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공간은 강남구 신사동의 시수하우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과 럭셔리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이어지는 강남 일대의 대로변을 지나 골목 안으로 들어서면, 뜻밖에도 정감 있는 벽돌집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화려한 도시의 결에서 한 발 비껴난 듯한 풍경. 그 사이로 과시를 덜어낸 차분한 인상의 시수하우스가 자리한다. 문을 여는 순간, 바깥의 긴장은 천천히 옅어지고 전혀 다른 리듬의 공간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경민이 선보인 시수하우스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프라이빗 리추얼 하우스’다. 오랜 시간 미술 전시와 행사를 기획해온 그는 퇴사 이후, 자신의 이름으로 하나의 브랜드를 처음부터 일구기 시작했다. 브랜드의 방향을 고민하던 중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은 ‘사우나’였다. 프리랜서로 아트 페어 기획과 하이엔드 가구 큐레이션 등 여러 일을 이어가며 지쳐가던 그는, 목욕이야말로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허락하는 드문 행위임을 깨달았다.
외부와 잠시 단절된 채, 오롯이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시간. 그는 그 고요한 고립의 경험이 하나의 공간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후 일본과 핀란드 등 세계 각지의 사우나 문화를 연구하며 자신만의 지향점이 담긴 공간을 구체화했고, 약 3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지난 2월 압구정에 시수하우스를 열었다. 핀란드어로 ‘내면의 힘’과 ‘회복 탄력성’을 뜻하는 ‘시수Sisu’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더 나은 일상을 위한 조용한 숨 고르기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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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Pick 1. 몸과 마음을 돌보는 프라이빗 리추얼 하우스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가장 사적인 고요. 시수하우스는 스마트폰도, 도시의 소음도 잠시 멀어지는 곳에서 오직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설계한다. 압구정 한복판에서 보내는 단 90분. 열기와 냉기, 향과 음악, 물의 온도가 맞물리며 몸과 마음의 감각을 천천히 되돌린다.
이경민이 주목한 것은 해외 웰니스 신에서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은 ‘어반 리추얼 스페이스Urban Ritual Space’였다. 뉴욕의 ‘아더십Othership’, 런던의 ‘더 배스 하우스The Bath House’, 도쿄의 ‘사우나스Saunas’ 등 세계 각지의 사우나와 배스 문화를 살피며, 그는 도시 안에서 가능한 회복의 방식을 고민했다. 대단히 호화롭고 소란스러운 럭셔리 스파의 시대를 지나, 자신에게 몰입하는 도시형 웰니스 라이프스타일이 서울에도 등장한 것이다.
스스로를 ‘프라이빗 리추얼 하우스’로 정의하는 이 공간은 혼자 있는 시간을 보다 밀도 있게 누리는 경험에 집중한다. 슬로건 ‘No Rush, Just Rhythm’은 그 방향을 또렷하게 드러낸다. 서두르지 않고, 흐트러진 리듬을 다시 찾는 일. 시수하우스가 제안하는 회복은 거창한 변화보다, 몸의 감각을 천천히 되찾는 작은 습관에 가깝다.

Editor’s Pick 2. 쉼 없이 이어지는 환대의 경험


수년간 아트 페어에서 VIP 행사를 기획하고 접객을 맡아온 이경민은, 세심하게 설계된 호스피탈리티가 브랜드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바꾸는지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좋은 경험은 하나의 장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다시 바깥으로 나서는 순간까지, 동선과 온도, 향과 소리, 사람의 응대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브랜드의 인상이 남는다.


시수하우스의 문을 열면, 아로마 향과 편백나무 향이 은은하게 퍼지며 가장 먼저 손님을 맞이한다. 그동안 지나온 복잡한 도심과는 다른 세계임을 알리듯, 긴장을 낮추는 음악이 공간을 채운다. 리셉션에서 간단한 확인 절차를 마친 뒤 슬리퍼로 갈아 신고 계단을 오르면, 1.5층의 ‘터치 존’에서 본격적인 리추얼이 시작된다.
프로그램은 크게 ‘사우나 프로그램’과 ‘리커버리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사우나 프로그램은 별도의 터치 서비스 없이 온전히 사우나에 집중하는 구성이다. 반면 리커버리 프로그램은 전문 테라피스트가 20분간 아로마를 활용해 두피와 목 주변을 섬세하게 터치하며 몸의 긴장을 먼저 풀어준다. 이후에는 2층부터 이어지는 ‘프라이빗 존’에서 사우나와 스파를 경험하며 자신만의 리듬에 몰입한다.


따뜻한 웜 배스에 몸을 맡기고, 건식 사우나에서 충분히 근육을 이완한 뒤, 14℃의 콜드 샤워로 열기를 식힌다. 이 과정을 2~3회 반복하며 몸의 감각을 깨우는 것이 시수하우스가 제안하는 기본 루틴이다. 경험을 마친 뒤에는 다시 리셉션으로 돌아갈 필요 없이 곧장 퇴장할 수 있도록 동선을 구성했다. 다른 고객과 마주칠 가능성을 줄이고, 끝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지킬 수 있도록 한 이경민의 의도가 돋보이는 지점이다. 1층으로 내려와 직원이 미리 준비해둔 개인 신발을 신고 문을 나서면, 작은 정원을 지나 비로소 모든 리추얼이 마무리된다.
Editor’s Pick 3. 오직 ‘나’에게만 몰입하는 공간

시수하우스는 기존 건물을 리노베이션해 완성한 공간이다. 구조적 제약은 분명했지만, 이를 단점으로 남겨두기보다 세밀한 동선 계획으로 풀어냈다. 1층의 웰커밍 존, 1.5층의 터치 존, 2~3층의 프라이빗 존은 각각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공간을 이동할 때마다 새로운 장면이 열리고, 손님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의 리추얼로 안내된다.
인테리어는 외관처럼 간결하고 차분하다. 일부 공간의 조도를 낮추고,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내며, 고객이 자신의 몸과 마음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화려한 시각적 자극이 아니라, 감각을 방해하지 않는 절제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손에 닿는 것과 몸에 닿는 온도까지. 모든 요소는 하나의 고요한 리듬 안에서 작동한다.
이경민은 몰입을 해치지 않기 위해 공간 전반의 작은 틈까지 살폈다. 콜드 샤워에서 충분한 감각적 전환을 느낄 수 있도록 별도의 냉각 장치를 설치했고, 가운과 사우나 햇 역시 적합한 소재와 제작 방식을 일일이 수소문했다. 음악 큐레이션 또한 경험의 흐름을 완성하는 중요한 장치다. 낮에는 에너제틱한 무드의 ‘무비 젠Movie Zen’을, 밤에는 종소리처럼 잔향이 남는 앰비언트 기반의 ‘벨 브레스Bell Breath’를 선보인다. 시간대에 따라 달라지는 사운드는 공간의 온도를 미묘하게 바꾸며, 시수하우스가 지향하는 호스피탈리티를 한층 깊게 만든다.
브랜드 아이덴티티·웹사이트 디자인 by 홍준기


(오) 유기농 허브와 미네랄 솔트를 담은 시수하우스의 베스 솔트 파우치
홍준기 디자이너는 온탕’과 ‘냉탕’을 연상시키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최대한 지양하고, 시수하우스만의 세련되고 편안한 무드를 구체화하고자 했다. 짙은 옐로와 브라운, 그린을 브랜드 컬러로 채택한 것도 그 때문이다. 로고와 워드마크는 상징적인 이미지에 기대기보다, 브랜드 네임 자체를 감각적으로 시각화하는 방향으로 완성됐다.
웹사이트 역시 간결한 구조 안에서 브랜드 컬러를 적재적소에 활용해, 시수하우스의 무드를 은은하게 드러낸다. 기성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고, 디자이너가 직접 개발 과정에도 관여하며 브랜드의 개성을 온전히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기능을 넘어 분위기를 전달하는 웹사이트. 온라인에서의 첫인상 역시 시수하우스의 리추얼 안에 포함된다.
건축 설계·공간 디자인 by 건축사사무소 엠오씨

시수하우스는 다세대 주택과 임대형 원룸으로 쓰이던 4층 규모의 벽돌 건물을 리노베이션해 완성됐다. 이미 여러 차례 이경민과 협업한 바 있는 건축사사무소 엠오씨는 건물을 완전히 허물고 새로 짓기보다, 기존 건물이 가진 결을 살리는 방향을 택했다.
콘셉트는 ‘도심 속 오두막’. 외관은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인상을 만들기 위해 장식을 덜어내고, 창과 처마의 형태를 정리했다. 프라이버시를 위해 담장을 더했지만,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높이와 비례를 세심하게 조율했다. 담장의 컬러는 인근 건물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벽돌을 연상시키는 브라운으로 정했다. 도시의 골목 안에 놓인 작고 단단한 안식처. 시수하우스의 첫인상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건축 시공 by 3ab


시수하우스는 기존의 사우나, 불가마, 목욕탕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공간이다. 국내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프라이빗 사우나를 구현해야 했기에, 시공사 3ab의 역할은 더욱 중요했다. 이들은 수차례 목업을 제작하며 이경민이 그려온 이상에 가까운 공간을 완성하고자 했다.
특히 시수하우스의 중심이 되는 스파 공간에서는 웜 배스의 깊이와 높이, 몸이 닿는 각도와 시선의 흐름까지 세심하게 조율했다. 여기에 정교한 타일 마감이 더해지며 공간의 밀도가 완성됐다. 기술적인 완성도와 감각적인 마감이 맞물릴 때, 시수하우스의 고요는 비로소 실제의 경험이 된다.
가구 디자인 by 스튜디오 혜민키


(오) 간결하되 기능에 충실한 디자인이 특징인 스튜디오 혜민키의 가구들
건축사사무소 엠오씨가 만든 공간의 무드는 가구로도 이어진다. 스튜디오 혜민키는 시수하우스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심플하면서도 기능에 충실한 가구를 디자인했다. 거울과 의자, 서랍, 옷걸이 등은 존재감을 과하게 드러내지 않지만, 손님이 공간을 이용하는 거의 모든 순간에 닿아 있다.
특히 브랜드의 그린 컬러를 재해석한 리셉션 데스크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가장 먼저 닿는 가구다. 침착하면서도 세련된 색감, 단정한 형태, 불필요한 요소를 덜어낸 구조. 이 가구는 시수하우스가 지향하는 태도를 조용히 전달한다. 기능과 분위기 사이에서, 가구는 공간의 언어를 완성하는 또 하나의 장치가 된다.
Interview with 이경민 대표

—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해 시수하우스를 기획하셨습니다. 본격적으로 브랜드를 준비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3년 정도 연구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방문할 수 있는 곳은 제가 직접 찾아갔고, 해외 사우나들은 검색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사례를 일일이 조사했죠. 공간과 서비스 외에도 다양한 요소를 직접 살펴보며 저만의 기준을 만들었어요. 그 결과 시수하우스의 샴푸와 린스는 5성급 호텔 스파에서 사용하는 ‘캄모멘트리’ 제품으로 셀렉했고, 타올은 제가 원하는 감도와 기능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자체 제작했죠. 고객이 입장해서 퇴장할 때까지 만족스러운 경험을 가져갈 수 있도록, 시수하우스의 진정성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 아트페어에서 오래 일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를 시수하우스 기획에 반영한 부분이 있었나요?
아트 페어에서 손님들을 직접 만나 안내하는 일을 하면서, 관람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좋은 그림을 전시한다고 해서 아무 장치 없이 그저 흰 벽에 걸어둘 수는 없으니까요. 동선과 조명, 사운드 등이 경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죠. 고객의 감정선을 설계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저도 모르게 배웠다고 생각해요.
— 만족스러운 경험을 위해 특별히 신경 쓴 디테일이 궁금합니다.
청결에 집착한다고 느껴질 만큼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요. 깨끗한 공간에 혼자 발을 디뎠을 때 느끼는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순도 높은 평온을 준다고 생각해요. 마치 세상의 모든 소음이 차단된 채, 나만을 위해 준비된 완벽한 세상에 입장하는 기분이랄까요. 그 외에도 타올의 무게와 놓인 위치, 마시는 물의 온도, 열을 식히기 위한 아이스 타월의 접이 방식까지, 이 모든 요소가 결합되었을 때 비로소 완벽한 안식처가 된다고 믿어요. 그 믿음을 바탕으로 매일 철저히 고객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가장 좋아하는 목욕 시간과 루틴이 있을까요?
모든 업무를 마친 늦은 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목욕하는 시간을 가져요. 그때는 음악을 틀어두는 편인데, 요즘에는 재즈를 자주 듣고 있어요. 특히 크러쉬가 쳇 베이커Chet Baker의 ‘Everything Happens to Me’를 리메이크한 곡을 즐겨 듣는데요. 이 음악을 배경으로 몸의 긴장을 풀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시간이, 제 일상 속 작은 리추얼처럼 자리 잡았어요.
— 시수하우스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요?
‘안식처’요.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겼을 때, 시수하우스에 방문해 편안함을 느끼며 생각을 가다듬고 고민을 훌훌 털어낼 수 있었으면 해요. 건강하게 다시 살아갈 힘을 갖도록 북돋는 것이죠.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멀리 떠날 필요 없이, 도심에서 찾을 수 있는 좋은 안식처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