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우연이라는 완벽한 질서, ‘우연 연산’

진정한 발견은 내려놓는 '우아한 항복'의 순간에 찾아온다. 현대 음악의 혁명가 존 케이지의 '우연 연산'과 하이데거가 말한 불확실성이 존재의 본질이라는 의미를 엮어, 통제할 수 없는 삶의 흐름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비로소 목격하게 되는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Editorial

우연이라는 완벽한 질서, ‘우연 연산’

진정한 발견은 내려놓는 '우아한 항복'의 순간에 찾아온다. 현대 음악의 혁명가 존 케이지의 '우연 연산'과 하이데거가 말한 불확실성이 존재의 본질이라는 의미를 엮어, 통제할 수 없는 삶의 흐름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비로소 목격하게 되는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Editorial

우연이라는 완벽한 질서, ‘우연 연산’

진정한 발견은 내려놓는 '우아한 항복'의 순간에 찾아온다. 현대 음악의 혁명가 존 케이지의 '우연 연산'과 하이데거가 말한 불확실성이 존재의 본질이라는 의미를 엮어, 통제할 수 없는 삶의 흐름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비로소 목격하게 되는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John Cage album: Music of Changes, Books I-IV

삶에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그것은 찾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며 발견해 내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무언가를 찾아내겠다는 강박은 역설적으로 보고 싶은 것만을 보게 만드는 프레임이 된다.  정작 발견해야 하는 것은 의지를 내려놓는 우아한 항복의 순간에 세계가 스스로 밀려 들어오는 순간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음악은 이미 존재한다: 존 케이지의 비움

John cage, 1981, paris ⒸISSUE PROJECT ROOM

현대 음악의 혁명가 존 케이지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이 철학을 평생에 걸쳐 세상에 보여주었다. 그의 작곡은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그 순간 세상의 소리가 드러날 수 있도록 ‘공간을 비워주는 일’이었다.

음악은 이미 존재한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선택하거나, 방해할 뿐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우연 연산Chance Operations이라는 방식인데 작가의 주관을 지우고 그 순간의 상황과 우연에 모든 결정을 맡기는 설계다. 듣는 행위 자체로서 음악이 생성된다는 개념을 보여주는 몇 가지 사례가 있다.

침묵이라는 이름의 연주: <4분 33초>

케이지의 가장 유명한 작업인 <4분 33초>는 그의 말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연주자는 무대 위에서 피아노 뚜껑을 열고 4분 33초 동안 단 한 음도 연주하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 있다가 뚜껑을 닫고 퇴장한다. 관객들이 듣게 되는 것은 침묵이 아니다. 당황한 관객이 내는 작은 소음들, 옆 사람의 옷깃 소리, 연주자를 향해 감각을 곤두세우는 관객들의 제스처다. 케이지는 작곡가로서 음표를 들려주는 선택 대신 관객이 주변의 소리를 ‘발견’할 수 있는 순간을 구성했다.

리처드 세라의 <러닝 아크(존 케이지를 위하여)>와 4분 33초의 산책 Ⓒ존 케이지 재단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가 친구 존 케이지의 부고를 듣고 헌정한 조각 작품 <Running Arcs (For John Cage)> 사이를 걷는 4분 33초 동안의 기록. 거대한 강철 곡선 사이를 지나는 매 순간의 실시간 경험은 그 자체로 케이지의 철학을 완성하는 완벽한 오마주가 된다.

동전이 결정하는 선율 : <변화의 음악>

존 케이지의 <변화의 음악>을 연주한 허버트 헨크의 앨범 커버 Ⓒ디스코로그

케이지는 자신의 취향이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동양의 고전인 『주역』을 작곡 도구로 가져왔다. 그는 음의 높낮이, 길이, 강약을 정하기 위해 수없이 동전을 던졌다. 동전을 던져 나온 괘에 따라 음을 배치하며 우연이라는 통로를 통해 굴러온 소리를 있는 그대로 자리에 놓았다. 사람이 선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연주되는 음은 비인간적이라 생경함을 준다.

라디오가 연주하는 풍경: <상상의 풍경 제4번>

John Cage, score for Imaginary Landscape, No. 5, 1952. Music Division, The New York Public Library for the Performing Arts, Astor, Lenox, and Tilden Foundations Ⓒ헨마르 출판사(Henmar Press)

12대의 라디오를 이용한 <상상의 풍경 제4번> 역시 흥미롭다. 24명의 연주자는 악기 대신 라디오 다이얼을 잡고 지시에 따라 주파수를 돌리거나 볼륨을 조절한다. 이 공연에서 나오는 소리는 그날 그 장소에서 방송되는 라디오 전파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뉴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고 음악이 흘러나올 수도 있는 이 상황은 우리 주위를 흐르는 전파에게 길을 터주어 무대 위로 끌어올렸다 다시 놓아준다. 매 공연 시 매번 공연할 때마다 음악이 완전히 달라지는 이 작업은 일종의 발생하는 사건을 지켜보는 느낌이다.

To mark the 60th anniversary of the premiere of the silent piece 4′ 33″ the HMKV organised a concert night around works by John Cage. The programme started with a live performance of Imaginary Landscapes No. 4 (1951), a composition for 12 radios and 24 performers. Ⓒ도르트문트 U의 미디어아트 협회

불확실성 : 우리는 얼마나 많은 우연에 휘둘리는가

여기서 문득 질문 하나를 마주한다. 왜 우리는 ‘우연’에 주목해야 하는가? 그것은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처럼 “불확실성이야말로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로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이 세계 속으로 ‘내던져진 존재’다. 태어난 시대, 부모, 국가, 모국어조차 선택하지 못한 채 불확실한 조건 속에서 삶을 시작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우연에 휘둘리며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 내 기분에 영향을 준 사소한 인물과 사건들까지도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흐름 속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우연 연산은 바로 이 ‘던져진 존재’로서의 우리가 불확실성을 불안이 아닌 예술로 승화시키고 불확실성으로부터 주도권을 잡아 자유를 얻는다

지금 우연 속, 각자의 음악

그러니까 지금 우리 각자의 인생 또한 하나의 거대한 우연 연산이다. 가끔 일상을 넘어 삶을 휘두르는 것은 우연과 상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마찬가지로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순간 또한 예상치 못한 실패가 가져다준 통찰, 기대하지 않았지만 발생한 무언가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정답을 찾아 헤매기보다 흘러가는 흐름 속에 부표처럼 떠다니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만으로 그 순간의 진실과 아름다움을 충분히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연 연산이 가르쳐주는 것은 단순하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기꺼이 삶을 맡겨보고, 그 선택의 부산물마저 용기 있게 받아들이는 것. 때론 그 불완전한 틈새 안에 사금처럼 반짝이는 무언가가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존 케이지의 말처럼 음악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곁에 존재한다. 이제 잠시 읽기를 멈추고 잠시만 귀를 열어보자. 지금 당신의 귀에는 어떤 소음이 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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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실재가 빚어낸 초현실의 미학

13

아름다운 제약, 상상력을 붙잡아두는 창조의 도구

12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법, 움베르토 에코의 웃음

11

오카자키 쿄코와 도시적 에로티시즘

10

우연이라는 완벽한 질서, ‘우연 연산’

09

노력의 흔적을 지우는 기술, 스프레차투라에 대하여

08

미완성과 우연의 초상, 〈휘슬재킷〉

07

악의 미학을 위한 클래식

06

손의 여운, 사물이 살아 있는 시간: 루시엔 데이와 마가렛 호웰

05

첫 권의 문학: 세계를 여는 방식에 대하여

04

연옥 단계의 클래식

03

호모 콜렉투스 – MoMA가 수집한 사물들

02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시지프의 유머

01

조지아 오키프와 마이크로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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