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낯선 시선이 발견한 ‘행복 한 조각’



(오) Moon Jar acquired by Bernard Leach in Seoul, 1935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이 항아리를 가진 것은 마치 행복을 가득 품은 것 같다.
- 버나드 리치
영국 현대 도예의 아버지라 불리는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는 일본에서 도예를 배운 후 이름 없는 장인의 작업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민예 운동을 야나기 무네요시Muneyoshi Yanagi와 함께 이끌었다. 1935년, 그는 야나기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두 번째 방문이었던 그의 시선은 ‘조선의 선’, 고려청자를 지나 조선백자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어느 골동품 가게에서 한 항아리 앞에 멈춰 선다. 높이 47cm, 둘레 140cm 정도 되는 그 항아리는 위아래 두 덩어리를 붙여 만든 탓에 이음새가 선명하고, 완벽한 구형과는 거리가 멀며, 유약은 군데군데 고르지 않게 번져 있었다. 그는 그런 불완전함을 껴안고 “행복한 하나의 조각을 품에 안고 돌아간다”라며 영국으로 향했다.


달항아리는 원래 절임과 곡식을 담던 살림 도구였다. 검소함을 덕으로 여기던 태도가 기물의 형태로 굳어진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물건이 예술이라는 범주에 들어간 것은 오히려 외부의 시선 덕분이었다. 당시 리치는 영국 스튜디오 도예의 기준점이었고, 달항아리와는 반대되는 투박하고 남성적인 양식을 지향했다. 그랬던 그는 이후 한국식 가마, 조선백자와 분청의 문양, 유약의 처리 방식을 자신의 작업실에 적용했다. 인간성을 회복하고 가식 없는 삶을 살고자 했던 그에게, 달항아리는 그 방향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었을지 모른다.
한 도예가의 선반 위에서 함께 살아간 50년



살아 있는 예술은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현대적입니다.
예술 이론은 저에게 의미가 없고, 아름다움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이 제 모든 철학입니다.
- 루시 리
1943년, 리치는 런던이 폭격받던 시기에 이 소중한 항아리를 루시 리Lucie Rie에게 맡긴다. 그녀는 런던으로 망명한 유대인 도예가이면서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리치는 평소 그녀의 작업을 두고 “유약이 너무 두껍고, 기벽이 너무 얇다”며 인간미가 없다고 평했으면서도 자신의 가장 귀한 보물은 그녀에게 맡겼다. 이후 리치는 편지에 “당신이 그 항아리를 계속 지켜주기를 바란다”는 부탁을 남겼고, 그녀가 1995년 92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다. 루시 리의 도자기는 현대적이며, 형태는 단순하지만 과감하다. 이음새를 드러내며 결코 완벽한 대칭이 될 수 없는 달항아리와는 아주 결이 멀다. 그러나 루시 리는 달항아리를 깊이 사랑했다. 어쩌면 그녀 또한 자신이 도달하지 못한 어떤 자유로움을 그 항아리에서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두 예술가는 각자의 작업과 가장 멀리 있는 물건을 아주 가까이, 아주 오래 곁에 두었다.
하나의 시선으로 발견된 물건이 시대의 맥락이 될 때

루시 리 사후, 달항아리는 1999년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에 영구 소장된다. 이름 없는 항아리가 런던의 망명 도예가 작업실을 거쳐 세계 최대 박물관에 안착하기까지 약 60년이 걸렸다. 잘 보존된 것도 다행이지만, 흥미로운 것은 이 항아리가 영국 스튜디오 도예 전반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아키코 히라이Akiko Hirai, 애덤 뷰익Adam Buick 같은 영국 도예가들이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은 작업을 이어갔고 2013년 런던 한국문화원 전시에서 이들은 대영박물관 소장 달항아리와 나란히 자신들의 작업을 전시했다. 이름 모를 조선의 무명 도공이 구운 한 도자기는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바다를 건넜고, 다시 우리의 시선이 닿는 곳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오롯이 주변에 존재만으로도 영향을 주었다.
무심한 태도가 준 영감



달항아리가 이 긴 여정을 거칠 수 있었던 건, 특정한 작가나 원조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비록 처음의 쓰임새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사람들의 시선 안에만 머물렀지만, 만든 이의 이름이나 맥락이 없었기에 역설적으로 누구나 불완전한 형태에서 저마다의 여백을 발견하고 자신의 작업에 녹여낼 수 있었다. 결국 이 모든 것에 앞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최초에 한 사람의 시선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파괴적인 모더니즘의 시대에서 한평생 인간적인 무언가를 찾아 헤맨 예술가가 이름 없는 기물을 ‘행복한 하나의 조각’으로 보았기에 이 거대한 맥락이 만들어졌다. 발견은 언제나 간절히 찾는 사람 쪽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우리 각자에게도 행복의 조각이 발견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