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에 지칠 때면, 일상으로부터 잠시 거리를 둘 곳을 찾게 된다. 도서관에 들어서는 순간 소음은 멀어지고, 빼곡한 서가와 높은 천장, 창으로 스며드는 빛 사이로 시간의 흐름도 한결 느려지는 듯하다. 여행지의 도서관이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래된 책과 가구에 남은 세월의 흔적을 바라보고, 책장을 넘기는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거닐다 보면 유명 관광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던 도시의 일상과 취향이 드러난다. 저마다의 도서관이 무엇을 간직하고, 시민에게 어떤 공간을 내어주는지 살펴보는 일도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때로는 책 한 권을 펼치지 않아도 좋다. 잠시 머물며 그곳의 고요를 누리는 것만으로도 낯선 도시가 조금은 익숙해진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 도서관, 마자랭 도서관



생제르맹데프레Saint-Germain-des-Prés와 센강la Seine사이, 예술의 다리로 불리는 퐁데자르Pont des Arts 인근에 ‘마자랭 도서관Bibliothèque Mazarine’이 있다. 프랑스 학술원Institut de France의 묵직한 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천장 가까이 이어지는 목제 서가와 오래된 책, 대리석 흉상이 긴 열람실을 채운다. 단 몇 걸음 만에 17세기 파리로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하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도서관인 마자랭 도서관의 시작은 17세기 쥘 마자랭Jules Mazarin 추기경이 모은 개인 장서였다. 그의 사서 가브리엘 노데Gabriel Naudé는 유럽 곳곳에서 책을 수집해 규모를 키웠고, 1643년부터 학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문을 열었다. 이후 마자랭의 장서를 바탕으로 꾸준히 자료를 더해 오늘날 약 60만 점을 소장하고 있다. 중세와 근대 역사, 프랑스 지역사, 책과 출판의 역사에 관한 자료가 특히 풍부하다. 1455년경 구텐베르크Gutenberginc가 인쇄한 42행 성경도 이곳을 대표하는 소장품으로, 마자랭이 1647년 이전에 직접 구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열람실이다. 수백 년의 시간이 깃든 서가 아래에서 지금도 사람들이 책을 읽고 연구한다. 일반 방문객도 개관 시간에는 신분증을 맡기고 방문객 배지를 받아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생제르맹데프레를 산책하다 잠시 들러 고서가 빼곡한 서가 사이를 천천히 걸어보자. 풍부한 예술과 역사를 지닌 파리의 시간을 가까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며, 여름에는 평일에만 문을 연다. 매년 8월 1일부터 15일까지는 휴관하니, 휴가 기간 방문을 계획한다면 참고하자.
숲을 향해 열린 도서관, 말뫼 시립도서관



말뫼Malmö 도심의 쿵스파르켄Kungsparken을 걷다 보면 울창한 나무 사이로 커다란 유리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말뫼 시립도서관Malmö stadsbibliotek’의 신관 ‘빛의 달력Ljusets kalender’이다. 이름처럼 이곳의 주인공은 빛과 자연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높은 천장 아래로 서가가 펼쳐지고, 한쪽 벽을 가득 채운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공원의 나무와 하늘이 시원하게 이어진다. 책을 읽다 고개를 들면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숲의 모습이 그대로 눈에 들어온다.

말뫼 시립도서관의 역사는 1905년 시작됐다. 1946년에는 원래 박물관으로 지어진 붉은 벽돌 건물로 자리를 옮겼고, 이용자가 늘면서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해졌다. 이에 덴마크 건축가 헤닝 라르센Henning Larsen이 새로운 도서관을 설계했고, 1997년 신관 ‘빛의 달력’이 문을 열었다. 오늘날 도서관은 ‘성Slottet’이라 불리는 옛 붉은 벽돌 건물과 신관, 그리고 두 건물을 잇는 원형 공간 ‘실린더Cylindern’까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래된 건축을 허물지 않고 새로운 공간을 이어 붙인 점도 이곳의 매력이다.
도시 한가운데 세운 책의 궁전, 스톡홀름 공공 도서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바로 ‘스톡홀름 공공도서관Stockholms stadsbibliotek’이다. 밖에서 보면 네모난 건물 위에 커다란 원통 하나를 올려놓은 듯 단순하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수만 권의 책이 벽을 따라 둥글게 펼쳐지는 반전이 기다린다. 1928년 문을 연 이 도서관은 스웨덴을 대표하는 건축가 군나르 아스플룬드Gunnar Asplund의 걸작이다. 높이 약 24m의 원형 홀 ‘로툰다Rotunda’가 특징. 아래층과 두 개의 갤러리를 따라 약 4만 권의 책이 원을 그리듯 이어지고, 천장 가까이에 낸 높은 창으로 들어온 빛이 회백색 벽을 타고 은은하게 퍼진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공간에 도착하는 과정이다. 거리에서 계단을 올라 좁고 어두운 입구를 지나면 갑자기 밝고 탁 트인 로툰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고요한 책의 세계로 들어가는 경험까지 건축으로 설계한 것이다.



곳곳을 살펴보면 아스플룬드의 세심한 장치가 눈에 들어온다. 그는 로마Rome의 판테온Pantheon에서 영감받아 원과 사각형을 건물 곳곳에 반복했고, 로툰다 바닥의 기하학적 무늬에도 그 흔적을 남겼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개관 당시 스웨덴 공공도서관 최초로 이용자가 직접 서가에서 원하는 책을 꺼내볼 수 있는 ‘개가식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것. 웅장한 건축을 만들면서도 책만큼은 시민의 손이 쉽게 닿는 곳에 두려 했다. 오늘날에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방식이지만, 1928년 당시에는 매우 현대적이고 개방적인 도서관의 모습이었다.
아쉽게도 지금 당장, 이 원형 서가 안에 들어가 볼 수는 없다. 도서관은 약 100년 된 건물을 보수하기 위해 현재 문을 닫았으며, 2028년 초 재개관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기존의 고정 가구와 목공예, 예술 작품 등 역사적 요소는 복원하고,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공간을 비롯한 공공 영역은 새롭게 정비할 예정이다. 스톡홀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재개관 시기를 미리 확인하면 좋다.
스톡홀름 공공 도서관
주소 | Odengatan 53, 113 50 Stockholm, Sweden
운영 시간 | 2028년 재개관 예정
Link | 웹사이트
두 시대가 만나는 도서관, 덴마크 왕립 도서관

코펜하겐 항구에는 햇빛에 따라 검은색과 은빛 사이를 오가는 거대한 ‘보석’이 있다. 덴마크 왕립도서관Det Kgl. Bibliotek의 신관, ‘블랙 다이아몬드Black Diamond’다. 짐바브웨산 검은 화강암으로 뒤덮인 외관은 묵직하고 단단해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건물 한가운데 높고 밝은 유리 아트리움이 열리고, 커다란 창 너머로 코펜하겐 항구와 물 위를 오가는 배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도서관의 역사는 건물보다 훨씬 오래됐다. 1648년 프레데리크 3세Frederik III가 세운 왕실 도서관에서 시작해 수백 년간 덴마크의 책과 기록을 모아왔다. 현재 항구 뒤편에는 건축가 한스 예르겐 홀름Hans Jørgen Holm이 설계해 1906년 완공한 옛 도서관이 남아 있고, 1999년 슈미트 해머 라센Schmidt Hammer Lassen이 설계한 블랙 다이아몬드가 더해졌다. 서로 전혀 다른 시대의 건물이 하나의 도서관으로 연결되어 있다.

내부를 걷다 보면 그 연결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현대적인 아트리움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어느새 100여 년 전 도서관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중에서도 꼭 찾아볼 곳은 ‘올드 리딩 룸Old Reading Room’. 1906년 문을 열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열람실로, 긴 목재 테이블과 줄지어 놓인 초록색 유리 램프가 고전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램프는 덴마크 건축가 요하네스 막달닐센Johannes Magdahl-Nielsen이 이 공간을 위해 따로 디자인했다.


블랙 다이아몬드와 도서관은 누구에게나 무료로 열려 있고, 전시와 콘서트, 카페까지 갖춘 문화 공간으로 운영된다. 그중 올드 리딩룸은 사전 등록이 필수다. 상설전 《트레저스TREASURES》에서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의 일기,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의 편지, 카렌 블릭센Karen Blixen의 친필 원고처럼 덴마크 문화사의 귀중한 기록도 만날 수 있다. 일요일에는 전시 티켓을 제시하면 일반 방문객도 올드 리딩 룸에 들어가볼 수 있으니 시간 맞춰 방문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