 될 수 있을까

코펜하겐에서의 일주일 동안 나를 오롯이 품어준 곳은 아우도 하우스Audo House다. 디자인 홀릭 여행자에게는 휴식 이상의 무언가를 만끽할 수 있는 이상적인 장소다. 도시 북쪽 노르하운Nordhavn에 있는 아우도 하우스는 덴마크 리빙 브랜드 아우도 코펜하겐Audo Copenhagen에서 운영하는 객실 10개의 소규모 호텔이다. 아우도 코펜하겐은 1970년대부터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을 선도해 온 메누Menu와 바이 라센By Lassen이 결합해 2023년 새로운 챕터를 열은 바 있다. 멀리서도 주변 건물과 사뭇 다른 적색 신고전주의 건물이 아우도 코펜하겐의 쇼룸이자 호텔로, 1918년 철 제조회사로 쓰이던 건물을 미니멀한 노르딕 감각으로 다시 다듬어냈다. 오래된 건물에 현대적인 노르딕 감성과 여러 기능을 더하는 리노베이션은 덴마크의 건축·디자인 스튜디오 놈 아키텍츠Norm Architects가 맡았는데, 정제된 디자인과 실용성이라는 북유럽의 규범을 따르면서도 자연적 소재의 따스함을 추구해 온 그들의 의지가 이곳에도 반영되었다. 커피를 마시러 온 동네 주민들과 가구를 둘러보는 손님들이 소박한 활기를 일구는 쇼룸을 지나 한 층 올라서면, 고요한 객실들이 숨을 고르고 있다. 좁은 복도를 걸으며 들리는 건 나의 조심스러운 발자국 소리 뿐, 일상과 정적이 한 건물 안에서 겹쳐지는 묘한 밀도가 몸을 감싼다.

ⒸSunyoung Park

호텔에서 가장 넓은 객실인 ‘룸.3Room.3’이 나의 임시 거처. 큰 방을 채울 심산인 듯 유난히 가구가 많다. 소파와 라운지 체어, 원형 테이블과 의자, 서로 다른 높이와 온도를 가진 조명들, 그리고 침대 양옆에 낮게 붙어 있는 사이드 테이블까지. 가구로 꾸릴 수 있는 아름다움을 위해 각자의 리듬을 확보한 듯한 배치와 구성이다. 그럼에도 높이 솟은 박공 형태의 천장과 둥근 원형 창, 백 년 전부터 구조를 받치고 있던 나무 기둥과 들보 덕분에 가구로 가득한 방은 아늑하고 느슨한 여백을 그린다. 이곳의 가구와 조명은 모두 아우도 코펜하겐의 것들이다. 아우도 하우스는 브랜드의 연장선인 동시에 제품들을 물리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단순한 쇼룸 형태가 아닌 가구가 살아갈 수 있는 무대를 호텔이라는 틀로 구현했다. 하루 혹은 이틀간 가구에 앉고 눕고 기대며 물리적 접촉을 만들어보라는 아우도의 발상은 영리하다. 밀도 있는 밤을 보낸 투숙객이라면 브랜드의 잠재적인 고객이 될 가능성이 커질 터이다. 체크인 첫날, 모든 것이 제자리에 놓인 상태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려는 내 습성이 이 방에서 더 발동했음을 고백한다.

추억으로 되돌아온 스칸디나비아

ⒸSunyoung Park

의지와 욕구로 부풀어 오른 여행 중의 마음은 자신을 과대평가하기 일쑤다. 상기된 열정이 결국 체력을 배신하는 그때, 하루쯤은 여행자의 의무를 덜어놓게 된다. 덕분에 처음으로 온종일을 객실 안에서만 보냈다. 밀린 원고를 쓰다 이내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잠깐의 잠에 빠지고,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창밖을 스쳐 지나가는 갈매기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렇게 방 안에 오래 머물다 보니, 서서히 한 덩어리의 시간으로 방 안의 모든 것들과 엉겨 붙기 시작했다. 의자는 글을 쓸 때 내가 무심코 취하는 어정쩡한 자세를 안정적으로 받아주었고, 침대 옆 램프는 메탈 바디에 은은한 빛을 비추며 홀로인 밤을 위로했다. 결국 남는 것은 형태나 브랜드가 아니라, 그 안에서 반복된 자세와 시간의 감각이었다. 지나치게 완결된 장면처럼 느껴졌던 이 방이, 어느 순간부터는 몸과 감정의 리듬을 따라 미세하게 움직이는 공간으로 바뀌어 갔다. 어쩌면 아우도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디자인을 새롭게 만들어내기보다, 이미 충분히 좋은 것들을 지금의 삶 속으로 조용히 이어가는 일이 아닐까. 물건을 보여주기보다 그것들이 사람과 공간 속에서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지를 묻는 태도로써 말이다.

아우도 하우스에 머무는 동안, 신혼 시절의 작은 아파트를 채웠던 스칸디나비아 가구들의 향과 질감이 문득 되살아났다. 1960년대 구니 오만Gunni Omann이 만든 커다란 사이드보드, 식탁 위를 안온하게 밝혀주던 폴 헤닝센의 조명, 연애 초반 남편이 선물해 주었던 로즈우드 서랍장. 매일의 손길에 반질반질해지던 나무 결의 감촉과 온기를 떠올리며, 나는 잠시 오래된 시간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때로 호텔은 도시의 한 시절이 이뤄낸 감각의 합의를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드러낸다. 아우도 하우스 역시 가구와 빛, 옛날의 흔적들 사이를 꼼꼼히 채우며 코펜하겐이라는 도시의 오늘을 살아보도록 투숙객을 초대한다. 우리는 호텔에 머무는 동안, 낯선 곳을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다른 삶의 리듬을 빌려 쓰게 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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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름으로 설득하는 공간, 코펜하겐 아우도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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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보낸 탐미의 밤, 파리 생 마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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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다른 꿈을 허락하는 집, 가평 아시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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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과 수영장 사이에 맡긴 하루, 도쿄 트렁크 요요기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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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한밤과 아침 사이, 런던 하프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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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한 지붕들 아래 숨겨진 집, 안트베르펜 줄리앙

02

구름 속에 머문 시간, 도쿄 친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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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수필이 되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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