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를 대표하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알바 알토Alvar Aalto는 건축가의 궁극적인 목표를 ‘낙원을 창조하는 일’이라 말했다. 그가 떠올린 낙원은 거창한 이상향이라기보다 빛과 공기, 자연의 재료가 인간의 삶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드는 장소에 가까웠던 것. 당시 유럽의 모더니즘이 기계적 효율과 합리성을 앞세웠다면, 알토는 그보다 먼저 인간의 몸과 감정, 일상의 경험을 들여다봤다. 오늘날 그의 건축을 ‘인간 중심적’이라 부르는 이유다. 아내이자 오랜 창작 파트너였던 아이노 알토Aino Aalto 역시 건축과 인테리어, 가구와 생활용품을 함께 설계하며 이 철학을 구체적인 삶의 풍경으로 확장했다.

건축가의 궁극적인 목표는 낙원을 만드는 일이다.
모든 집과 건축물은 인간을 위한 지상의 낙원을 세우려는
노력의 결실이어야 한다.
─ 알바 알토(Alvar Aalto)
배려의 건축, 파이미오 요양원

1933년 완공된 파이미오 요양원은 알토 부부의 생각이 가장 선명하게 구현된 건축이다. 결핵 치료제가 없던 당시에는 신선한 공기와 햇빛, 충분한 휴식이 곧 중요한 치료 수단이었다. 두 사람은 이에 한발 더 나아가 건물 자체가 환자의 회복을 돕는 하나의 ‘의료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병실과 발코니를 햇빛과 바람이 잘 드는 방향으로 배치하고, 건물 꼭대기에는 환자들이 햇볕을 쬐며 머물 수 있는 넓은 테라스를 마련한 것도 그 때문이다. 매끄러운 흰색 외벽과 콘크리트 구조, 길게 뻗은 수평선에서는 당시 국제주의 모더니즘의 인상이 읽히지만, 그 안으로 들어서면 건축의 기준이 얼마나 세심하게 환자의 몸과 마음에 맞춰져 있는지 드러난다.


복도와 계단, 난간에는 노란색과 주황색, 푸른색 등 서로 다른 색을 사용했다. 공간의 기능을 직관적으로 구분하는 동시에, 오랜 시간 병원에 머무는 환자의 심리적 안정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이러한 배려는 손끝이 닿는 작은 부속품에까지 이어진다. 환자복이 걸리지 않도록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은 문손잡이, 물소리가 같은 병실의 환자를 방해하지 않도록 고안한 세면대, 청소가 쉽도록 바닥에서 띄운 옷장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파이미오 체어Paimio Chair’로 널리 알려진 아르텍Artek의 암체어 41 ‘파이미오’ 역시 이 요양원을 위해 탄생했다. 가벼워 쉽게 옮길 수 있을 뿐 아니라, 몸을 편안히 기댈 수 있도록 좌석을 낮추고 등받이를 완만하게 기울였다. 차갑고 단단한 금속 대신 얇게 휜 자작나무 합판을 사용해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착좌감까지 고려했다. 건물의 큰 구조에서 손끝에 닿는 작은 디테일까지, 파이미오를 이루는 모든 요소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공간에 머무는 사람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들 수 있을까. 알토 부부의 건축은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됐다.
스뇌헤타가 그려낸 미래, 웰니스 데스티네이션

알토 부부의 인간 중심적 철학을 품은 파이미오 요양원은 이제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파이미오 요양원 재단은 역사적 건축물의 가치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이어가기 위해 세계적인 노르웨이 건축사무소 스뇌헤타Snøhetta에 새로운 마스터플랜을 의뢰했다. 요양원과 주변의 광활한 부지를 숙박과 웰니스, 문화 프로그램, 국제적 교류가 유기적으로 어우러지는 복합적인 목적지로 확장하는 계획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변화가 건축물의 외연을 넓히는 데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스터플랜은 건축이 무엇보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알토 부부의 철학에서 다시 출발한다. 한 세기 전 환자의 회복을 위해 빛과 색, 가구와 자연환경까지 세심하게 설계했던 그들의 태도가 오늘날 웰니스와 지속 가능성이라는 언어로 새롭게 이어지는 셈이다. 스뇌헤타는 그 정신을 동시대의 방식으로 계승하며, 파이미오를 과거의 건축 유산이 아닌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회복과 치유의 장소로 다시 그리고 있다.
아이노와 알바 알토가 남긴 유산에 깊은 존경을 품고 이번 프로젝트에 임했다.
이곳이 미래에도 사려 깊은 방식으로 쓰이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철저한 연구를 바탕으로 모든 개입을 신중히 검토했으며,
건축의 고유한 가치를 지키면서도 시대에 맞춰 계속 변화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 셰틸 트레달 토르센니(Kjetil Trædal Thorsen)

한때 환자들이 머물던 병동은 앞으로 휴식과 사색, 만남을 위한 호텔로 영역을 넓힌다. 지금도 여름이면 간호사 숙소와 일부 환자실을 활용해 방문객을 맞이하지만, 본관의 환자실은 단체 방문객을 위한 ‘리트리트 룸Retreat Room’으로 제한적으로 문을 여는 정도다. 새 마스터플랜은 이 숙박 경험을 정식 호텔로 확장해, 더 많은 이들이 알토 부부의 건축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머물며 체감할 수 있도록 한다.

객실은 각기 다른 여행의 방식에 맞춰 보다 다채롭게 구성된다. 공용 욕실을 사용하는 아담한 객실부터 내부에 간결한 욕실을 갖춘 객실, 편의 시설을 온전히 갖춘 넓은 객실까지 선택의 폭을 넓힐 계획이다. 대신 기존 병실이 지닌 비례와 고유한 공간감은 가능한 한 그대로 남긴다. 병실 복도와 길게 이어진 발코니도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후대에 덧붙여진 유리창을 걷어내고, 햇빛과 바람이 자유롭게 스며드는 개방형 구조로 복원하는 것이다. 과거 환자들이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햇볕을 쬐던 자리는 이제 투숙객이 숲의 풍경과 계절의 변화를 가까이 누리는 휴식처가 된다. 공간의 역할은 달라져도, 자연을 회복의 일부로 바라본 태도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는다.

새롭게 들어설 스파 역시 같은 맥락에서 설계된다. 실내에서 곧바로 야외로 나갈 수 있도록 동선을 열어, 웰니스의 경험이 건물 안에 갇히지 않고 주변 숲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한다. 한때 치료의 중요한 조건이었던 빛과 공기, 숲과 호흡을 오늘날의 휴식 방식으로 다시 풀어낸 셈이다. 새로운 시설을 안에 채우는 것보다, 파이미오가 오랫동안 자연과 맺어온 관계를 되살리는 데 더 큰 의미를 둔 선택이다.


옛 수술동은 문화와 교류가 머무는 공간으로 새롭게 쓰인다. 두 층을 하나로 연결해 약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가변형 오디토리움을 만들고, 강연과 공연, 회의 등 프로그램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도록 구상했다. 벽면에는 알토 부부가 즐겨 사용한 자작나무를 떠올리게 하는 세로형 루버가 더해진다. 설비와 음향 장치는 그 안에 정교하게 숨겨, 기능은 충분히 갖추되 공간의 인상은 단정하게 유지한다. 오디토리움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방문객 전용 출입구도 새롭게 마련된다. 호텔의 일상과 문화 행사가 자연스럽게 분리되면서, 건물 안팎의 흐름도 한층 매끄러워질 전망이다.

파이미오가 준비하는 미래는 옛 병원을 호텔로 바꾸는 일보다 조금 더 깊은 곳을 향한다. 환자실은 여행자가 머무는 객실이 되고, 길게 뻗은 발코니는 다시 햇빛과 바람을 맞이하는 휴식처가 된다. 옛 수술동에는 사람들이 모여 대화와 영감을 나누는 무대가 들어서고, 스파에서 시작된 웰니스의 경험은 주변 숲으로 이어진다. 한때 결핵 환자의 회복을 도왔던 건축이 이제 휴식과 문화, 교류를 품으며 새로운 시대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Editor’s Comment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변화가 과거를 지우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새로운 기능을 덧입히면서도, 파이미오가 처음부터 품고 있던 치유와 환대의 감각은 여전히 중심에 놓인다. 건축의 쓰임은 달라질 수 있지만, 사람을 먼저 생각했던 알토 부부의 시선만큼은 시대를 건너 계속 이어지는 셈이다.
다만 이번에 공개된 구상은 긴 변화의 시작에 가깝다. 개관 시기와 객실 수, 구체적인 운영 방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앞으로 핀란드 문화유산청과 알바 알토 재단의 협력 아래 세부안을 다듬고, 건축적 가치를 지키면서 새로운 기능을 더하는 보존과 개조 작업을 단계적으로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