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도시를 한 사람에 비유한다면, 코펜하겐Copenhagen은 깔끔하고 단정한 용모에 군더더기 없는 세련미를 지닌 인물일 것 같다. 과시하지 않지만 허술하지 않고, 차갑게 정돈되어 있으면서도 어딘가 편안한 인상. 북유럽 미니멀리즘에 기반한 이 도시의 미감은 장식보다 기능을, 화려함보다 균형을, 유행보다 오래 지속되는 태도를 중시한다. 그렇다면 이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무엇을 먹고, 어떤 물건을 고르며 하루를 채워갈까. 코펜하겐 사람들의 일상과 취향이 담긴 네 개의 장소를 따라가 보자.
도심 속 디자인 살롱, 루이즈 로

‘루이즈 로LOUISE ROE’는 디자이너 루이즈 로 안데르센Louise Roe Andersen이 2010년 설립한 가구 및 오브제 브랜드다. 패션과 콘셉트 개발을 공부한 그는 주변의 형태와 색, 사물이 지닌 분위기에서 출발해 베이스와 램프, 세라믹, 글라스웨어, 가구를 만들어왔다. 유리, 세라믹, 섬유, 석재, 오크처럼 정직한 소재를 다루고, 유럽 장인의 제작 방식을 바탕으로 삼는다. 단순하지만 조각적인 형태, 과한 장식보다 빛과 그림자, 작은 디테일이 만드는 균형. 루이즈 로의 미감은 그런 절제된 긴장감에서 나온다.



코펜하겐 중심부 보그마게르가데Vognmagergade 9번지에 자리한 ‘루이즈 로 갤러리LOUISE ROE Gallery’는 2018년 문을 열었다. 가구와 조명, 유리 화병, 세라믹 오브제가 어우러진 우아한 실내 풍경에 자연스레 시선이 닿고, 그 사이를 천천히 거닐며 물성과 비례, 색의 조합을 감각하게 된다. 마치 취향 좋은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은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더 로 바The Roe Bar’가 나온다. 갤러리와 함께 시작한 카페는 2022년 리노베이션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유기농 식재료와 제철 재료를 바탕으로 아침과 점심 메뉴를 만들고, 빵과 페이스트리는 ‘유노 더 베이커리Juno the Bakery’에서 공급받는다. BMO 번BMO Bun, 모닝 세트Morning Set, 트러플 토스트Truffle Toast, 계절 채소를 활용한 샐러드처럼 단정한 메뉴에 커피와 차, 주스, 콤부차, 와인을 곁들일 수 있다. 갤러리의 의자에 앉아 식사하고, 브랜드의 테이블웨어로 음료를 마시는 시간. 더 로 바는 루이즈 로의 디자인을 가장 자연스레 경험하도록 이끈다.
읽는 경험을 설계하는 문화 플랫폼, 시몬 북 서비스




‘시몬 북 서비스Simone Book Services’는 서점이자 큐레이션 스튜디오다. 베스터 볼가데 106번지, 덴마크건축센터DAC 건너편에 자리한 이곳은 희귀 서적과 독립 출판물, 매거진을 다룬다. 스스로를 라이브러리 큐레이션, 북 브랜딩, 전시, 무드보드, 서점을 아우르는 공간으로 소개하는 만큼, 시몬의 정체성은 ‘책을 파는 곳’에만 머물지 않는다. 책을 고르고, 배열하고, 읽는 행위가 하나의 문화적 경험이 되는 곳.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데리야 아르파츠Derya Arpaç’가 설계한 공간 역시 이러한 성격을 잘 드러낸다. 바퀴 달린 카운터, 분리 가능한 알루미늄 랙, 세워둘 수 있는 벤치처럼 대부분의 요소가 움직일 수 있도록 구성됐고, 방과 방 사이에는 문을 두지 않았다. 덕분에 서점과 토크 공간, 전시실, 아카이브 룸은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시몬 북 서비스에서는 책을 매개로 예술과 디자인, 대화가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전시 오프닝과 아티스트 토크, 출판 관련 이벤트가 열리고, 디자인 위크 기간에는 작은 전시 플랫폼으로도 기능한다. 올해 ‘쓰리 데이즈 오브 디자인3daysofdesign’ 기간에는 전시 〈디스플레이 / 디스플레이드Display / Displayed〉를 통해 책, 디자인, 사진을 중심으로 ‘보여지는 사물’과 ‘보여주기 위한 사물’의 의미를 다뤘다. ‘리스닝 위드 북스Listening with Books’처럼 책과 듣기의 경험을 연결한 프로그램도 이 공간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대형 쇼룸 사이에서 잠시 속도를 늦추고 싶을 때, 시몬 북 서비스는 좋은 목적지가 된다.
단순함이 주는 풍요로움, 아포텍 57



‘아포텍 57Apotek57’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프라마FRAMA’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가구와 조명, 향, 테이블웨어를 통해 절제된 생활 미감을 제안해 온 코펜하겐의 디자인 브랜드. 프라마의 세계는 이곳에서 음식과 환대의 방식으로 확장된다. 아포텍 57은 프라마 스튜디오 스토어 안에 자리한다. 19세기 성 바울 약국으로 쓰이던 건물이다. 공간에는 오래된 오크 약장과 채색된 천장, 시간의 결이 남은 벽과 바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사이로 프라마의 가구와 오브제, 프래그런스 제품이 섬세하게 놓여 있다. 쇼룸과 카페, 다이닝 공간의 느슨한 경계는 프라마의 미학을 자연스레 경험하도록 이끈다. 먹고 마시고, 의자에 앉고, 손에 닿는 사물의 질감을 느끼는 사이 브랜드의 세계 안으로 천천히 들어가게 된다.



주방은 셰프 ‘키아라 바를라Chiara Barla’가 이끈다. 메뉴는 계절 식재료를 중심으로 매일 조금씩 달라지며, 직접 만든 베이크류와 커피, 아침과 점심 메뉴, 간단한 음료가 주를 이룬다. 접시 위의 구성은 단순하다. 좋은 재료, 담백한 조리, 선명한 맛. 아포텍 57의 음식은 프라마의 공간처럼 과하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빛이 드는 창가, 기분 좋은 촉감, 건강한 맛이 어우러져 오래 머물고 싶은 장면을 만든다.

작년 가을 무렵, 프라마가 새롭게 선보인 ‘바 비트린Bar Vitrine’도 눈여겨 볼 것. 레스토랑 경영자 ‘리카르도 마르콘Liccardo Marcon’, 노마 출신 셰프 ‘드리티 아로라Dhriti Arora’와 함께 완성한 16석 규모의 와인 바다. 낮의 프라마가 아포텍 57에 있다면, 밤의 프라마는 이곳에 있다. 와인 한 잔과 작은 접시, 낮보다 조금 더 사적인 분위기 속에서 프라마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날 수 있다.
북유럽식 행복을 경험하는 법, 라 반키나


코펜하겐 로컬의 삶을 제대로 경험해 보고 싶다면, 수영복을 챙겨 ‘라 반키나La Banchina’로 향해보자. 카페와 해산물 레스토랑, 프라이빗 사우나가 한데 어우러진 이곳은 휘게 정신이 깃든 장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Dip, eat and repeat’이라는 모토처럼, 이곳에서는 와인 한 병을 들고 부두에 앉아 햇볕을 쬐다가 내킬 때마다 항구로 뛰어드는 풍경이 일상적으로 펼쳐진다.
라 반키나가 자리한 ‘레프스할레외엔Refshaleøen’은 코펜하겐 시내 중심부에서 자전거로 15분가량 떨어진 옛 산업 지대다. 과거 ‘버마이스터 앤 웨인 조선소Burmeister & Wain, B&W’가 있던 이곳은 창고와 부두, 콘크리트가 남긴 투박한 풍경 위에 카페와 푸드 마켓, 문화 공간이 들어서며 힙한 수변 지구로 떠올랐다. 낡은 공간을 허물기보다 기존의 결을 살려 다시 쓰는 방식은 코펜하겐이 도시를 대하는 태도를 잘 보여준다.



이탈리아어로 ‘부두’를 뜻하는 라 반키나는 이름처럼 물가의 생활을 중심에 둔 공간이다. 작은 푸른 집과 나무 데크, 항구와 사우나가 이어진 아담한 구조로, 실내와 야외를 오가며 자유롭게 머물 수 있다. 아침에는 유기농 빵과 페이스트리, 커피를 내고, 낮과 저녁에는 지역에서 공수한 제철 채소와 해산물 요리, 내추럴 와인을 선보인다. 카페와 레스토랑은 예약 없이 이용할 수 있지만, 사우나는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라 반키나만 보고 돌아서기엔, 레프스할레외엔은 너무 흥미로운 동네다. 최근에는 ‘노마 프로젝트 숍Noma Projects Shop’이 문을 열며 미식 애호가들의 발길을 더하고 있다. 노마의 가든 온실에 자리한 이곳에서는 테스트 키친과 발효 랩에서 출발한 소스와 천연 조미료 등 노마의 실험적인 풍미를 보다 일상적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 북유럽 최대 규모의 스트리트 푸드 마켓 ‘레펜Reffen’, 동시대 미술관 ‘코펜하겐 컨템포러리Copenhagen Contemporary’까지 함께 둘러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