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

무심함의 여행, 조선의 이름 없는 항아리가 바다를 건넌 이야기

1935년, 이름 모를 달항아리 하나가 바다를 건너 런던으로 실려 갔다. 누가, 어디서, 어떤 마음으로 빚었는지 알 길 없는 이 조선의 살림 항아리는 당시 경성의 골동품 가게에서 한 이방인 예술가의 눈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정은 영국 도예 거장들을 거쳐 60년 만에 대영박물관 한국관의 중심에 안착하는 서사를 완성했다. 무심하게 빚어진 사물 하나가 누군가의 생에 들어가 그의 예술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둘러싼 예술 세계에 영향을 주었다. 이 텅 빈 항아리는 어떤 힘으로 그 긴 시간을 견디며 제 자리를 찾아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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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함의 여행, 조선의 이름 없는 항아리가 바다를 건넌 이야기

1935년, 이름 모를 달항아리 하나가 바다를 건너 런던으로 실려 갔다. 누가, 어디서, 어떤 마음으로 빚었는지 알 길 없는 이 조선의 살림 항아리는 당시 경성의 골동품 가게에서 한 이방인 예술가의 눈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정은 영국 도예 거장들을 거쳐 60년 만에 대영박물관 한국관의 중심에 안착하는 서사를 완성했다. 무심하게 빚어진 사물 하나가 누군가의 생에 들어가 그의 예술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둘러싼 예술 세계에 영향을 주었다. 이 텅 빈 항아리는 어떤 힘으로 그 긴 시간을 견디며 제 자리를 찾아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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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함의 여행, 조선의 이름 없는 항아리가 바다를 건넌 이야기

1935년, 이름 모를 달항아리 하나가 바다를 건너 런던으로 실려 갔다. 누가, 어디서, 어떤 마음으로 빚었는지 알 길 없는 이 조선의 살림 항아리는 당시 경성의 골동품 가게에서 한 이방인 예술가의 눈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정은 영국 도예 거장들을 거쳐 60년 만에 대영박물관 한국관의 중심에 안착하는 서사를 완성했다. 무심하게 빚어진 사물 하나가 누군가의 생에 들어가 그의 예술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둘러싼 예술 세계에 영향을 주었다. 이 텅 빈 항아리는 어떤 힘으로 그 긴 시간을 견디며 제 자리를 찾아왔을까.

* ‘Icon・Index・Symbol’ 시리즈는 배재희 디렉터가 선곡한 음악과 함께 즐겨보세요.

낯선 시선이 발견한 ‘행복 한 조각’

이 항아리를 가진 것은 마치 행복을 가득 품은 것 같다.
- 버나드 리치

영국 현대 도예의 아버지라 불리는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는 일본에서 도예를 배운 후 이름 없는 장인의 작업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민예 운동을 야나기 무네요시Muneyoshi Yanagi와 함께 이끌었다. 1935년, 그는 야나기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두 번째 방문이었던 그의 시선은 ‘조선의 선’, 고려청자를 지나 조선백자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어느 골동품 가게에서 한 항아리 앞에 멈춰 선다. 높이 47cm, 둘레 140cm 정도 되는 그 항아리는 위아래 두 덩어리를 붙여 만든 탓에 이음새가 선명하고, 완벽한 구형과는 거리가 멀며, 유약은 군데군데 고르지 않게 번져 있었다. 그는 그런 불완전함을 껴안고 “행복한 하나의 조각을 품에 안고 돌아간다”라며 영국으로 향했다.

Bernard Howell Leach Talking Pottery Philosophy Around the Fire, Circa 1946 ⒸFrom the Coast to the Wall
Line Drawing of the Fireplace by Roger Tonkinson ⒸFrom the Coast to the Wall

달항아리는 원래 절임과 곡식을 담던 살림 도구였다. 검소함을 덕으로 여기던 태도가 기물의 형태로 굳어진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물건이 예술이라는 범주에 들어간 것은 오히려 외부의 시선 덕분이었다. 당시 리치는 영국 스튜디오 도예의 기준점이었고, 달항아리와는 반대되는 투박하고 남성적인 양식을 지향했다. 그랬던 그는 이후 한국식 가마, 조선백자와 분청의 문양, 유약의 처리 방식을 자신의 작업실에 적용했다. 인간성을 회복하고 가식 없는 삶을 살고자 했던 그에게, 달항아리는 그 방향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었을지 모른다.

한 도예가의 선반 위에서 함께 살아간 50년

살아 있는 예술은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현대적입니다.
예술 이론은 저에게 의미가 없고, 아름다움은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이 제 모든 철학입니다.
- 루시 리

1943년, 리치는 런던이 폭격받던 시기에 이 소중한 항아리를 루시 리Lucie Rie에게 맡긴다. 그녀는 런던으로 망명한 유대인 도예가이면서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리치는 평소 그녀의 작업을 두고 “유약이 너무 두껍고, 기벽이 너무 얇다”며 인간미가 없다고 평했으면서도 자신의 가장 귀한 보물은 그녀에게 맡겼다. 이후 리치는 편지에 “당신이 그 항아리를 계속 지켜주기를 바란다”는 부탁을 남겼고, 그녀가 1995년 92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50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했다. 루시 리의 도자기는 현대적이며, 형태는 단순하지만 과감하다. 이음새를 드러내며 결코 완벽한 대칭이 될 수 없는 달항아리와는 아주 결이 멀다. 그러나 루시 리는 달항아리를 깊이 사랑했다. 어쩌면 그녀 또한 자신이 도달하지 못한 어떤 자유로움을 그 항아리에서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두 예술가는 각자의 작업과 가장 멀리 있는 물건을 아주 가까이, 아주 오래 곁에 두었다.

하나의 시선으로 발견된 물건이 시대의 맥락이 될 때

The Beauty of Imperfection Interpreted Through Adam Buick’s Moon Jar Exhibition ⒸLondon Korean Links

루시 리 사후, 달항아리는 1999년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에 영구 소장된다. 이름 없는 항아리가 런던의 망명 도예가 작업실을 거쳐 세계 최대 박물관에 안착하기까지 약 60년이 걸렸다. 잘 보존된 것도 다행이지만, 흥미로운 것은 이 항아리가 영국 스튜디오 도예 전반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아키코 히라이Akiko Hirai, 애덤 뷰익Adam Buick 같은 영국 도예가들이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얻은 작업을 이어갔고 2013년 런던 한국문화원 전시에서 이들은 대영박물관 소장 달항아리와 나란히 자신들의 작업을 전시했다. 이름 모를 조선의 무명 도공이 구운 한 도자기는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바다를 건넜고, 다시 우리의 시선이 닿는 곳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오롯이 주변에 존재만으로도 영향을 주었다.

무심한 태도가 준 영감

달항아리가 이 긴 여정을 거칠 수 있었던 건, 특정한 작가나 원조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비록 처음의 쓰임새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사람들의 시선 안에만 머물렀지만, 만든 이의 이름이나 맥락이 없었기에 역설적으로 누구나 불완전한 형태에서 저마다의 여백을 발견하고 자신의 작업에 녹여낼 수 있었다. 결국 이 모든 것에 앞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최초에 한 사람의 시선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파괴적인 모더니즘의 시대에서 한평생 인간적인 무언가를 찾아 헤맨 예술가가 이름 없는 기물을 ‘행복한 하나의 조각’으로 보았기에 이 거대한 맥락이 만들어졌다. 발견은 언제나 간절히 찾는 사람 쪽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우리 각자에게도 행복의 조각이 발견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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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코프가 발견한 각자의 인생, 자기만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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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에 앞서, 소니 그리고 모리타 아키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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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함이라는 가업, 계승되는 천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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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산업 유산의 미학적 환생, 무덱과 폰다지오네 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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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요크의 시각적 유산, 그 궤도를 수놓은 비주얼리스트의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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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찰나를 포착했던, 하이엔드 포인트 앤 슛 카메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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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빙 펜에서 더 로우까지, 비워냄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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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 구아다니노가 그린, 에로스와 타나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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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은 빈 방에서 태어난다, 도널드 저드와 릭 루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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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들의 영혼을 깨운 무구한 사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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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 스카르파와 아바텔리스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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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실재가 빚어낸 초현실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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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제약, 상상력을 붙잡아두는 창조의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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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법, 움베르토 에코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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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자키 쿄코와 도시적 에로티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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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라는 완벽한 질서, ‘우연 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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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흔적을 지우는 기술, 스프레차투라에 대하여

08

미완성과 우연의 초상, 〈휘슬재킷〉

07

악의 미학을 위한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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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 여운, 사물이 살아 있는 시간: 루시엔 데이와 마가렛 호웰

05

첫 권의 문학: 세계를 여는 방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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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 단계의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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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콜렉투스 – MoMA가 수집한 사물들

02

아키 카우리스마키와 시지프의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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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오키프와 마이크로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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