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집이라는 이름의 환영, 존재와 소속의 경계를 탐구하는 아티스트 유지수

집과 공간, 정체성과 소속감. 우리를 세계와 연결하고 삶의 의미를 형성하는 것들은 때로 우리의 시선과 가능성을 제한하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아티스트 유지수는 이처럼 일상을 지탱하는 익숙한 질서의 양면성에 주목한다. 설치와 퍼포먼스, 영상과 조각을 넘나들며 당연하게 여겨온 삶의 조건을 낯설게 바라보고, 현실과 환영 사이에서 인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다.

Interview

집이라는 이름의 환영, 존재와 소속의 경계를 탐구하는 아티스트 유지수

집과 공간, 정체성과 소속감. 우리를 세계와 연결하고 삶의 의미를 형성하는 것들은 때로 우리의 시선과 가능성을 제한하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아티스트 유지수는 이처럼 일상을 지탱하는 익숙한 질서의 양면성에 주목한다. 설치와 퍼포먼스, 영상과 조각을 넘나들며 당연하게 여겨온 삶의 조건을 낯설게 바라보고, 현실과 환영 사이에서 인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다.

Interview

집이라는 이름의 환영, 존재와 소속의 경계를 탐구하는 아티스트 유지수

집과 공간, 정체성과 소속감. 우리를 세계와 연결하고 삶의 의미를 형성하는 것들은 때로 우리의 시선과 가능성을 제한하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아티스트 유지수는 이처럼 일상을 지탱하는 익숙한 질서의 양면성에 주목한다. 설치와 퍼포먼스, 영상과 조각을 넘나들며 당연하게 여겨온 삶의 조건을 낯설게 바라보고, 현실과 환영 사이에서 인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다.

집은 언제부터 나의 공간이 되는 걸까.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어떤 장소에 속해 있다고 믿을까. “저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당연하다고 믿는 순간 더 이상 질문하지 않게 되니까요.”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 유지수는 이처럼 익숙해서 미처 의심하지 않았던 것들에 질문을 던진다. 그에게 집과 방, 의상과 일상적인 몸짓은 단순한 사물이나 행위를 넘어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고 정체성과 소속감을 형성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매개다. 스무 살에 프랑스로 건너가 낯선 언어와 문화, 사회적 규범을 마주한 경험은 이러한 시선의 출발점이 됐다. 그간 축조한 삶의 방식이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방인으로서 겪은 주거 문제를 통해 집과 소속감이 개인의 의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유지수의 작품 속 집은 우리가 익히 아는 모습과 다르다. 공중에 떠 있거나 누군가의 머리 위를 이동하고, 여러 사람의 힘으로 잠시 형태를 유지하다 사라진다. 투명한 집을 머리에 이고 파리 거리를 걸었던 〈Ma maison en l’air〉와 여러 사람의 꿈과 소망을 모아 공중에 뜬 집을 만든 〈Dream House〉가 대표적이다. 〈Mirages ordinaires〉에서는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몸짓을 모션 캡처로 기록하며 익숙한 습관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본다. 집과 정체성, 일상의 규범은 우리를 세계와 연결하는 동시에 인식과 가능성을 제한하기도 한다. 유지수는 이러한 양면성에 주목하며 현실과 환영의 경계를 탐색한다. 설치와 퍼포먼스, 영상과 디지털 기술을 넘나들며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아티스트 유지수. 그의 작업과 그 안에 담긴 질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Interview with 아티스트 유지수


ⒸManuel Abella

당연한 것들에 질문을 던지다

〈Ma chambre ressemble au mensonge〉 (2020), 투명한 공기 주입식 방을 활용한 설치 및 퍼포먼스. ⒸJisoo Yoo

ㅡ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기억에 남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나요?

저는 어릴 때부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당시에는 예술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보다, 놀이처럼 자연스러운 행위였죠. 예술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시절이었어요. 쉽게 털어놓기 어려운 감정과 생각을 표현할 방법이 필요했고, 그림은 제게 일종의 언어가 되어주었죠. 말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다른 형태로 표현하는 방법을 그때 처음 배운 것 같아요. 당시 입시미술에 적응하지 못해 꾸중을 자주 들었는데, 한 선생님만은 제게 ‘너는 이 세계가 잃어버린 화음 같은 예술가’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프랑스에서 대학을 다닐 때는 한 교수님이 ‘졸업하면 누구의 말을 들을 거냐. 내 말도 듣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조언하셨죠. 그 말들은 제 안의 질문을 믿고 작업을 이어가는 데 큰 힘이 되어주었어요.

ㅡ 미술학교에서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에 오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낯선 환경에서의 생활은 작가님의 시각과 작업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막 스무 살이 된 참에 파리에 왔어요. 익숙한 언어와 환경을 떠나 완전히 낯선 곳에서 삶을 시작하는 건 큰 모험이었죠. 프랑스의 미술 교육은 한국에서 경험했던 방식과도 사뭇 달랐습니다. 정해진 답을 따르기보다 스스로 질문을 발전시키고, 예술적 실천을 통해 답을 탐구하는 방식이 제게 더 잘 맞았죠. ‘낯섦’은 저에게 중요한 거리감을 만들어 주었어요. 당연하게 여겼던 삶의 방식이나 사회적 규범, 관계의 형태가 사실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나를 규정한다고 믿었던 정체성과 소속감, 일상의 습관과 몸짓 역시 특정한 문화와 환경 속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고요. 이러한 경험은 지금까지도 집과 공간, 몸, 정체성, 소속감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작업의 밑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왼) 〈The More Ordinary, the More Illusory〉 (2023), 모션 캡처 수트와 가상 환경을 활용한 퍼포먼스.
(오) 〈Ma maison en l’air〉 (2019), 투명한 공기 주입식 집 구조물을 활용한 퍼포먼스. ⒸJisoo Yoo

ㅡ  말씀하신 것처럼 작가님의 작업에는 집과 방, 일상적인 몸짓 등이 반복해서 등장해요. 이를 통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으신가요?

제게 집, 방, 의상, 몸짓은 각각 분리된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고 정체성을 형성하며 특정한 세계에 속한다고 믿게 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요소들이에요.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 그 안에 자리한 경계와 규칙, 우리가 믿어온 환영의 구조를 다시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ㅡ ‘신기루’는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중요한 개념이라고요. 완전한 허구도, 고정된 실체도 아니라는 사실과 연결되는 듯합니다.

살면서 확실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시간과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경험을 여러 번 했어요. 당연하게 여겼던 가치와 정체성, 안정감을 느꼈던 장소들이 사실은 개인의 경험과 환경, 사회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것임을 깨달았죠. 마치 꿈에서 깨어나는 듯한 감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들이 모두 허구라는 뜻은 아니에요. 분명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지만, 절대적이거나 고정된 진실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저는 집과 정체성, 소속감, 일상의 규칙 역시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삶을 구성하는 동시에 조건에 따라 달라지거나 사라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 작업 속 공간들은 끊임없이 떠오르고 흔들리며, 나타났다가 사라집니다. 이러한 임시성과 불안정성을 통해 우리가 견고하다고 믿는 것들을 다시 바라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는 것

〈Ma maison en l’air〉 (2019), 투명한 공기 주입식 집 구조물을 활용한 퍼포먼스. ⒸJisoo Yoo

ㅡ 본격적으로 작품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Ma maison en l’air(My House in the Air)〉에서는 투명한 공기 주입식 구조물을 머리에 이고 맨발로 파리 거리를 걸었습니다. 이 퍼포먼스를 구상하게 된 계기와 실제 퍼포먼스를 하며 거리에서 마주한 경험이 궁금합니다.

이 작업은 제가 직접 겪은 주거 문제에서 출발했어요. 당시 행정적인 이유로 프랑스 체류 허가증 발급이 지연되었는데, 마침 새로운 집을 구해야 하는 시기와 겹쳤습니다.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었지만 임대 계약에는 유효한 체류 허가증 카드가 필요했죠. 당시 소지하고 있던 임시 체류 접수증인 ‘레세피세(récépissé)’는 프랑스에 머물 권리를 증명하는 동시에 그 권리가 얼마나 임시적이고 조건적인지 보여주는 문서였습니다. 그래서 집의 바닥에 이를 인쇄했어요. 제가 딛고 선 기반이자 저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조건이라는 의미였죠. 머리 위에 이고 걷는 집 역시 보호와 안정, 소속감을 상징하지만 실제로는 저를 보호하지 못합니다. 가볍고 투명한 구조물이라 작은 바람이나 움직임에도 쉽게 흔들리죠. 거리에서 마주한 사람들의 반응도 중요했어요. 누군가는 신기해하고, 걱정하거나 질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그 시선과 반응을 통해 제 개인적인 경험이 사회적인 문제로 확장되었죠. 결국 이 작업은 우리가 어떤 장소를 ‘나의 집’이라고 느끼기 위해 무엇에 의존하는지, 안정적이라고 믿는 소속감이 얼마나 많은 외부 조건에 기대고 있는지 질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ㅡ 2024년 프랑스 레 타너리 현대미술센터에서 설치 퍼포먼스로 소개된 〈Dream House〉에서는 옷 모양의 천을 이어 공중에 뜬 집을 만들었어요.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여러 사람의 꿈과 소망이 모여 임시적인 집을 이룬 작업인데요. 참여자들은 천 위에 자신의 꿈을 쓰거나 그림으로 표현하고, 그 천은 각자의 의상이자 지붕을 지탱하는 구조가 됐죠. 저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보이는 꿈과 소망에도 한 시대와 사회의 욕망이 반영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무엇을 바라는지는 개인의 선택뿐 아니라 사회가 제시하는 이미지와 기대, 결핍과 두려움의 영향도 받으니까요. 작업을 진행하며 각 도시와 참여자에 따라 소망이 다르게 나타나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아이들의 꿈에서는 주변 어른과 환경의 영향을 엿볼 수 있었죠. 그 안에는 희망뿐 아니라 불안과 경쟁, 두려움도 공존했어요. 저는 아름답든 그렇지 않든, 각자의 소망이 모여 우리가 살아갈 세계의 모습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해요. 작품 속 집도 여러 사람의 꿈이 모이고 함께 지탱할 때만 잠시 형태를 유지하다가, 그 힘이 사라지면 흩어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도 닮아 있죠. 우리가 사는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지고, 그 세계를 지탱하는 꿈과 욕망은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는지 함께 질문하고 싶었습니다.

ㅡ 〈Ordinary Mirages〉 에서는 집에서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움직임을 모션 캡처로 기록하고, 집 내부를 3D 스캔해 디지털 공간으로 재구성했어요. 자신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무엇을 발견했나요?

방 안을 걷거나 의자에 앉고, 컴퓨터 앞에 머물거나 서랍을 여닫고, 컵을 집는 등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동작들을 기록했어요. 이를 모션 캡처로 기록한 뒤 몸과 배경을 지우고 의상의 움직임만 남겨 보니 무척 낯설게 느껴졌죠. 평범한 몸짓이 마치 퍼포먼스나 현대무용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몸은 사라졌지만 습관만 남아 계속 움직이는 듯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이 움직임을 본다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졌어요. 우리는 왜 매일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행동을 반복하고, 정해진 높이에 앉거나 특정한 공간에서 잠을 잘까요? 작품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반복될수록 어둠 속에서 아파트의 구조가 서서히 드러납니다. 이를 통해 집이라는 안정적인 공간의 감각이 매일의 작은 행동과 반복으로 어떻게 형성되는지 질문하고 싶었어요. 

ⒸJisoo Yoo

ㅡ 그렇다면 작가님께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한국을 떠나 프랑스에서 생활해 온 경험이 집과 소속감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아요.

제 작업에서 집은 우리가 견고히 믿는 것들에 대한 은유이자 정체성의 경계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나의 집’이 있다는 것은 ‘너의 집’, ‘우리’와 ‘타인’을 구분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우리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경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지만, 어쩌면 그 안정감도 경계가 만들어낸 환영일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생활하며 이러한 경계가 얼마나 유동적이고 조건적인지 자주 실감했어요. 어디에 머물고 어떤 사회에 속할 수 있는지는 개인의 의지만이 아니라 언어와 행정, 법적 지위, 경제적 조건, 타인의 시선에 따라 달라집니다. 또한 우리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규칙과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익숙한 환경을 벗어나면 믿었던 것들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도 하죠. 마치 꿈에서 깨어나는 듯한 경험입니다. 

제 작업 속 집이 떠 있거나 이동하고, 여러 사람의 힘으로 잠시 유지되다가 사라지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저에게 집은 완성된 장소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에 가깝죠. 집과 경계, 정체성은 우리에게 소속감을 주지만 동시에 인식을 제한하기도 합니다. 결국 제가 탐구해 온 것은 ‘나는 어디에 속하는가?’보다 ‘우리는 어떤 조건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그 감각은 어떤 규칙과 습관, 인식의 구조 속에서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이었어요.

찰나의 형태, 계속되는 질문

〈Ma maison en l’air〉 (2019) ⒸJisoo Yoo

ㅡ  지금까지 참여한 다양한 전시와 퍼포먼스 프로젝트 중 작가로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거나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업을 꼽는다면요?

예술가로서 때로는 터무니없어 보이는 아이디어를 믿고 끝까지 밀어붙여야 할 때가 있어요. 〈Ma maison en l’air〉작업이 그랬어요. 헬륨 비용 때문에 시도할 기회는 사실상 한 번뿐이었고, 거리에서 퍼포먼스를 하다 경찰의 제지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죠. 커다란 집 구조물을 보관할 곳이 없어 이웃집 정원에 묶어두었는데, 밤새 폭풍우가 몰아쳐 새벽에 이웃과 함께 구조물을 붙잡고 있었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다행히 당일 아침에는 날이 개었고, 허공에 떠 있는 집을 들고 파리의 거리로 나설 수 있었어요. 머릿속에만 존재하던 이미지가 실제 도시의 풍경 속에 나타난 순간이었죠. 이 경험을 통해 개인적인 이야기가 공공의 공간에서 새로운 의미로 확장될 수 있음을 실감했습니다.

〈Le plus ordinaire, le plus illusoire〉 역시 제 작업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죠. 코로나19로 퍼포먼스와 전시가 모두 취소되면서 집에 머물던 시기, 가상 공간과 연결된 퍼포먼스를 상상하며 시작한 작업이에요. 모션 캡처 수트를 입은 퍼포머가 가상의 방과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형식인데, 당시에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퍼포먼스 자체가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퍼포머의 몸과 모션 캡처 기술, 가상 공간과 실시간 반응 시스템을 연결하는 과정도 복잡했죠. 가능과 불가능의 경계를 시험하며 아이디어를 구현한 경험이었고, 이후 제 작업을 디지털 매체와 가상 공간으로 확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Le plus ordinaire, le plus illusoire〉 (2023), 모션 캡처 수트와 가상 환경을 활용한 퍼포먼스. ⒸJisoo Yoo

ㅡ  지금까지 예술가로서 작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무엇인가요?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이 생긴다는 점인 것 같아요.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왜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생각하고 살아갈까?’, ‘이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같은 질문을 쉽게 지나치지 못하죠. 처음에는 내면의 감정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을 드러내기 위해 작업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은 사회와 세계를 시적이면서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방식이 되었어요. 개인적인 경험이 사회적 맥락과 만나 더 넓은 질문으로 확장되는 과정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ㅡ 작업실은 어떤 모습인가요? 그곳에서 보내는 일상도 궁금합니다.

작업실은 파리 외곽의 대형 예술가 작업실 건물에 있어요. 여러 예술가가 입주해 있어 자연스럽게 마주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이죠. 정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라 천과 의상, 작은 조각, 3D 프린팅 테스트물과 설치 재료 등이 곳곳에 놓여 있어요. (웃음) 주로 영상 편집과 3D 작업,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한 리서치와 글쓰기에 시간을 보냅니다. 때로는 재료를 실험하거나 작은 구조물을 만들기도 하고요. 혼자 작업하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다른 예술가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예상치 못한 영감을 얻기도 해요.

ㅡ  드로잉과 회화에서 설치, 퍼포먼스, 영상, 디지털 기술까지 작업의 매체를 꾸준히 확장해 왔습니다. 새로운 매체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그 과정에서 달라진 점과 변하지 않은 관심사도 궁금합니다.

제게 매체는 질문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예요. 기술 자체보다 탐구하려는 감각과 질문에 얼마나 연결되는지가 중요합니다. 이를테면, 모션 캡처는 몸의 움직임을 신체와 분리해 바라보게 하고, 3D 스캔은 실제 공간을 디지털 환경에서 낯설게 경험하도록 하죠. 인터랙티브 기술은 관객과 퍼포머의 움직임에 따라 작품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유동적인 관계를 탐구하기에 적합하고요. 초기에는 평면 작업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시간과 공간, 신체와 관객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작업에 관심이 있어요.

보이는 세계 너머를 상상하다

ⒸJisoo Yoo

ㅡ 요즘은 어떤 일상을 보내고 계신가요?

올여름에는 제주에서 새로운 퍼포먼스와 영상 작업을 준비하고 촬영하느라 바쁘게 보냈어요. 오랜만에 한국에 머물며 작업에 몰두하고, 자주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과도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개인적으로 뜻깊었습니다. 지금은 프랑스로 돌아와 그동안의 작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어요. 여러 장소를 오가며 다양한 사람을 만난 뒤라, 제 안에서도 새로운 질문들이 조금씩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바람의 순간(A Moment of Wind)〉 (2026), 제5회 제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Jisoo Yoo

ㅡ 올해 제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바람의 순간(A Moment of Wind)〉는 자연현상과 인간의 소망이라는 ‘바람’의 두 가지 의미에서 출발합니다. 제주의 자연환경과 장소적 특성은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바람의 순간(A Moment of Wind)〉는 장소 특정적 퍼포먼스이자 영상 작업이기에 제주에 도착하기 전까지 구체적인 장소와 진행 방식을 정할 수 없었어요. 현지의 여러 장소를 탐색하며 제주의 고유한 아름다움과 시적인 분위기를 담을 수 있는 곳을 찾았죠. 특히 인공 구조물이 적고, 무언가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져도 본래의 풍경으로 자연스럽게 돌아갈 수 있는 장소를 원했어요. 

제주의 지형과 바람, 빛과 파도는 단순한 배경을 넘어 작업의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바람은 퍼포머들이 든 반투명 구조물의 형태를 바꾸고, 빛은 천의 표면에 다양한 표정을 더했죠. 지형과 돌, 풀, 해안의 형태는 움직임의 방향과 속도에 영향을 주었고, 파도는 또 다른 리듬을 만들었어요. 이처럼 제주의 자연은 무대이자 퍼포먼스의 참여자였습니다. 사람들의 움직임과 자연의 힘이 만나 매 순간 새로운 형태를 만들고, 서로 다른 소망이 잠시 연결되었다가 바람에 흩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 과정은 우리가 삶에서 관계와 집, 기억과 소속감을 경험하는 방식과도 닮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Jisoo Yoo

ㅡ AI와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저는 가상과 현실이 완전히 분리된 세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이미 이미지와 데이터, 알고리즘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죠. 스마트폰으로 길을 찾고, 온라인에서 형성된 이미지와 기준에 따라 자신을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 맞춰 행동을 조정하기도 합니다. 이전 작업에서 가상의 방에서 몸을 움직이는 퍼포머를 다룬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실제로는 비어 있는 공간에 있지만, 화면 속 가상의 방을 보며 자신의 몸을 움직입니다. 그 모습은 우리가 사회적·문화적 시스템에 맞춰 몸과 욕망을 조정하는 방식과 닮아 있죠. 저는 AI가 인간의 인식과 정체성, 기억과 창작 방식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하고 있어요. 특히 AI가 생성한 이미지와 언어가 우리의 욕망과 판단을 어떻게 반영하고 형성하는지 탐구하고 싶습니다.

ㅡ 현재 준비 중인 작업 혹은 앞으로 더 깊이 탐구해 보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최근에는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세계가 어쩌면 환상일 수 있다’는 내용의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어요. 뇌신경과학과 문학, 철학의 관점에서 현실이 어떻게 구성되고, 몸과 감각은 이를 어떻게 실재로 받아들이는지 탐구하려 합니다. 이 프로젝트를 가상현실과 모션 캡처, 퍼포먼스, 영상 설치를 결합해 무대 위의 신체와 가상 공간, 관객의 시선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연극적 형식으로 발전시키고 싶어요. 또, 기존의 관심을 집단적이고 공간적인 차원으로 확장하려 합니다. 고정된 구조물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움직임과 관계, 자연환경과 우연한 사건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임시적인 공간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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